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1일 일요일

내 도메인의 가치?!

내가 애지중지 아끼면서 지켜온 pageoff.net의 도메인적 가치가 4,860,864원이란다.
실제 매매가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아쉽다!

2006년 12월 22일 금요일

「한국 문학의 사생활」/ 김화영

소설 <<아버지>>를 읽거나, 최근에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같은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슬픔에 코 끝이 간지러워지는 생리를 거부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읽기를 마친 책은 소설도 아니고, 수필이나 시도 아니다. <<순정만화>>같은 만화책도 아니다.

저자 김화영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였고, 국내 최고의 문학상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동인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활동중이신 분이다. 몇 번 그런 방송이 있다는 사실만 들어 알고 있었는데 몇 해전 김화영 선생님이 사회로 해서 여러 시인, 소설가, 비평가, 교수, 기자 등을 매주 두명식 초청하여 이야기를 나눈 "TV문학관"이 1년 전쯤 책으로 나왔다. 그 책이 오늘 소개하는 <<한국 문학의 사생활>>이다.

내 경우에 헐렁하긴 했어도 4년이라는 시간을 국문학과에서 보낸 까닭으로 적잖게 여러 문인들과 작품들을 대충으로라도 보지 않을수 없었는데 실상 졸업 후에 남은 것은 없었다. 그게 참 쑥스럽고 민망한 일이었다. 무슨 변고가 있어서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군대에 와서 뜻밖에 여러 소설들과 작가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열댓권의 책 읽기를 쉬어가면서 선택한 것이 바로 <<한국 문학의 사생활>>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제목이 끌려서 잡은 것이었고, 읽기를 막 시작할때는 그림 하나 없이 글자만 빼곡히 들어 찬 것이 여간 읽히지 않기도 했는데, 간간히 내가 아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김화영 선생님의 구수한 사회가 눈과 귀에 박히어 들어오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한국 문학의 사생활>>은 앞서도 밝혔지만 김춘수, 고은, 신경숙, 김영하, 조경란, 이문열, 김광일 등 여러 문인들과 문학과 땔래야 땔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정말 허심탄하게 당신네들의 문학적 소심함과 때론 대범함. 글쓰기 방법, 돈 벌이, 철학등을 김장김치를 버무리듯 감칠맛 나게 어우러 놓은 책이다.

TV방송을 통해 보지 못한것이 영 아쉽게 느껴지는데, 머릿말과 같이 마지막 김광일, 이문재 편을 읽기까지 사백여 페이지를 끝내는 것이 더 아쉽도록 코 끝이 쨍해졌음이다.

벼락

햇살이 벼락처럼 떨어지는 날이 있다.
아찔함에 질려버려 악-소리도 내지 못하고 황홀해지는 날이 있다.

너무나 따스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내 사랑아- 하고 목이 메여오는 그 소리를 뱉어 내지도 못하는 날이 있다.

부르르 떨려오는 심장소리에 귀가 멍멍해져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혈관의 꿈틀거림을 진동으로 느끼는 날이 있다.

그렇게-
하늘은 푸르게 열리고, 바람이 사방으로 고요해지는 날이 있다.

세상에-
숲이 부대끼는 소리와, 강물의 차갑게 깨어지는 소리, 허공의 외롭게 날개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는 날이 있다.

투명한-
망막의 그 깊은 침묵 속으로 벼락이 찢고 들어와 나를 죽이는 날이 이었다.

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원하는 페이지만 판매합니다.

인터넷이든 오프라인 서점이든 수 많은 책과 잡지들이 진열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찾거나 읽어야 하는 종류는 아주 작은 부분일 것이다. 한 권의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더라도 그 중에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불과 십여쪽에 불과할 수도 있으며, 불과 몊 쪽만이 내가 읽고 싶거나 인용하고 싶은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불과 몇 쪽을 위해 만원이라는 돈을 써야 하며, 혹여라도 두 권 이상이 되면 불필요한 과소비를 범하기 일쑤다.

이러면 어떨까?

나는 오늘 페이지마켓(가칭)에 접속한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서 왔다. 검색을 해보니 여러권의 단행본과 수십여편의 논문이 나온다. 그리고 여러권에 걸친 잡지도 나왔다.  하지만 이 모든 자료를 다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본문 검색을 통해 내가 특별히 원하는 부분을 찾았다. 검색된 쪽들을 차례로 바구니에 담았다. 결재 버튼을 눌렀다. 대략 70여쪽이 선택되었고, 쪽마다 가격이 차등적이긴 했지만 만원선에서 구매할 수 있었다. 이때 디지털 문서로 저장받기가 조금 더 저렴하고, 책의 형태로 제볻되어 배송되는 경우 약간의 비용이 추가로 붙게 되어 있다.

일종의 롱테일 비지니스가 아닐까 싶다. 음반시장에서는 종종 싱글앨범이라는 형태로 부담이 되는 완전한 앨범을 발표하기 전에 한두곡만을 엄선하여 싱글을 발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와 일면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경우는 정보의 검색과 추출에 가깝다. 독자나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만을 쪽의 단위(사실 웹에서는 쪽의 범위가 없으므로, 문단이나 글자수로 제한될 수도 있을것이다)로 완결된 책으로 판매되는 경우에서 원치 않는 내용까지를 구매하는 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 더 많은 독자와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된다.

「웹2.0 경제학」

자꾸만 웹2.0에 대한 책 소개를 하게 되서 죄송합니다. 워낙 제 관심분야이다 보니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서 읽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릴(이젠 아주 북마스터인양 소개글이 되고 있습니다) 책은 웹2.0 경제학 이라는 책입니다. 병도에 가면 웹 경제학이라는 오래된 책이 있는데 그것과는 주제면인 웹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다른 책입니다.
일단 일전에 소개해 드린 몇 권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웹2.0위에서 형성되고 있는 여러가지 현상이나 개념들을 이해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선견지명의 책입니다.

구글이라는 기업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줄로 압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우를 만든 회사라는 것은 새삼 확인할 필요도 없겠죠. 구글은 최근 몇년사이 MS의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웹서비스 기업입니다. 구글검색이라는 기술로 알려져 있는데, 2~3기가의용량을 제공하는 지메일(GMAIL), 위성사진을 제공하는 구글어스와 구글맵, 데스크탑의 자료까지 검색해주는 구글 데스크탑 등 다양한 웹 서비스를 구현하고 제공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웹2.0을 이해하고, 연구하는데 있어 구글만큼 명확하게 기술과 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상당부분 구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저희 생활관에 경제학을 공부하는 후임병이 있는데, 제가 롱테일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임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오히려 제 설명을 듣길 원했습니다. 롱테일은 이 책에서 다루는 또 하나의 개념인데, 웹2.0으로 다가와서 웹2.0으로 발전해 가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신선하지만 새로운 것이 아닌 경제학적 용어입니다.

롱테일, 즉 긴꼬리라는 의미로 핵심 사업 몇개가 아닌 나머지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아이템들이 뭉쳐져 수익을 창출해낸다는 개념입니다. 80:20 법칙을 아실겁니다. 그것에 반대되는 개념이지요. 인터넷. 그것도 한 발 더 나아간 웹2.0에서 이 롱테일의 법칙이 먹혀들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그것을 구현하고 있고, 실제로 엄청난 수익을 내며, MS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2006년 12월 8일 금요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은희경이라는 이름을 알린 건 그녀의 첫 장편 <<새의 노래>>였다. 최근에 그녀의 작품을 여러편 읽고 있긴 하지만 정작 그녀를 세상에 알린 그 작품은 아직 손에 넣지 못했다. 어차피 읽기가 무작위로 작동되는 것이었기에 무심코 집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새의 노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는 것이 새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주인공 강진희의 이율 배반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셋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잡힌 연애관을 가지고 있는 그녀로서 이혼한 남편과 가장 진실했던 사랑, 그리고 오랫동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에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친구 둘이 있어. 그녀를 포함해 셋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강진희가 일궈가는 사랑은 때론 아름답지만 일탈적이고, 불륜스럽다가도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녀는 강한듯 하지만 소심한 성격이며, 현명한 듯 하지만 가장 바보스러운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도 같다. 은희경은 무얼 말해 주려고 강진희와 같은 여자를 만들어 냈을까?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지만 아직은 선명하게 떠오르는 답이 없는것 같다.

신문에 연재가 되었던 작품으로 마디가 짧아 호흡이 비교적 짧고, 전개가 수월한 편이다. 일각에서 독자를 의식해 지나치게 왜설스럽게 쓰지 않았느냐는 호된 목소리도 있었으나 강진희라는 인물이 빠져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자 역시 적지 않았다는 후기도 눈에 띤다.

2006년 12월 5일 화요일

「상속」/ 은희경

조금 난해하다 싶으면 작품 깊숙히 빠져들지 못하는 편이다. 은희경의 글쓰기가 아주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상속」이라는 소설집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읽기가 중단되거나 생각이 단절되는 경험을 겪어야 했다. 근래에 정신없음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은희경의 작중 인물이 내게 쉽게 동화되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 은희경은 여자이지만, 작중 화자의 '나'는 시시때대로 '남자'가 되어 나타난다. 연속적이며, 낯설지 않은 풍경의 배경속에서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속에서 함께 공존하며, 때론 남자로 때론 여자로 변화무쌍하게 등장한다. 무미건조하며, 상투적인 면면들이 고스란히 들어나 보이기도 한다. 그 가운데 쉽게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냉소와 측은함이 함께 일어 오르기까지 한다.

소설집『상속』에는 '상속'과 더불어 여러편의 중단편들이 실려 있다. 중단편을 주로 다루는 김영하도 그렇지만 이런류의 소설집은 장편소설 한 두편으로 집어내기 어려운 작가적 글쓰기와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위에서 짧게 언급하기도 했지만 은희경의 건조하면서도 냉소적인 글쓰기를 읽어내기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작품마다 가지각색의 해설과 부연이 붙을 수 있겠지만 평론가가 아닌 이상 짧은 소개로 마친다. (솔직히 품평을 하기엔 읽기가 너무나 모잘랐다.)

2006년 12월 1일 금요일

「왜 아랑은」/ 김영하

아랑전설을 아는가? 조선조 임꺽정이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난을 일으키던 그 혼란스러운 시대에 저 멀리 밀양땅에서는 아랑이라는 여인이 죽임을 당하고, 새로 부임한 부사들은 하나같이 하룻만에 죽어 나간다. 의기로운 선비 하나가 자청하여 밀양으로 내려가 원혼으로 나타난 아랑의 속사정을 듣고서 다음날로 바로 범인을 잡아내고, 아랑의 시신을 찾아 후히 장을 치루어주었다는 이야기. 아랑의 말따라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범인의 상투위에 앉을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사건. 이 이야기가 아랑전설이다.

아랑전설은 민담이다. 그래서 전해지는 이야기도 제법 다양하다. 기본적인 사건 개요는 같으나 그 과정에서 축약되거나 부풀려진 것이 많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아랑전설을 가지고 김영하는 아주 색다른 실험을 시도했다. 처음 막연하게 이 책을 잡았다면 어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분명 책은 김영하의 장편소설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김영하는 아주 드러내놓고 독자에게 함께 아랑전설을 소재로한 소설쓰기를 부탁한다. 1장부터 50장까지 이어지는 글쓰기 강의를 보는듯한 구성. 이 것이 '아랑은 왜'가 여느 소설과 다른 구성이다.

김영하는 아랑전설이라는 소재를 통해 작가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엮어가는지(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어떻게 허구를 구성하는지) 독자에게 일러준다는 것으로 가장하여(포장하여) 또 하나의 소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독자까지를 소설속의 등장인물로 포섭하는 대담함을 보이고 있다. 아주 기가막힐 노릇 아닌가! 자신의 글판에 함부로 독자를 끌이다니! 역시 김영하로군! 하는 감탄사가 나왔음은 물론이다.

「웹2.0 이노베이션」/ 오가와 히로시, 고토오 야스나리

최근들어 나는 웹2.0에 대한 관심이 꽤나 높아져 있다. 얼마전부터 부대 내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호화스러움에 나는 예스24에 접속해서 최근의 책들을 검색하던 중에 오가와 히로시와 고토오 야스나리가 공동 저작한 웹2.0 이노베이션이라는 책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근래들어 웹2.0과 관련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나로써는 두번째 책을 읽은 셈이다. 특이할 점은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인데, 과거에 몇 번의 경우에 일본인의 책을 번역한 책을 가지고 프로그래밍과 HTML/인터넷 등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영어권 원서를 번역한 것보다 오역이 적을 뿐더러 문장이나 어휘의 사용이 무난한 것이 오히려 더 이해가 쉽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장점이 있었다. 그들도 영어권 원서를 번역하거나 영문 사이트를 분석해서 책을 내는 듯 한데 어째 우리보다는 항상 한 발 앞선듯 하고, 우린 두번이나 번역된 책을 다시 우리글로 번역해 놔야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하다.

웹2.0 이노베이션은 일종의 입문서와 같다. 제1장만을 읽은 후에도 웹2.0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나름 대답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능을 제공하며, 이후 장부터 웹2.0의 선구자격인 구글을 대표로 자국(일본)의 기업들을 예로 들어가며 웹2.0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어떻게 성공하고 있는지, 어떻게 발전해 갈 것인지를 조목 조목 작은 그림들로 그려주고 있다.(여기서 일본인 나름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우리나라의 그 억지스러운 두리뭉실함이 없다!!)
뭐랄까? 일본식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온듯한(솔직히 우리나라 온천도 구경 못했다)개운함을 느끼게 해주었달까?

아이러니컬하게도 웹2.0과 상반되는 폐쇄적인 인트라넷 안에서 이런 웹2.0소개를 하는 것이 우습지만 앞으로 웹2.0과 관련한 서적들이 줄기차게 나오리라는 예상과 함께 그 선발대에 있는 몇 권의 책중 단연 추천하고자 하는 책이 바로 웹2.0 이노베이션이다.

2006년 11월 29일 수요일

첫 눈 내린 날

입대 2년차. 2006년. 기상청 관측 결과로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들 눈에는 지금 흰 눈이 쌓이고 있다. 그것도 첫 눈이-

2006년 11월 27일 월요일

「다음은 싸이월드를 넘어섰을까?」/ 김철수

나라는 사람을 아는 사람들은 내가 종종 도서관 골방에서 대대 홈페이지를 들쑤시고 있는 모습을 본 일이 있을것이다. 그러고보니 대대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영자씨(운영자를 부르는 은어)가 되어 버린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보안일일결산이며, 전투일일결산, 사이버교육상황실, 온도지수와 체감온도, 위병소 관리 시스템까지 하나 둘 살덩어리들을 붙이다 보니 어느덧 버전도 (우습지만) 2.0이 되어버렸다. 2.0이라는 의미.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고, 다시 크게 변화를 가졌을 때 나름 자신있게 바꿀 수 있는 숫자였다. 조금 고친게 아니라 모양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기능도 많이 바뀌었습니다라고 자랑하면서 내 걸은 숫자인 것이다.

