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30일 토요일

21세기 작가란 무엇인가

성민엽, 21세기 작가란 무엇인가 1999 p25~26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활자 매체와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 사이의 물리적 차이이다. 그 차이는 두 매체가 똑같이 문자 텍스트로서의 문학을 구현할 때 더 잘 드러난다. 가령 활자-책과 시디롬-책을 비교해 보자. 책(冊)의 한자는 죽간 묶음의 상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모양, 얇은 것을 여러 장 겹쳐 맨 모양이다. 이 모양은 결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와의 직접적인 접촉, 혹은 소통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디롬-책은 컴퓨터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독자와의 접촉이 가능해진다. 컴퓨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시디롬-책은 간적접 접촉이라는 물리적 특징을 갖는다. 이 직접성/간접성의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그것은 비판적 감각의 직접성 유무와 관계되지 않을까. 이점은 근대적인 책의 발생사를 돌아보게 해준다. 종이-인쇄 시대의 개막은 근대의 개막과 걸음을 같이했었다. 다수 민중을 몽매의 상태에 두고 지배층이 지식을 독점하는 그런 구조가 전근대의 권력의 매커니즘을 밑에서부터 받치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종이-인쇄 시대의 개막은 민중에의 지식의 확산을 가능케 했다. 봉건 지배층이 인쇄를 통제하고자 했던 것은 그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종이-인쇄의 책의 승리는 곧 근대적 민중의 승리였다. 종이-인쇄의 책이 처음부터 새로운 근대적 권력의 메커니즘 형성과 밀접하게 관계되었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집중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그러한 사실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님은 부언할 필요가 없겠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는 자본과 권력이 그 간접적 접촉의 틈새로 스며들기 쉽게 되어 있다. 그 틈새가 민주라든지 해방이라는 가치를 위해 기여하거나 혹은 긍적적 가치로서의 탈중심이나 차이를 위해 기여하기보다는 자본과 권력을 위해 봉사하게 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그것은 근대적 권력의 해체를 가져올지는 몰라도 미증유의 새로운 권력, 탈중심과 차이라는 형태로 위장된, 한층 더 음험한 권력의 역설적인 전체적 지배로 연결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만약에 이런 혐의에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활자 매체의 문학은 그의 존재를 위협하고 그의 자율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들과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이때 작가는 그 싸움을 역사적 소명으로 받아들인 고독한 존재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진술은 문학이 자신을 활자 매체에만 고착시키고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를 외면하자는 것은 아니다. 외면은커녕 오히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사이버 스페이스 매체로의 문학의 확장은 이 새로운 매체를 자본과 권력의 관리로부터 일탈케 하고자 하는 비판 의식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문학제도의 변화라든지 문학 정체성과 작가 정체성의 변화 같은 문제는 그 다음에야 성립되는 문제이다.

시학

아리스토텔레스, 천병희 역, 시학, 문예출판사, 1997. pp.54~55

우리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다. 왜냐하면 전체 중에는 아무런 크기를 가지지 않은 전체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체는 시작과 중간과 결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플롯을 훌륭하게 구성하려면 아무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내서는 안 되고, 위에서 말한 원칙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플롯도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데, 그 길이는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1960년대 문학연구「소설가에 의한 소설, 소설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색」.p77

1960년대 문학연구「소설가에 의한 소설, 소설가의 존재방식에 대한 탐색」.p77

글이란 그것을 쓴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자기 나름의 존재 의의를 가진다는 것, 소설이란 이 점마저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 구보의 소설에 대한 생각이다. 이는 물건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미 주인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으로 되는 이치와 똑같다. 이는 마치 예술을 그 자체로 단독적인 물신의 위치로 격상시킨 헤겔 이후의 예술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소설은 객체화되는 물건이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의도와 수용하는 사람의 입장이 뒤바뀐다는 사정까지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은 구보가 가진 생각의 독창성이다. 그만큼 소설에는 만든 사람의 고통까지도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또한 소설은 소설가의 전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플롯이란?

