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학이 새로울 수 있는 이유는 기존의 것과 다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PC통신과 인터넷의 발전과 보급에 힘입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기존의 문학을 그대로 매체만 옮겨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팬픽[1], 릴레이소설, 게임소설 등 다양한 종류의 문학이 사이버 매체의 특성에 힘입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문학이다.
국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현재 실체는 없고 담론만 무성한 껍데기 문학으로의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고 이야기되고 있는 까닭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이제까지 보여준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적 새로움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고, 외국의 경우 이미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비추어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more..
1 서론
1.1 연구목적 및 연구사
새로운 문학이 새로울 수 있는 이유는 기존의 것과 다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 PC통신과 인터넷의 발전과 보급에 힘입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 활동이 많아지고 있다. 기존의 문학을 그대로 매체만 옮겨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팬픽[1], 릴레이소설, 게임소설 등 다양한 종류의 문학이 사이버 매체의 특성에 힘입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 하이퍼텍스트(Hypertext) 문학이다.
국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현재 실체는 없고 담론만 무성한 껍데기 문학으로의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끊이지 않고 이야기되고 있는 까닭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이제까지 보여준 사이버 공간에서의 문학적 새로움과는 그 양상이 사뭇 다르고, 외국의 경우 이미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비추어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의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연구는 2000년을 전후로 하여 본격화 되었다. 기술적인 의미의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이론과 연구 논문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활발하게 발표되어 왔으나, 인문학적 접근은 다소 늦어 최근에 들어서야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더군다나 국어국문학과 관련하여서는 그 수가 더욱 적다.
우선 류현주[2]는 2000년 출간한 단행본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돕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새롭고 낮선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짧고 흥미로운 글쓰기를 통해서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지만, 소개하고 있는 외국작품을 개괄적인 수준의 분석과 소개만으로 그쳐 그 실체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한계를 지닌다. 배식한[3] 역시 ‘책의 종말’이라는 이슈적인 담론을 가지고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문고판을 펴냈으나, 역시 외국 작품만을 다루고 있고, 그 해석의 깊이가 얕아 국내 사정에서의 적용이나 이해가 어렵다. 최혜실[4]의 경우는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여러 편의 단행본 및 논문과 더불어 본고의 대상 자료인 「디지털 구보 2001」의 창작에도 직접 참여하기도 하여 국어로 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실체를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 강심호[5]등은 본격 하이퍼텍스트 문학까지는 아니었으나 디지털 매체와 사이버 공간에서의 다양한 텍스트 서사구조와 이야기 전달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정일균[6]은 사이버 문학의 개념과 특성을 재정립하고 있고, 저급문학으로 평가 절하되던 작품까지를 폭넓은 문학의 범주로 포섭하는 과감성을 보이면서 이 같은 사이버 문학이 구비문학과 소통될 수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이 같은 논의를 문학 교육적 기법으로의 실질적인 방법론으로 제시하기까지 하나 사이버 문학에서의 하이퍼텍스트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격적으로 하이퍼텍스트의 서사구조에 관한 연구를 보여준 장노현[7]의 논문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다양한 이론적 접근을 통해서 실제 구비문학 작품과 유일하다시피 한 하이퍼텍스트 문학 작품인 「디지털 구보 2001」의 서사구조를 직접 분석하고 해석하여 아직 논의가 부족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연구 방법론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데 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상과 같이 2000년 이후 여러 단행본과 논문을 통해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접근이 이루어져 가고 있지만 장노현을 제외하고는 본격적인 작품 분석이나 비교를 통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본고는 이 같은 여러 논의들 가운데 특히 주목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의 비선형성(nonlinarity)에 집중하여 보고자 한다. 비선형성은 비단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와서 그 용어의 생김이나 의미가 새롭게 나타나고 부여된 것은 아닌데 유독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인쇄문학[8]과의 구별되는 특질로 인정받고 있어 인쇄문학에서 보이는 비선형성과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 보이는 비선형성이 실제 작품을 통해서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2 하이퍼텍스트와 비선형성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하이퍼텍스트로부터 상속받아 그 영역을 문학적으로 확대시킨 개념이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이해하기위해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하이퍼텍스트는 인터넷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을 일컫는 용어로 일반적인 문서가 독자의 필요나 사고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얻도록 하지만, 하이퍼텍스트는 독자의 연상에 따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다.
이 같은 하이퍼텍스트는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으로 작성되는데, 미리 약속된 태그(Tag)를 이용하여 텍스트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HTML로 작성된 문서가 곧 인터넷을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웹(Web)문서[9]이며 하이퍼링크(Hyper Link)에 의해서 다수의 웹문서가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은 1945년 7월 ?배니바르 부시에 의해서 창안[10]되었다. 그는 도서관과 같은 인위적인 분류 체계가 늘어만 가는 정보를 결국에는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메멕스(memex)라는 기계를 고안해 냈다. 메멕스의 정보 처리 방식은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였다.
하이퍼텍스트를 구성하는 요소로 세 가지가 있다. 링크(Link)[13]와 마디(Node)[14] 그리고 경로(Path)이다. 마디는 HTML로 작성된 하나하나의 문서를 의미한다. 인쇄 책의 한쪽과 같은 의미로 정보를 담는 단위이다. 하지만 책이 동일한 크기의 쪽들로 구성되어 있고, 특수한 경우 크기에 차이를 둔다 하여도 그 차이의 자유도는 높지 않다. 노드는 쪽과 달리 정보를 담는 공간의 크기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작성자의 의도에 따라 어떤 크기로든 만들어질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정보를 읽는 사용자를 배려하기 위하여 표준 해상도[15]에 따르는 크기를 가진다. 링크는 마디와 마디를 연결하는 개념으로, 하이퍼텍스트를 가능케 하는 가장 큰 요소다. 링크는 다양한 형태로 가능해지는데 둘 이상의 마디를 서로 잇는 형태에서부터 단일 마디 안에서의 링크도 가능하다. 링크는 마디와 마디의 쌍방향성을 가능케 하였고, 마디의 무한한 확장성을 실현시켰다. 경로는 링크를 따라 형성된다. 즉, 독자가 시작 마디에서부터 마지막 마디를 찾을 때까지 링크를 끊임없이 따라가면서 형성되는 과정이 경로가 된다. 마디는 무한하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사용자라 하더라도 시작 마디와 마지막 마디 사이의 경로를 매번 달라질 수 있다. 이 같은 마디, 링크, 경로에 따라 사용자는 마디를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마디와의 결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는 매번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내어 비선형을 띠게 된다. 하지만 반면에 개별적인 마디는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즉, 끊임없는 마디의 단절이 사용자로 하여금 새로운 마디로의 링크를 요구하게 되고, 그렇게 링크된 마디는 확장된 의미의 마디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로는 항상 새롭게 반복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선형성은 촉수형, 나무형, 뿌리형으로 나누어지는 세 가지 유형[16]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촉수형은 “하나의 출발점과 서로 독립적으로 병렬 진행되는 이야기들로 구성(류현주, 디지털 키워드의 미학, 39)”된 것으로 경로의 수가 적은 단순한 형태[17]를 가지고 있다. 나무형은 촉수형에서 발달한 형태로 확장된 가지가 결정점이 되어 새롭게 분화를 거치는 형태이다. 즉, “결절점은 결절의 장소가 되며, 같은 열에 있는 다른 가지로의 전환은 불가능하지만, 하나의 단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정을 바꾸는 것도 가능(앞의 책 40)”하다. 뿌리형은 정보 통신망의 형태중 하나인 격자형과 유사하다. 마치 식물의 뿌리처럼 서로 얼기설기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가장 많은 링크와 경로를 가진다. 촉수형과 나무형이 하나의 시작점을 시작으로 다양한 결과를 보여주지만 나누어진 마디와 마디가 서로 관련성을 가지지 못한 채 상위 마디와 하위 마디간의 위계적인 질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뿌리형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마디가 동일한 위치를 차지하며 자유롭게 소통 가능하다.
