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엽, 21세기 작가란 무엇인가 1999 p25~26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활자 매체와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 사이의 물리적 차이이다. 그 차이는 두 매체가 똑같이 문자 텍스트로서의 문학을 구현할 때 더 잘 드러난다. 가령 활자-책과 시디롬-책을 비교해 보자. 책(冊)의 한자는 죽간 묶음의 상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모양, 얇은 것을 여러 장 겹쳐 맨 모양이다. 이 모양은 결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와의 직접적인 접촉, 혹은 소통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디롬-책은 컴퓨터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독자와의 접촉이 가능해진다. 컴퓨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시디롬-책은 간적접 접촉이라는 물리적 특징을 갖는다. 이 직접성/간접성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그것은 비판적 감각의 직접성 유무와 관계되지 않을까. 이점은 근대적인 책의 발생사를 돌아보게 해준다. 종이-인쇄 시대의 개막은 근대의 개막과 걸음을 같이했었다. 다수 민중을 몽매의 상태에 두고 지배층이 지식을 독점하는 그런 구조가 전근대의 권력의 매커니즘을 밑에서부터 받치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종이-인쇄 시대의 개막은 민중에의 지식의 확산을 가능케 했다. 봉건 지배층이 인쇄를 통제하고자 했던 것은 그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종이-인쇄의 책의 승리는 곧 근대적 민중의 승리였다. 종이-인쇄의 책이 처음부터 새로운 근대적 권력의 메커니즘 형성과 밀접하게 관계되었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집중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그러한 사실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님은 부언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는 자본과 권력이 그 간접적 접촉의 틈새로 스며들기 쉽게 되어 있다. 그 틈새가 민주라든지 해방이라는 가치를 위해 기여하거나 혹은 긍적적 가치로서의 탈중심이나 차이를 위해 기여하기보다는 자본과 권력을 위해 봉사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것은 근대적 권력의 해체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미증유의 새로운 권력, 탈중심과 차이라는 형태로 위장된, 한층 더 음험한 권력의 역설적인 전체적 지배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만약에 이런 혐의에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활자 매체의 문학은 그의 존재를 위협하고 그의 자율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들과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이때 작가는 그 싸움을 역사적 소명으로 받아들인 고독한 존재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진술은 문학이 자신을 활자 매체에만 고착시키고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외면은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로의 문학의 확장은 이 새로운 매체를 자본과 권력의 관리로부터 일탈케 하고자 하는 비판 의식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문학제도의 변화라든지 문학 정체성과 작가 정체성의 변화 같은 문제는 그 다음에야 성립되는 문제이다.
2005년 4월 30일 토요일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시학, 문예출판사, 1997. pp.54~55
우리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전체 중에는 아무런 크기를 가지지 않은 전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는 시작과 중간과 결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되고, 위에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 길이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전체 중에는 아무런 크기를 가지지 않은 전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는 시작과 중간과 결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되고, 위에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 길이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1960년대 문학연구「소설가에 의한 소설, 소설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색」.p77
1960년대 문학연구「소설가에 의한 소설, 소설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색」.p77
글이란 그것을 쓴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자기 나름의 존재 의의를 가진다는 것, 소설이란 이 점마저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구보의 소설에 대한 생각이다. 이는 물건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주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되는 이치와 똑같다. 이는 마치 예술을 그 자체로 단독적인 물신의 위치로 격상시킨 헤겔 이후의 예술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소설은 객체화되는 물건이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다는 사정까지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은 구보가 가진 생각의 독창성이다. 그만큼 소설에는 만든 사람의 고통까지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소설은 소설가의 전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글이란 그것을 쓴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자기 나름의 존재 의의를 가진다는 것, 소설이란 이 점마저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구보의 소설에 대한 생각이다. 이는 물건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주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되는 이치와 똑같다. 이는 마치 예술을 그 자체로 단독적인 물신의 위치로 격상시킨 헤겔 이후의 예술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소설은 객체화되는 물건이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다는 사정까지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은 구보가 가진 생각의 독창성이다. 그만큼 소설에는 만든 사람의 고통까지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소설은 소설가의 전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플롯이란?