플롯의 뜻 -
구성(構成, plot)-소설에서의 : 주제의 효과적 표현을 위한 사건의 인과적 질서
1. 개념 : 구성이란 어떤 사물의 짜임새, 틀을 말한다. 따라서 소설의 구성은 작품의 짜임새를 말하며 흔히 '플롯'이라고도 한다. 소설에는 일정한 이야기(스토리)가 있고, 그 이야기는 인과적 질서에 의한 일정한 틀에 의해 전개된다.

* 현실의 줄거리(story) :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의 순차적 배열
* 소설적 줄거리(plot) : 작가가 재구성한 사건의 인과적(因果的), 미적 질서

'소설의 양상'(Aspects of the Novel) --- 포스트(E. M. Forster)의 견해
스토리는 시간적 순서대로 배열된 사건의 서술이다.
플롯도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因果) 관계에 중점을 둔다.

'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라고 하면 스토리이지만, '왕이 죽자 왕비도 슬퍼서 죽었다.'
하는 것은 플롯이다.
또 '왕비가 죽었다. 아무도 그 까닭을 몰랐더니, 왕이 죽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다면 이것은 신비를 간직한 플롯이며, 고도의 발전이 가능한 형식이다.

2. 요소 : 소설의 3요소인 '주제, 구성, 문체' 중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을
기본적 요소로 가진다.

※ 구성에 필요한 요건
필연성 - 인과 관계가 분명
통일성 - 모든 행동은 주제에 집약되어야 함
일관성 -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모순되는 점이 없어야 함

3. 구성의 단계 : 어떤 이야기에는 반드시 처음과 가운데, 그리고 끝이 있게 마련이다.
흔히 소설 구성의 단계는 4단계 혹은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 4단계설
▲발단 : 등장인물의 소개, 배경의 제시, 사건의 실마리 제시, 독자의 흥미 유발, 인물의
성격이나 갈등의 암시
▲전개 : 사건의 본격적 전개, 갈등과 분규의 제시, 인물의 성격의 변화 발전, 복선, 암시,
생략, 서스펜스(suspense) 등의 기교 구사
▲절정 : 갈등과 분규가 격렬하게 상승되는 국면(갈등의 분기점),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를
암시,
▲결말 : 갈등과 분규의 해결, 주인공의 운명 결정, 여운을 남기거나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기도 함

* 5단계설 : 전개 단계를 '전개와 위기'로 나누어 설정한 단계설이다. 위기는 극적 반전
(反轉) 을 가져오는 순간을 가리킨다.

4. 구성의 유형
1) 전개되는 이야기 수에 따른 분류
. 단일구성(단순구성) : 작중에 하나의 이야기만 있음
. 복합구성 : 두 가지 이상의 여러 이야기가 복잡하게 교차되며 진행

2) 사건의 진행 방식에 따른 분류
. 평면적 구성(진행적 구성) : 사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유형으로 일대기적
구성(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을 지닌 우리의 고대 소설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형이다.

. 입체적 구성(분석적 구성) :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진행하는 방식으로 '과거 미래 현재
혹은 현재 과거 미래' 등으로 역행시켜 진행시키는 구성이다.
예) 하근찬 <수난이대>, 전광용 <꺼삐딴 리>, 영화 메멘토

3) 통합성의 정도에 따른 분류
. 극적 구성(유기적 구성) : 작중의 여러 가지 사건 등이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되는
구성이다.
. 삽화적 구성(산만한 구성 혹은 이완된 구성) :불필요하거나 부수적인 사건이 큰
긴밀성이 없는 상태에서 섞여 있는 구성이다.

4) 액자구성 :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삽입, 전개시키는 구성

플롯에 대한 논의 두 가지 --- 조남현, ?소설원론(고려원, 1986) p. 247~251
소설의 플롯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플롯을 일정한 예술적
효과를 낳는 데 필요한 서술상의 기술로 보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형태론적 플롯), 이에
반해 플롯을 인물, 사건, 사상 등 소설의 여러 요소를 보다 효과있게 정리하고 종합하는
본질적인 힘으로 논해 보려는 태도가 그것이다.(주제론적 플롯)

