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2년차. 2006년. 기상청 관측 결과로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들 눈에는 지금 흰 눈이 쌓이고 있다. 그것도 첫 눈이-
나라는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종종 도서관 골방에서 대대 홈페이지를 들쑤시고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것이다. 그러고보니 대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영자씨(운영자를 부르는 은어)가 되어 버린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보안일일결산이며, 전투일일결산, 사이버교육상황실, 온도지수와 체감온도, 위병소 관리 시스템까지 하나 둘 살덩어리들을 붙이다 보니 어느덧 버전도 (우습지만) 2.0이 되어버렸다. 2.0이라는 의미.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고, 다시 크게 변화를 가졌을 때 나름 자신있게 바꿀 수 있는 숫자였다. 조금 고친게 아니라 모양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기능도 많이 바뀌었습니다라고 자랑하면서 내 걸은 숫자인 것이다.
요즘 웹2.0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물론 사회에서!) 들려온다. 한 달여 전에 김중태씨의 웹2.0과 관련한 책 한 권을 소개한바 있는데 이번에 읽은 김철수님의 「다음은 싸이월드를 넘어섰을까?」는 시기적으로는 웹2.0이 이만큼 주의를 끌기 직전이고, 내용도 기획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편이다. 쉽게 말해 약간 뒤쳐진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대충 볼만한 책은 절대 아닌것 같다. 온고지신이라고 아무리 새것이 좋고 새것이 판치는 온라인이라 할지라도 토대가 오프라인으로부였으며, 애시당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논리이다. 1~2년 전쯤의 시선으로 되돌아가 다음과 싸이월드를 둘러싼 국내 웹 경향과 기획에 대한 김철수님의 칼럼을 읽다보면 현재의 온라인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앞으로 웹2.0을 토대로 어떻게 변해갈지도 가는 눈으로 슬피 살펴 볼 수 있을법도 할 것 같다.
그리고 특히 내게는 이 책이 적잖은 도움과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장래의 내 꿈이 웹기획에 어느정도 다가가 있음이 그 때문이었다. 전산을 공부하고, 국문학을 전공한 내게 기획이라는 분야는 달콤한 사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워낙에 무지하고, 빈약한 지식머리 때문에 희망을 품기엔 한 숨이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참에 이 책을 접하면서 조금은 방향제시를 해 볼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웹 기획에 관심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봄을 추천해 본다.
ps/ 책을 빌려주신 본부포대 차은상 병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동계가 되면서 태극기를 내리는 시각이 18시에서 17시로 앞당겨졌다. 얼마간은 이 바뀜이 어색해서 두어차례 때를 놓쳐 알파 근무자들을 추위에 마냥 떨게 했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제때, 또는 조금 일찍 틀어주는 일을 몇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그저 시간이 되면 근무자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제 내려요."라고 무덤덤하게 던져 놓고는 정훈실로 쪼로록 들어간다. 끈이 떨어져 그저 알맹이만 들고 다니는 손목시계를 꺼네놓고 초를 살피다가 59분이 막 넘어서면 앰프를 작동시킨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손은 타이밍을 기다리듯 마우스를 살짝 움켜 잡는다. 56초, 57초, 58초. 딸깍! 빰-빠-빠- 막사 뒤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국기 하강식 음악. 하루중 가장 듣기 좋은 방송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좀 재미난 상황이 생겼다. 오랜만에 간부들이 모여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17시가 다 되어가도록 경기는 끝나지 않고 한참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이를 어쩌나? 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들던 참에 당직사령에게 달려가 한마디로 물었으나 곰곰 생각하던 사령은 원칙대로 틀어도 좋다고 답변해 주었다.
전에도 그저 틀어보았으니 오늘도 무례는 아니겠지 싶었다. 때를 기다려 근무자를 확인하고 정훈실로 돌아와 59분 58초 되는 타이밍에 딸깍거렸고, 방송은 으리으리하게 울려퍼졌다. 어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둥실 띄우고 현관문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전까지도 무아지경으로 뛰던 간부님이며 전우들이 모두 제자리에 곤두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삼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만약 A매치 경기가 열리는중에 애국가가 울려퍼진다면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이 공을 몰고 우리 골대를 향해 달려오더라도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올릴 수 있을까? 그러다가 골을 먹더라도 국민들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애국가라고 칭찬해 줄 수 있을까?
오랜전에 극장에서까지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말이 떠오르며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