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7일 금요일

내 나이는 이등병

공삼시 삼십분, 야간 근무자를 깨우는 불침번의 부름에 '이병 추지호'를 본능적으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한 밤중의 내무실은 어둡고, 쓸쓸하다. 찬바람이 어디서 새어 들어오는지 환복을 하는 그 짧은 사이에 오들오들 더듬어져 오는 추위는 아직 내게 낯설기만 할 뿐이다.

상병 아무개 외 일명은 K-2소총 두 자루를 어깨에 메고, 더듬더듬 어둠속 언덕길을 사주경계하며 걸어간다. 사수의 걸음걸이가 빨라지면 부사수의 뒤쫓는 걸음도 급해지고, 사수의 앞걸음이 느려지기라도 하면 부사수의 뒷걸음 역시 숨을 내쉬며 느려진다. 유난히 어두운 밤과 새벽 그 경계 즈음에 부대와 사회의 경계를 지키는 딱딱한 초소 하나가 그 그림자를 더욱 어둡게 내리깔고 흐릿하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가끔씩 나타나 놀래키는 토끼나 노루의 발자국 소리, 간간히 지나가는 민간인 차량의 서치라이트가 이 날도 어김없이 초소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뜨렸다가 금새 지워버리고 도망가 버린다. 마치 밝은 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박였을 때 느끼는 어지러움증처럼. 점점이 흩어지는 그림자들 사이로 추억은 가슴팍을 쳐대며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며칠 전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었고, 우리 부대는 '부대개방의 날'이라는 행사를 열었다. 현수막에 내걸린 제목 그대로 부대를 민간인에게 개방하는 날이었고, 가족과 친구, 애인들이 국방색 전투복 사이로 물감을 풀어헤치듯 헤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들의 맛깔스러운 음식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애인들의 화장품 냄새가 뭇 사내들의 허기진 가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 날 아침 나는: 공여섯시 어제처럼 기상을 하자마자, 손님맞이 청소를 하고, 미역국에 아침을 먹고, 24인용 텐트를 치고, 간부며 민간인이 사용할 의자를 챙겨 세 줄에 일곱 개 씩 나란히 맞춰두고, 대대장님 앉을 자리라 한 번 더 걸레로 먼지 않을 새라 닦아놓고, 밤새 내리다 만 얄궂은 비가 여직 머물고 계신 운동장 한 가운데를 삽으로 때리고, 빗자루로 쓸어서 평탄하신 연병장으로 복원하는 대사업까지 마치고, 이제는 쉬려나 할 새에, 행정보급관의 심부름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다시 이리 저리 뜀뛰기를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았었다.

'우리 아들 군대 가면 면회도 가보세'하시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엿들은 것은 당신의 입이 아니라 한참이나 후에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서였다. 고작해야 입대일로 100일이 막 지난 이등병이었으며, 아침부터 정신없이 뛰어 다닌 탓에 그리움이나 낭만에 빠질 만큼 한가롭지도 못했다. 뛰며 마주치게 된 낯설지만 괜시리 반가운 민간인들의 얼굴도 그저 내가 아닌 다른 병사들의 아버지, 어머니, 친구, 애인이었을 뿐 누구 하나 나를 알아봐주고 반가워해줄 이는 없었다. 단지 아버지가 하시었다는 그 말씀 한마디가 불쑥 내 목에 걸려, 그리움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바로, 나는 단 한 장 아버지의 군인이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처럼 말랐고, 짧게 잘랐지만 곱슬을 채 감추지 못한 머리를 한- 그렇지만 고집스럽지 않은 선한 표정으로 서 계시던 모습. 아마도 지금의 나보다 한 두 살은 더 젊었을 시절의 아버지가 군인이었던 기억. 당신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을지 모를 아들의 군생활은 또 얼마나 당신처럼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아직은 암담하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모를 당신의 도움으로 내게 남은 군생활은 조금은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놀라 좌우를 살피다가 유월이와 눈이 마주쳤다. 유월이는 우리 포대에서 키우고 있는 개였다. 지난해 6월부터 키우기 시작했다고 해서 이름도 유월이다. 군대 족보로 따지면 내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다. 녀석도 추웠던지 어느틈엔가 초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10월에 들면서 밤공기가 많이 차가워졌고, 1시간을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점점 쉽지 않게 느껴진다.