1.3 연구 방법론
외국에 비해 국내의 하이퍼텍스트 문학 작품은 전무한 실정이다. 겨우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것이 2001년 북토피아와 아이엠비씨(iMBC)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디지털 구보 2001」정도이다. 본고 역시 이 작품을 분석 자료로 삼고 있는데,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인쇄문학의 방법론으로 분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인쇄문학과 가장 다른 점은 문학이 몸담고 있는 매체이다. 인쇄문학은 종이라는 매체를 통한 닫힌 공간으로의 글쓰기 영역을 가지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인터넷[18]이라는 열린 공간의 영역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인터넷은 동시성과 상호작용성등 다양하게 구별되는 특질을 가지고 있어 매체분류에 따른 분석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쇄문학과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분류하여 각각의 매체에 따른 비선형성을 띄고 있는 작품을 선정하여 분석한다. 두 번째 분류 기준은 작가적 관점으로, 인쇄문학은 전적으로 작가라는 독립적인 위치의 창작자에 의해 글쓰기가 행해진다. 반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허물어지며, 다수의 작가가 형성되는 여지가 많다. 물론 인쇄문학에서도 여러 명의 작가가 공동창작을 하기도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의 공동창작은 그 수가 예측 불가능하며 지속적으로 증가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작가의 관점에 따라 텍스트의 비선형이 어떻게 변형을 보이는지 밝히고자 한다.2 인쇄매체에서의 비선형성
2.1 「설가 구보씨의 一日」의 서사구조와 비선형성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은 1930년대 박태원의 동명 소설을 패러디한 것으로 1990년대 주인석의 「검은 상처의 블루스: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로 이어지는 구보 계열의 계보를 잇는 징검다리 작품이다. 본고가 최인훈의 작품을 대상 자료로 삼게 된 것은 최인훈의 작품이 박태원의 것을 1차적으로 패러디 하고 있고, 70년대의 연작 소설 유행과 더불어 좀 더 뚜렷한 서사구조의 특이성을 드러나 보일 것으로 기대한데 있는데, 김인호[19]도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를 두고 “왜 그는 그 동안 쌓아놓았던 미학적 균형을 제쳐두고 우리에게 정신적인 혼란이나 형식적인 방만함을 보여주는 것일까?”라고 지적하면서 ‘문학적 신’의 자리를 차지한 작가의 좌절감이 최인훈으로 하여금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꿈꾸었다고 보고 있다. ‘그 동안 쌓아놓았던 미학적 균형’은 70년대의 리얼리즘 소설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까지를 통틀어서 책이라는 매체에 갇혀있는 인쇄 문학 자체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외국에서 그저 전해지는 새로운 형식이 아닌 스스로 시도해 수 있는 어떤 새로움에 목말라 했던 것이다. ‘정신적인 혼란이나 형식적인 방만함’은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가 여타의 문학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말이겠다.「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은 총 1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은 집에서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적이고 회귀적인 하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각 장의 요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1]
장 | 제목 | 내용 |
1 | 느릅나무가 있는 風景 | 자광대학의 문학초청 특강을 갔다가, 월간지 <여성낙원>의 현상소설 심사를 보고, 김광섭 시인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한다. |
2 | 제 2 장昌慶苑에서 | 창경원의 동물을 구경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
3 | 이 江山 흘러가는 避難民들아 |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친구를 만나고, 출판사에 문학전집의 해설 원고를 전달하고 나오는 길에 스님 친구를 찾는다. |
4 | 偉大한 단체는 | 시인 김중배를 만나 영화를 본다. |
5 | 홍콩 부기우기 | 광화문에서 배걸씨를 만난다. |
6 | 마음이여 야무져 다오 | 김순남의 가게를 찾고, 선배시인의 아들 결혼식을 참석한다. 그리고 인세 수령차 평화출판사에 들른다. |
7 | 노래하는 蛇蝎 | 프랑스 현대작가 전람회를 관람한다. |
8 | 八路軍 좋아서 띵호야 | 문학전집 일로 김견해를 만난다. |
9 | 가노라면 있겠지 | 후배 시인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
10 | 갈대의 四季 | 문학전집 일로 김공론씨를 만난다. |
11 | 겨울 낚시 | 콩트 심사를 위해서 민중신문사를 들렀다가 신세계 잡지사에 들러 질문서를 전달한다. |
12 | 다시 昌慶苑에서 | 2장에 같이 창경원의 동물을 둘러본다. |
13 | 南北朝時代 어느 藝術勞動者의 肖像 | 심학규를 만나 이중섭 전람회를 관람한다. |
14 | 홍길레진 나스레동 | 청탁소설 전달을 위해서 한국신문사에 들르고, 소설 심사 일로 잡지사에 들렀다가 다시 좌담회에 참석한다. 이후 문학전집 일로 출판사에 들른다. |
15 | 亂世를 사는 마음 釋迦氏를 꿈에 보네 | 장소의 이동 없이 낮 동안에 꿈을 꾼다. |
정리와 같이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은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제 1 장에서부터 제 15 장까지로 이어지는 시간은 1969년 동짓달부터 1972년 5월 사이로 2년 6개월여의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외출 -> 외부세계 -> 귀가’로 이어지는 개별 장의 회귀 구조는 ‘구보’의 공간적 배경이 넓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개별 장이 가지는 시간은 하루로 지극히 짧다. 최인훈은 하루 동안의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돌출되는 의식의 파편들을 주워 담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모여진 15개의 텍스트는 한 권의 책으로 묶임으로써 연작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내용적인 면을 살펴보면 최인훈은 소설가라는 자신의 작가의식과 관련한 주체의식이 흔들리고 있다. 무언가 쫓고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보이고는 있으나 매 장은 새롭게 시작되고 있고, 끊임없이 반복적인 고민과 갈등을 보여준다. 즉, 최인훈 개인의 의식이 개별 텍스트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며, 개별 텍스트는 책에 담겨진 순서에 관계없이 열다섯 번의 재 반복을 가진다. 따라서 독자 역시 어떤 장을 먼저 읽더라도 최인훈의 출구 없는 고민을 반복적으로 쫓아 읽을 수밖에 없게 된다.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은 형식적인 면만을 본다면 연작소설의 형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구보’ 한명이며, 개별적인 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은 뚜렷하지 않거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일반적인 소설의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한 체 불연속적인 개별적 사실들의 나열만을 남겨놓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다만 ‘구보’의 내면세계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연작소설이 독립된 완결 구조로 주제와 소재, 배경 등에서 공통점을 가지는 것과는 다르다. 이러한 형식을 갖춘「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은 “완결되지 않은 느낌을 그대로 준다. 다분히 연작의 형식을 지니고 있는 그 소설은, 그것을 꼭 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고, 또 그것이 끝났다고 말할 수도 없게 하는 그런 점을 지니고 있다”[20]고 말한 김인호의 지적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최인훈은 30년대 박태원의「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을 패러디한 것에 위와 같은 연작의 형식을 덧붙임으로써 서사구조의 새로운 실험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은 15장의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연작의 형태로 구성하고 있음에도 이야기의 흐름이 일정하지 못하고, 플롯이 무시되고 있어 주 텍스트와 부 텍스트가 어지럽게 얽혀있다. 독자는 눈으로 읽혀지는 텍스트의 흐름을 쫓는 것이 아니라 ‘구보’의 의식에 스며들며 최인훈이 만들어 놓은 텍스트의 단절과 결말의 유보를 15번이나 경험하게 된다. 서사의 흐름은 주 텍스트를 따라 결말을 쫓는 전통적인 읽기를 수행하던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같은 텍스트의 단절과 결말의 유보는 여러 가지 서사 기법에 통해서 서상성을 유지시키고 있는데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대화의 변형, 자유 연상, 신문기사나 삽입 텍스트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양식이 구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제 1 장에서 배걸씨와의 대화를 일반적인 대화체와 요약 글 두 가지로 병행하여 보여주고 있다. 앞서 나온 대화체는 짧은 문답의 형태로 뒤에 나오는 요약 글의 다소 긴 대화 내용을 메모하듯 정리해 놓았다. 이는 앞뒤의 대화가 서로 상반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메모된 뒤의 대화는 얼마든지 생략 가능함을 일러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최인훈은 이와 더불어 신문기사나 시 전문, 액자 소설 등 여러 가지 삽입 텍스트를 삽입하고 있다.
