2004년 6월 22일 화요일

3000번 버스

7시 반쯤 잠에서 깨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은 얼추 8시가 되어 집을 나선다. 집에서부터 시외버스 정류장까지는 20여분 남짓의 걸음으로 가고, 운이 좋거든 곧바로 타겠지만, 대게는 5~10분 정도는 서너명의 줄을 따라 선채로 기다려야 한다.

3000번 버스를 처음 타게 된 것은 2년전 여름.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정확히는 늦봄의 어느날이었겠다. 어렵지 않게 찾아간 새 아르바이트 자리는 강남의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대로에 있었다. 처음엔 전철을 타고 언제 그곳까지 가려나 겁부터 먹었는데 출근하고 3일째인가 되는날 수원에서는 3000번 버스가 그 앞에 바로 선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걱정반 기쁨반으로 기다렸다. 버스는 뭐- 학교에서 타는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1300원(당시에)이나 되는 돈을 카드로 삑~하고 뜯겨야 했다. 그래도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그 먼길을 빙빙 돌려가는 것을 떠올리면 1~2백원 더 든다 하여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버스는 편했다. 내가 타는 곳에서는 자리도 많을뿐더러 적당한 자리를 잡으면 살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과 햇살을 느낄수 있었다. 무언지 형언할수 없는 그리움과 아픔을 삮히듯.

오늘 아침엔 잔득 피고한 머리를 짊어지고 올라탔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 자리뿐이었지만 피할쏘냐. 냉큼 앉아 머리를 대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잔득 무거워진 눈을 떠 보았을땐 벌써 양재 꽃시장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 이 부분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공원을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차들은 왠 차들은 또 그렇게 많은지... 3000번 버스를 호위라도 하듯 밀려온다. 달라 붙는다.

버스의 덜컹거림은 때때로 엉큼한 기억의 조각을 집어오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여자아이의 귀여웠던 실내화하며, 고등학교 시절 내게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점심시간 내내 교실 앞을 서성거렸던 그 친구의 뒷모습. 그리고 벌써 3년이 지나버린 그 아이의 핸드폰에 녹음된 목소리까지...

줄기와 뿌리처럼 이어진 기억의 조각들은 서로 엉뚱한 길찾기를 되풀이하며 이어져 나간다. 만남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 그리고 또 헤어짐. 계획. 목표.. 다짐.. 약속... 거짓말.. 솔직함... 진심.. 만날래? 헤어지자고? 친구사이로. 그냥 그렇게... 선생님이 싫습니다. 이젠 보기도 싫다구요! 때론.. 그저 말없이 눈감고 가버린 사람도.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졸업을 하고 친구들을 잊어가고.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 평생지기를 만나고 졸업하고.. 꿈을 잃어버리고.. 대학은 또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미쳐 생각의 끝이 어디론가 다다르기도 전에 버스는 종점에 와 있다.
나는 잔득 숙여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반쯤 잠에 잠겨있던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고 강남역 1번 출구 앞에 서있다.

또 하루가 이곳에서 시작하는구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