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HTML을 접한건 1997년 겨울이었다. 우연히 서점에 들렸다가 인터넷이라는 생소한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 틈이 머뭇거리게 되었고, 그 중에 HTML을 소개하는 책 한권을 손에 들게 되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HTML에 대해 공부했고, 궁금해했고, 찾아보게 되었다. 적지 않은 관련 서적을 구입하면서 공부했고, 처음으로 개인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동아리 홈페이지도 만들었고, 학교 홈페이지도 만들었다. PC통신을 연구하던 동아리는 내 의지로 홈페이지 연구반이 되어 버렸고, 나는 국어국문학과에 가서 인문대답지 않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엉뚱하게 유명한 학생이 되어 버리기도 했었다. 교육컨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에 들어가 반년간 드림위버를 이용한 코딩일을 하기도 했고, 처음으로 웹에이젼시에 들어가 커다란 사이트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학교와 업계를 왔다갔다 하면서 웹퍼블리싱 공부를 하고, 경력을 쌓아갔었다. 그 와중에 내게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 있었는데 2001년 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방과후 특별수업을 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었다. 그때 나는 스무명 남짓의 학생들(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가까운 후배들)을 앉혀놓고 홈페이지 수업을 했었는데 첫 수업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칠판에 HTML이라고 써놓고 학생들에게 이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지켜보다가 동아리 후배이기도 했던 학생에게 직접 물었다. 학생은 화면을 꾸며주는 인터넷 언어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칠판에 다시 썼다. Hypertext Markup Language 라고.
어떤 책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00년대 이전의 꽤 많은 책과 웹사이트에서 HTML을 Hypertext Makeup Language라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당영한 이야기이지만 이건 틀린것이다. 우린 HTML의 M이 Markup의 약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메이크업과 마크업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번역자의 실수일수도 있고, 검수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덕분에 HTML을 잘못 이해해버린 사람들을 만들어 버렸다.
메이크업은 화장술에 쓰이는 용어이다. 보통 기초화장 뒤에 하는 색조화장을 말하는데, 조금 다른 분야에서 사용되더라도 그 의미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 HTML을 메이크업이라고 풀이했을때 어떻게 될까?
하이퍼텍스트는 화면을 꾸미는 언어가 된다!
아 이 얼마나 이해가 쉬운 풀이인가!! 내 첫 수업때 화면을 "꾸미는"이라고 대답했던 학생이 결코 죄가 없음이다. 나 역시 한때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다행히도 난 당시 메이크업이 잘못된 것이고, 마크업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학생에게 "꾸미는"이 아니라 "구조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애를 써야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의 난 구조화라는 풀이만 알았다. 스타일시트를 통한 표현의 분리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도 HTML을 웹을 꾸미는 언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다. 수 많은 웹기획자와 웹디자이너, 웹개발자들 말이다. (웹퍼블리셔들 가운데에도 있을 것이다) 웹기획자는 고객에게 어필할수 있는 화면을 고민하고, 웹디자이는 자신의 작품을 완벽하게 브라우져화면에 띄워주는 목적으로 HTML을 사용하거나 이해한다. 중간에 웹퍼블리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크업 작업을 했더라도! 웹개발자는 HTML을 조각조각 쪼개는것도 모잘라 온갖 서버측 스크립트 언어로 바꿔 버림으로써 디자인과 HTML, 스크립트가 하나되는 삼위일체의 꿈을 완성(?) 시켜준다.
요즘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웹접근성 향상과 웹표준화 작업은 애초에 Markup을 Makeup으로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큼 늦게 깨닫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렇게 답답해하지 않았을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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