이 같은 최인훈의 서사 구조의 다양한 실험은 독자의 읽기 과정을 끊임없이 방해하면서도 긴장을 유지시키는 동시적인 효과를 얻고 있는데 이는 독자가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가도록 이끌고 있다. 특히 최인훈 사유의 의식흐름을 비교적 짧은 수필적 글쓰기를 통해서 형식의 방만함을 막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의 서사 구조를 이루는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본 결과 주 텍스트와 부 텍스트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으며, 서로 혼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5개로 이루어진 각 장은 항상 새롭게 시작되며 사건 없는 의식의 사유만을 늘어놓다가 끝이 나버리곤 한다. 따라서 독자는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기 쉽고, 서사에 빠져들기 어려워진다. 최인훈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화의 변형과 다양한 담론 양식의 삽입으로 텍스트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였고, 자유 연상의 기법을 통해 내면 의식으로의 침잠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이는 끊임없이 서사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하고, 동시에 개별 텍스트의 확장을 가능하게도 하였다. 그리고 결말의 유보를 통해 독자의 긴장을 유지시켜 나갔다. 이는 하이퍼텍스트가 가지는 단절성과 확장성의 특징과 맞물리는 것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가 하이퍼텍스트의 비선형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15개의 개별 장은 하나의 마디가 되며, 마디와 마디를 잇는 독서의 과정은 경로가 된다. 또한, 각 장이 완결되지 않고 끝이 나므로 결말의 유보가 되며, 이는 다음 장으로의 링크를 요구하게 된다. 독자는 각 장에서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접함으로써 단절감을 느끼며, 새로운 이야기를 요구하고, 작가는 부 텍스트를 계속해서 제공한다. 독자는 주 텍스트와 부 텍스트간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선택적으로 텍스트와 장을 읽어나가게 된다. 이는 곧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이 비록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의 시기적인 절차를 가졌다고는 하나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의 일반적인 소설 전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최인훈 내면 의식의 자유 연상과 사유에 의한 텍스트의 펼쳐짐이므로 읽기의 선형성을 요구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2.2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의 비선형성이 가지는 한계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을 통해서 인쇄문학이 어떻게 비선형적인 서사구조를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같은 작가의 실험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쇄문학은 책이라는 제한적이며, 닫힌 공간으로써의 제약 때문에 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책은 원자로 구성되어 물리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크기와 넓이 무게를 가지며, 펜을 이용하여 문자를 기록하거나 그림을 그려 넣을 수 있다. 책은 아무리 작게 써도 기록되는 글자의 수가 제한적이며, 그림 역시 그 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소리나 움직이는 영상을 들려주고나 보여주는 기능은 할 수가 없다. 최인훈은 이 같은 책에 자유 연상과 다양한 서사 기법으로 서사의 선형성을 탈피하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제까지와 같은 읽기 방법으로 1쪽부터의 순차적인 넘기기를 시도하였을 것이며, 반복적이며 연속적인 이야기에 쉽게 지쳐 흥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즉, 최인훈이 다양한 서사 기법을 통해서 독자의 읽기를 방해하는 것은 성공하였을지 모르나 그것이 독자로 하여금 읽기의 비선형성을 가능하게 해주지는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작가가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창작에 대한 절대적 권한이 있듯이 독자 역시 작가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 읽어가야 하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책이 가지는 매체적 한계에 의한 것이다. 문화적인 차이에 따라 책장을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서로 반대로 넘기기도 하며,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로 텍스트를 구성할 수 있다. 실험적으로 뒤에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갈수도 있을 것이며, 작은 텍스트들을 두서없이 나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책은 연속되는 종이들의 묶음 속에 갇혀지게 되며, 작가의 친절한 설명이 없는 한 독자는 순서대로 읽기를 시도할 것이다.책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책은 닫힌 공간을 가진 매체이다. 요즘은 디자인의 발달로 다양한 형태의 종이가 만들어지고 있어, 서점에 나가보면 둥글거나 다각형의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책은 대부분 유아들을 위한 동화책이거나 특별한 잡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인 형태의 책이라 함은 여전히 가로, 세로 직사각형의 2차원적인 평면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크기는 가지각색이나 이것 역시 규약이 있어 크기별로 정리해 진열대에 꽂아 둘 수 있게 된다. 즉, 텍스트는 어떠한 서사 구조를 가지더라도 이 정직한 사각형 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언제나 똑같은 위치에서 평면적으로 독자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글자는 나란히 줄을 맞추고 앞 글자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며, 문단은 앞 문단과의 인과율에 따라 연속되어 나타날 뿐이다. 장을 넘겨도 서사는 단절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독자는 책 속에 갇힌 텍스트와 어떠한 타협도 이룰 수 없으며, 단지 고지식하게 순서를 따라 읽어나갈 뿐이다. 결말을 보여주는 장을 만났을 때서야 비로써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둘째,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매체이다. 최초의 성서가 교리를 설파하기 위해서 책으로 만들어지고 퍼진 것은 책이 작가 한 사람만이 소유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즉, 책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데 그 탄생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책은 개인이 지극히 개인적인 매체가 된다. 책이 담고 있는 정보. 즉 텍스트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 원하지만 책은 동시에 다수의 독자에게 읽히기 어려운 매체다. 따라서 책은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를 1:1의 관계로 설정 짓게 만든다. 1의 독자는 절대적 권위를 지닌 1의 작가에게 함부로 대항할 수 없다.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세계는 마땅히 인정되어야 하며, 함부로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여기서 독자에 대한 작가의 구속력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셋째, 책은 공적인 매체이기도 하다. 인간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펜이든 연필이든 손에 쓸 도구를 쥐고 종이게 글자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육필이라고 한다. 또는, 타자기나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치기를 시도해야만 한다.