플롯의 뜻 -
구성(構成, plot)-소설에서의 : 주제의 효과적 표현을 위한 사건의 인과적 질서
1. 개념 : 구성이란 어떤 사물의 짜임새, 틀을 말한다. 따라서 소설의 구성은 작품의 짜임새를 말하며 흔히 '플롯'이라고도 한다. 소설에는 일정한 이야기(스토리)가 있고, 그 이야기는 인과적 질서에 의한 일정한 틀에 의해 전개된다.
* 현실의 줄거리(story)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순차적 배열
* 소설적 줄거리(plot) : 작가가 재구성한 사건의 인과적(因果的), 미적 질서
* 소설적 줄거리(plot) : 작가가 재구성한 사건의 인과적(因果的), 미적 질서
'소설의 양상'(Aspects of the Novel) --- 포스트(E. M. Forster)의 견해
스토리는 시간적 순서대로 배열된 사건의 서술이다.
플롯도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因果) 관계에 중점을 둔다.
스토리는 시간적 순서대로 배열된 사건의 서술이다.
플롯도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因果) 관계에 중점을 둔다.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라고 하면 스토리이지만, '왕이 죽자 왕비도 슬퍼서 죽었다.'
하는 것은 플롯이다.
또 '왕비가 죽었다. 아무도 그 까닭을 몰랐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면 이것은 신비를 간직한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이다.
하는 것은 플롯이다.
또 '왕비가 죽었다. 아무도 그 까닭을 몰랐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면 이것은 신비를 간직한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이다.
2. 요소 : 소설의 3요소인 '주제, 구성, 문체' 중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을
기본적 요소로 가진다.
기본적 요소로 가진다.
※ 구성에 필요한 요건
필연성 - 인과 관계가 분명
통일성 - 모든 행동은 주제에 집약되어야 함
일관성 -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모순되는 점이 없어야 함
필연성 - 인과 관계가 분명
통일성 - 모든 행동은 주제에 집약되어야 함
일관성 -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모순되는 점이 없어야 함
3. 구성의 단계 : 어떤 이야기에는 반드시 처음과 가운데, 그리고 끝이 있게 마련이다.
흔히 소설 구성의 단계는 4단계 혹은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흔히 소설 구성의 단계는 4단계 혹은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 4단계설
▲발단 : 등장인물의 소개, 배경의 제시, 사건의 실마리 제시, 독자의 흥미 유발,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의 암시
▲전개 : 사건의 본격적 전개, 갈등과 분규의 제시, 인물의 성격의 변화 발전, 복선, 암시,
생략, 서스펜스(suspense) 등의 기교 구사
▲절정 : 갈등과 분규가 격렬하게 상승되는 국면(갈등의 분기점),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암시,
▲결말 : 갈등과 분규의 해결, 주인공의 운명 결정, 여운을 남기거나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함
▲발단 : 등장인물의 소개, 배경의 제시, 사건의 실마리 제시, 독자의 흥미 유발,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의 암시
▲전개 : 사건의 본격적 전개, 갈등과 분규의 제시, 인물의 성격의 변화 발전, 복선, 암시,
생략, 서스펜스(suspense) 등의 기교 구사
▲절정 : 갈등과 분규가 격렬하게 상승되는 국면(갈등의 분기점),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암시,
▲결말 : 갈등과 분규의 해결, 주인공의 운명 결정, 여운을 남기거나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함
* 5단계설 : 전개 단계를 '전개와 위기'로 나누어 설정한 단계설이다. 위기는 극적 반전
(反轉) 을 가져오는 순간을 가리킨다.
(反轉) 을 가져오는 순간을 가리킨다.
4. 구성의 유형
1) 전개되는 이야기 수에 따른 분류
. 단일구성(단순구성) : 작중에 하나의 이야기만 있음
. 복합구성 : 두 가지 이상의 여러 이야기가 복잡하게 교차되며 진행
1) 전개되는 이야기 수에 따른 분류
. 단일구성(단순구성) : 작중에 하나의 이야기만 있음
. 복합구성 : 두 가지 이상의 여러 이야기가 복잡하게 교차되며 진행
2) 사건의 진행 방식에 따른 분류
. 평면적 구성(진행적 구성) :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유형으로 일대기적
구성(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을 지닌 우리의 고대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 평면적 구성(진행적 구성) :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유형으로 일대기적
구성(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을 지닌 우리의 고대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 입체적 구성(분석적 구성) :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진행하는 방식으로 '과거 미래 현재
혹은 현재 과거 미래' 등으로 역행시켜 진행시키는 구성이다.