요즘 웹2.0이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물론 사회에서!) 들려온다. 한 달여 전에 김중태씨의 웹2.0과 관련한 책 한 권을 소개한바 있는데 이번에 읽은 김철수님의 「다음은 싸이월드를 넘어섰을까?」는 시기적으로는 웹2.0이 이만큼 주의를 끌기 직전이고, 내용도 기획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는 편이다. 쉽게 말해 약간 뒤쳐진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대충 볼만한 책은 절대 아닌것 같다. 온고지신이라고 아무리 새것이 좋고 새것이 판치는 온라인이라 할지라도 토대가 오프라인으로부였으며, 애시당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논리이다. 1~2년 전쯤의 시선으로 되돌아가 다음과 싸이월드를 둘러싼 국내 웹 경향과 기획에 대한 김철수님의 칼럼을 읽다보면 현재의 온라인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앞으로 웹2.0을 토대로 어떻게 변해갈지도 가는 눈으로 슬피 살펴 볼 수 있을법도 할 것 같다.

그리고 특히 내게는 이 책이 적잖은 도움과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장래의 내 꿈이 웹기획에 어느정도 다가가 있음이 그 때문이었다. 전산을 공부하고, 국문학을 전공한 내게 기획이라는 분야는 달콤한 사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워낙에 무지하고, 빈약한 지식머리 때문에 희망을 품기엔 한 숨이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참에 이 책을 접하면서 조금은 방향제시를 해 볼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웹 기획에 관심있는 사람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봄을 추천해 본다.

ps/ 책을 빌려주신 본부포대 차은상 병장님께 감사드립니다.

2006년 11월 19일 일요일

「마이너리그」/ 은희경

386세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60년을 전후로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광주를 보고, 반공을 배우고, 민주화를 외친 사람들. 그리고 90년대의 노동운동을 지나 밀레니엄의 신세대에게 밀려나 이 시대의 주역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작가 은희경도 그 틈에서 자라나 그들과 호흡하고 그렇게 살아온 삶을 가진 사람이어서였을까?
공지영이 그랬듯, 은희경 역시도 자신의 삶 속에 덕지덕지 붙은 역사들을 애써 떨구지 못하고 모질게 글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든다.
「마이너리그」는 남성화된 화자가 세 명의 친구들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마흔을 넘은 삶의 굴곡까지 함께 이어온 역사를 유희적이면서도 쉽게 웃어 넘길수 없는 일침을 놓는 소설이다. 그들은 80년대를 거쳐 90년대를 살면서, 반공이나 찌라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매를 맞거나 정학을 당해야 했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넥타이 부대에 휩쓸리면서도 그저 시원한 맥주집을 찾아 종로로 함께 걸음을 제촉하는 4인방이었을 뿐이었다. 대통령이 바뀌고, 시대가 변하는 사이에서도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첫사랑과 브라질 관광이었다.
성격이 아주 다른 네 명의 어쩔 수 없는 엮임 속에서 시대가 가져야 했던 아픔도 그저 남의 얘기처럼, 하지만 그런 그림자 놀이에 더욱 가슴 저리고, 아파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의 역사속에서 그들은 단 한번도 메이져로 살아갈 수 없었다. 「마이너리그」는 그런 마이너리그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06년 11월 17일 금요일

십일월 즈음하여

차라리 겨울이겠거니 싶은 십이월이나 일월은 절기상으로 원망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겨울의 끝이겠거니 해서 이월이나 삼월은 아쉽지만 다가올 봄으로 인내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다가오는 겨울을 머물거림 없이 마중나서야 하는 십일월이 되면 어쩐지 불안하기도 하고 더욱 서글퍼지는 생각에 사무치기 일쑤다. 그건 군대에 있던 밖에 있던 매한가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요 며칠 아침밥을 먹으러 가는 식당길이 새하얗게 젖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진즉 가을이 가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떨어지는 가을 낙엽 부서지기 무섭게 찾아드는 추위는 애써 태연한척 하기만은 만만치 않아뵌다.

그렇게 계절이 겹치듯 부대끼며 변해갈때 이런저런 일도 많았던것 같다. 근래들어 부쩍 전역자도 많았고, 새 얼굴도 많아졌다. 그만큼 어수선하기도 하고 들떠 있기도 하고 복잡수선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나날이었다. 생활의 작은 변화에 호들갑 떨듯 소란스러움도 있었고, 아주 난리라도 난듯 열을 올린 날들도 있었다. 큰 일을 두고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무심하기도 했고, 어쨌거나 귀찮다는 논리로 못 들은 척 하기도 했던 시간들. 그저 군대라는 곳이 속앓이를 들끓게 하고 내내 소심한 마음들을 키우게 하는 것 같아서 아쉽지만 좁아져가는 계절의 온기속에 맞대 잡은 손 모양으로 생각과 가슴을 키우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국기하강식

동계가 되면서 태극기를 내리는 시각이 18시에서 17시로 앞당겨졌다. 얼마간은 이 바뀜이 어색해서 두어차례 때를 놓쳐 알파 근무자들을 추위에 마냥 떨게 했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제때, 또는 조금 일찍 틀어주는 일을 몇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그저 시간이 되면 근무자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제 내려요."라고 무덤덤하게 던져 놓고는 정훈실로 쪼로록 들어간다. 끈이 떨어져 그저 알맹이만 들고 다니는 손목시계를 꺼네놓고 초를 살피다가 59분이 막 넘어서면 앰프를 작동시킨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손은 타이밍을 기다리듯 마우스를 살짝 움켜 잡는다. 56초, 57초, 58초. 딸깍! 빰-빠-빠- 막사 뒤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국기 하강식 음악. 하루중 가장 듣기 좋은 방송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좀 재미난 상황이 생겼다. 오랜만에 간부들이 모여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17시가 다 되어가도록 경기는 끝나지 않고 한참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이를 어쩌나? 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들던 참에 당직사령에게 달려가 한마디로 물었으나 곰곰 생각하던 사령은 원칙대로 틀어도 좋다고 답변해 주었다.

전에도 그저 틀어보았으니 오늘도 무례는 아니겠지 싶었다. 때를 기다려 근무자를 확인하고 정훈실로 돌아와 59분 58초 되는 타이밍에 딸깍거렸고, 방송은 으리으리하게 울려퍼졌다. 어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둥실 띄우고 현관문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전까지도 무아지경으로 뛰던 간부님이며 전우들이 모두 제자리에 곤두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삼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만약 A매치 경기가 열리는중에 애국가가 울려퍼진다면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이 공을 몰고 우리 골대를 향해 달려오더라도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올릴 수 있을까? 그러다가 골을 먹더라도 국민들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애국가라고 칭찬해 줄 수 있을까?

오랜전에 극장에서까지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말이 떠오르며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2006년 11월 16일 목요일

「호출」/ 김영하

모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을 하고 있는 후배를 지난 휴가때 만난일이 있었다. 후배는 취재차 어딘가를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나를 반가워하자마자 왠 설문지 한 장을 건냈다. 설문지는 서너개의 질문이 있었는데 쉽고 간단한 것들이었다. 아마도 짧은 토막 기사를 쓰기 위해서 인것 같았다. 질문중 하나가 최근 감상깊게 본 책은 무엇인가였는데 잠시 고심하다가 쓴 것이 김영하의 「당신의 나무」였다. 최근에 읽은 것은 아니었으나 최근에 읽은 것중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주 단편적이고, 애로시즘이 가득찬! 공허감이 팽팽하다 못해허탈하게까지 만드는 그의 독특한 글쓰기 전략!은 다시 「호출」이라는 소설집을 읽게 만들었다.
<사이에 「랄랄라 하우스」를 읽었지만 「랄랄라 하우스」는 김영하 특유의 글쓰기 전략이 묻어나 있는 책은 아니고 김영하 작가 자신의 생활수기를 재미나게 블로그 형식으로 이끈 책이었다.>

「호출」은 「당신의 나무」와 같이 여러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다. 80, 90년대를 오가는 배경과 사랑과 배신 죽음에 대한 모티브가 강하게 깔려있는 것이 「호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섹슈얼리즘이나 애로시즘등에 집착함을 떠나 독자로 하여금 허탈하고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그만의 독특한 전략은 신세대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감히 분석되기 힘든 부분인것도 같다. 파괴적이고, 분해적인 그래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해체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이토록 강렬하게 분출하는 작가는 보기 드믈지 않나 싶다.

2006년 11월 11일 토요일

「축제」/ 이청준

-고아가 된 기분이랄까?
어머니의 상을 끝내고, 장혜림(작중 준섭을 취재하던 기자)이 기분이 어떻느냐고 물었을 때 준섭(작가의 작중 이름)의 대답이었다.
준섭은 어머니를 증인이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고 오늘까지 살아오는사이 가장 오랫동안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 말이다. 그 증인을 잃음으로써 나는 고아가 되어 버린다. 누구도 나를 가장 완벽하게 증명해 줄 수 없는...

아버지의 그리움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게도 이미 10년도 더 되어버린 일이 된 그 날의 장례가 떠올라여서였는지 마지막어머니(작중)의 관 위에 흙이 떨어질 때 내 목이 매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눈 앞에 10년전 아버지의 큼지막한관이 눈 앞에 와 닿았기 때문에...

이청준의 축제는 소설속에서도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임권택 감독의 요청에 의해 처음 시나리오와 대본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을새삼 소설로 도로 펼쳐낸 것이었다. 사실 그래서 기왕에 읽어가기 시작한 축제라는 소설을 영화와 함께 보고 싶은 생각도들었으나(오래전부터 마음 먹었으나 실천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군대에 있는 몸인지라 개인적으로 비디오를 대여할 길이 막연하여소설만으로 우선은 만족하게 되었다.

이청준의 글은 최근에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뒷모습」를 읽고, 거꾸로 「청춘」을 읽게 된 것인데 앞편의 책을 통해서 축제 저작에 대한 여러 단서들이 들어나 있어 축제를 읽음에 있어 한결 수월함이 있을 수 있었다.

앞서의 감정을 밝혔듯이 축제는 실제 저자의 어머니의 삶과 말년의 치매증 그리고 죽음과 장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그 사이 소설적인 허구가 조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접함에 있어 조심해 줄 것은 이청준이 임감독의 부탁에 못 이겨어머니를 소재로 한 마지막 작품인 이 '축제'를 쓰긴 했지만 결코 자신의 효심을 자랑코자 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작중 저자 준섭의 눈과 가슴을 통해서 내 아버지를 새삼 그리워하며 마음을 적실수 있었듯, 이 소설을 접하는 사람 누구라도 자식된반성과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새삼 일깨우기를 바랄 것이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기왕에 읽어버린 소설이라면 나름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장례 절차라든가 풍경은 여느 장례를 설명하고 있는 책보담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10년전 내나이 고작 열여섯이었을 때. 내 눈은 며칠째 울어버린 까닭으로 퉁퉁 부어 있었고, 숟가락을 입에 대지 못한것이이삼일째였는데 동네 친척네들 주민들은 다 모여서 어찌나 왁자지껄 노래하며 웃고, 떠드는지 속 없는 어린 가슴이 더 미어져 내렸던경험이 있었다. 이제와서 그것이 다 가는이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준섭마냥 반 고아가 된듯한 그날의 열여섯 나는 여지껏 쓸쓸함을 못 버리고 있는것도 같다.

2006년 11월 3일 금요일

「집단지성」/ 피에르 레비

군대에 와서 꼭 읽어야겠다라고 다집하며 목록표까지 작성했었다. 대략 스무권 남짓의 책이었는데 작심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 세권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 두 권은 절반쯤 읽다가 잠시 덮어둔지 1년째고, 남은 한 권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지 덕분에 끝을 보긴 했다. 하지만 머리속을 텅 비우고도 다 채우지 못할 만큼 가득한 철학적인 메세지와 전문적인 지식들. 감히 읽으려 했던 내 자신이 벌거숭이처럼 부끄러워졌다.

피에르 레비의 「집단지성」은 감히 그랬다. 번역상의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이 열정적인 프랑스 학자의 논지를 내 머리로는 도저히 관통하기가 어려웠다. 막연히 그려볼 뿐. 텁텁한 아쉬움만 잔득 남아 버렸다. 그래서 감상보다는 왜 읽으려 했는지를 대신 적기로 한다.

우리는 인터넷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감히 "문화"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인터넷은 생활이 되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고, 열매만을 따 먹으려고 하고 있다. 마치 개미떼 처럼. 새로난 과일에만 잔득 모여드는 모습들이 너무 쉽게 발견되고 있다. (지금은 미니홈피라는 열매에 온 국민이 달라 붙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터넷을 구성하는 네트워크 즉 시스템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집 바닥에 배수로나 난방시설이 어떻게 생겼는지 꼭 알아야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절로 난 열매에 목매이는 일은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마당이 있다면, 채소나 과일나무를 심어도 보고, 물을 주고, 해충도 제거하면서 때를 기다려 수확해보는 그 즐거움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집단지성」은 인터넷의 본질적인 모습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집단지성'은 곶이곧대로 풀이하자면 공동체적인 지식(정보) 샹산정도가 될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는 가장 크고 중요한 재화가 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인터넷은 소수에 의해 지식이 생산되고 정보고 공유되어 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음이나 네이버, 싸이월드등 국내의 대형 포털 서비스가 부리는 횡포는 이미 명백한 유죄임이 드러나 있다. 네이버에서 제공하고 있는 지식인 서비스는 공동체에 의한 지식 생산아니냐는 질문을 내던질 수 있겠지만 타사 검색사이에서 절대로 네이버 지식인 정보를 검색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더라도 네이버가 얼마나 독점적으로 지식정보를 소유하고 상업적으로 팔아 먹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즉, 아무것도 모르는 대다수의 사용자들만 일개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집단지성」은 다음처럼 닫혀있지 않으며, 네이버처럼 공유를 막지도 않아야 한다. 함게 만들어낸 정보는 함게 공유가 되어야 하며, 그 가치는 모두에게 큰 것이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것이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브레테니커 백과사전'과 견주어 그 가치를 무시할 수 없을만큼 훌륭한 인터넷 백과사전으로 '위키위키'라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구축되었다. '위키위키'는 공동체가 함께 웹문서를 생산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으로 작성과 수정 삭제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위키피디아'는 지근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며, 업그래이드 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렇게. '수원화성'을 검색해보니 최초에 조선시대에 지어진 과학적인 성곽. 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너무 성의 없는 내용에 내가 수정버튼을 눌러 '조선조 정조때 지어진 마지막 성곽으로 정양용등 여러 실학자들에 의해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라고 고쳤다. 그리고 또 다른 사용자가 사진을 첨부했고, 어떤 이는 수원화성을 찾아가는 지도를 넣었다. 어떤 이는 동영상을 넣기도 하고, 어떤이는 수원 화성 부근의 맛집을 추가로 설명해 놓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수원화성'은 정보의 양을 확대해가며, 정확성을 높여간다. 이 작업은 아주 짧은 실시간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며 누구 한 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의 소유가 되고, 모두가 함게 공유할 수 있게 된다.