현대소설의 네 유형 --- 이광풍, ?현대소설의 원형적 연구(집문당, 1985) p. 161
인간의 삶이 부단히 자아 실현을 위한 노력으로 점철되어 왔듯이, 언제나 인간은 일상의
삶에 만족하지 않을뿐더러, 특히 동일성을 상실한 주인공은 그 회복을 위해 또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되고, 이를 이루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목적한 바를
만족하게 이루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채 남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소설은 이같은 의식의 변화나 행동 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작중인물이
자아실현을 위해 움직이되, 그 동기나 행위의 결과에 초첨을 두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형 : 불만족한 상태에서 만족한 상태에 이르는 이야기 ........... 회복형
제2형 : 이상세계에 대한 꿈을 갖고 부단히 움직이는 이야기 ....... 낭만형
제3형 : 만족한 상태에서 불만족한 상태로 떨어지는 이야기 ........ 상실형
제4형 : 현실세계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이야기 .......................... 시련형

이 같은 네 유형의 이야기는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자연의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자연
(나무)의 삶과 일치시켜 볼 때, 보다 확연히 드러나고 있어, 이를 N. 프라이가 제시한 네
가지 미토스(mythos)와 일치시켜 볼 수 있다.

회복형 : 봄의 미토스(희극)
낭만형 : 여름의 미토스(로만스)
상실형 : 가을의 미토스(비극)
시련형 : 겨울의 미토스(아이러니, 풍자)
소설 구성상 유형
희극형 ( 불행에서 행복으로 )
비극형 ( 행복에서 불행으로 )
로망스형 ( 잃어버린 꿈을 찾아 일상의 삶을 벗어나려고 몸부림 )
아이러니형 ( 행복과 만족을 찾아 몸부림칠수록 더욱 불행해지는 유형)

*소설의 구성에 중점을 두어 설명한 것입니다. 영화의 시나리오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작의 :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려는 의도, 또는 창작하려는 작품의 의도.
행복으로 간다.

하이퍼텍스트의 강압

하이퍼텍스트의 강압「김용석의 문화 텍스트 읽기 '깊이와 넓이 4막 16장'」, p142

하이퍼텍스트가 강압의 가능성을 내포하는 이유는 그것이 -명백하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전체주의적' 내부 네트워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이퍼텍스트는 원칙적으로 링크(기계적 연결) 및 링크 아이콘 그리고 연결된 마디들(스크린들)을 가진 데이터베이스다. 그리고 그 제공자가 있다. 이것은 하이퍼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하이퍼소설을 대할 때 독자들이 각자 나름대로 선택하여 독서로(reading path)를 탐험한다고 해도, 그 길들은 작가가 설계한 것이다. 즉 제공자의 권력이라는 문제가 부상한다.
김용석님의 위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하이퍼텍스트가 저자의 지위를 내리고, 독자와의 관계를 평등하게 해 준다는 논지를 반박하는 근거가 되며, 나 역시 동감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같은 근거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하이퍼텍스트를 저작하는 시스템의 제약성때문으로 보인다. 하이퍼텍스트를 저작하는 가장 대표적인 HTML작성에서부터 하이퍼문학을 저작하는 툴 역시 '제공자'나 '제작자' 내지는 '운영자'에 의해서 저작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키위키와 같은 공동체 시스템 이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퍼블리싱이 아니다. 흐르게 하는 것이다

퍼블리싱이 아니다. 흐르게 하는 것이다

Stream, Don't Publish BY Sean Carton , March 8, 2004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매체적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스트리밍이 아닐까 한다. 책으로 대변되는 인쇄문학은 인쇄소를 거친 출판을 통해서 완성되고 독자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형식적인 출판을 통해 전달되어도 그 순간 새롭게 변화되어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것은 출판이 아니다. 흐름이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

첫 눈이 내렸다. 언제나 어긋나곤 했던 일기예보가 이처럼 잘 맞아버리다니 괜히 억울한 생각까지 든다. 창밖으로 재채기라도 한 듯 눈이 쏟아져 내린다. 지난 3월. 아마도 지난겨울의 마지막 눈이었을 듯싶다. 눈이 쌓인 곳은 정말 흰 것 말고는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병점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달리지 못하는 버스를 포기하고 종종걸음을 한 발씩 묶어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피난민의 행렬처럼 보였다. 캠퍼스는 온통 은빛으로 스케치 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학생들을 반기는 눈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학생회관 앞이었나 보다. 03학번 녀석들의 눈싸움이 한참이었다. 어떤 녀석이 던진 눈이 여학생의 몸통을 그대로 때려 맞췄다. 파삭- 하며 부서지는 눈. 실수였었다. 한참을 하던 놀이에 너무 빠져있었는지 그저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를 숨겨두었을 뿐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렇게 친구의 눈 밑을 찢어 놓다니. 두려움에 휩싸인 친구의 눈동자는 찢어진 눈 밑을 더욱 벌리며 붉은 핏방울을 주룩 주룩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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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9일 금요일

햇살 가득한...