예) 하근찬 <수난이대>, 전광용 <꺼삐딴 리>, 영화 메멘토
혹은 현재 과거 미래' 등으로 역행시켜 진행시키는 구성이다.
예) 하근찬 <수난이대>, 전광용 <꺼삐딴 리>, 영화 메멘토
3) 통합성의 정도에 따른 분류
. 극적 구성(유기적 구성) : 작중의 여러 가지 사건 등이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는
구성이다.
. 삽화적 구성(산만한 구성 혹은 이완된 구성) :불필요하거나 부수적인 사건이 큰
긴밀성이 없는 상태에서 섞여 있는 구성이다.
. 극적 구성(유기적 구성) : 작중의 여러 가지 사건 등이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는
구성이다.
. 삽화적 구성(산만한 구성 혹은 이완된 구성) :불필요하거나 부수적인 사건이 큰
긴밀성이 없는 상태에서 섞여 있는 구성이다.
4) 액자구성 :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삽입, 전개시키는 구성
플롯에 대한 논의 두 가지 --- 조남현, ?소설원론(고려원, 1986) p. 247~251
소설의 플롯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플롯을 일정한 예술적
효과를 낳는 데 필요한 서술상의 기술로 보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형태론적 플롯), 이에
반해 플롯을 인물, 사건, 사상 등 소설의 여러 요소를 보다 효과있게 정리하고 종합하는
본질적인 힘으로 논해 보려는 태도가 그것이다.(주제론적 플롯)
소설의 플롯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플롯을 일정한 예술적
효과를 낳는 데 필요한 서술상의 기술로 보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형태론적 플롯), 이에
반해 플롯을 인물, 사건, 사상 등 소설의 여러 요소를 보다 효과있게 정리하고 종합하는
본질적인 힘으로 논해 보려는 태도가 그것이다.(주제론적 플롯)
현대소설의 네 유형 --- 이광풍, ?현대소설의 원형적 연구(집문당, 1985) p. 161
인간의 삶이 부단히 자아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어 왔듯이, 언제나 인간은 일상의
삶에 만족하지 않을뿐더러, 특히 동일성을 상실한 주인공은 그 회복을 위해 또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되고, 이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목적한 바를
만족하게 이루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채 남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소설은 이같은 의식의 변화나 행동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중인물이
자아실현을 위해 움직이되, 그 동기나 행위의 결과에 초첨을 두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이 부단히 자아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어 왔듯이, 언제나 인간은 일상의
삶에 만족하지 않을뿐더러, 특히 동일성을 상실한 주인공은 그 회복을 위해 또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되고, 이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목적한 바를
만족하게 이루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채 남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소설은 이같은 의식의 변화나 행동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중인물이
자아실현을 위해 움직이되, 그 동기나 행위의 결과에 초첨을 두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형 : 불만족한 상태에서 만족한 상태에 이르는 이야기 ........... 회복형
제2형 : 이상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부단히 움직이는 이야기 ....... 낭만형
제3형 : 만족한 상태에서 불만족한 상태로 떨어지는 이야기 ........ 상실형
제4형 : 현실세계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이야기 .......................... 시련형
제2형 : 이상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부단히 움직이는 이야기 ....... 낭만형
제3형 : 만족한 상태에서 불만족한 상태로 떨어지는 이야기 ........ 상실형
제4형 : 현실세계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이야기 .......................... 시련형
이 같은 네 유형의 이야기는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자연의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자연
(나무)의 삶과 일치시켜 볼 때, 보다 확연히 드러나고 있어, 이를 N. 프라이가 제시한 네
가지 미토스(mythos)와 일치시켜 볼 수 있다.