피에르 레비의「집단지성」은 이 같은 인터넷의 미래가 공동체에 의한 창조와 공유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깊은 철학적 사유를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나중 조금더 내 머리가 깊어지면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봉순이 언니」/ 공지영

재학중이던 때, 그 때도 나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학과 홈페이지였는데 국문학과였으므로 좋은 책을 추천하는 메뉴도 있었다. 처음 그 콘텐츠를 채우기 시작할 때 마침 MBC-TV에서 느낌표라는 프로에서 '책을 읽읍시다'라는 기획 프로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 프로에서 추천하는 책을 두려움 없이 학과 홈페이지에 반복해서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가끔 직접 읽거나 개인적인 추천 도서를 싫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건 학과 학생들 다수가 느낌표 선정도서에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부정적인 관점으로 오히러 선정된 도서를 기피하는 현상이 일었었다. 의아했다. 책과 가장 밀접한 국문과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선정도서를 마다하다니!
하지만 이것은 비단 학생들만의 현상은 아니었고, 일부 교수님들이나 (다른 학교를 포함해서) 지식인들도 느낌표 선정 도서에 부정적인 시각을 적잖게 보이고 있었다. 왜 였을까?

이등병이었을 때. 지금은 전역하고 없는 당번병이었던 지승환 병장이 내 자리를 찾아와 한참동안 캐 물었던 질문이 있다. 책을 고를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느냐?나는 것이었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도 아니고,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도 아니었다. 어떤 기준으로 고르느냐는 질문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하였으므로 나름 일반인들과 다른 기준이나 분류법이 있지 않겠느냐는 물음표였던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뚜렷한 선택 기준이라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감성적으로 와 닿는 책을 고른다면 고를까. 마땅히 알려 드릴만한 기준은 없었다. 그러다 1년쯤 지나서 대학시절보다 더 많이 독서를 하게되면서(자율적인 독서를 말한 것이다. 과제나 논문 때문에 읽었던 것을 포함하면 대학때가 더 많았지만) 나도 모르게 책을 분류하기 시작했고, 선택함에 있어서 몇가지 패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은 작가중심의 읽기가 시작되었다. 으레 국문학도들이나 다독자들이 이같은 모습을 보이는데 나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따라한 것 같긴 하다. 최근에 내가 공지영이나 김영하의 작품을 줄이어 찾아 읽는 것이 그것이다.
한 작가의 생애를 따라(또는 거슬러) 작품을 읽는 것은 과장하여 작가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것과 같다. 작가가 살았던(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시대와 경험들, 만남들, 아픔과 사랑, 슬픔과 기쁨들.. 수 많은 사유들. 그것들이 작가의 연대기적 순서와 맞물려 나와 합일되어 가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면 이 작업을 멈출 수 없게 된다.
두번째가 자유연상에 의한 읽기다. 마땅한 표현이 없어 '자유연상'이라고 썼는데, 자유연상은 말 그래도 생각이 아무렇게나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나간다는 의미다.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연상되는 다른 책을 곧 이어 읽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전공 책 읽기에서 버릇이 되어 버렸다. 끝말 잇기를 하듯, 주석을 찾아 읽듯 말이다. 이런 읽기는 내용에 대한 깊이를 더욱 세밀하게 하는 좋은 점이 있는 것 같다.

「봉순이 언니」의 감상평을 쓸려고 했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지 않나 싶다. 「봉순이 언니」가 대표적인 느낌표 선정도서였기 때문이었다.  나도 당시의 분위기에 휩슬려 당당히 느낌표 선정도서에 선정이 되어 대형서점 진열대를 가득 채웠던 「봉순이 언니」를 의식적으로 거부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내 안에서 정립되어 가는 작가중심이 책읽기를 통해 「봉순이 언니」를 꺼네 읽게 된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지금에 생각해보니 이런 것이었다. 대학시절 일부 사람들이 느낌표 선정도서를 사양했던 까락은 책을 선정하는데 있어 기준이라는 것은 책을 고르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영향력 있는 매체가 쉽사리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느낌표는 엄청난 효과를 거두며 일부 선정도서를 베스트셀러로 올리는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반면에 다른 책들은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 읽힐 기회조차 동등하게 갖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을 우려했던 것이었다.

말미에「봉순이 언니」를 읽은 감상을 짧게 적자면, 「봉순이 언니」는 느낌표에서 선정할 만큼 좋은 작품성을 띄고 있었다. 공지영 소설 대게가 그렇듯 자신의 삶을 드러내며 때로는 환상성을 제공하며, 때로는 사실주의에 열중하며 염증나는 세상과 희망적인 감수성을 동시에 자아내고 있다. 자신의 생애 첫사람이었으면서 가장 불행했던 봉순이 언니를 제3자의 관점에서, 그러면서도 '나'라는 1인칭 시점으로 다섯살 답지 않은 조숙함으로, 즉 내면에 있는 '나'는 30년이 지난 '나'인 동시에 시간은 60년대의 서울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공지영 특유의 희망적인 메세지라고 해야할까? 인간에 대한 희망은 여전히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데뷔작 동트는 새벽에서부터 최근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중간에 걸쳐 있는 봉순이 언니에서도 공지영은 나이를 들어가며 포기하는 것도 많지만 여전히 희망이라는 끈을 내려놓지 않고 있어 보인다.

2006년 11월 2일 목요일

사격하기

일년만인가? 일년하고도 반년만인가? 얼마나 지났는지 날짜도 모르겠다.
년말만 되면 남은 탄을 소비하기 위해서 대규모 사격(?)이 실시된다. 덕분에 오늘 하루 무려 90발을 쏴대고 왔다.
훈련소 이후 처음으로 찾은 실거리 사격장, 100미터, 200미터, 250미터마다 표적이 자동으로 올라왔다가 "때"가 되면 죽어주는 센스의 사격장.
아주 오랜만의 사격이었지만 큰 부담이나 긴장은 없었다. 추운지 더운지 짜증스러움이 조금 일어날 뿐이었고,
어서 끝내고 돌아가자라는 생각만 가득 들었다.

훈련소에서
사격은 즉석복권과 같은 것이었다. 1등만 하면 집에 전화를 걸게 해주고, 포상휴가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영점도 맞추지 못했고, 영내 축소사격장에서 10발(20발중)도 맞추지 못했던 것에 내 목표는 내심 커트라인만 넘기자였다.(12발) 다행인지 운인지 비로 인해 한번의 연기 끝에 다시 찾은 실거리 사격장에서 나는 16발을 맞출수 있었다. 나로써는 너무나 잘 쏜 것이었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1등을 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몰려왔고, 집에 전화를 어머니께 전화를 걸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무너져 내려 눈물이 났다.

오늘은 그런 운이나 즐거움은 애시당초 없을 것이었다. 포상은 있었지만 이미 '특등 사수'들이 즐비한 엔트리였다.
나는 아마도 아니 분명 10등으로 턱걸이를 해버린 탓에 오후까지 남아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오전 30발, 오후 연습 30발, 다시 측정 30발. 모두 90발의 탄 소리가 양 귀를 두들겨 댔다.
아직 결과는 모른다. 다만 포대 1등은 안경이 없어서 힘들겠다던 준호가 되었다. 포상은 확실하겠지.
동시에 '아마도 1등'을 자랑하던 임상병님의 아쉬운 얼굴이 스친다.
왠지 운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천진한 미소를 보이던 황일병도, 근무취침도 못하고 이게 왠 고생이냐며 계속 투덜되던 김상병님도. 모두 아쉬워 할 거다. 내심 1등을 바랬을 테니까.

나 역시. 아주 멋진 운이 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PRI 덕분에 온 몸이 아주 뻐근해졌다. 종일 밖에서 바람을 맞고, 바닥을 굴렀더니 먼지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탄내까지. 나는 몇 등이나 했을까?

역시나 겨우 10등을 했을까? 어쩜 측정 사격 40명 중 40등?

2006년 10월 31일 화요일

자동완성기능에 사전기능이 더해지면

AJAX 덕분으로 네이버 등 주류 검색엔진에 검색어 자동완성기능이 보편화 되었다. 또한, 한글(워드프로세서)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맞춤법을 자동으로 체크해주는 빨간줄 기능도 있다. 이 두 기능은 각각의 영역에서 확실히 사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이다. 하지만 검색되는 단어의 맞춤법을 체크해주거나 작성하려는 단어를 자동으로 완성시켜주는 기능은 서로 협조되지 않고 있다. 왠지 아쉽지 않은가!! 하지만 한글과 같은 워드프로세서에 자동완성기능을 지원해버리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단어는 이것이 아닌데 시스템이 자꾸 특정 단어를 출력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사용자가 선택하면서 작성될 수 있겠지만 세심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이 기능이 여간 귀찮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쓰기"기능이 무거워져서 전체적인 작성 속도를 저하시킬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이런 기능은 어떻까?

현재 수준의 워드프로세서가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 기능은 사실 완벽하다 할 수 없고, 한글의 문법은 워낙 예외조항이 많아 100%의 만족도를 이끌어내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럴때 가장 확실한 것은 사전을 확인하는 방법인데, 그렇다고 한컴사전등을 함께 펼쳐놓고 일일이 찾아보며 문석 작성을 하기도 영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맞춤법 사전 검색 기능이라고 명명해놓고, 문석 작성 중 아리송한 단어에 걸려들었을 경우 단축키를 누르면 커서 바로 옆에 입력한 단어의 첫자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출력되서 선택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자동완성기능을 응용해서 사전에서 옳은 단어를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은 이미 있다. 적용만이 남은 이 기능은 언제 나올까!

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랄랄라 하우스」/ 김영하

두 가지 측면에서 김영하는 다분히 '신세대'적이며, 최신의 문화적 충격을 문학적으로 던져주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된다. 그동안은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서 그러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랄랄라 하우스」를 통해서 보여주는 김영하의 신세대다움은 기존의 한국 문학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친근하게 그의 '랄랄라 하우스'를 엿 볼 수 있다. 왜일까?

최근 인터넷(기술적인 면에서)의 가장 큰 화두는 단연 미니홈피다. 열풍이 다소 식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나 아직은 비주류가 주류인 미니홈피를 위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리라 본다. 김영하의 「랄랄라 하우스」는 이런 분위기에 파생되어 나온 미니홈피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인은 미니홈피보다는 블로그 책이라고 보고 있으나 책의 디자인이나 형식이 미니홈피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올렸던 감상평이 김중태와 조엘의 블로그에서 발췌된 글 모음(책)이었는데 「랄랄라 하우스」역시 김영하의 개인 홈피에 담겨진 여러편의 짦은 글들과 사진, 음악 목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위의 것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탕이 되는 시스템이 블로그가 아니라 미니홈피라는 점(아마도 국내에서는 블로그와 미니홈피의 차이점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이지 않은 까닭으로 보인다. 엄연히 다름에도 말이다!)과 김중태와 조엘이 각 각 컴퓨터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인데 반해 김영하는 책으로 밥 빌어먹는 전형적인 글장인 것이다.

이와 같은 외형적인 특징으로도 드러나지만 사실 「랄랄라 하우스」는 작가 김영하가 얼마나 독자들과 소통을 원하고, 소통을 진행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것 같다. 이미 몇몇 단편작에서 독자들과의 소통을 은밀하게 고백했던 그였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소통을 원해왔음을 알 수 있었는데(독자의 편지를 통해 쓴 소설도 있고, 서점등에서 독자를 모아놓고 작가가 낭독회를 해보자고 주장하기도 하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자기만의 미니홈피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생활의 단편들을 짧은 글들로 옮겨놓고, 독자들의 답글을 기다린다. 답글에 다시 작가인 김영하의 생각과 답변이 달리고, 그렇게 작가 김영하와 독자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일궈낸다.

일부 작가들이 이러한 홈페이지 또는 홈피를 이용하여 독자와 소통하는 것을 모르는것은 아니나 김영하의 경우 책 자체를 통해 소통하던 것에서 더욱 확장되어 활발하게 웹을 통한 소통을 이루어내고, 다시 오프라인의 책으로 증명해 보이는 작업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영하의 작품 답게 감각적이고 즐겁게 읽히는 이 책은, 정말 하나의 홈피를 보듯 즐길 수 있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김영하의 홈피와 1촌이 된듯한 착각까지 드는 것은 어쩌면 작가 김영하의 노림수였을지도 모르겠다.

2006년 10월 29일 일요일

블로그가 뭐냐?

얼마전에 개인 홈페이지를 블로그로 교체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설치형 블로그인 태터툴즈이다.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보이기는 하지만 얼마전만 해도 누리꾼들에게 블로그와 미니홈피는 비교분석의 대상이자 싸움터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때문인지 아직도 블로그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것 같다.
부대 내에서 자신만의 블로그를 가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얼마전 생긴 PC방으로 통해서 자신의 미니홈피를 관리하거나 새로 블로그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때문에 짧게나마 블로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흔히 블로그를 설명하면서 어원을 따지고 시작한다. 어원을 알고 들어가면 용어 자체를 이해하기는 싶지만 흔히 헷갈려 하는 미니홈피와의 차이점은 발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다짜고짜 결론부터 말하고자 한다. 블로그는 븐먕 미니홈피와 아주 다르다.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말이다.

첫째, 블로그는 일지다. 블로그는 용어에서 드러나듯, 웹Web에서 작성되는 로그Log다. 로그는 우리식대로 표현하면 기록이다. 기록은 쓰기이며, 인터넷에는 이미 게시판에 글쓰기, 이메일 보내기, 채팅창에서 대화하기 등 다양한 방법의 글쓰기가 제공되고 있다. 블로그는 이전과 비슷하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글쓰기를 시도하게 만들었으며, 앞으로의 인터넷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가장 흔히 사용하는 게시판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게시판의 경우는 수십 수백, 수만 개의 글을 페이지 단위로 끊어서 제목부터 보여주고, 제목을 선택했을 경우 새로운 화면에서 내용을 출력해 준다. (주:방명록의 경우 본문이 함게 보이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방명록이 내용이 길지 않음을 전제하고 축소된 게시판의 형태이다.) 우리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웹에서 사용자의 클릭 한번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거나 발생시키곤 한다. (주:깊이 들어가면 글이 지나치게 장황해지므로 생략. 추후에 새로 포스팅을 해보겠다.) 그리고 더욱 큰 차이점은 게시판은 파일시스템(주:게시물이 저장장치에 파일로 저장되는 것)이거나 데이터베이스(주:엑셀과 같이 정렬 가능한 커다란 테이블을 생각하시라!)에 저장되어 사용자에게 출력되는데, 이 때 하나의 게시물은 게시판을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이를테면 제로보드와 같은 게시판 그 자체!)에 종속되게 된다. 즉, 게시판 자체가 없다면 게시물은 아무도 볼 수 없거나 영영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문제점 하나는 게시판의 오류나 변경으로 인해 게시물의 주소가 변경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게시판을 링크한 것들 중에 대부분이 깨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라고 출력되는 상황을 누구나 겪어 봤을 것이다!) 반면, 블로그는 게시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한 편(한 마디가 좀 더 맞는 표현)의 글(포스트가 블로그에 맞는 용어)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시스템은 각각의 글을 하나의 공간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순서(기본적으로 일지이므로)대로 뿌려주는 기능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글이 독립적이라는 의미는 시스템에 의존적이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시스템이 아니어도 읽기가 가능해지다는 특징이 있다. 쉽게 말해 부대 홈페이지의 게시물은 우리 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A의 블로그에 있는 포스트는 B의 블로그에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설령 A와 B가 서로 다른 블로그 시스템을 사용한다고 해도 말이다! 심지어는 블로그가 없어도 포스트를 읽을 방도가 있는데 RSS라고 불리는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해준다. RSS 특정 블로그의 포스트를 자동으로 긁어와 내 블로그나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블로그를 하나의 신문으로 보고, 각각의 글은 기사로 보고, 나는 그 신문을 구독(RSS)하여 원하는 기사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일반적인 형태의 게시판에서는 보기 어렵다. 또한, 미니홈피에서도 제공되지 않는 기능이다.