이 주 전쯤에 선생님과 약속한 것이 있어서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갔다.
동기들은 대부분 학술답사를 떠나고 없었지만
뭐, 그네들을 보러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
스쿨버스에서 신애를 만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아무도 없는 과사의 문을 내가 재일 먼저 열었다.
과사는 어쩐지 너무나 지저분해 보였고, 책상 위에 날적이는
그나마 몇 날 몇 일의 일들이 읽기 좋게 적혀 있었다.
컴퓨터는 아직도 고장이 난 듯 그대로인 것 같았다.
만우관 뒤편 붉은광장에도 어느덧 봄이 가득해서
초록으로 가득찼다.

그런데 문득,
코스모스가 그리워졌다.

문자제국 쇠망약사

이틀전에 사온 책. 아직 책머리밖에 읽지 못했다. 언제 읽지?
요즘은 유난스럽게 이런류의 책만을 골라온다.
인터넷, 책의 종말, 새로운 글쓰기... 그런것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
하기사 논문으로 다루었던 하이퍼텍스트문학도 그런 부류니까.
연장선에서 이해가 될 듯도 하다.
하지만 어렵다. 몇 권의 책을 통해서 이해의 깊이를 채워가는게 아니라
더 혼란스러워지곤 한다. 이 책 역시 내 어지러움증을 얼마나 해소해 줄지 모르겠다.

2005년 4월 28일 목요일

약간 감기 기운이 돈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봄 날-

어제부터 좀 이상하더니,
약간 감기 기운이 도는것 같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오늘 오후에 만날 약속을 내 쪽에서 취소하는게
아무래도 나을듯 싶어 미안하게 되었다고 그렇게 연락을 해주었다.
이상할게 없는거지만 잘됐다는듯 보내온 답문은 조금 서운한 마음까지 들게 한다.

차라리 이대로 몸살이 나서 누워버렸으면 좋겠다.
한 일주일쯤 아파버렸으면 좋겠다.
너무 아파서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2005년 4월 27일 수요일

책상 정리

잘 쓰지 않던 모니터를 치워버리고,
책상 왼쪽 구석에 있던 본체를 꺼내두었다.

작업공간이 한결 넓어진 기분이다.

로스트에 빠져있다

삼일째 외화 드라마 Lost[]를 보고 있다.

김윤진이 출연한다는 사실로 더 많이 알려진 드라마이긴 하지만
정말 재미있다.

오딴 무인도에 불시착한 마흔명 남짓의 사람들.
그들에게 재각기 에피소드가 있고,

괴물이 나타나는 이상한 섬의 비밀은 하나씩 벗겨진다.
하지만 벗겨질수록 더욱 알 수 없는 진실들.

누구를 믿어야 하고, 어떤 말이 진실인지...

내일쯤이면 20부까지 다 볼거 같고.. 빨리 24부까지 나왔으면 좋겠다 ㅠ ㅠ

2005년 4월 25일 월요일

역전 드라마

0:2로 뒤지고 있던 홈팀 수원삼성이 후반 3:2의 드라마틱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승리했다. 나의 가슴은 터질듯 뜨거웠고, 온몸은 짜릿한 감격으로 황홀했다.

흔히 축구 경기를 인생에 비유를 하곤 한다.
하지만 경기 종료 1분에 터진 결승골을 회상하면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는 곧 죽을 운명이다. 인생의 전반에 너무나 많은걸 잃었었다.
하지만 후반에 가진 고생 끝에 많은것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 더 큰 행운을 얻게 생겼다.
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역전을 한 것이다.

하지만 난 곧 죽을것이다.
과연 웃으면서 눈을 감을 수 있을까?