(나무)의 삶과 일치시켜 볼 때, 보다 확연히 드러나고 있어, 이를 N. 프라이가 제시한 네
가지 미토스(mythos)와 일치시켜 볼 수 있다.
회복형 : 봄의 미토스(희극)
낭만형 : 여름의 미토스(로만스)
상실형 : 가을의 미토스(비극)
시련형 : 겨울의 미토스(아이러니, 풍자)
소설 구성상 유형
희극형 ( 불행에서 행복으로 )
비극형 ( 행복에서 불행으로 )
로망스형 ( 잃어버린 꿈을 찾아 일상의 삶을 벗어나려고 몸부림 )
아이러니형 ( 행복과 만족을 찾아 몸부림칠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유형)
낭만형 : 여름의 미토스(로만스)
상실형 : 가을의 미토스(비극)
시련형 : 겨울의 미토스(아이러니, 풍자)
소설 구성상 유형
희극형 ( 불행에서 행복으로 )
비극형 ( 행복에서 불행으로 )
로망스형 ( 잃어버린 꿈을 찾아 일상의 삶을 벗어나려고 몸부림 )
아이러니형 ( 행복과 만족을 찾아 몸부림칠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유형)
*소설의 구성에 중점을 두어 설명한 것입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작의 :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려는 의도, 또는 창작하려는 작품의 의도.
행복으로 간다.
행복으로 간다.
하이퍼텍스트의 강압
하이퍼텍스트의 강압「김용석의 문화 텍스트 읽기 '깊이와 넓이 4막 16장'」, p142
하이퍼텍스트가 강압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이유는 그것이 -명백하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전체주의적' 내부 네트워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원칙적으로 링크(기계적 연결) 및 링크 아이콘 그리고 연결된 마디들(스크린들)을 가진 데이터베이스다. 그리고 그 제공자가 있다. 이것은 하이퍼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하이퍼소설을 대할 때 독자들이 각자 나름대로 선택하여 독서로(reading path)를 탐험한다고 해도, 그 길들은 작가가 설계한 것이다. 즉 제공자의 권력이라는 문제가 부상한다.김용석님의 위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하이퍼텍스트가 저자의 지위를 내리고, 독자와의 관계를 평등하게 해 준다는 논지를 반박하는 근거가 되며, 나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같은 근거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하이퍼텍스트를 저작하는 시스템의 제약성때문으로 보인다. 하이퍼텍스트를 저작하는 가장 대표적인 HTML작성에서부터 하이퍼문학을 저작하는 툴 역시 '제공자'나 '제작자' 내지는 '운영자'에 의해서 저작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키위키와 같은 공동체 시스템 이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
퍼블리싱이 아니다. 흐르게 하는 것이다
Stream, Don't Publish BY Sean Carton , March 8, 2004 |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매체적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스트리밍이 아닐까 한다. 책으로 대변되는 인쇄문학은 인쇄소를 거친 출판을 통해서 완성되고 독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형식적인 출판을 통해 전달되어도 그 순간 새롭게 변화되어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것은 출판이 아니다. 흐름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첫 눈이 내렸다. 언제나 어긋나곤 했던 일기예보가 이처럼 잘 맞아버리다니 괜히 억울한 생각까지 든다. 창밖으로 재채기라도 한 듯 눈이 쏟아져 내린다. 지난 3월. 아마도 지난겨울의 마지막 눈이었을 듯싶다. 눈이 쌓인 곳은 정말 흰 것 말고는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병점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달리지 못하는 버스를 포기하고 종종걸음을 한 발씩 묶어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피난민의 행렬처럼 보였다. 캠퍼스는 온통 은빛으로 스케치 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학생들을 반기는 눈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이었나 보다. 03학번 녀석들의 눈싸움이 한참이었다. 어떤 녀석이 던진 눈이 여학생의 몸통을 그대로 때려 맞췄다. 파삭- 하며 부서지는 눈. 실수였었다. 한참을 하던 놀이에 너무 빠져있었는지 그저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를 숨겨두었을 뿐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렇게 친구의 눈 밑을 찢어 놓다니. 두려움에 휩싸인 친구의 눈동자는 찢어진 눈 밑을 더욱 벌리며 붉은 핏방울을 주룩 주룩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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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텍스트 문학’이란 무엇인가?