둘째, 블로그는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시작한다.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블로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걸프전 당시 한명의 누리꾼이 자신의 블로그에 현지에서 실감나게 포스팅을 시작했었기 때문이다. 그의 포스트는 여느 TV/신문보다 빨랐고, 정확했으며 솔직했다. 그만큼 인터넷 안에서의 방향을 컸고, 순식간에 블로그라는 일개 시스템이 매체Media로 부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렇게 생긴 말이 '블로그는 개인 미디어이다'라는 말이었다. 미니홈피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HTML등을 몰라도 자기만의 홈페이지를 쉽게 가질 수 있다는 장점과 1촌맺기라는 '한국적인' 정서(주:필자는 다모임, 아이러브스쿨에 이어 싸이월드의 1촌맺기는 정으로 얽힌 인간관계중신의 한국문화를 적절히 이용한 서비스로 보고 있다.)를 철학으로 심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스킨과 음악 콘텐츠 등을 제공하여 똑같지 않은 자기만의 홈피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껍데기의 다름 아니다. 그 안에 담겨지는 콘텐츠의 내용은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되고 있는데, 사진과 방명록 중심의 홈피 구성이 그것이다. 이는 홈피 자체가 디자인적으로 가지는 한계이자 사업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대다수의 개인 사용자들이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갖기를 원하지만, 제작 기술은 없고, 이쁘기를 바라며, 누군가 찾아와 주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무엇인가를 채워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적거나 없기를 바란다. 미니홈피는 이에 딱 어울리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HTML을 몰라도 가입만 하면 떡하니 홈피를 떼어 주고, 도토리(돈)만 구입하면 얼마든지 차별화된 자신만의 스킨으로 무장할 수 있다. 기본적인 메뉴가 같으므로, 메뉴 구성에 애를 먹지 않아도 되며, 사진만 올려두고, 1촌만 열심히 맺으면 방문자는 얼마든지 늘게 되고, 자연히 방명록은 쌓여 간다. 이에 사용자는 만족감을 높이고, 다시 미니홈피에 투자하고, 싸이월드에 충실한 팬이 되어 간다. 이렇게 생겨난 수많은 미니홈피는 사진앨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반면 블로그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태생이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지식이나 취미 등이 하나의 주제가 되어 공통된 포스트(텍스트, 이미지, 영상, 소리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를 기록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블로그가 이러한 것은 아니며, 대다수가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시스템적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한채 동일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블로그가 미니홈피에 비해 목적 의식이 좀 더 뚜렷함은 분명 강조할 수 있는 대목이지 않나 싶다.

셋째, 블로그는 웹2.0을 준비하고 있다. 웹2.0은 현재의 웹보다 더 나은 웹을 뜻하는 경제학적 용어이다. 오라일리라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말로, 시멘틱웹(의미있는 웹)과 혼용되고 있다. 아무래도 시멘틱웹보다는 1.0, 2.0이라는 숫자로 표기되는 웹2.0이 일반인들에게 감각적으로 흡수되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웹2.0은 현재보다 더 나은 웹 환경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블로그를 사용한다는 의미는 웹2.0에 한 발 다가간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블로그는 RSS와 Trackback을 지원한다. RSS는 위에서 간단하게 설명했고, Trackback은 일종의 업그래이드된 리플과 같다. 게시판에 답변을 다는 것을 리플 또는 댓글이라고 하는데 트랙백은 우리말로 쓰자면 '먼댓글'정도가 된다. 멀리 떨어져 있는(인터넷에서는 사실 가깝고 멀고의 거리의 양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블로그에 아주 멋진 글이 있다. 왠지 공감이 가는 듯 하여 댓글을 달고 싶다. 간단히 댓글만 달아도 되겠지만, 내 의견도 한편의 글이 될만큼 길며 좋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도 올려두고 싶다. 이럴때 쓰는 기술이다. 트랙백을 통해서 내 블로그의 포스트가 저 멀리 떨어진 남의 블로그의 포스트의 댓글이 되기도 하고, 내 블로그의 하나의 포스트가 되기도 하고, 서로 물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논문을 쓰면서 다른 논문을 참조하여 쓴 내 논문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먼댓글! 멋지지 않은가! 이런 RSS와 Trackback 기술은 우선 미니홈피에는 없다. 이 점이 미니홈피가 블로그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되며, 의미있는 웹의 구현을 위해 발진하는 웹2.0에도 부합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블로그는 애초에 이 기능을 구현하였으며, 우리들로 하여금 차츰 웹2.0의 세계로 젖어들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 고마운 것!

너무 길다. 짧게 쓰려고 애 썼음에도 세가지의 이유만을 들었음에도 이만큼 길어져 버렸다. 사실 이 글만으로는 논라의 소지도 많고 의문점도 많다. 고칠 부분도 더러 보이고, 내 머리속에 기어다니는 생각과 달리 쓰여진 문장도 띄엄띄엄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한번 정리하도록 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네가지 만남 중에

10월 마지막 주일(토요일을 흔히 주말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서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는 사람은 드믈다. 하지만 나는 어색하지 않게 주일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며칠전 내린 비 덕분으로 제법 가을다운 추위가 느껴지는 날이었다. 가뭄 때문인지 단풍이 곱게 들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모처럼 맑게 갠 하늘과 쓸쓸한 바람은 가슴을 차갑게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9월 내내 여단과 대대에서 음악회가 열렸고, 그보다 일찍 봄과 여름에는 몇차례 외지인들의 위문공연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위문공연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으면서도 꽤 오랜만에 찾아온 듯한 반가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보직이 보직인지라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조금 일찍 교회문을 열어 젖히고 자리를 잡았다. 이젠 너무나 구식이 되어버린 8mm 캠코더가 여전히 작동중인지 체크를 하고, 카메라의 벳터리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전원을 켰다가 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알파, 브라보, 찰리, 본부의 130여명의 인원들이 가득 들어차니 창 밖의 어둠이 서서히 덥혀져 옴이 느껴졌다. 음악이 시작되고, 찬양팀의 호흡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깰양은 아니고 나는 그다지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고백을 한다. "보직이 보직인지라" 그저 캠코더와 카메라를 들고 대상을 촬영할 뿐. 흥겨운 찬양가와 구구절절 옳은 목사님의 말씀에도 싶사리 감동받거나 동화되지 못하는 쓸쓸한 인간중 한명이다. 특히 아무리 좋은 설교말씀으로도 결국은 "하나님"으로 귀결되는 논리에는 질려버린지 오래다. 딴지는 아니고, 그 좋은 말씀을 스님이 하셨다면 "부처님"을 따르도록 할 테고, 이슬람이였다면 "알라"에게 고개를 숙이도록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의 논지가 "어떤 신을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니 여기까지로 말씨름을 멈추자. 그래 다소 늦은감은 있었지만 제법 가을 같았던 10월의 마지막 주일 밤. 서울의 반짝이는 어떤 동네에서 제법 선량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전방의 외딴 외로운 군중들을 위해 찾아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웠으며, 말씀은 가슴을 뜨겁게 울리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어떤 이는 목이 메어져 오지 않았을까 하는 푸근한 심상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와중에 나 역시 한가지 사라지지 않고 되뇌어 지는 말이 있어 적는다.
인간은 질그릇같아서, 더러워지기 싶고, 깨지기 싶다. 인간에게는 네가지의 만남이 있고, 제1의 만남은 부모이며, 제2의 만남은 친구, 제3의 만남은 스승, 제4의 만남은 반려자일 것이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진리로 바꾸는 힘이 목사에게 있다면, 이날 밤 이 한 분의 목사님은 기독교에 꽤나 부정적인 내게도 설득력 있는 진리를 새겨주신 샘이다.
나는 강렬하지는 않으나 살아가며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 전화번호 수첩에 적힌 지인들 뿐 아니라 그래 싸이월드 미니홈피로 엮인 1촌들과 MSN 메신져에 등록되어 있는 3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 죽마고우부터, 고등학교 시절로부터 함께 걸어온 세명의 친구들. 대학 동기들. 후배들, 선배들, 나를 키워주신 수 많은 선생님들과 회사 직장 동료들. 친구의 친구들. 홈페이지와 블로그와 미니홈피와 메신져와 채팅방, 그리고 음악방송에서 이어진 수많은 이름들. 다 외지도 못하고, 그네들 주소며 연락처를 다 적어두지도 못 할 만큼 만나온 사람들. 이제는 잊혀져 버린 사람들도 많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도 많다. 나는 항상 고민했다. 평생을 두고 나를 기억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훗날 나의 장례식을 찾아와 술 한잔 따라줄 사람은 누구인가?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려고 할 때 내게 있어 당신은 누구인가? 목사님은 그 많은 인연들 중에도 단연 위의 네번의 만남이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 주셨다. 하지만 말씀하시길 첫번째, 세번째, 네번째의 인연은 나의 선택이 아닌 운명임을 강조하셨다. 결국은 두번째 만남인 친구만이 내 의지로 만날 수 있는 인연인 것인가. 곰곰 생각해 본다. 일전에 인터넷에서 음악방송을 하고 있는 지인 한분과 이런류의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나보다 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삶이 부대끼며 엮이어 가는 것을 힘겨워 하지 않았다. 항상 만남을 즐거워 하셨고, 기뻐 하셨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어떤 인연도 선택은 없었다. 모두가 운명같은 것이었고, 자연히 그러하게 만나지는 슬기로운 끈을 쥐고 있는 듯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번지듯 떠오르는 내 친구들의 얼굴들. 내 결혼을 위해 오징어 가면을 써주고, 내 아이의 돌반지를 마련해주며, 내 어머니의 장례에 나란히 서주며, 내가 묻힌 묘 위에 술 한잔 부어줄 친구들. 그 친구들을 내가 선택한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너무 매정하지 않은가? 적어도 내게 있어 두번째 만남 역시 운명이었음을 목사님의 좋은 말씀에도 불구하고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인간은 질그릇같아서, 더러워지기 싶고, 깨지기 싶다. 하지만 내 친구 역시 질그릇이어서 내가 깨지고, 더러워져도 우리는 서로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 때로는 멀쩡한 자신을 깨뜨리면서까지, 때로는 자신을 더럽히면서까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인연이 바로 친구아닐지. 또한, 내 부모, 내 스승, 내 반려자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까. 목사님이 마지막에 제5의 만남으로 "하나님"을 말씀하셨는데 그 역시 운명이라면 친구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에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이란 것중에 순서는 없는 없었다. 나이와 같이 늙어가는 것이 시간이라고 우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누가 만남을 시간과 같이 하던가.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운명처럼 내 곁에 와 있는 것이 인연인것을. 만남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하나일 뿐이지 않을까 싶다.
잘못된 만남이어서 운명이어서 내 더럽혀짐과 깨짐을 미룰 수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만남은 운명이고, 더렵혀짐과 깨짐은 선택인 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이니까. 제5의 만남이 하나님이어서 앞서의 만남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기적과도 같은 말씀에도 내 선택이 없다면 하나님 역시 역전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이 또한 인간의 삶이지 않을까.

깊이와 넓이의 한계를 넘어선 지성 「웹2.0시대의 기회 시멘틱웹」,「조엘 온 소프트웨어」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컴퓨터 공학과 관련한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지난 여름 읽은 김중태의「웹2.0시대의 기회 시멘틱웹」(이하 김중태)과 오늘 읽기를 끝낸 「조엘 온 소프트웨어」(이하 조엘)가 그것이다.

두 권의 책은 서로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는데, 공통된 것은 김중태와 조엘 모두 컴퓨터 세계에서 철학적인 가치관을 확고히 하고 나름 '전문가'다운 지식과 부담없이 탁월한 글쓰기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둘 모두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체험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 역시 비슷하다. 반면에 조엘의 것은 소프트웨어라는 좀 더 포괄적이면서도 명확한 것을 토대로 분석적인 태도를 보이며, 김중태는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웹2.0에 한하여 다양한 견식을 선보이고 있다. 조엘은 마이크로소프트사나 주노사에서 몸담아 일했던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대단히 흥미롭고 놀랄만한 이야기들을 꺼네 놓고 있으며, 김중태는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나 쟁점에 대한 논의를 국문학 전공 답게 편안한 글쓰기로 채워나가고 있다. 또 한가지 두 권 모두 조엘과 김중태 개인의 블로그에 실린 글들로 그 중 멋진 것들만을 골라내어 책으로 편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담이지마 조엘의 책은 아마존닷컴에서 놀라울정도의 극찬을 받아가며 공학책 답지 않은 공전의 히트를 친 책이고, 김중태의 책 역시 최근 출시되어 컴퓨터 서적에서 연일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다.)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연이어 깨어남의 충격을 당했다. 단지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현란한 글솜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아주 친절하게 나같은 무지한 인간도 읽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400여 페이지에 걸쳐 주절거려 주었고, 때문에 나는 "몰랐던" 것을 반성하고, 새롭게 "깨닫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온갖 프로그램을 만져보고, 갖가지 언어를 익혀왔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해 그저 싸구려 프로그래머일 수 밖에 없었던 내게 지식의 깊이와 자신감의 넓이를 확장시켜 준 것이다. 지금 내 앞에 꽂혀 있는 JAVA나 AJAX, MySQL, XML, HTML, CSS, PHP. LINUX 전문 서적들이 참으로 무색하다고까지 느껴진다.

2006년 10월 21일 토요일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뒷 모습」/ 이청준

이청준이라는 이름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현이나 김동인이라면 알까?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중 한명이다. 우리에게는 임권택 감독이 영화화 했던 <서편제>나 <축제>로 더욱 알려진 작가이다. 국문학도 시절 전공 수업을 통해 몇번인가 그 분의 짧은 소설이나 산문 글귀를 접한 경우는 있지만 이번처럼 아주 책을 부여잡고 정독하긴 처음인듯 싶다.
이것도 우연인차 그저 살펴본 책들중에 눈에 띄어 펼쳐 보게 된 책이었다.

「머물고 간 자리」는 아마도 이청준의 가장 늦은 출판물인 것 같고, 소설은 아닌 산문집이다. 이청준의 기존 소설류를 다소 읽었던 독자라면 그 분의 내력이나 소설 이력등을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마치 덤 같이 말이다. 내 경우는 반대로 그 분의 책을 거꾸로 읽어보고 싶은 충동질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길잡이처럼 말이다.

그저 제목만 기억하고 지나갔던 여러권의 책들과 글들을 새삼 찾아서 읽어봐야 겠다는 욕심이 일었다. 천고마비의 계절. 비록 업무와 훈련으로 고단한 하루를 묻어 살고 지내지만 누구나 존경해 마지않는 문인들의 작품을 이렇게 욕심내볼만한 계절이 아닌가 싶다.

