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와서 꼭 읽어야겠다라고 다집하며 목록표까지 작성했었다. 대략 스무권 남짓의 책이었는데 작심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 세권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 두 권은 절반쯤 읽다가 잠시 덮어둔지 1년째고, 남은 한 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지 덕분에 끝을 보긴 했다. 하지만 머리속을 텅 비우고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가득한 철학적인 메세지와 전문적인 지식들. 감히 읽으려 했던 내 자신이 벌거숭이처럼 부끄러워졌다.
피에르 레비의 「집단지성」은 감히 그랬다. 번역상의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이 열정적인 프랑스 학자의 논지를 내 머리로는 도저히 관통하기가 어려웠다. 막연히 그려볼 뿐. 텁텁한 아쉬움만 잔득 남아 버렸다. 그래서 감상보다는 왜 읽으려 했는지를 대신 적기로 한다.
우리는 인터넷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감히 "문화"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인터넷은 생활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고, 열매만을 따 먹으려고 하고 있다. 마치 개미떼 처럼. 새로난 과일에만 잔득 모여드는 모습들이 너무 쉽게 발견되고 있다. (지금은 미니홈피라는 열매에 온 국민이 달라 붙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터넷을 구성하는 네트워크 즉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집 바닥에 배수로나 난방시설이 어떻게 생겼는지 꼭 알아야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절로 난 열매에 목매이는 일은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마당이 있다면, 채소나 과일나무를 심어도 보고, 물을 주고, 해충도 제거하면서 때를 기다려 수확해보는 그 즐거움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집단지성」은 인터넷의 본질적인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집단지성'은 곶이곧대로 풀이하자면 공동체적인 지식(정보) 샹산정도가 될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는 가장 크고 중요한 재화가 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인터넷은 소수에 의해 지식이 생산되고 정보고 공유되어 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음이나 네이버, 싸이월드등 국내의 대형 포털 서비스가 부리는 횡포는 이미 명백한 유죄임이 드러나 있다. 네이버에서 제공하고 있는 지식인 서비스는 공동체에 의한 지식 생산아니냐는 질문을 내던질 수 있겠지만 타사 검색사이에서 절대로 네이버 지식인 정보를 검색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더라도 네이버가 얼마나 독점적으로 지식정보를 소유하고 상업적으로 팔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대다수의 사용자들만 일개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집단지성」은 다음처럼 닫혀있지 않으며, 네이버처럼 공유를 막지도 않아야 한다. 함게 만들어낸 정보는 함게 공유가 되어야 하며, 그 가치는 모두에게 큰 것이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것이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브레테니커 백과사전'과 견주어 그 가치를 무시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위키위키'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구축되었다. '위키위키'는 공동체가 함께 웹문서를 생산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으로 작성과 수정 삭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위키피디아'는 지근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며, 업그래이드 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렇게. '수원화성'을 검색해보니 최초에 조선시대에 지어진 과학적인 성곽. 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너무 성의 없는 내용에 내가 수정버튼을 눌러 '조선조 정조때 지어진 마지막 성곽으로 정양용등 여러 실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라고 고쳤다. 그리고 또 다른 사용자가 사진을 첨부했고, 어떤 이는 수원화성을 찾아가는 지도를 넣었다. 어떤 이는 동영상을 넣기도 하고, 어떤이는 수원 화성 부근의 맛집을 추가로 설명해 놓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수원화성'은 정보의 양을 확대해가며, 정확성을 높여간다. 이 작업은 아주 짧은 실시간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며 누구 한 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의 소유가 되고, 모두가 함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피에르 레비의「집단지성」은 이 같은 인터넷의 미래가 공동체에 의한 창조와 공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나중 조금더 내 머리가 깊어지면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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