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를 치기와 처리로 구분[22]하기도 하는데 타자기의 시기가 짧았던 우리의 사정을 돌이켜보아 육필에서 워드프로세서 치기로 넘어갔다고 보고자 한다. 육필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방법으로, 자유로운 쓰기의 권한을 가져다주었다. 언제든 떠오르는 이미지들과 생각들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었다. 잘못 된 것을 사선으로 긋고, 고쳐 쓰기도 가능하다. 이어쓰기를 하다가 다시 사선을 긋고, 지웠던(그었던) 문장을 살려내 문장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글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러한 글은 지극히 사적이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의 치기는 육필과 다른 형태로 글쓰기의 과정을 형성하게 된다. 기능상으로는 워드프로세서 글쓰기는 육필과 같이 즉흥적이며, 손쉬운 수정, 삭제를 제공하면서 사적인 글씨기를 가능케 해준다. 하지만 워드프로세서는 수정되고 삭제된 글자와 문장에 대한 영원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되살리기’기능을 제공하고 있지만, 종위 위에 적어놓은 글자들을 찾아 되살리는 것보다 쉽지 않은 경우가 더욱 많다. 이는 워드프로세서가 육필에 비해 더욱 손쉬운 편집 능력을 발휘하면서, 작가의 심사숙고를 현저히 줄여주기 때문이다. 워드프로세서는 고민의 시간을 점점 짧게 하며, 점점 빠른 글쓰기를 가능케 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워드프로세서는 육필과 달리 사적인 사유의 흔적을 남기기보다 공적인 목적에 적합한 글쓰기가 된다. 육필을 통한 텍스트의 대량 생산이 쉽지 않은 것에 반해, 워드프로세서는 전자적으로 저장된 텍스트를 동일한 원본을 무한대로 생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특징을 정리하면 책은 닫힌 공간을 통해 작가가 독자와 1:1로 만나며, 공적인 텍스트로 완전성을 유지해야만 하는 폐쇄성의 매체가 된다. 즉,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가 다양한 서사 기법의 형식 실험을 통해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형성은 책이라는 매체적 한계까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쓰기의 비선형성만을 갖추었을 뿐 읽기의 비선형성은 독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만다.
3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비선형성
3.1 「디지털 구보 2001」개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2000년이다. 2000년을 시점으로 여러 편의 논문과 단행본들이 발행되었다. 이듬해 한국 최초의 본격 하이퍼텍스트 소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등장한 작품이「디지털 구보 2001」이다.「디지털 구보 2001」은 북토피아[23]와 인터넷MBC가 공동으로 제작한 것으로 북토피아 홈페이지[24]에서 서비스[25]되고 있다. 더불어 디지털 단편영화가 제작되어 홈페이지 오픈과 동시에 공개되었으나 현재는 링크가 단절되어 있어 볼 수 없다. 무성한 담론만 있었을 뿐 국내에서는 그 실체를 확인해 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 「디지털 구보 2001」은 성공 여부를 떠나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김종희[26]는 “단순히 문자적 속성의 와해와 새로운 통합서사의 출현이라는 부분적 의미망을 구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21세기의 거대한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작품의 성과를 세미하게 탐색하기에 앞서 이와 같은 발생론적 구조를 통해 보면, 이 작품은 언필칭 ‘21세기의 혈의 누’란 호칭을 부여받을 만하”다고 까지 평하고 있다. 작품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상태로 발생론적 구조만을 들어 지나치게 높은 평가를 하고 있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전통적인 인문학의 틀을 흔들어 놓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구보라는 이름은 한국문학사에서 박태원을 시작으로 최인훈, 주인석을 거치며 사실상 하이퍼텍스트 형식으로 창작되어 왔다.”[27]라는 글로 「디지털 구보 2001」의 등장인물인 구보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는 대목을 통해 「디지털 구보 2001」역시 30년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 70년대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 90년대 주인석의 구보까지 이어진 구보 계열의 맥을 잇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디지털 구보 2001」이 가지는 문학성에 대한 평가가 차갑기 때문에 아직 위의 세 작품과 나란히 같은 계열로 묶이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디지털 구보 2001」가 구보계열의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서사 구조의 비선형성을 발견하고, 다시금 패러디를 통해 디지털 서사로써의 비선형성을 구축하고자 한 것은 「디지털 구보 2001」이 새로운 형태의 구보씨 작품이 될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구보 2001」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으로써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디지털 매체에 담겨져 있다. 최혜실[28]은 디지털 매체는 네트워크성과 하이퍼텍스트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디지털 매체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데 즉, 인터넷을 통해서 제공되어야 하며, 웹 문서를 통한 링크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구보 2001」은 북토피아 홈페이지에서 제공되고 있으며, 웹 문서로 제작되어 있으므로 이를 충족하고 있다. 둘째로, 양방향성(interactivity)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구보 2001」의 각 단위 텍스트는 독자로 하여금 새롭게 이야기를 이어 쓸 수 있는 게시판을 제공하고 있어 언제든지 누구든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토론 게시판을 두어 이야기 전개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거나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독자나 사용자의 참여는 작품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나타나게 된다. 셋째로, 다매체성(multimedia)을 가지고 있다. 단위 텍스트를 열 때마다 시계열을 알려주는 시간 플래쉬 에니메이션(Flash Animation)과 타자기 음향이 들려오며, 특정 텍스트에서는 음악이나 동영상으로 링크가 걸려 있기도 하다. 마지막 시계열에서는 배경 이미지 위로 글자가 위로 흐르는 동적인 텍스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소설과 함께 만들어진 디지털 단편영화「구보의 일일」 역시 다매체성에 포함될 수 있다.
3.2 「디지털 구보 2001」의 서사구조
본고의 분석 작품인 「디지털 구보 2001」에 대한 분석은 장노현에 의해 이미 분석된바 있다. 하지만 「디지털 구보 2001」이 인터넷에서 구현된 하이퍼텍스트 서사물이라는 점으로 인해 2002년 분석된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리라 확정적으로 믿기는 어렵다. 따라서 본고는 2004년 12월 현재의 「디지털 구보 2001」을 분석하여 장노현의 분석 결과를 수정하면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한다.「디지털 구보 2001」은 총 23개의 시계열을 가지고, 각각의 시계열은 이상, 구보, 어머니로 나열된 3개의 등장인물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다. 각각이 등장인물은 서로 같거나 다른 시간대에 위치하면서 서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려고 하지만, 때론 겹쳐지면서 혼재된 양상을 띠기도 한다. 즉, 세 개의 주 텍스트가 평행을 긋지 않고, 서로 얽히면서 상대적인 주-부 텍스트의 대립 양상을 가지고 간다. 「디지털 구보 2001」은 산술적으로 69개의 단위 텍스트가 존재하게 되지만, 등장인물마다 비어져 있는 시계열이 존재한다. 이상의 경우는 4시, 5시, 6시, 23시, 25시 5개로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가진다.