2006년 10월 13일 금요일

스물일곱, 인생의 터닝포인트

공학의 위기, 소설의 종말과 인문학의 위기, 오존층의 파괴, 이상 기후, 핵실험...
우리는 너무나 큰 '위기'에 처한 인류다. 당장이라도 지구가 멸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화롭다.
지난 밤 늦게까지 의미없는 웹서핑에 시간을 보내고, 적당히 늦잠을 자주고,
오후께 잠시 어머니의 일을 도운 후에 해가 질 무렵, 춥지 않을 옷들을 걸치고
축구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복귀를 이틀 남짓 남겨놓고
나 역시 그렇게 평화롭다.

어느새 살며시 추위가 느껴지는 계절이 왔다. 더운 것은 그럭저럭 견디었지만 다시 그 추위를 견딜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오금이 시려져 오는 것 같다. 그 사이 해는 바뀔테고, 나이는 또 한살을 견디지 못하고 쌓일테지.
눈 쌓이듯. 1년여간의 좋고 나빴던 것들, 가볍고 힘들었던 것들 모두를 그렇게 희게 덮어가며, 쌓일테지.
그렇게 내 나이 스물일곱, 한 권의 추억을 담은 기억을 덮자.

2006년 10월 14일 그렇게 덮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with 이혜진(2006.10.12)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를 보고 책과 같은 느낌으로 감상을 적기란 쉽지 않다.
단지 소설에서 모티브만 가져온 것이라면 감독의 철학을 엿볼수도 있겠지만 본 작품은 원작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책과 마찬가지의 질문을 내 던지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작은 감정들을 영화에서는 쉽게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나 이런 멜로나 드라마류의 영화를 보고 있을 땐 작은 감정들이 점점이 모여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한 덩어리로 울컥하는 그 맛이 일어나는데 책에서만큼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단지 내용을 알고 본다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 싶다.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면 책을 봤든 안 봤든 관객을 똑같이 평등하게 울릴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공지영의 최근작이 기대 이하라는 소리를 들으며 극장을 찾았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나름 감동있게 읽었고, 오랜만에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것이었기에 그만큼의 기대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안고서 묵묵히 지켜본 영화다.

이 계절 잡아줄 손가락이 있는 남자와 여자에게는 제법 행복한 두시간이 될 수 있겠지만 공지영이 다만 사랑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썼던 작품이 아니었기에 감독 역시 사랑해 라는 이나영의 목 메인 목소리보다는 끊어지는 남자의 숨결을 차라리 들려주며 우리를 울게 해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작품이었다.

2006년 10월 8일 일요일

철새

가슴아픈 이야기다.

얼마전 타 부대 훈련장으로 파견을 다녀온 일이 있었다.
임진강을 끼고 안은 넑직한 공간이었고, 가을이 무륵 익어 제법 싸늘해진 강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하루를 마치고, 텐트 앞 허전한 자리에 허리를 숙이고 앉아 있는데
십여마리정도의 철새떼가 후두둑 날아 오르더니 하늘 아래 맴돌기 시작했다.
몇 바퀴인가 돌아보더니 일렬로 줄을 그으며 남쪽 하늘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을까 무리중 한 마리로 보이던 새가 멀찍이 나타나더니 무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혼자서 헤메이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하니? 뭘 보고 있어?"
텐트안에 있던 교육장교님이 물었다.

"철새를 보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헤메고 있어서 그걸 보고 있습니다."

"죽겠구나."

"예?"

"철새는 무리에서 낙오하면 함께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텃새들에게 시달리다 죽게 된대."

그 말을 들은 순간 왜 얼마전 자살을 생각하고 손목을 그어야 했던 그 아이가 생각났을까.
무리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낙오되어 스스로 생명을 꺼버리려고 했던 그 아이.

결국은 모두가 살인자가 될 뻔했던 그 순간.
그 아이에겐 살아난 것이 행운이었을까?

한참이나 지난 시간에야 외롭던 철새 한 마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속에 그 아이는 여전히 그어진 팔목을 바라보며 울고 있을것만 같았다.

2006년 10월 7일 토요일

라디오 스타


with 김가윤(2006. 10. 6)
별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라는 말.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처럼 가슴으로 느끼게 설명해준 적은 없었지 않아 싶다. 이젠 그저 이름만으로 한국의 명배우라고 치켜 세울 수 있는 두 사람. 안성기와 박종훈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영화가 나왔다.

가끔은 세상을 혼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모든것을 이루워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더불어 혼자서 다 해내야 내 것이 된다는 욕심으로 가득찬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바로 옆에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쓰러지 자신을 추스리며, 다시 한 발 내 딛는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혼자보다는 둘이서, 그렇게 의지하며 서로의 빛이 되며 걸어가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 같다. 라디오 스타는 20년을 함께 한 한물간 가수와 속 깊은 매니저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꿈을 키우고 싶은 막무가내 락커와 마음씨만 좋은 늙은 매니저의 코믹스러운 대화와 연기 속에 둘만의 뗄 수 없는 그리움이 느껴지는 영화다.

내게 빛을 비춰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비춰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2006년 10월 6일 금요일

마가리따를 찾았다


못본새 너무 예뻐진 K와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찾은 수원역 앞에 Team's Bar.
추석인 까닭으로 특별한 칵테일 쇼를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오늘은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마가리타라는 칵테일을 맛 본 날이었다.

마가리타,
죽은 애인을 그리며 만들었다는 그 술. 달콤함 뒤에 느껴지는 싸함은 오롯한 감정의 그늘로 녹아듬을 느낀다.

2006년 10월 5일 목요일

국문과 해야 할 일?!

1년이든 10년이든 시간이 흐른 뒤에 남는것은 개인에게는 추억일 것이고, 모두에게는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이든 아주 작은 학과이든 사람이 부비고 살았던 공간에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후대들이, 후배들이 챙기고 정리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증명해 보일 수 없는 그저 공허한 기억이 될 뿐이다. 이는 우리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중국의 태도만 보아도 확연해 진다.
분단된 국토에서 고구려라는 거대한 역사마저 싹두 잘려져 나가버려 아주 송두리째 남의 것으로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 국문과의 역사 정리 사업에 이를 맞춰어 비교하긴 어려운 것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과의 역사를 정리하고 보이는 것에 무관심하다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결코 작은 일이 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졸업한 직후에 입대를 몇달앞에 두고 욕심내어 시작한 것이 국문과 역사 정리 사업이었다. 학과에 그대로 방치되었던 앨범과 흩어진 사진들을 추스르고, 졸업앨범을 스캔하고, 논문과 학회지등을 정리하는 것이 주된 골자였다. 한장의 CD나 DVD로 제작해 두면 두고 두고 보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맞이하는 동문인의 날에도 선배들에게 새삼 옛일을 떠올릴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십년의 세대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버둥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들에게 우리과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정신으로 이어져 왔는지 그보다 확실하게 눈으로 느끼게 해줄 수 있는것이 또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 자료수집만을 마친채 완성된 타이틀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저 언제래도 활용하능하도록 정리를 해 둔것만으로 일단은 만족한다.

국문과 최초의 잡지 '길라잡이'

그로부터 1년후 상병 정기 휴가를 나왔다가 명절을 앞두고 선생님들께 명절 인사를 드릴참으로 학교에 들렸는데 징검다리 연휴 덕분으로 과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 과사에 혼자 앉아 예전부터 모아둔 날적이를 들춰보게 되었다. 내가 입학하던 2000년도 것에서부터 추억이 많았던 01년도 03년도... 깔끔하게 정리하며 적어둔 98..96년도의 날적이까지.. 너무 좋았다. 재미도 있었고, 그것 자체로 우리과 역사책을 들춰보는 듯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예전에 비해 날적이가 많이 사라진듯 했고, 새로 만들어지는 것도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새 것이 생기는 것이 줄어드는 것이야 일단은 아쉽게 두더라도, 그동안 만들어졌던 수십권의 날적이가 이젠 십 여권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차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속이 상했다.

이러면 어떨까?

날적이를 모두 찾아보고, 원본 그대로 한권의 책으로 제본을 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복사를 두어권 해서 과사에 비치를 하고, 원본은 도서관등에 보관하는 것이다. 1년전 졸업앨범을 스캔했던 작업등에 비하면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들지도 않을 뿐더러 효과는 더욱 크지 않나 싶다.

비슷한 내용으로 한 가지 더 있는데 매년 열리는 동문인의 날이나 학번 행사로 기념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들을 한곳에 모아두는 일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다. 어째서일까? 그간의 기념품들을 하나씩 찾아서 모아두고, 동문인의 날이나 학과 행사때 펼쳐 보인다면 그것보다 더 반가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더불어 동문인의 날 등에 작성된 방명록 역시 날적이와 같이 모아서 책으로 묶어 두었으면 좋겠다.

학생회가 중심이 되서 그간의 남겨진 기록들과 기념품들을 찾아 한데 모으고, 책으로 묶는 사업. 결코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거라고 생각된다. 조금의 노력과 관심만이 필요할 뿐이다.

조태영 선생님과 함께 했던 점심 식사 자리에서 호영(00)이와 현선(02)이 함께 고민했던 이런 내용이 인태(02)군의 집부 위기론을 지적한 게시판 글에서 시작된 것인데 인태군의 의식도 본받을만 하지만 가끔은 그런 것들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막연함으로 쉽게 가로막혀 그저 공허한 메아리만 맴돌다가 끝나는것이 보여 아쉬울때가 많았다. 그래서 이렇게 실제로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몇가지 적어본 것이다. 모두에게 의미가 되고, 누구나 떠들었던 우리과만의 정체성과 정신을 정립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크로키Croquis

오랫동안 나만의 필명을 고민해 왔다.
아이디로 주로 사용하는 '춥죠'라든가, '에고이스트; 종이비행기; 천개의고원'등 등...
다 좋은 말이고 좋긴 했는데 어쩐지 나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춥죠는 어릴때부터 붙여진 내 별명이어서 친근감이 있긴 하지만
필명으로 쓰기에는 다소 촌스럽다는게 내 생각이다-_-)!!

그러다가 지난 휴가때 동생이 선물해준 수첩이 하나 있었는데
크로키용 수첩이었다. 노트에 가깝긴 했는데
두꺼운 검정색 커버위에 은색으로 굵게 씌여져 있는 Croquis.
그리고 거칠지만 가볍고 촉감이 좋았던 페이지들...

크로키는 짧은 시간안에 스케치를 하는 미술 용어다.

생각이 많고, 어질머리를 느끼는 생활들-
순간 순간의 기억들을 기록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내 모습에서 언듯 와닿는 것을 느꼈고,
마치 일상을 크로키하고 있는 나를 찾은듯 했다.

크로키. 앞으로 오랫동안 쓰게될 필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하이퍼 텍스트 문학」 / 류현주

[ISBN-893490593X]
하이퍼 텍스트 문학 - 류현주(2000. 9) / 김영사

인터넷은 텍스트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책은 인터넷 글쓰기에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는 미래문학서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 활발하게 창작, 연구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문학에 대한 국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연구서이다. 하이퍼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과 작품을 통해 인쇄문학과의 자유롭고 흥미로운 분석이 눈여겨 볼만하다.



  1. 이, E, 異
    E-시대, 이 정신
    E-시대, 이 책
    E-시대, 이 문학
    이 시대 E-글쓰기

  2. CULTRONICS
    만가와 축가
    접촉과 접속
    두 개의 창, 그리고 조이스

  3. 하이퍼 문학은 돌연변이인가?
    하이퍼텍스트의 역사
    『용의 궁전 Palace of a Dragon King』
    독서, 포인트-클릭
    독자, 디지털 유목민

  4. 종이 책의 끝인가, 끝이 없는 책인가?
    『오후, 이야기 Aftermoon, a story』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I Have Said Nothing』
    마침표는 무엇을 마침인가?
    작가들은 무엇에 억압당해 왔는가?

  5. 하이퍼 문학은 무엇을 하이퍼-하는가?
    엑스트라텍스트
    『패치워크 소녀 Patchwork Girl』
    작가, 영원한 좀비
    『그래마트론 Grammatron』
    -이즘을 끝내는- 이즘, 하이퍼텍스트적 의식

  6. 디지털 오딧세이
    시로 쓴 하이퍼텍스트, 하이퍼텍스트로 쓴 시
    『둘을 위한 하나의 삶 A Life Set for Two』
    탐정이 없는 탐정 소설 『욕망 Lust』
    어서 말을 해!
    『거래 The Deal』

  7. E-LITERACY 혹은 ELITE-PACY
    디지털 파도
    문학 네트워크

집단지성 - 사이버 공간의 인류학을 위하여 - 피에르 레비

[ISBN-8932013012]
집단지성 - 사이버 공간의 인류학을 위하여 - 피에르 레비 (지은이), 권수경 (옮긴이)(2002) / 문학과지성사
이 책은 인류 사회를 위한 하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 이 책의 메시지를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저자가 「창세기」에 나오는 롯의 이야기로 책의 첫 화두를 삼고, 에필로그에서 미노스의 평화적 문명을 마땅히 본받아야 할 전범으로 제시하며 글을 맺은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레비는 우리가 다시 유목민이 되었다고 말한다. 유목 사회와 그리스 신화의 세계 속에서 상호성에 입각한 '환대'는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환대'를 타인의 지식을 수용하고 자신이 가진 지식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평화 가운데 상생하려는 결단과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레비는 디지털 정보화가 변화시킨 세계 또한 여전히 역사 속에, 그리고 인간 속에 그 뿌리가 내리고 있음을 인식한다.

요컨대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은 갈등과 경쟁을 넘어선 평화 공존의 메시지, 즉 '새로운 휴머니즘의 선언'에 다름아닌 것이다. 집단 지성은 레비도 인정하는 것처럼 하나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그것은 긍정적 시각에서 볼 때 실현불가능하지만은 않은 이상향이다. 문명들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오늘날 이 책이 나름의 시의성을 지닐 수 있는 것은 레비의 이러한 문명론적 비전에 힘입은바 크다고 하겠다. - 권수경(옮긴이)

인터넷이 있어 유토피아가 가까이 있다? / 김미혜 / 한성대 강사

최 근 인터넷을 통해 진행되는 찬반 투표에서 일부 네티즌들이 주민등록번호를 도용당하는 일이 벌어지고, 사이버 테러의 피해가 속출하는 등 네티즌들의 자정(自淨) 능력을 신뢰할 수만은 없으며 인터넷 민주주의의 전망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역동적인 의사소통의 통로로서의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레비는 1994년 발간한 {집단 지성}이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자유로운 분배 및 상호 교환을 구심점으로 하는 사이버 공간 속에서 '집단 지성'의 등장으로 가능하게 될 미래 사회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 대화형 통신의 디지털 네트워크들을 어떤 목적을 위해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사이버 공간을 기획해 나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기대에 차는 것보다는 훨씬 진취적이다. 그의 기획이 9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한 것인가를 결과론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획을 위한 밑바탕으로 삼는 것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집단 지성은, "어디에나 분포하며, 지속적으로 가치 부여되고, 실시간으로 조정되며, 역량의 실제적 동원에 이르는 지성"을 의미한다. 사이버 공간에 대한 여느 낙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실시간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주목하는데, 집단 지성의 이상은 그러한 낙관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집단 지성은 그것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타자와의 끊임없는 의사소통 속에서 반성하고 수정하며 보완되는 존재로 규정하며, 그러한 상호 수련을 인간 관계의 매개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는 상호성에 입각한 '환대'라는 유목 사회의 덕목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다시 "지식 공간 위를 유목하기를 그치지 않는 다른 구성원, 다른 집단, 새로운 수련을 향해 개방된 주체"가 되었다고 말한다.

