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 - 사이버 공간의 인류학을 위하여 - 피에르 레비 (지은이), 권수경 (옮긴이)(2002) / 문학과지성사 |
이 책은 인류 사회를 위한 하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이 책의 메시지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저자가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로 책의 첫 화두를 삼고, 에필로그에서 미노스의 평화적 문명을 마땅히 본받아야 할 전범으로 제시하며 글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레비는 우리가 다시 유목민이 되었다고 말한다. 유목 사회와 그리스 신화의 세계 속에서 상호성에 입각한 '환대'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환대'를 타인의 지식을 수용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평화 가운데 상생하려는 결단과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레비는 디지털 정보화가 변화시킨 세계 또한 여전히 역사 속에, 그리고 인간 속에 그 뿌리가 내리고 있음을 인식한다.
요컨대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갈등과 경쟁을 넘어선 평화 공존의 메시지, 즉 '새로운 휴머니즘의 선언'에 다름아닌 것이다. 집단 지성은 레비도 인정하는 것처럼 하나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그것은 긍정적 시각에서 볼 때 실현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이상향이다. 문명들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오늘날 이 책이 나름의 시의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레비의 이러한 문명론적 비전에 힘입은바 크다고 하겠다. - 권수경(옮긴이)
인터넷이 있어 유토피아가 가까이 있다? / 김미혜 / 한성대 강사
최 근 인터넷을 통해 진행되는 찬반 투표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사이버 테러의 피해가 속출하는 등 네티즌들의 자정(自淨) 능력을 신뢰할 수만은 없으며 인터넷 민주주의의 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역동적인 의사소통의 통로로서의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레비는 1994년 발간한 {집단 지성}이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자유로운 분배 및 상호 교환을 구심점으로 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서 '집단 지성'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될 미래 사회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 대화형 통신의 디지털 네트워크들을 어떤 목적을 위해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사이버 공간을 기획해 나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기대에 차는 것보다는 훨씬 진취적이다. 그의 기획이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한 것인가를 결과론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획을 위한 밑바탕으로 삼는 것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집단 지성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여느 낙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실시간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주목하는데, 집단 지성의 이상은 그러한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집단 지성은 그것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타자와의 끊임없는 의사소통 속에서 반성하고 수정하며 보완되는 존재로 규정하며, 그러한 상호 수련을 인간 관계의 매개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는 상호성에 입각한 '환대'라는 유목 사회의 덕목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다시 "지식 공간 위를 유목하기를 그치지 않는 다른 구성원, 다른 집단, 새로운 수련을 향해 개방된 주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레비가 말한 바대로 사이버 공간은 "이타성을 향해, 그리고 다른 공간들과 불확정적인 미래를 향해 무한히 열린 공간"이며, 우리는 과연 "역동적이고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다차원적 재현 공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적이고 협동적인" 집단 지성의 등장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X세대와 N세대를 거쳐 등장한 P세대는 네트워크를 통한 관계 형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에 바탕을 둔 개인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레비가 예상했던 대로 인류에게 있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체성이 더욱 중요해졌고, 다원성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P세대는 집단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고 문제 발생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역동적이고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 '윤리'를 확립하는 데는 아직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만약 그가 집단 지성의 등장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단 지성의 등장을 위한 구체적인 기획까지 제시해 주었다면 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는 벌써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기획은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고, 집단 지성의 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불확정적이다. 유토피아가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