「디지털 구보 2001」를 구성하는 총 단위 텍스트는 56개가 된다. 각각의 단위 텍스트 안에는 다시 수많은 링크들로 구성되어 있어 실제 텍스트의 수는 엄청나다. 「디지털 구보 2001」은 화면 왼쪽에 시계열 목록을 두고 있어 독자가 어느 것이든 선택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독서로는 더욱 많아진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15개의 장별 단위 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예측 가능한 독서로만으로도 「디지털 구보 2001」의 엄청난 규모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장노현은 「디지털 구보 2001」를 내부 텍스트와 외부 텍스트로 나누고, 다시 내부 텍스트를 서사 텍스트와 서사 밖 텍스트로 나누었다. 그리고 다시 서사 텍스트를 중심 텍스트와 삽입 텍스트로 나누어 분석을 시도하였다. 내부 텍스트는 「디지털 구보 2001」를 구성하는 주 텍스트를 말하며, 외부 텍스트는 내부 텍스트로부터 빠져나가는 외부 링크로 「디지털 구보 2001」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은 것들이다. 또한, ‘순수한 서사텍스트를 제외한 머리글, 주해, 후기, 편집자의 개입 등과 같은’ 것을 제외한 텍스트를 서사 밖 텍스트로 정의하였다. 다음은 「디지털 구보 2001」장노현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새롭게 생성된 링크의 수를 재 확인해본 결과이다.
[표2]
장노현의 2002년 6월 분석표에서 나타난 링크의 수는 총 478개였다. 2년 6개월여가 지난 현재 단지 7개가 증가된 485개의 링크 수를 보여주고 있다. 표 양식 역시 장노현의 것을 그대로 받아 온 것인데 괄호의 의미를 변경하고, 새로운 링크를 나타내기 위해 별 표식을 추가하였다. 그런데 2004년 12월을 기준으로 재조사한 「디지털 구보 2001」의 링크수를 살펴보면 「디지털 구보 2001」가 과연 하이퍼텍스트 문학으로 불릴 수 있는가 하는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디지털 구보 2001」가 2001년 처음 오픈[29]하였고, 장노현은 1년 뒤인 2002년 6월 중순에 최초로 「디지털 구보 2001」의 분석을 시도하였다. 당시의 결과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가지는 확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다시 2년이 지난 2004년 12월 현재의 「디지털 구보 2001」는 이미 죽어있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루에만 수많은 사이트가 새롭게 개설되고 죽어가는 인터넷 공간에서 오픈 후 4년여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 긴 시간을 동일한 URL 주소를 가지고, 수많은 독자들의 방문과 읽기를 허락했음에도 링크수가 늘지 않았다는 사실은 「디지털 구보 2001」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이퍼텍스트가 마디, 링크, 경로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며, HTML을 이용하여 작성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확인한바 있다. 「디지털 구보 2001」은 ASP[30]라는 웹 스크립트 언어로 작성되어 있으나 ASP 역시 HTML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표를 참고하면 내부링크 수는 총 281개이나 실제로 작성된 문서의 수는 다소 적을 수 있다.[31] 281개의 내부텍스트는 이상 123개, 구보와 어머니 각각 79개로 14, 67, 54개의 외부텍스트로 확장되어 간다. 장노현은 여기서 이미지, 소리, 동영상 그리고 링크에 마우스를 올려 두었을 때 나타나는 풍선 도움말까지를 링크의 수로 포함시켜 따로 표시를 해 두었다. 하지만 풍선 도움말은 마디와 마디사이의 링크로 이동하는 경로를 가지지 못한다. 풍선 도움말은 링크 대상의 명확한 설명을 위해 보조적으로 제공되고 있을 뿐 하나의 마디로써의 지위를 부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장노현이 고려한 풍선 도움말은 제외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나머지 링크 수에 따라 내부와 외부 링크 수는 이상의 경우 114개(내부링크 123개 + 외부링크 14 - 풍선도움말), 구보 142개, 어머니 132개를 가진다. 산술적인 계산에 의해 대략의 링크 수를 확인해 볼 수 있지만 사실 링크수를 가지고 정확한 마디의 수를 헤아리거나 경로의 수를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장노현의 경우 ‘드는 링크수 * (나는 링크수 + 1)’이라는 수식을 통해 단위텍스트의 경로수를 산출해 내고 있지만, 내부 링크의 팝업[32] 마디와 마디 내 이동 링크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즉, 팝업이나 마디 내 이동은 하나의 가지는 경우가 많아 수식 자체의 정확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이어쓰기’의 링크 수는 그 텍스트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테스트에 가까운 것으로 이에 포함하기 어렵다. 이상의 것을 제거하더라도 「디지털 구보 2001」은 중심텍스트인 18, 18, 20개의 텍스트를 가지며, 각각의 텍스트에는 표와 같은 내부링크와 외부링크를 포함하고 있어 마디와 링크 경로로 구성되는 하이퍼텍스트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디지털 구보 2001」가 인터넷을 매체로 책과 다른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살펴보자.