레비가 말한 바대로 사이버 공간은 "이타성을 향해, 그리고 다른 공간들과 불확정적인 미래를 향해 무한히 열린 공간"이며, 우리는 과연 "역동적이고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다차원적 재현 공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한편으로는 매우 개인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윤리적이고 협동적인" 집단 지성의 등장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X세대와 N세대를 거쳐 등장한 P세대는 네트워크를 통한 관계 형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에 바탕을 둔 개인과 다양한 분야에 대한 경험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레비가 예상했던 대로 인류에게 있어 사이버 공간에서의 정체성이 더욱 중요해졌고, 다원성이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P세대는 집단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고 문제 발생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역동적이고 쌍방향적인 의사소통이 '윤리'를 확립하는 데는 아직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만약 그가 집단 지성의 등장을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단 지성의 등장을 위한 구체적인 기획까지 제시해 주었다면 그가 생각했던 유토피아는 벌써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기획은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고, 집단 지성의 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은 불확정적이다. 유토피아가 어디쯤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향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만큼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인터넷은 휴머니즘이다」 / 데이비드 와인버거

[ISBN-8976771559]
인터넷은 퓨머니즘이다 - 데이비드 와인버거 저/신현승 역 | 명진출판 | 2003년 07월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 위성을 쏘아올린 이래, 인공위성을 비롯한 통신망은 눈부시게 성장한다. 그러면서 초기의 군사용 목적이 아닌 민간 연구용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인터넷은 이 시대 최고의 미디어로 부상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러한 인터넷이 인류사에 끼친 혁명적 변화를 진단하고 있다. [http]출처[]

  1. 인터넷, 인류가 낳은 돌연변이
  2. 순간 이동이 가능한 세상 - 공간
  3. 과거를 지울 수도, 미래를 수정할 수도 있다 - 시간
  4. 불완전함에서 다양성과 자유가 태어난다 - 완벽성
  5. 얼굴은 몰라도 된다. 구성원이 되는 자격은 오직 관심뿐 - 집단
  6. 학벌 없이도 지식 권위자가 될 수 있다 - 지식
  7. 형상 없는 비트가 인터넷을 창조하다 - 물질
  8. 우리가 존재하지 않은면 인터넷도 존재하지 않는다

읽고, 난, 느낌


한 3일간에 걸쳐서 읽어내려 갔지만, 번역책이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아직 내 지적 수준이 충분하지 않아서인지 상당부분 이해의 어려움을 느껴야 했다. 물론 비평책들이 한결같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지만 외국 비평서적은 역시 어렵다는 느낌이 강하다. 조만간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다.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 배식한(2000. 7)

[ISBN-8970132031]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 - 배식한(2000. 7) / 책세상

종이 안에 묵혀 살던 거미가 어느 순간부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온라인상에 무서운 속도와 규모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쥐 한마리가 설치더니 종이가 갉아먹히기 시작했고 종이의 존재에 대한 부정과 우려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거미는 가끔 종이 안의 집에 들러 주절거린다. 하이퍼텍스트는 지금까지의 책에 대한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고.

불후의 업적으로서의 책이 아닌 수정, 변호를 거듭하는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진리를 향한 의지가 아니라 자기극복의 그것이다. 이제 하이퍼텍스트라는 새로운 자루, 미래의 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려면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논저한다.

  1. 무제
    하이퍼텍스트란 무엇인가
    왜 하이퍼텍스트가 문제인가

  2. 기술
    하이퍼텍스트의 역사적 위치
    하이퍼텍스트의 역사
    하이퍼텍스트+인터넷=월드와이드웹
    월드와이드웹

  3. 철학
    하이퍼텍스트와 포스트모더니즘
    하이퍼텍스트와 새로운 글쓰기
    하이퍼텍스트의 빛과 그늘

문자제국 쇠망약사 - 이남호

[ISBN-8984983519]
문자제국 쇠망약사 - 이남호 저 | 생각의나무 | 2004년 08월

이 글은 저자의 독서편력기로 읽을 수도 있고 간략한 출판의 역사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주제는 텍스트 중심의 책이 점점 이미지를 중시하는 디자인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 심지어는 텍스트 자체마저도 이미지로 이용하는 타이포그래피의 형식까지도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는 이러한 책의 변화가 화려하고 감각적인 전자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자기 갱신의 의미가 있다고 진단한다. [http]출처[]


  1. 전자사막에서 살아남기
  2. 2002 월드컵과 마르코니 성운
  3. 내면성의 빈곤
  4. 문학의 내파
  5. 소외의 독서와 독서의 소외
  6. 문자제국쇠망약사

읽고, 난, 느낌


몸살 덕분에 일주일여만에 다 읽었다. 마음먹고 읽었다면, 하루면 될 것을 너무 질질 끌었나 보다. 이 책과 비슷한 류의 책을 여러권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문자시대의 종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에 비해 낙관적이거나 비교적 긍정적으로 문자의 힘과 문학의 위대함을 말하고, 극복가능성을 제시하던 글과는 사뭇 다르게 매듭지어진 책이었다. 해결책은 없었지만, 냉정하게 문자시대로부터의 전자시대로의 이전을 인정하고 있는듯 하다. 어쩔 수 없음보다 당연하다는 논조로 전자시대에서의 문자가 가지는 위치에 대해서 짐작하게 해준 책이었다.

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 - 최혜실(2000. 10)

[ISBN-8988045254]
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 - 최혜실(2000. 10) / 생각의나무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국어교육과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문학박사이며 『문학사상』으로 문단에 데뷔하였고,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다. 저서로는 『한국 모더니즘소설 연구』『한국 현대소설의 이론』『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디지털시대의 문화예술』『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등을 출간하였고,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리테라티가 디제라티를 만났을때
  2. 가르치기에서 배우기로
  3. 문화 산업. '게임의 법칙'을 바꾸다
  4.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통합되는 이야기

디지털 스토리텔링 - 강심호 외

[ISBN-8982734864]
디지털 스토리텔링 - 강심호, 고욱, 배주영, 이인화 외 등저(2003. 10) / 황금가지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기술을 매체 환경이나 표현 수단으로 수용하여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을 뜻한다. 이 책은 상호 작용성, 네트워크성, 정보 복합성 등의 특성을 갖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콘텐츠 산업 현장의 다양한 분야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콘텐츠 창작에 도움이 될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1부 What is digital storytelling?
디지털 스토리텔링 창작론|이인화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역사와 장르|고욱, 이정엽
케이스 스터디
- 공각기동대(功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이인화
- 천마의 꿈|한혜원

2부 Entertainment Storytelling
컴퓨터 게임 스토리텔링의 이해와 분석|전경란
컴퓨터 게임 스토리텔링의 원리 : 놀이와 서사|이정엽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의 창작 방법론|배주영
디지털 기술과 영화의 스토리텔링 : '스타워즈'의 이야기 개발 과정을 중심으로|이인화
케이스 스터디
- 스타크래프트 : Good Game을 선언할 때까지|한혜원
- 리니지 : 리니지 월드에 살다|한혜원
- 마시마로의 스토리텔링 전략과 성공비결|배주영

3부 Information Storytelling
브랜드 아이덴티티 스토리텔링 : 웹 CF의 현황과 전략|강심호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이론적 고찰|배주영
웹 뮤지엄 스토리텔링의 개념과 영역|전봉관
컴퓨터 매개 커뮤니케이션(CMC)을 통한 커뮤니티|한혜원
디지털 에듀테인먼트 스토리텔링|강심호
케이스 스터디
- 즐겁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 디즈니 랜드의 스토리텔링|이인화
-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한혜원
- 서바이버(SURVIVOR) : 가상(VIRTUAL)과 실재(REAL)의 결합|한혜원

디지털미학의 키워드 - 류현주(2003)

[ISBN-897141586X]
디지털미학의 키워드 - 류현주(2003) / 연세대학교출판부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문학적인 접근을 위해 처음 찾아 읽게된 책이다. 차례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하이퍼텍스트란 무엇인지부터 차근 차근 접근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129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깊이 있는 내용은 얻기 힘들다. 하지만 원론적인 내용에 대한 기본지식을 쌓기는 나쁘지 않은 책이다.


1. 하이퍼텍스트란
2. 하이퍼텍스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3. 무엇이 하이퍼텍스트를 인쇄된 텍스트와 구분하는가
4. 하이퍼텍스트를 둘러싼 미학 논쟁
5. 하이퍼텍스트 문학 구경하기
6. 하이퍼텍스트 관련 링크와 서적

읽고, 난, 느낌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문학적인 접근을 위해 처음 찾아 읽게된 책이다. 차례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하이퍼텍스트란 무엇인지부터 차근 차근 접근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129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깊이 있는 내용은 얻기 힘들다. 하지만 원론적인 내용에 대한 기본지식을 쌓기는 나쁘지 않은 책이다. -- 춥죠 2005-05-06

형사이야기

최근 두 편의 형사이야기가 우리들 관심을 끌고 있다. 화성에서 실제 벌어졌던 연쇄살인을 소재로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현상과 그 속에서 사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살인의 추억"과 바로 동시대의 형사들의 입장을 철저하게 뒤쫓는 "와일드 카드"가 그것이다.
"살인의 추억"이나 "와일드 카드"는 모두 우리 영화라는 공통점 외에도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사실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 사건이라는 소재로 인한 관심이 더욱 더 집중되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알 수 있겠지만 "살인의 추억"이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연쇄살인의 범인 아닌 연쇄살인범을 뒤쫓는 두 형사의 이야기다. 그에 반해 "와일드 카드"는 순수하게 투캅스의 대를 이을만한 형사물 시리즈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살인의 추억" 박두만(송강호 역)과 "와일드 카드"의 방제수(양동근 역)는 일단 배우만 봐도 주연 중의 주연으로 눈에 띄는 인물이다. 박두만이 직감으로 범인을 잡아내는 신기(?)를 가진 시골 촌뜨기 형사라면 방제수는 이제 막 형사에 입문한 의기가 넘치는 초짜다.
반면, "살인의 추억"의 서태윤(김상경 역)과 "와일드 카드"의 오영달(정진영 역)은 앞의 박두만과 방제수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인물들로 서태윤은 과학적인 수사를 앞세우는 앨리트 서울 형사, 오영달은 총기사용 남용으로 징계위기에 처해있긴 하지만 속옷을 매일 갈아입을 정도로 깨끗하고 차분한 성격의 인물이다. 이렇게 묶여진 인물들은 서로 대립하고 화합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박두만의 비과학적인 수사와 서태윤의 과학적인 수사가 대립하고 방제수의 지나친 의협심과 오영달의 인간미(따로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가 대립을 가져다 주지만, 결국엔 사건의 중반과 결말로 다가갈 수록 그토록 대립되던 양상이 협력과 화합으로 도모하게 이른다.

그 대립과 화합의 과정이나 양상은 두 영화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한가지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형사라는 인간들의 진실(?)한 모습의 비쳐짐이다. 특히 "살인의 추억"에서 두 형사외에 조연으로 등장하는 형사들의 모습은 80년대 형사들의 철저하게 감추어진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음에 우리를 경악케 하고 있다. 이에 뒤질새라 "와일드 카드"에서 등장하는 형사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바로 우리들 시대의 형사들이 어떠한가를 역겹지 않도록 보여주고 있음에 주목해볼만하다. 이에 "살인의 추억"의 김뢰하와 "와일드 카드의" 김명국이 보여주는 타락과 복귀를 함께 생각하며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인의 추억"이나 "와일드 카드"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본 영화이다. 비록 "와일드 카드"가 "살인의 추억"이 가지는 탄탄한 스토리나 긴장도를 따라가진 못했지만 다분히 속편을 예상케 하는 1편적인 내용으로서는 만족스러운 편이며, 투캅스와는 또 다른 형사들의 땀과 피에 절어 진하게 풍기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을듯 하다.

태극기 휘날리며

with 황의경(200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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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강제규
배우 : 장동건, 이은주, 원빈, 공형진, 최민식
장르 : 액션, 드라마, 전쟁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48분
제작년도 : 2004년
개봉일 : 2004년 02월 05일
국가 : 한국
공식홈페이지 : www.taegukgi2004.com

시놉시스 :
1950년 6월.. 서울 종로거리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진태’(장동건)는 힘든 생활 속에도 약혼녀 ‘영신’(이은주)과의 결혼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생 ‘진석’(원빈)의 대학진학을 위해 언제..

대박 영화를 개봉하고 일주일쯤 지나서야 볼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후배를 볶아댄 덕으로 공짜영화가 되어 더 좋았지만서도, 일찍 간다고 아침도 거르고 부랴 부랴 나가면서 두유를 버스에서 마셨더니 내내 속이 좋지 않았다. 결국은 이틀째 서울 나들이 하면서 좀 피로했더니 어제는 어머니 감기까지 옮아버렸지 않았나. 그렇게 하루 넘기고 글을 쓰게 되었다.


한국적인 전쟁영화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개봉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영화라 여기저기 관련 글을 많이 보기도 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한국 최초'의 수식어가 붙었지만 나는 사실 그런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강제규가 '쉬리'에싀 이미 충분히 '한국 최초'의 것들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최초'는 그렇게 한번이면 족할 것이지 그 뒤로는 '최초'에 붙어지는 업그래이드 일 뿐인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딱 하나 있었는데 과연 강제규 감독이 말하는 한국적인 전쟁영화가 무엇이었는지다. 일단 떠오르는 한국전쟁 영화를 보면 안성기가 주연했던 '남부군'정도와 6.25특집극으로 수 없이 제작된 TV드라마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작품들 속에서도 '태극기 휘날리다'의 주 모티브가 되는 '형재애'는 이미 숱하게 보아온 기억이 난다.
궂이 한국전쟁이 아니더라도 흔해빠진 헐리웃의 전쟁영화만 찾아봐도 형재애를 다룬 전쟁영화는 쌔고쌨다. 또 한가지. 강제규는 대규모 피난민의 행렬은 다른 전쟁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장면은 한국전쟁이 아니라면 쉽게 재연되기 힘든 것이라고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장면도 내 기억에는 베트남전이나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간혼 보았던 것 같다.