첫 눈이 내렸다. 언제나 어긋나곤 했던 일기예보가 이처럼 잘 맞아버리다니 괜히 억울한 생각까지 든다. 창밖으로 재채기라도 한 듯 눈이 쏟아져 내린다. 지난 3월. 아마도 지난겨울의 마지막 눈이었을 듯싶다. 눈이 쌓인 곳은 정말 흰 것 말고는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병점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달리지 못하는 버스를 포기하고 종종걸음을 한 발씩 묶어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피난민의 행렬처럼 보였다. 캠퍼스는 온통 은빛으로 스케치 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학생들을 반기는 눈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이었나 보다. 03학번 녀석들의 눈싸움이 한참이었다. 어떤 녀석이 던진 눈이 여학생의 몸통을 그대로 때려 맞췄다. 파삭- 하며 부서지는 눈. 실수였었다. 한참을 하던 놀이에 너무 빠져있었는지 그저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를 숨겨두었을 뿐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렇게 친구의 눈 밑을 찢어 놓다니. 두려움에 휩싸인 친구의 눈동자는 찢어진 눈 밑을 더욱 벌리며 붉은 핏방울을 주룩 주룩 쏟아냈다.
그저 써놓은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이야기할 ‘하이퍼텍스트 사용자가 연상하는 순서에 따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테오도르 넬슨(Theodore Nelson)이 고안한 시스템이다.
문학(Hypertext Literature)’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해를 돕고자 잠깐 동안의 연상을 통해서 써내려간 글이다. 우리는 자주 딴 생각이라는 것을 하곤 한다. 옳게 말해 공상 내지는 연상이라는 것인데, 아무 때나 어디서나 가능한 인간의 사고 작용이다. 결론부터 꺼내자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인간의 연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고자 하는 문학의 새로운 형식이기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문학(Hypertext Literature)’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이해를 돕고자 잠깐 동안의 연상을 통해서 써내려간 글이다. 우리는 자주 딴 생각이라는 것을 하곤 한다. 옳게 말해 공상 내지는 연상이라는 것인데, 아무 때나 어디서나 가능한 인간의 사고 작용이다. 결론부터 꺼내자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인간의 연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해 내고자 하는 문학의 새로운 형식이기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20세기 말 인문학의 위기와 책의 종말은 쉽게 무시할만한 이슈거리는 아니었다. 꽤나 심각했었고, 그 고민의 끝에서는 언제나 착잡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그 와중에 모난 돌처럼 튀어 나온 것이 ‘하이퍼텍스트 문학’이었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수많은 연구자들과 인문학도들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서 분석하고, 실험하기를 애썼다. 2001년 드디어 한국이라는 나라에도 ‘본격 하이퍼텍스트 문학- 디지털 구보 2001’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기대 반 걱정 반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던 ‘디지털 구보 2001’은 다시금 숱한 문제점과 고민덩어리들만을 남긴 채 인터넷 속의 ‘미라(mummy)’가 되어 버렸다.
그럼 위의 이야기가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 어떻게 구성되는지 보자. 2004년 11월 26일은 정말로 첫 눈이 내린 날이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정말이지 난데없이 쏟아져 내린 눈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그 눈은 나로 하여금 지난 3월 캠퍼스를 뒤덮어 버린 지난겨울의 마지막 눈을 연상케 한다. 그 장면은 03학번 후배들의 눈싸움으로 이어지고, 눈싸움은 어린 시절 내가 던진 눈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친구의 피범벅이 된 얼굴로 바뀌어 진다. 썩 적절한 예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글의 양상은 인간의 연상 작용과 같이 사건이나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이어진다. 그런데 조금 더 그럴듯하게 하자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억이나 상황으로의 전이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니까 눈싸움 장면이 어린 시절의 눈싸움 장면이 아닌 PC게임에서 심심풀이로 즐겼던 눈싸움 게임으로 갈 수도 있고, 심지어는 둥글게 뭉쳐놓은 그것이 아이스크림을 생각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각각의 사건이나 상황은 하나의 ‘마디(node)’가 되며, 마디와 마디를 잇는 연결선은 ‘링크(link)’가 된다. 그리고 분절된 이야기에 따라 링크를 따라 읽혀지는 마디는 각각 달라진다. 이렇게 달리 읽혀지는 독서로를 ‘경로(path)’라고 한다. 정리하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독립적인 수많은 마디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디는 자신을 포함한 하나 이상의 마디와 링크된다. 다시 각각의 링크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경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비선형성’을 이끌어 내는 구조다.