남이지만 유난히 그리운 사람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다행히 내게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고, 그 중에 내 가슴에 그리움이라는 뿌리 하나를 단단히 박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뿌리의 길이나 단단함이 어지간히 길고, 단단한지 가끔은 그 사람 생각만으로 하루를 새어 버린 적도 있다. 이렇듯 간절한 마음이 새삼 군대 와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입대 후에 더 자주, 더 깊어진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어리고, 용기가 허약해서인지 영화 속 누군가가 했던 대사를, 드라마 속 누군가가 보여준 행동을 나는 감히 흉내 내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진정인지 욕심인지 모를 몇 마디만 냅다 던져놓고 뒤돌아 도망쳤던가보다. 차갑게 불어 닥친 밤바람 탓이었는지 생각 끝에 밀려든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가슴이 떨리고, 시선의 끝이 흔들거린다. 그저 오늘밤도 그 사람 생각할 수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하고, 혹여나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내일 하루도 즐겁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면서 내일은 혹시라도 편지 한 통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훈련소에 있을 때는 그저 잠자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온 종일 훈련을 받고, 두 다리 쭉 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 취침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져온 사진이 없었기도 했지만 잠들기 전 항상 꺼내 보던 사진은 어머니 사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럴듯하게 찍어놓은 사진도 없었지만, 지난 졸업식 날 찍었던 사진을 챙겨오지 못한 불효 때문에 내 수첩 속에 어머니는 10년도 더 된 꽤나 젊게 보이는 증명사진이었다. 자대에 왔고, 일과 중에라도 쉬는 시간에는 가끔 누워보기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건 역시 취침 때 뿐 이다. 22시 취침 구호를 외치고 나면, 소란스럽게 침구류를 바닥에 깔고 눕기 시작한다. 소등하기까지의 그 잠깐 사이지만 오늘밤도 나는 어머니 사진을 한 번 꺼내 보고 자리에 누워 본다.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어서야 겨우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카네이션 한 송이를 가슴에 달아드렸던 못난 아들이었다. 입대 후 두 주에 한번 꼴로 꼬박 꼬박 편지를 부치면서 익숙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수십 번 수백 번 해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그 말이 왠지 어머니께는 감히 드릴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는 여자라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사랑보다 어머니가 주시는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차마 거짓말 같이 느껴지는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가 못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머니는 오늘 밤 주무시기 전에 전역이 다섯 달 남은 둘째 아들과, 이제 막 100일 위로 휴가를 다녀간 큰 아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히 지내기를 기도하실 것이다. 그리고 '아들들아 사랑한다.'라며 빈 방 가득 찬 허전함을 밀어내는 사랑을 기도하실 것이다.

나를 사랑했던 아버지, 내가 사랑하는 여자,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아직은 견디고, 이어가야 할 시간이 더 많이 남은- 그래서 전역일 따위를 손꼽아 세어보지도 못할 스물다섯의 이등병. 이런 글 자체가 어쩌면 참 사치스러울 수 있을 테지만, 힘들었던 훈련소 생활과 고단할 앞으로의 자대 생활에 있어 나를 지탱하고, 이끌어주는 힘이 그리움인 것을 되새기며 적어 보았다. 나이가 스물다섯이라는 소리에 대부분이 놀라고, '힘들겠다', '후회되겠다' 라는 말을 해준다. 간혹 어떤 선임은 나이가 많으니 '더 잘 할 거야'라고도 말한다. 아직은 모르겠다. 나이가 내 군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만 지금 이 순간까지는 스물다섯의 이등병이라는 사실에 후회를 남기지 않고 있으며, 나 스스로 좀 더 조심하고 현명해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까칠하게 깎아 놓은 머리, 국방색 전투복을 다려 입은 모습, 선임의 구호 소리에 왼발을 맞추며, 군장을 차려 입고, K-2소총을 어께에 맨 채로 언덕길을 오르는 그림자는 이름을 기억하기 힘든 육십만 국군중 하나 일 뿐이겠지만, 내 어머니를 걱정하고, 한 여자를 그리워하면서 내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는 스물다섯의 이등병. 그 병사는 바로 나일 것이다.

댓글 1개:

  1. 이 글은 05년도에 한신대 국문과 잡지 '우리.들 3호'에 실린 군대수기입니다.

    책에는 편집본이 수록되었고, 이 글은 무삭제본이네요. 일부분 드러내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서 편집했는데 이 곳에는 그냥 원문을 그대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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