3.3 열린공간과 다매체성
인터넷은 흔히 바다로 표현되다. 정보의 바다. 바다는 그 넓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며, 바다로 통하는 길 역시 수 없이 많다. 인터넷은 그러한 바다와 꼭 닮아 있다. 나의 웹 브라우저[33]의 시작 페이지와 당신의 시작 페이지[34]가 같을 수도 있으나, 대게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웹 브라우저는 일종의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배이며, 시작 페이지는 배를 정박해 놓은 항구와 같다. 사용자는 최초의 항구로부터 다른 항구 또는 바다의 어딘가로 항해를 떠나게 된다. 이처럼 인터넷은 누구나 자신만의 항구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인터넷이 하나의 입구가 아닌 무수히 많은 입구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며, 즉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디지털 구보 2001」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구보 2001」은 앞 절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세 명의 등장인물별로 시계열이 존재한다. 따라서 독자는 어떤 등장인물의 어떤 시간대를 선택하더라도 읽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산술적으로 56개의 출구가 존재하는 것이다. 56개의 시간대중 독자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펼쳐진 텍스트는 다시 수많은 내부텍스트와 외부텍스트를 잇는 링크를 발견하게 된다.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독자는 점점 많은 링크를 발견하게 되고 선택의 기회에 서게 된다. 이는 읽기 자체를 거북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질려버리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독자는 그 순간 「디지털 구보 2001」의 사이트를 닫아 버릴 수도 있다. 다행히도 「디지털 구보 2001」는 정해진 시계열을 통해 중심텍스트가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다. 이는 앞서 살펴본 하이퍼텍스트의 무한한 확장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독자는 「디지털 구보 2001」안에서 최소한 길을 잃는다는 이유로 읽기를 포기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그만큼 「디지털 구보 2001」에서 벗어나는 외부링크의 내부텍스트와의 관계가 약하다는 반증이며, 인터넷의 열린공간으로의 특성을 십분 살려내지 못한 한계로 드러나 보인다.최근의 전자공학의 행보는 점차로 결합을 통한 동시적인 상호소통에 주안을 두고 있는 듯하다. 현재까지도 집 안의 전자제품은 각각 제 기능만을 수행하는 TV, 오디오, 비디오/DVD 플레이어, 컴퓨터로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하나의 매체에 둘 이상의 기능을 선보이는 매체가 늘고 있다. 특히 TV와 컴퓨터의 결합은 단방향적인 TV와 쌍방향의 네트워크를 포함한 컴퓨터가 가지고 있던 단점을 단숨에 날려버리고 장점만을 모아놓은 멀티미디어가 되고 있다. 사용자는 이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TV의 드라마를 시청하다가 컴퓨터를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해서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또한, 연예인의 옷이나 악세사리를 곧바로 쇼핑몰에 접속하여 주문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 역시 이 같은 멀티미디어성을 띠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인터넷 소설이 단지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와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 그치고, 인터넷이 주는 다매체성을 살리지 못한 것은 대부분의 인터넷 소설이 전자게시판을 통해서만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자게시판은 인터넷을 통한 가장 대표적인 상호의사소통 공간으로 HTML 활용에 대한 제한이 심하다. 일반적인 글쓰기와 약간의 링크를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인터넷 소설의 저자는 다양한 형식 실험을 할 공간을 찾지 못하고 공개된 전자 게시판에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소설을 그대로 업로드 해 둘 뿐인 것이다. 반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전적으로 HTML을 완벽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어 이미지, 소리, 동영상의 삽입이 자유롭다. 「디지털 구보 2001」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디지털 구보 2001」의 메인화면이 플래쉬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있으며, 각각의 시계열은 왼쪽의 공통된 이미지 배경과 단위 텍스트마다 적절한 이미지와 소리가 포함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단편영화인 「구보의 일일」을 링크하여, 한 편의 서사 텍스트가 완전히 다른 매체인 영화와도 동시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3.4 공동창작을 통한 포괄적 원작자
인터넷에서의 공동창작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릴레이소설이다. 씨앗글[35]로부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 사람에 의해서도 가능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두 사람 이상의 다수에 의해서 이어쓰기가 수행되어지고 있다. 릴레이소설이 운영되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용자들의 참여를 완전히 열어두고 자유롭게 잇도록 하는 자유형과 한명이나 소수의 관리자를 두어 일정한 틀과 규칙을 가지고 이야기를 잇는 관리형이 있다. 자유형의 경우 보다 많은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문체와 이야기 구성으로 전체적인 조직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관리형은 최소한의 규칙을 가지고 시작되므로 참여자의 수는 적을 수 있으나 이야기의 조직은 보다 치밀해질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 역시 이와 같은 특징을 둘 수 있다. 1인에 의한 끊임없는 이야기의 잇기와 분화가 수행될 수도 있으며, 둘 이상의 작가에 의해 창작될 수도 있다. 또는 익명의 다수에 의한 복합적인 양식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기존의 릴레이소설과 명확하게 차이를 두는 것이 있다면 중심 텍스트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외부 링크의 확장성을 통해 비선형성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릴레이소설이 자유형이라 할지라도 선형적으로 이어져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릴레이소설이 끝말잇기 놀이와 닮아있는 점이다. 즉, 릴레이소설은 직렬적인 형태의 잇기 문학이라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병렬성을 함께 지닌 잇기 문학이 된다. 이 같은 특징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보다 많은 독자를 작가의 위치로 끌어올리며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한다.「디지털 구보 2001」의 작가는 3명이다. 하지만 각각의 단위 텍스트에 연결된 수많은 텍스트나 홈페이지의 주인 또는 작가는 다른 사람이며, 이어쓰기를 통해 등록된 여러 글들 역시 작성자가 따로 존재한다. 「디지털 구보 2001」이 본격 하이퍼텍스트 소설이라면 이렇게 링크로 연결된 모든 텍스트를 하나의 거대한 서사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디지털 구보 2001」의 작가는 몇 명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 해봐야 한다. 장노현은 ‘포괄적인 원작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상, 구보, 어머니의 이야기를 창작한 “세 명의 작가와 한명의 총집필자 그리고 사이트 기획자가 공동으로 만든 협동작업의 산물이 되는”[36]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디지털 구보 2001」이 당초의 창작 의도에 맞게 독자들에게 보다 열린 태도로 적극적인 쓰기와 편집의 권한을 부여했더라면 이 ‘포괄적 원작자’에 포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다만, ‘이어쓰기’메뉴를 통한 활발한 이어 쓰기라도 이루어졌다면 「디지털 구보 2001」는 보다 확장된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되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작가를 가졌을 것이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작가의 전복이다. 즉,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작가의 권위와 위상이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와서는 소멸되거나 추락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공동창작에 와서는 작가의 경계와 위치가 모호해진다. 어떤 문학이든 작가는 원칙적으로 한 명일 수밖에 없다. 이는 서로 다른 작가는 각기 다른 사유와 글쓰기 양식을 가지므로 서로 혼용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타인의 텍스트가 자신의 텍스트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용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는 열린 공간이라는 매체적 특성상 ‘끼어드는’ 새로운 창작자를 무조건 막을 수 없게 된다. TV 드라마 시청자는 매 회 방송되는 일정 분량의 스토리를 지켜보면서 수시로 작가에게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수정되기를 요구한다. 