책은 첫 쪽을 시작으로 마지막 쪽까지의 선형적인 이야기 구성을 가진다. 물론 실험적이거나 특수한 경우 단선적인 서술 구조를 의도적으로 틀어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시절 이후 소설의 서술 구조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형태였다. 반면에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비선형성을 가지고 있다. 비선형적인 소설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중간만이 강조된다. 또한, 모든 마디가 이야기의 시작이 되며, 동시에 끝이 된다. 어떤 마디로부터 어떤 마디를 거쳐 어떤 마디로 끝나는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으로 돌려지는 것이다. 때문에 독자는 수많은 경로를 통해 동일한 마디 구성을 가지고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읽게 된다. 마치 수십 장의 단어퍼즐을 펼쳐놓고 상황마다 다른 단어를 조합하여 이야기를 꾸며 나가는 놀이와 같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위와 같은 서술 구조상의 특징으로 작가와 독자의 개념이 달라지는 모습을 만들어냈으며, 물리적인 공간의 책이 아닌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매체로의 확장을 가져왔다. 인쇄 문학의 작가들은 책이라는 고정의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다지거나 드러낼 수 있었으며, 책 속에 인쇄된 글자들은 불변함을 원칙으로 독자들을 강력하게 묶어두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위에 생성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누구에게나 ‘글쓰기’의 자유를 제공하며, ‘수정’과 심지어는 ‘삭제’의 권한까지를 부여했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인 ‘참여’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기회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인쇄 문학’과 가장 차이를 가질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매체의 차이일 것이다. 매체는 도구를 말하는 것이며, 도구의 변화는 문화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변화시켜온 문화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확실한 것이다. 인간의 글(그림)이 동굴 벽에서 양피지와 파피루스로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통해 종이에 담겨지기까지 인간의 이야기는 함께 변화해 왔다. 이제 디지털 문명의 시대를 뚫고 지나가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종이를 탈피하여, 디지털 신호로 기록되고 있다.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며 확장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매우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두와 같이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해서가 아니며, 더욱이 책의 종말을 걱정하면서 디지털 매체로 몸을 바꾼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옹호하는 것 역시 아니다. ‘디지털 구보 2001’이 거창하게 출발했다가 누군가에게 해부되기만을 기다리는 썩지 않은 시체가 되었듯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대부분의 논의가 담론적인 특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실험적인 것들이 간혹 나오기는 하나 문학이라 불릴만한 진정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독자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고, 작가의 위치를 위축시켜 창작에 대한 열의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인문학계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보수성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인식과 반응이 빠르지 못하다. 오래두고 진지함을 더해 지켜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하이퍼텍스트’ 기술과 인터넷의 발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다. 새로운 길이 발견되었을 때 과감하게 내달려 보는 것도 때론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 외국의 비해 우리의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인식과 관심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실험적이더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언어의 새벽’이나 ‘디지털 구보 2001’과 같이 한 두 편의 관련 작품을 진행시켜온 것에 비해 외국의 경우 2천개가 넘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포함한) 디지털 문학을 전자 협회(미국, http://directory.eliterature.org)에서 관리, 제공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단순히 서사 구조의 특이성만을 가지고 이해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이 아니다. 디지털이라는 매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타이포그라피(Typography, 문자의 형태를 이용한 시각적인 디자인)에서 멀티미디어(Multimedia, 동영상, 소리, 이미지가 텍스트와 결합)와 인터렉티브(Interactive, 상호작용에 의한 전개)까지 적용해볼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인쇄 문학의 틀을 깨고 새로운 매체로 확장되어 간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이렇듯 인문학에 새로운 기회를 준 것이고, 또 다른 도전을 가능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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