어쨌든 뚜겅은 열렸고 나는 이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뚜껑을 열었을 때 뿌연 김보다 얼큰한 찌게가 더 붉게 보이기를 바라면서-

전쟁이나 이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중반까지는 이 말에 동감할수 없었다. 진석을 제대시키고자 했던 진태는 어느덧 광기어린 전쟁로봇이 되어버렸고, 잿더미가 되어버린 서울과 평양 시가지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민중들의 죽음은 이것이 전쟁이다!라고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수백발의 포격속에 국군들은 끊임없이 빨갱이들을 저주한다. 하지만 영화는 공영만의 한마디 말로 전쟁과 이념에 대한 싸움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 이념따위는 모른다. 누가 이기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많은 사람들이 진태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스러워 한다고 한다. 그래서 리얼리티가 없다고 옥의티로 지적하곤 하는것을 봤다. 하지만 내가 보기로 그것이 훨씬 리얼했다. 생각해보라. 총 한번 쏘아보지 못했던 구두닦이가 어느날 갑자기 동생과 함께 전쟁터러 내 던져졌다. 애틋한 형재애로서는 반드시 동생을 살려 보내야 한다는 것 하나만 필생의 의지로 불타오른다. 처음은 그랬다. 그렇게 적진으로 돌격했다. 적을 죽여야 내가 살고 동생을 살릴 수 있었다. 공을 세워야 훈장을 받고 그렇게 동생을 제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한번도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서본 적이 없었다. 전쟁은 그를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하는 또다른 기회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 깊숙히 진석을 위한 마음이야 변할리 없지만 인간이기에 욕심을 내 볼수 있지 않나? 영웅- 진태는 그렇게 영웅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영웅이 되어 진석에게 더욱 멋진 형이 되고 싶었을 것이고. 그렇게 동생을 살려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정말 리얼이 아닌가? 전쟁은 그렇게 한 인간의 삶을 일순간으로 바꿀수 있다고 본다.

아 한국적인 전쟁영화

나는 공영만의 대사를 통해서, 진태의 격정적인 변신을 통해서, 진석의 무서울 정도의 분노(형에 대한)를 통해서 한국적인 전쟁영화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외형상으로 기존의 헐리웃 영화의 본을 따랐다는 느낌을 지울수는 없지만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의 억울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억울함. 나는 이것이 한국적인 전쟁영화의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들 한국적인 것에는 한이 서려있다고 한다. 같은 동양권이면서도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한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다. 전쟁의 규모나 처참함으로야 2차 세계 대전과 비할바 못되겠지만 그래서 그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한역시 어찌 억울하고 안탑까지 않을까마는 내가 한국사람이어서는 몰라도 태극기에서는 쌓이고 쌓인, 그리고 순진해 빠져버린 우리 50년대 한국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억울한 싸움의 눈물이 가득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넘치고 넘쳐도 채워서 떠나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끝없이 펼쳐진 피난민의 행렬과 뜨거운 울음으로 바퀴를 굴리려는 기차의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클로저

감독 : 마이크 니콜스
배우 : 줄리아 로버츠, 쥬드 로, 나탈리 포트먼, 클라이브 오언, 마이클 헤일리
장르 : 드라마, 로맨스
등급 : 18세 이상
상영시간 : 98분
제작년도 : 2004년
개봉일 : 2005년 02월 03일
국가 : 미국
공식홈페이지 : www.closer-movie.co.kr

시놉시스 :
"안녕! 낯선사람…" 첫 눈에 반한 운명적 사랑! 런던의 도심 한복판, 출근길의 댄(쥬드 로)은 신문사에서 부고 기사를 쓰지만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인 잘생긴 낭만 청년. 인파 속에 유달리 눈에 띄는 한 여성을 발견하고 강한 이끌림을 느끼는데… 서로를 ..

이프 온리

(2004.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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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안권태
배우 : 신하균, 원빈, 김해숙, 이보영(1), 김태욱(1)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12분
제작년도 : 2004년
개봉일 : 2004년 10월 08일
국가 : 한국
공식홈페이지 : www.mybrother.co.kr

시놉시스 :
미우나 고우나 내동생 우리형입니다! 1990년대 후반, 한 고등학교... 같은 반에 연년생 형제가 재학중이다. 잘생긴 얼굴에 싸움까지 잘하는 ‘싸움 1등급’ 동생-종현과 한없이 다정하고 해맑은 ‘내신 1등급’ 형-성현.어린시절부터 형만 편애하던 어머니 때문에..

원빈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신하균 정도라면 괜찮다 싶다.

형을 둘러썬 따듯한 감동 드라마- 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랬다. 그래도 한가지 다행스러운건 형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진게 아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가슴속에 자식들을 묻어놓고 살아가는 모습을 새삼스레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때문에 그리도 지지리 궁상을 떨어가며 사시는가
단지 어머니라는 이유 하나로. 당신도 여자이거늘...

그토록 억척같이 살아서 키워놓으면 뭐하는가.
아비도 없는 것들인데..

어머니기에. 내 새끼들이기에.
그래서 눈시울이 붉어졌던 영화.

연애의 목적

한재림 감독의 박해일, 강혜정 주인의 대범한 사랑학!

어렵다. 까다롭다. 복잡하다. 알 수 없다. 그러나 할 수 밖에 없는 사랑.
왜 사랑하는가? 왜 자는가? 목적이 뭐냐?
영화는 이렇게 복잡다단한 줄거리를 지루하지 않은 연출과 훌륭한 연기. 그리고 조금은 낯뜨거운 대사들로 요밀조밀하게 이끌어 간다. 달콤한 사랑의 대화를 나누지도 않는다. 황홀할 정도로 뜨거운 섹스신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배경을 그려주지도 않는다. 가슴에 확 와 닿는 가슴 애절한 눈물이나 대사도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사랑을 왜 하냐고 물어온다. 영화가 보여주는 줄거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목적을 캐 물을 뿐. 나와 내 옆의 관중은 움직이지 않던 뇌로 왜 할까? 나의 사랑은 무슨 목적으로 호르몬을 재촉하는가? 하고 묻기 시작한다.

참.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19세이상 예고편이 존재한다. 좀 더 야한 대사를 예고편에 삽입했다. 오리지널 예고편과 같이 보면 영화의 내용을 대충 다 짐작할 수 있다. 지금 네이버에서 바로 보이는 예고편에는 너무 뻔한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알 포인트

http://content.nkino.com/Movie/10571/p.gif
감독 : 공수창
배우 : 감우성, 손병호, 오태경, 박원상, 이선균
장르 : 호러, 전쟁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06분
제작년도 : 2004년
개봉일 : 2004년 08월 20일
국가 : 한국
공식홈페이지 : www.rpoint.co.kr

시놉시스 :
2004년, 지금도 그들의 무전은 계속되고 있다...! 1972년,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200명의 부대원 중, 혼자 살아 남은 혼바우 전투의 생존자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의..

베트남판 귀신 영화 다름 아니었으나-

R-POINT.조금은 생소한 명명과 함께 개봉한 영화. 나름대로의 장르를 구분 짓자면 호러일 것이며 점잖게 바라보면 서스펜스도 되려나?

여하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재주껏 사람을 놀리기도 했고, 뭔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봐라~ 하는 감독의 넌센스도 있었고. 그런대로 연기좀 하는 배우들이 요소요소에서 열혈핏대를 세워줬는지라 돈이 아깝지는 않더라.

뭐-여기저기서 재미있다 없다. 어이없다 있다. 당화스럽다 아니다. 재미있냐 없냐 말들 많지만. 딱히 그런 말들이 쑥쓰럽지 않던가.

좋은 것은 좋은데로 볼 수 있었고, 어설픈 것은 어설픈데로 아직은 한국영화가... 하는 식으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일테고.. 말이다.

나는 "재미"있었다. 단 무섭지는 않았다. (차라리 제이슨vs프레디가 더 무섭지 않았을까..ㅡㅡ) 일단은 소재가 새로웠고 뻔할 내용이었으나 요즘 어디 뻔한 영화 아닌게 있나. 장화홍련처럼 5분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놀래줘야할 영화도 아니었고 적당한 긴장감을 만들려고 애쓴 모습에 그런대로 흡족한 영화란 말이다.

감독의 의중이야 모르겠지만 알포인트를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것은 아 우리 아픈시절의 폭력과 섹스를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대한 남아에게 응징하는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 싶었다.

전쟁터라는 배경은 폭력의 그 모습일 뿐이고(실재로 전투 장면은 단 한 컷)
창녀와의 잠자리는 섹스의 분분함이다.
섹스는 폭력적이며 폭력은 복수를 낳고 복수는 피를 본다.
한국군은 베트남의 창녀의 가슴을 후볐을 것이고, 창녀는 한국군의 가슴에 구멍을 내 버렸을 것이며, 또다른 한국군은 창녀의 머리통을 날리지 않았을까-

아. 근데 궁금한건 왜 마지막에 그 넘은 안죽은거야?
손에 피를 묻힌자 여기서(알포인트) 나갈 수 없다~ 아니였어? 머냐구 - -

쏘우

(2005. 5. 19)
제목 : 쏘우 (Saw, 2004)
감독 : 제임스 원
출연 : 리 워넬, 캐리 엘위스, 대니 글로버, 켄 렁, 디나 메이어

오랜만에 본 스릴러물. 다소 잔인한 장면도 보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볼만했던 작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반전을 기대한다. 여러 사람들의 말과 분석이 있었지만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은 반전을 함부로 예상하지 말것! 이다. 사실 엥간히 뛰어난 관찰력과 직감력이 없다면 두시간 남짓되는 영화를 보면서 그것도 감독의 철저한 계산하에 재생되는 화면들을 통해서 관객이 단 한번만으로 엔딩을 맞출수 있겠는가?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이 좋았던 이유는 반전을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충격이었던 것이지 않은가? 쏘우의 반전이 조금은 개연성이 떨어지고 어안이 벙벙하게 하는 깜짝 엔딩과 같을진 몰라도 처음 본 사람이라면 쇼킹했음은 분명할 것이다.

실미도

with 김연은 (2003. 12. 26)
http://content.nkino.com/Movie/3337/p4.gif
감독 : 강우석
배우 : 설경구, 안성기, 정재영, 허준호, 임원희
장르 : 액션,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35분
제작년도 : 2003년
개봉일 : 2003년 12월 24일
국가 : 한국
공식홈페이지 : www.silmido2003.co.kr

시놉시스 :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 31인의 살인병기 ‘실미도부대’ 탄생 “주석궁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의 임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

크리스마스까지 무난히 넘긴 날씨가 오늘 아침들어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턱까지 올라오는 목티를 입고서도 무뎌지는 코끝이 시큰할 정도였으니까.

얼마쯤 기다렸을까? 20여분쯤 발을 구르며 기다렸더니 다행히 늦지 않게(약속 시간은 넘겼지만) 개찰구를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한 웃음과 함께.

서둘러 걸음을 옮기기는 했지만 엉뚱하게 군인들 심부름(?)까지 하다가 5분정도 늦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다행히 예고편 분량만큼 지나간 상태였고 영화가 막 시작되려는 찰라였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마음에 드는 커플석. -이 각도에서 보는 영화가 가장 볼 만하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영화는 시작되었다. 설경구의 칼부림으로.

실미도는 나름대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뿐 아니라 우리 근대사가 숨겨온 치부를 발가벗긴 영화라는데 더 큰 관심이 모였던 작품이었다. 그저 말로만 듣던 북파공작원의 이야기가 실미도 사건인 것이다. 북에서 남파한 간첩 서른 한명을 그대로 본따 역으로 북파하여 김일성의 목을 따버리기 위한 특공대. 그 군대가 오딴 섬 실미도에 만들어졌다. 영화는 설경구를 비롯한 온갖 쓰레기들중 서른 하나를 추려내어 모아온다. 안성기는 쓰레기 재활용 담당. 이어지는 허준호의 온갖 재수없는 발길질과 욕설. 비참하게 매질당하는 쓰레기들과 점차 재처리되어가는 갱생의 인간들. 어렴풋 예전의 어떤 헐리웃 영화와 닮아있음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새롭다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저것이 "현실"이었다는 것에 대한 경악이 뒤통수를 내리 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명장면이라고 뜯어낼 수 있는 컷이 눈 언덕위에 폭파씬과 마지막 씬 직전에 허준호가 떨어뜨린 사탕봉지. 안성기의 마지막 장면(어떤 장면인지는 말하지 않겠음)과 설경구가 매달린 동료의 머리통을 단번에 휘갈겨 죽여버리는 장면.

이 글이 영화에 대한 평이나 분석이라면 이것 저것 잡다한 것까지 모두 끌어와 이어가겠지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것 같고. 그저 나의 감흥정도를 몇 자 적어보자는 취지의 글이므로 너무 많은 내용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게 좋을 듯 하다.

한가지 아쉽다고 할 수 있는건. 역시나 설경구! 싶다 할 만한 명 장면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과 안성기가 이젠 지긋한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것이다.

실미도-
쌀쌀한 날씨에도 우야우야 인천 월미도까지 찾아가게 되어 바라본 서해의 여러 섬들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고 차가워 보였다. 눈 앞에 보이진 않았지만 저 많은 섬 가운데 심미도의 비극이 짙은 안개처럼 쓸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다.

시카고


http://content.nkino.com/Movie/7894/p1.gif
감독 : 롭 마샬
배우 :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리차드 기어, 존 C. 라일리, 퀸 라티파
장르 : 코미디, 드라마, 뮤지컬, 스릴러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13분
제작년도 : 2002년
개봉일 : 2003년 03월 28일
국가 : 미국, 캐나다
공식홈페이지 : www.movie-chicago.co.kr

시놉시스 :
재즈의 열풍과 섹스, 범죄의 향취가 물씬나는 퇴폐의 도시 시카고 명성을 꿈꾸는 여자와 명성을 손에 넣은 여자 "이 도시에서는 총알 한발이면 유명해 질 수 있다!" 도발적인 율동과 파워풀한 노래로 무대를 압도하는 시카고 최고의 보드빌 ..

물랑루즈 이후에 또 한번 뮤지컬에 반해버리게 만들어버린 영화다. 몽상적인 화면과 지루하지 않은 전개에 귀에 쏙 들어오는 재즈풍 댄스와 노래는 이 영화만의 또다른 매력이다.

물랑루즈에서의 진한 감동을 기대해서였을까? 약간 개운치 않은 해피엔딩(?)은 개인적으로 밋밋했다.

스파이더맨


http://content.nkino.com/Movie/9609/p.gif
감독 : 샘 레이미
배우 : 토비 매과이어, 키어스틴 던스트, 알프레드 몰리나, 제임스 프랑코, 엘리자베스 뱅크스
장르 : 액션, 어드벤처, SF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26분
제작년도 : 2004년
개봉일 : 2004년 06월 30일
국가 : 미국
공식홈페이지 : www.spiderman2.co.kr
공식홈페이지 : spiderman.sonypictures.com

시놉시스 :
히어로의 파워, 운명, 그리고 사랑... 이젠 선택만이 남았다! 유전자 조작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 모두에겐 영웅이지만 정작 자신에겐 어려운 일 투성이다. 스파이더맨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메리 제..

2편 돌아온 영웅

감독 샘 레이미에 의해서 새롭게 돌아온 영웅. 스파이더 맨!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호러영화로 유명한 감독이라고 한다. 자세한건 모르겠다. 그의 영화를 본 기억도 없다. 하지만 스파이더맨2를 보면서 사슬퍼런 기계손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을때의 충격과 두려움은 그가 어떤 감독이었는지 충분히 예상케 만들었다. 특히나 병원씬에서의 간호사들의 비명은 자칫 영화가 한여름 식음땀을 줄줄 싸게 만드는 호러영화가 아닌가 싶을만큼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X-MEN시리즈를 좋아한다. 1편을 보고 너무 좋았다. 자신들의 뜻이 아닌 환견에 의해 돌연변이가 된 슬픈 영웅들의 이야기. 분명 슈퍼맨이나 베트맨등과는 영웅의 괘를 달리한다. 차라리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자들인 것이었다. 스파이더맨은 그럼 어느선쯤에 존재할 수 있을까? 2편은 이를 설명해주고 있는듯 했다.