작가는 이 같은 시청자들의 요구를 선별적이나 적극적인 자세로 수용하며 다음 회 스토리에 방영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것은 TV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는 상호작용성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과거의 서사 텍스트가 작가 한 사람에 의해 완전하게 창작되었다고 볼 때 TV 드라마의 이 같은 서사 텍스트의 전개 방식은 시청자를 창작의 과정에 개입시킴으로써 작가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는 이것이 보다 적극적이고 동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게 된다. 인터넷은 언제나 열려 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따라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독자는 수시로 작가로써의 지위를 수행할 수 있으며 언제든 다시 독자로써의 읽기를 이어갈 수 있다. TV 드라마의 상호작용성과 다른 점은 TV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의견을 작가가 수렴하여 반영하는 것에 반해 하이퍼텍스트는 특별한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는 한 원본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변형 시킨다는 데 있다. 즉, 즉각적인 이야기의 변화가 가해진다. 단순히 일부분의 이야기가 고쳐질 수도 있고, 글자가 추가 될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 삭제될 수도 있으며, 아주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되어 나갈 수 있다. 원본 텍스트의 변형은 그 순간 원작자의 저작권이 무시되고 있는 것과 같으며, 새로운 원작자의 탄생을 의미한다. 결국에는 장노현의 논의와 같이 ‘포괄적 원작자’를 설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3.5 문학적 실현과 경계
「디지털 구보 2001」는 이후의 새로운 하이퍼텍스트 문학 작품이 등장하지 않은 이상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가장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하이퍼텍스트 문학으로써의 특징을 보여주고,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해 준 것이지만 「디지털 구보 2001」은 가장 원론적인 문학적 실현의 과제를 남겨 두었다. 「디지털 구보 2001」이 다분히 형식 실험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세 명의 작가들로 하여금 창작을 하도록 하였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각 각의 이야기가 서로 유기적으로 조직된 것이라면 「디지털 구보 2001」은 문학성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디지털 구보 2001」가 하이퍼텍스트 문학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작가란 무엇인가? 인쇄문학과 구분되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을 수 있었어야 했다. 성민엽[37]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작가란 “작품에 대해서는 의미의 기원이며 다른 작가에 대해서는 독창성이라는 점에서 구별되고 사회에 대해서는 자율적”이라고 믿어왔던 작가 의식이 실제로는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글쓰기를 갱신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어려운 만큼 그만큼 더 진정한 문학에 접근해 갈 가능성이 거기에서 열리는 것이 아니겠는”냐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이버스페이스로 대표되는 인터넷 안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과 같이 새로운 글쓰기로 의한 충격이 전통적인 작가의 권위의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갱신을 통한 작가 스스로의 발전으로 문학적 진정성을 더욱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디지털 구보 2001」가 보여주지 못한 문학적 진정성을 이후의 작품과 작가들에게서 요구되는 것이다.매체의 변화는 정보전달을 그 근본부터 뒤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인류가 기록 매체를 가지지 못하였을 때에는 소리와 몸짓으로부터 소통을 이루어왔고, 종이와 같은 기록 매체를 발견한 이후 소리와 몸짓은 보조적인 것으로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문자가 가장 핵심적인 소통의 수단으로 받들어 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금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그 매체가 바뀌고 있다. 인터넷은 하나의 소통공간이자 매체이다. 인터넷은 존재하지만 책과 같이 만져볼 수 없고, 개인이 소유할 수도 없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보존하며,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간의 영역을 나누지 않는다. 크기와 무게에 제한을 받지도 않으며, 문자만을 우대하지도 않는다. 소리와 영상, 이미지가 각각의 역할에 충실하여 다매체성을 띤다. 이러한 인터넷의 시공간적 특징과 다매체성은 인터넷의 서사성이 선형적일 수 없도록 방해한다. 「디지털 구보 2001」가 보여준 것과 같이 끊임없이 외부 텍스트로의 탈출을 유혹하며, 내부텍스트로의 흡수를 허락하고 있다. 책이 두꺼운 하드커버 속에 갇힌 채 또 다른 서사와의 소통을 단절하고자 하였다면, 인터넷은 무한한 네트의 공간에서 닫힌 공간까지의 끝없는 항해를 소통의 진리로 구현해 내고자 하고 있다. 지금까지 문학과 문학 외의 것으로 분류되고 인정되었던 모든 텍스트들이 한순간 문학의 범위 안으로 스며들며, 침투하고, 포용되면서 문학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는 인쇄문학이 보여준 비선형성이었다. 최인훈은 크게 수필적 글쓰기를 통한 연작과 의식의 흐름을 통한 서사적 전략으로 서사의 선형성의 탈피를 시도했다. 최인자[38]는 수필을 “‘무형식의 형식’을 구가하는 자유로운 글쓰기 양식”으로, “체계나, 일관된 논리에의 부담 없이 순간적이고, 파편적인 사유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같은 시각은 수필적 글쓰기가 최근의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글쓰기 양상과 흡사함을 알 수 있으며, 곧 이러한 글쓰기 태도가 하이퍼텍스트의 개별 텍스트를 생성하는 기반이 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의식의 흐름을 통한 비선형성은 인터넷의 네트워크성과 결합되어 작가 또는 독자로 하여금 마디와 마디의 링크를 구성하는 원동력이 되면서 수많은 경로를 생성도록 한다. 즉, 인쇄매체가 가지는 매체로써의 한계는 비선형성을 구성하는 의식의 흐림 내지 수필적 글쓰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인쇄 문학이 책을 통해서 쓰기의 한계를 가지고, 그 한계를 인터넷 안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뛰어넘고 있다. 반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인쇄 문학의 문학적 진정성을 회복해야만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한편, 최인훈의 시기부터 21세기의 지금까지 점점 더 많은 작가들이 하이퍼텍스트와 닮아 있는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문학은 지금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인쇄 문학의 기형으로 간주하며 경계를 긋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의 척도를 재어보며, 인쇄 문학의 더 큰 경계를 긋기 위해 하이퍼텍스트 문학과 교집합을 형성하려들고 있다.
4 결론
하이퍼텍스트는 HTML으로 만들어진 웹 문서로 이루어진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이러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이용한 문학적 실험이며 새로운 장르이다. 2000년을 전후로 하여 국내에서도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되었고 여러 편의 논문과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외국에 비해 국내의 경우 하이퍼텍스트 문학 작품을 찾아보기가 어려웠고 때문에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원론적인 논란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본고는 이상의 논의들을 살피고,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인쇄 문학과 변별하는 비선형성에 집중하여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비선형성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해보고자 하였다.최인훈은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을 통해서 서사 구조의 특이성을 보이며, 전통적인 글쓰기를 거부하고 있다. 더불어 최인훈의 선형성을 거부한 글쓰기가 책이라는 매체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인터넷이라는 매체 위에서 다시 텍스트를 담는 매체가 되어 비선형적인 소통의 방식을 보여준다. 2001년 북토피아와 인터넷MBC가 공동으로 만든 「디지털 구보 2001」은 국어로 된 유일한 하이퍼텍스트 문학으로 문학적 진정성의 확보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인쇄 문학의 다양한 형식 실험이 인터넷을 통해 실현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비선형성이 인쇄 문학에서 시도된 비선형성과 매체적인 차이를 두면서 만들어지는 한계를 확인하였다. 