2005년 4월 23일 토요일

Someone Who Lives In Your Heart

All 4 One 의 노래 SomeoneWhoLivesInYoursHeart

가사가 참 아름다운 노래다. 그네들의 화음도 화음이지만...
저런 노랫말은 그저.. 사랑을 고백하기에도 딱인것 같다.
물론.. 민망해서 시작도 못하겠지만..

2005년 4월 22일 금요일

피곤해

오랜만에 출퇴근 일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피곤하다.
마음이 아프니 더하겠지만...

오늘은 참 날씨가 좋던데...
카르페디엠! 자꾸 힘들어지고 심란해질때면 혼자 속으로 외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카르페디엠! 카르페디엠!

이겨내지 못하면, 쓰러질테니.

2005년 4월 18일 월요일

나의 글쓰기

문득 지금까지의 나의 글쓰기는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꼭 남을 위해 생산적인 글쓰기를 시도한것은 아니었으나 내심 나의 글이 나 이외의 사람에게 무언가를 안길 수 있는 그런 글이 되었으면 하고 기대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한 글이 되기위해서는 조금더 세심하고 열심으로 써야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다분히 일기적이고 혼란스럽다. 이런 저런 생각 끄트머리에는 지금 이 홈페이지를 위루고 있는 수백의 페이지들과 그 가운데 있는 위키라는 것과 오늘 다시한번 만지작 거린 블로그의 선택을 놓고 갈등하게 된다. 이곳은 차라리 나의 혼란스러운 텍스트의 우주가 되어버리면 그만이며, 블로그는 하나의 완성된 글을 올리는 공간으로 하자! 라는 생각이 미치기까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위키를 시작하고, 한번의 외도를 거치며 경험상으로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의 변덕스러움과 항상 새것에 목마른 악취미를 버릴수 없기에 둘것은 그냥 두고, 저지를것은 새롭게 저지르는 것이 결단의 최선일테다.
얼마나 이 다짐이 오래갈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러한 결심으로 아직 공개하지 않은 새로운 블로그에는 아마도 내일 오전부터 좀더 숙고를 거듭한 내 글쓰기가 시도될 것 같다.

비가 온다

비가 내린다고는 하지 않았다. 새벽에 천둥번개와 소나기가 내렸지만
밝은 날 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을 확률이 더욱 높았다.
하지만 지금 비가 내린다.
오늘부터 내내 흐려지다가 오늘 밤을 사이로 다시 한번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릴 수 있다고는 했으나, 비는 내일 오후에나 내리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렇게 기상청은 또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비가 내리기 시작한 4월 18일 월요일 오후.

네이버 폐쇄공포증

인터넷을 시작한것이 97년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때였고, 586PC를 구입했을 때였다. 그전까지 사용하던 386PC로도 몇번인가 텔넷을 이용하여 텍스트로 구성된 인터넷을 이용해 본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인터넷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었다. 처음 조약한 익스플러어를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한건 정확히 97년이었다. 95년 전후로 인터넷이 대중에게 알려졌으니 97년은 국내에서도 폭발적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수백의 마라토너처럼 나 역시 그 속에 끼어 뛰기 시작했다. 네이버 폐쇄공포증

2005년 4월 16일 토요일

선배님과의 대화..

아쉬워하지 말고 고마워하면서 지내면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거야. 기준은 모호해도 말이야. 세상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면 너무 불행해. 그걸 느끼는 순간 더 계속 불행해지지. - J선배님

글 뒤에 숨은 글

김병익의 산문집이다. 학부시절 현대비평강독이라는 수업을 통해서 처음 김병익의 글을 읽어볼 수 있었다. 김병익은 문지 4K중 일인으로 25년간 문지를 지켜온 대표적 평론가이다.
이 책은 비평을 담은 책은 아니고, 아직 절필을 하신 상태는 아니지만 나름의 자서전격으로 출간하게 된 책이다. 그래서 비평집이 아니라 산문집으로 나와 있다. 이전에 '지성과 반지성', '김병익 깊이읽기'등 두어권의 책을 읽긴 했지만 아직 김병익의 비평세계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다. 이참에 다시한번 김병익의 여러 비평책들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2005년 4월 13일 수요일

