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고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있다. 대게의 경우는 너무 재미없거나, 전혀 뜻 밖의 전개로 후회를 하거나이다. 휴가를 나와서 첫 날 할일없는 시간을 채워볼 요량으로 '판의미로'를 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영화인지도 몰랐다. 왜 소녀가 나와 피를 흘리기 시작하더니, 아니 화면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꼭 메멘토의 장면처럼.
판의미로는 판타지 장르이며, 줄거리는 다소 슬프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요정을 믿는 소녀가 있다. 소녀는 사실 지하왕국의 공주인데 인간으로 환생하여 무식한 의붓아버지(군인)와 착하지만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는 약한(아프거나 죽거나, 임신중이거나) 어머지를 두고 있다. 낮선 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 곳에서 요정을 발견한다. 요정은 소녀를 신성한 장소로 이끌고, 소녀는 문지기(판)를 만난다. 소녀는 자신이 지하왕국의 공주임을 알게되고, 지하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세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녀는 판과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지하왕국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판의미로가 나를 특별하게 흔들어 놓은 이유에는 단순히 소녀의 모험담이 아니다. 소녀로 대변되는 판타지 즉 꿈과 군인인 의붓 아버지로 대변되는 현실의 절묘한 대립이 가져다 주는 공포와 슬픔때문이었다. 살육이 난무하는 현실속에서 소녀가 그리는 판타지는 어쩌면 현실 이상의 사실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소녀를 뒤쫒던 의붓 아버지 눈에 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 꿈을 잃어버린 현실과 꿈을 가진채 현실에서 도망치는 소녀를 선명하게 대립시켜 보여준 장면이다.
오프닝 컷에서 소녀의 죽음을 미리 보여준 까닭은 어쩌면 감독이 우리에게 '죽음'이 결코 불행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것이 아닐까.
2007년 2월 18일 일요일
판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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