인쇄 문학이 책을 통해서 첫 쪽에서부터 마지막 쪽까지 순서대로 선형적인 읽기를 독자에게 요구해 왔다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다양한 마디들의 선택과 결합에 따라 선형적이지 않는 읽기를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는 반드시 처음과 가운데, 그리고 끝이 있게 마련이다"라고 말했던 전통적인 플롯 개념에 반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이 단일하거나 복합적이고, 또는 저자에 의해서 시간 구성이 뒤엉켜 있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아무 쪽이나 펼쳐 읽어가지 않는다면 1쪽부터 순차적으로 읽게 된다. 이는 독자에게 선형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마디, 링크, 경로의 구성으로 인해 어떤 경우에도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읽기의 선형성을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인쇄 문학이 지금까지 갖추어 온 문학성 위에서 출발하지 못한 기형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인문학의 범위에서 뻗어나지 못하고, 정보산업의 발달로 만들어진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파생된 시스템으로 실현 가능해진 것이 큰 이유이다. 작가는 갑자기 나타난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위협에 흠칫 놀라 당황스러워 하고, 독자는 일순간 주어진 선형적인 읽기에서의 해방을 낯설어 하고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문학적 양식이다. 인쇄 문학과의 경계를 설정하고, 대립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한계점을 인정하고 경계를 허문 자리에 공동의 경계를 설정할 수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작가의 의식을 담고, 독자의 자유로운 읽기를 인정한다면 전혀 새로운 정서적 감동의 문학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5 참고문헌
5.1 자료
최인훈,『소설가 구보씨의 一日』, 문학과 지성사, 1991최혜실 외 3명,『디지털 구보 2001』, 북토피아/iMBC, 2001
5.2 단행본
강심호 외 7명,『디지털 스토리텔링』, 황금가지, 2003김용석,『깊이와 넓이 4막 16장』, 휴머니스트, 2002
류현주,『하이퍼텍스트 문학』, 김영사, 2000
______,『디지털미학의 키워드』,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배식한,『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책세상, 2000
최혜실,『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 생각의 나무, 2000
5.3 논문
강덕화,「디지털 서사텍스트의 생성과 소통에 관한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3김인호,「신 없는 시대의 서사적 몸부림: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중심으로」, 『동악어문론집 33집』, 1998. 12
김종희,「새로운 문학의 길, 하이퍼텍스트 소설의 도전」,『한국문화 연구 5권』, 2002
김성해,「전자텍스트 읽기 지도에 관한 연구:설명형 하이퍼텍스트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1
서은선,「최인훈 소설의 서사 구조 연구」, 부산대학교 대학원, 박사논문, 2003
성민엽,「21세기 작가란 무엇인가」, 『21세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9
윤성숙,「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연구:작가의 서술 전략을 중심으로」,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1998
장노현,「하이퍼텍스트 서사에 관한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논문, 2002
정일균,「사이버 공간에서의 구비문학적 소통 체계와 그 교육적 활용 연구」,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3
최인자,「최인훈 수필적 소설 형식의 문화철학적 고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중심으로」, 『국어교육연구』vol.3, 1996,
[2] 류현주,「?하이퍼텍스트문학」. 김영사, 2000
[3] 배식한,「?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책세상, 2000
[4] 최혜실,「?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 생각의 나무, 2000
[5] 강심호 외 7명,「?디지털 스토리텔링」, 황금가지, 2003
[6] 정일균,「?사이버 공간에서의 구비문학적 소통 체계와 그 교육적 활용 연구」, 건국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3
[7] 장노현,「?하이퍼텍스트 서사에 관한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논문, 2002
[8] 하이퍼텍스트를 특별히 매체로 인식하여 이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사용. 이하 인쇄문학으로 표기함.
[9] 하나의 웹문서를 마디(Node)라고 함.
[10] 배식한,『?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책세상, 2000
[11] ____, 앞의 책, p59~60 재인용
[12] 무릉도원이라는 의미로 ‘문서들의 우주’, 즉 ‘?다큐버스(docuverse)'를 일컫는다.
[13] Link는 HTML에서 Anchor(닻)의 의미를 가지는 <A HREF="">...</A>태그로 만들어진다.
[14] Node는 HTML로 작성된 웹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책에서 사용되는 ‘쪽’과는 의미가 다르다.
[15] 화면 또는 인쇄 등에서 글자나 이미지의 정밀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일반적인 컴퓨터 모니터의 경우 1024 x 768 에서부터 1600 x 1200 크기를 사용하고 있어, 마디의 크기를 이에 맞추고 있음.
[16] 류현주,『?하이퍼텍스트 디지털미학의 키워드』,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3, p39
[17] 컴퓨터와 터미널, 컴퓨터와 컴퓨터, 터미널과 터미널 사이의 통신 회선을 이용하여 공간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물리적인 네트워크 구성망을 말한다. 정보 통신망의 형태로는 성(star)형, 버스(bus)형, 링(ring)형, 트리(tree)형, 격자(matrix)형이 있다.
[18] 디스켓이나 CD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라고 보기 어렵다.
[19] 김인호,「?신 없는 시대의 서사적 몸부림」, 동악어문론집 33집, 1998.12
[표1] 「소설가 구보씨의 一日」의 장별 정리
[20] ______, 앞의 책, 서문 참조
[21] 정주일,「?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비교 연구 - 소설 창작 방법론을 중심으로」,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2
[22] 김용석은 자신의 오랜 글쓰기 방법의 경험을 토대로 육필을 통한 ‘쓰기(writing)’, 타자기를 이용한 ‘치기’, 워드프로세서를 활용한 ‘처리’를 각각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방법은 작가에게 글쓰기 태도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2막 1장 글쓰기 방식과 문화적 변동」,『?깊이와 넓이 4막 16장』, 2002, pp105~122.
[23] 전자책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쇼핑몰. http://www.booktopia.com/booktopia/
[24] http://hyper.booktopia.com/contents/hypertext/main.asp
[25] iMBC에서는 현재 서비스하고 있지 않고 있다.
[26] 김종희,「새로운 문학의 길, 하이퍼텍스트 소설의 도전」,『한국문화 연구 5권』, 2002, pp7~17
[27] 북토피아,「인포메이션」, 『디지털 구보 2001』 , 링크, 2001
[28] 최혜실,「?디지털 서사의 현황과 전망」,『한국현대문학연구 제8집』, p126
[표2] 「디지털 구보 2001」의 시간대별 링크 종류와 수
[29] 책이라면 출판의 개념이나, 현재의 「디지털 구보 2001」는 사이트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오픈(Open)’의 용어를 사용하겠다.
[30] Active Server Pages의 준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월드와이드웹(WWW)에 애플리케이션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추진중인 기술로 HTML이 정적인 페이지를 만들어준다면, ASP는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동적으로 연결하여 상호작용이 가능한 페이지를 만들어준다.
[31] ASP는 서버쪽 언어로 실제로 독자가 읽게 되는 사용자 컴퓨터의 브라우저에는 HTML으로 변환된 내용이 출력되게 된다. 다시 말해 ASP는 파일이나 데이터베이스에 담겨진 텍스트를 불러와 적절한 처리를 거쳐 사용자 화면에 HTML형식으로 문서를 구성하여 보여주게 된다.
[32] 브라우저의 툴바를 갖추지 않은 새로운 마디가 돌출하는 것으로 주로 ?JavaScript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33] 브라우저의 툴바를 갖추지 않은 새로운 마디가 돌출하는 것으로 주로 ?JavaScript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34] 인터넷 탐색기를 처음 실행하였을 때, 자동으로 이동하게 되는 인터넷 홈페이지나 웹 문서 페이지.
[35] 시작이 되는 단어나 문장 또는 글.
[36] 장노현,「?하이퍼텍스트 서사에 관한 연구」, 한국학대학원, 박사논문, 2002, p148
[37] 성민엽,「?21세기 작가란 무엇인가」, 『21세기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9, p42
[38] 최인자,「최인훈 수필적 소설 형식의 문화철학적 고찰:‘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중심으로」, 『국어교육연구』vol.3, 1996, p156
하이퍼문학의 개념을 끌어와서 기존 문학을 새롭게 분석해보고자 했던 것인데 역시나 여러 학술논물을 오려붙이기 한 것 밖에 되지 않아서 창피할 따름입니다. 다만 이 공부를 언제고 다시 이어 하고 싶은 마음에 올려놔 봅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