하루종일 컴퓨터하기

종일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뚜렷한 일이나 목적 없이 그저 웹서핑을 하고, 웹에 올라온 신문 기사를 읽다가
관심이 생기거나 궁금증이 생긴것들의 링크를 클릭해보며 쫓아가다가
적당히 떠오른 노래를 듣다가
적당히 웃기는 만화를 보다가
피곤해지는 눈을 몇번 감았다가
한번은 허리를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다시 모니터에 초점을 맞추고, 무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친구들 홈페이지며, 미니홈피며 둘러보다가
재미나거나 예쁜 사진등을 스크랩해온다.
그러기는 몇시간 배가 고파지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익혀 먹고,
가끔은 빵에 우유를 먹기도 하고,
오늘은 특별히 자장면을 배달시켜 먹고,
그렇게 다시 앉아 스포츠 신문이며, 축구 관련 글들을 찾아 읽다보면
어느새 어제 봤던 기사를 또 보게 되고,
어느새 아까 들었던 노래를 또 듣고 있고,
어느새 내 홈페이지에 다시 들어와 있게 된다.
인터넷은 넓고, 컴퓨터는 못할 것이 없지만, 스물 네시간이라는 하룻동안을
놀아줄 친구는 되어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져다 주고, 새로운것과 즐거운 것들을 제공해 준다고 하지만
내 얘기를 들어주지 못하고,
내게 아무런 말도 해대지 못하고,
가끔은 삐쳐보이기도 하고, 웃어보이기도 하고, 같이 밥먹어주지도 못하고,
내 가슴을 설레이게도 하지 못하는 바보일뿐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그저 그런 기계이고, 도구일 뿐이다.
친구는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2005년 4월 10일 일요일

지수 돌잔치

오늘은 예정에 없던 돌잔치에 다녀왔다.
사촌형의 딸 지수의 첫 생일이었다.
장소는 청량리 부근-
작은 어머니와 혜림 누나와 함께 두 조카들을 데리고 전철을 타고 장장 두시간을 걸려 갈 수 있었다. 타이밍 좋게 작은 아버지를 만나 함께 들어갔다. 인사를 나누자 마자 간단한 행사가 있었고 결혼식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부페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비는 주룩 주룩 내렸고, 돌아오는 길은 괜한 피로감으로 지켜있었다.
어릴적엔 참 많이 따르던 형이었는데 왠일인지 이제는 많이 멀어진 느낌이다.

2005년 4월 7일 목요일

오늘은 살짝 두통이

종일 집에만 있어서 그런가?
점심을 먹은 뒤로는 내내 약간의 두통이 있다. 약먹을 정도는 아니고 그냥 조금 찌뿌둥한 기분에다가 살짝 어지러운 정도랄까? 그정도일뿐이다.

늦은시간에 가윤이와 또 대화를 했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 자주- 그렇게 늦은 시간에
주제를 정하지 않고 대화가 가능한 친구다.

음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뭔가 알 수 없는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해메이다가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그게 가윤이란 친구와 대화를 즐기게 된 이유가 된다.

2005년 4월 5일 화요일

식목일

종일 기분좋게 놀다가 돌아왔더니
뉴스에서는 산불이 났다고 난리다.
왠 불이냐. 어째 매년 식목일날 불이 더 많이 나는지.
짐작컨데 이건 분명 성격 못된 인간의 짓이다!
에잇!

2005년 4월 4일 월요일

꿈?

꿈은 참 못쓸것이다.
원하지 않는 것도 원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아니다 아니다 하고 머리를 흔들며 잠이 들어도 짓꿎은 꿈은 끝내 보여준다.
더는 누워있을 수가 없어서 평소보다 이르게 일어나 버린 아침.
꿈은 꿈이다.

2005년 4월 2일 토요일

만우절을 그냥 보냈다!

어제가 만우절이었다!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거짓말 하나 할 수 없었다.
오늘 종일 함께 했던 분은 초면이었으므로-_-;;;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고,
저녁에 만난 의경이를 만났을땐 만우절인걸 잊고 있었다.
하하.. 이런 썰렁한 경우를 다 봤나.
그래도 오늘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