액션 장면중에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 바로 전철씬인데 달리는 전철위에서 닥터 오터퍼스와의 대결은 숨을 멎게 만들정도이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전차를 세우기 위해서 온몸으로 기차를 막았던 스파이더맨(슈퍼맨에서 끊어진 철로를 몸으로 이었던 장면이 떠올랐다)은 더이상 특별한 존재의 영웅이 아니었다. 그의 아주머니(고모)가 민중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는 말. 그리고 영화 내내 스스로의 선택이 가져다 주는 변화. 이 두가지 사실은 피터 파커가 언제든 평범한 인간으로의 삶과 전능한 영웅으로의 삶을 선택해서 살아갈 수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는 기차씬을 통해 민중속에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물론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네오가 파란약을 선택해 진실을 알고 미래의 영웅이 되었던 것처럼. 피터 파커 역시 수십년전(코믹스 시절) 쓰레기통에 내 던졌던 스파이더맨 복장을 다시 입음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영웅이 되는것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보여주려고 애썼다고 해야하나)

메리 제인과의 사랑 친구 해리와의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갈등은 스파이더맨2가 전편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는 영화로 만들어주었다. 단순한 액션 스펙터클 영화가 아니었기에. 닥터 옥터퍼스의 어설픔 죽음(자살)이 아쉽지 않은 이유다.

http://content.nkino.com/Movie/5126/p.gif
감독 : 샘 레이미
배우 : 키어스틴 던스트, 토비 매과이어, 브루스 캠벨, 윌렘 드포, 제임스 프랑코
장르 : 액션, 드라마, SF
등급 : 12세 이상
상영시간 : 121분
제작년도 : 2002년
개봉일 : 2002년 05월 03일
국가 : 미국
공식홈페이지 : www.spiderman.sonypictures.com

시놉시스 :
가장 인간적이며 가장 파워풀한 남자, 휴먼 스파이더… 평범하고 내성적인 고등학생 ‘피터 파커’, 그는 우연히 방사능에 감염된 거미에 물린다. 그 후, 피터는 손에서 거미줄이 튀어 나오고 벽을 기어 오를 수 있는 거미와 같은 능력을 갖게 ..

1편 거미 날다

히어로 영화의 최고!였다 싶을만큼 감동과 스펙터클함을 동시에 가져다 준 영화다. 슈퍼맨이라든지 베트맨에 비해서 스파이더맨에 대한 추억이나 느낌은 그다지 크지 않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 또는 스파이더맨을 기억하는 중년들 역시 그러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마징가Z나 메칸더V에 대한 추억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미국인들은 좀 특별하다. 세계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래서 언제나 작은 약소국을 주물럭거리면서. 정작 자신들은 언제나 영웅에 대한 환상과 추억에 빠져있다. 마치 언제라도 자신들에게 크나큰 위험이 닥칠것이라고 예견하듯 말이다. 물론 결국에 지난 2년전 '빈 라덴'이라는 '악당'에 의한 공포를 맞닥드려야 하긴 했다. 그 순간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하나님보다 슈퍼맨 내지는 스파이더맨을 불러보았을까?

영화는 그러한 미국인들의 소망을 들어주기라도 하듯 완벽하리만치 훌륭하게 스파이더맨을 부활시켜냈다-고 말하고 싶다.
슈퍼맨이나 베트맨도 충분히 멋졌지만, 최근 붐처럼 일고 있는 코믹스 시리즈의 영화화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데어데블, 스폰, X-MEN시리즈등 갑자기 수많은 히어로들이 종이가 아닌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겼지만 이만큼 멋지게 감동을 준 작품은 없지 않나 싶다.(개인적으로 X-MEN을 좋아하지만서도)

처음에는 스파이더맨 역시 위에 언급한 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 싶었다. 슈퍼맨에서 보여주는 전지전능함을 보여주진 못하겠지 싶었고, 베트맨만의 암울한 세계관이나 이중적인 인간성을 꼬집어 주진 못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맨허턴을 훨훨 날더니 이내 가슴 찡한 감동까지 주고, 나약했던 한 인간이 영웅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또다른 질문을 던져주며 갈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랑을 선택해야 하는가. 영웅이 되어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가..

피터 파커는 슈퍼맨처럼 애초에 전지전능함을 가진것도 아니었고, 베트맨처럼 부자도 아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차를 선물해주고 싶어서 돈이 필요했고 그렇게 볼성사나운 거미인간 복장을 하고 격투기 일을 해야만 했다. 그에게 스파이더맨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한낱 격투기장 아나운서였을줄이야.

스타워즈

1 역사
2 줄거리
2.1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
2.2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2.3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2.4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2.5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2.6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
3 스타워즈에 대한 말 말 말

1 역사

  • 1977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
  • 1980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5 - 제국의 역습
  • 1983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
  • 1997년 스타워즈 클래식3부작(에피소드 4,5,6) 스페셜 에디션
  • 1999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은 위험
  • 2002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 2005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2 줄거리

줄거리는 [http]NAVER 지식iN[] 에서 [http]qmfforxkdlrj[]님의 글

2.1 에피소드 1: 보이지 않는 위험

무역연합(Trade Federation)이 나부(Naboo) 행성을 봉쇄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공화국에서는 이를 중재하기 위해 콰이곤 진(Quigon Jinn)과 오비원 케노비(Obiwan Kenobi)를 사절로 나부에 파견한다. 나부 행성 궤도에 머물며 나부를 봉쇄하던 무역연합은 나부 행성의 통신을 두절시키고 항복을 강요한다. 그들은 다스 시디어스(Darth Sidious)의 명령으로 사절로 파견된 두 제다이 기사를 죽이려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두 제다이 기사는 나부 행성에 잠임하여 겅간(Gungan) 족을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아미달라(Amidala) 여왕이 사는 궁성으로 간다.

궁성에는 이미 무역연합의 군대가 진주하고 있었다. 콰이곤은 여왕을 설득하여 공화국 의회에서 이 안건을 다루게 하자고 한다. 여왕은 콰이곤 일행과 함께 행성을 탈출하여 공화국의 수도 코러선트(Coruscant)에 간다. 행성을 탈출하는 도중 궤도를 봉쇄하던 무역연합의 공격을 받아 하이퍼드라이브가 망가진다. 이를 수리하기 위해 타투인(Tatooine) 행성을 들른다.

그곳에서 와토(Watto)를 만나 부속을 구하려 했으나 그는 공화국의 화폐를 받지 않고 제다이의 마인드콘트롤도 통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 낙심하던 중 그곳에서 노예로 일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Anakin Skywalker)라는 소년을 만나 그가 파드 레이스(Pod Race)에 참가할 수 있게 해 주고 소년이 경주에서 우승할 경우 받게 될 상금으로 부속의 대금을 치루려 한다. 와토와 세불바(Sebulba)의 견제를 물리치고 아나킨은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노예의 몸에서 해방되어 콰이곤과 함께 코루선트로 간다.

아미달라 여왕은 의회에서 자신의 행성에 관해 도움을 청하지만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조정되는 의회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 상원의원 팰퍼티니(Palpatine)는 여왕에게 접근하여 자신을 의장으로 선출하는데 도움을 주는 대신 자신은 나부 행성을 돕겠다고 한다. 팰퍼티니에게 이용당하여 현 의장에게 불신임안을 제출한 아미달라 여왕은 의회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음을 느끼고 행성으로 돌아간다. 귀환 여정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콰이곤과 오비원이 동승한다.

행성에 돌아온 여왕은 무역연합에 대항할 군대를 마련하기 위해 겅간 족의 왕 나스 보스(Nass Boss)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한다. 이로써 해저왕국과 지상왕국간의 우의가 싹튼다. 여왕은 겅간 족이 야전에서 배틀드로이드(battledroid)와 싸우고 있는 동안 자신은 특공대를 이끌고 궁성에 잠입하여 총독을 사로 잡아 행성에서 무역연합의 군대를 철수시킬 계획을 수립한다.

여왕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는 듯하나 아나킨이 뜻밖에 단신으로 무역연합의 모선을 파괴함으로써 나부 행성의 승리로 돌아간다. 전투 중에 다스 몰에게 전사한 콰이곤의 유언에 따라 오비원이 아나킨의 스승이 되기로 한다.

2.2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

세월은 흘러 10년이 지났다. 다스 시디어스의 사주를 받은 두쿠 백작(Count Dooku)이 분리주의자들을 선동하여 공화국은 내전의 위기에 처한다. 분리주의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창설하자는 논의가 나오면서 은하의회는 격론에 휘말린다. 두 차례 나부 여왕을 지낸 아미달라는 은하의회의 의원이 되어 있다. 그녀는 군대창설 문제를 협의하러 코러선트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녀를 암살하려는 폭탄이 터진다. 아미달라는 무사했지만, 시녀 코데이가 사망한다.

최고의장 팰퍼티니는 제다이 원로회의에 아미달라의 경호를 부탁한다. 오비원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그녀를 경호하는 책임을 맡는다. 아나킨은 10여년만에 아미달라는 재회하면서 어릴적부터 동경해 왔던 아미달라에 대한 열정에 휩쓸린다. 오비원과 아나킨은 아미달라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막고, 범인을 붙잡는다. 그러나 장고 펫(Jango Fett)이 입을 막기 위해 범인을 죽여버린다. 오비원은 범인을 죽이는 데 사용된 무기를 단서로 커미노(Kamino) 행성을 찾아가고, 아나킨은 나부까지 아미달라를 경호한다.

오비원은 커미노에서 제다이의 요청으로 복제인간부대를 양성을 하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듣게 된다. 그는 복제인간배양에 유전자를 제공한 장고 펫을 만난다. 제다이 원로회의의 명령을 받아 장고 펫을 코러선트로 압송하려 하지만, 장고 펫은 오비원을 따돌리고 지오노시스(Geonosis) 행성으로 도주한다.

한편 아나킨은 나부 행성에서 아미달라와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다. 그러던 도중, 꿈 속에서 고통받는 어머니 슈미를 구하기 위해 타투인으로 향한다. 옛 주인 와토는 파산하여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도박빚에 쪼들린 와토는 슈미를 라스(Cliegg Lars)라는 농부에게 팔아버렸다. 아나킨은 라스를 찾아가지만, 어머니는 터스컨 레이더스(Tuskin Raiders)에게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나킨이 수소문하여 슈미를 찾아내지만, 오랫동안 고통을 당한 슈미는 아들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분노에 휩쓸린 아나킨은 터스킨 레이더스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학살한다.

장고를 쫓아 지오노시스까지 간 오비원은 두쿠 백작이 분리주의자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사실과 상업길드(Commerce Guild)까지 분리주의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발견한 사실을 제다이 원로회의에 보고하다가 공격을 받아 두쿠 백작에게 붙잡힌다. 두쿠는 다스 시디어스라는 싯(Sith)의 군주가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과 함께 싯을 몰아내자고 권한다. 오비원은 두쿠의 거짓말에 속지 않고 완강하게 거절한다.

오비원의 보고를 접하고서도 베일 오가나(Bail Organa)는 군대를 창설하는 문제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팰퍼티니는 의원이 된 자자 빙크스를 조종하여 자신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동의안을 제출하게 만든다. 그는 비상대권을 부여 받아 공화국 군대 창설에 박차를 가한다. 제다이 원로회의는 오비원을 구하기 위해 지오노시스 행성을 향한다.

타투인에 있던 아미달라와 아나킨도 오비원을 구하러 지오노시스 행성으로 향한다. 아미달라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던 두쿠는 손쉽게 두 사람을 붙잡는다. 두쿠는 경기장에서 세 사람을 처형하려 한다. 때마침 메이스 윈두(Mace Windu)가 이끄는 제다이들이 도착하여 전투가 벌어진다. 그러나 드로이드 부대에 숫적으로 압도되어 많은 제다이들이 전사한다. 제다이들이 전멸할 위기의 순간, 요다(Yoda)가 복제인간 군대와 함께 도착한다.

분리주의자들은 엄청난 수의 군대가 도착한 것에 충격을 받고, 전장에서 후퇴한다. 오비원과 아나킨은 두쿠를 체포하여 전쟁을 빨리 종결시켜려 한다. 오비원은 두쿠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나킨과 같이 싸우려 했지만, 성급한 아나킨이 먼저 달려들다가 두쿠에게 쓰러진다. 결국 두 사람은 두쿠에게 각개격파 당하고, 아나킨은 오른팔을 잃는다. 뒤늦게 요다가 달려와 두쿠를 쫓아내고 두 사람을 죽음에서 구한다.

요다는 첫 전투에서 분리주의자에게 이겼지만,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라고 염려한다. 오른팔을 잃은 아나킨은 나부에서 아미달라와 단둘이서 비밀결혼식을 올린다.

2.3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팰퍼티니 의원은 자신의 포스를 강화하기 위해 카이버(Kaiburr) 수정를 구하려고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파견한다. 아나킨은 화산이 많은 행성에서 카이버 수정을 발견하고 손에 넣는다. 그때 오비원 케노비가 나타나 수정이 아나킨을 배신하게 만들것이라고 저지한다. 둘은 대결을 벌이게 된다. 그 와중에 지진으로 아나킨이 발을 헛디뎌 용암 구덩이에 빠진다.

팰퍼티니는 용암속에서 타죽은 아나킨을 구해다가 대대적인 인조인간 수술을 통해 다스 베이더로 부활시킨다. 동시에 그는 그의 정치적 숙적들의 암살에 착수하고, 다스 베이더를 조종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아미달라를 제거하려 한다.

앤틸리즈가 코러선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미달라가 처형될 예정에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오비원과 함께 그녀를 구해 앨더란으로 간다. 팰퍼티니는 다스 베이더에게 조작된 영상을 보여주며 제다이 기사들에 의해 아내가 살해되었다고 말한다. 베이더는 그의 분노를 제다이 기사들에게 겨냥한다. 팰퍼티니는 대규모의 병력을 다스 베이더에게 주면서 제다이 기사들을 사냥하도록 명령한다.

앨더란으로 가는 도중 아미달라는 룩과 레이아를 출산한다. 팰퍼티니는 룩이 태어났음을 감지하고 , 근래에 출생한 사내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앤틸리즈는 베일 오가나를 만나 그와 함께 은하계의 미래를 논의한다. 제국의 함대가 앨더란을 봉쇄하자 앤틸리즈는 봉쇄를 뚫고 탈출하기로 한다.

아미달라는 베일 오가나의 집에 머물며 레이아를 돌보고, 오비원은 타투인으로 가 룩을 자신의 동생 오웬 라스에게 맡긴다. 그러는 사이 팰퍼티니는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여 성대한 즉위식을 거행한다.

2.4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

데스 스타에 관한 설계도를 입수한 레이아 공주는 앨더란으로 향하던 도중 제국군에게 사로잡힌다. 레이아는 사로잡히기 직전 R2에게 오비원을 찾아 그에게 도움을 전하라는 임무를 준다. R2와 3PO은 탈출정을 타고 사막행성 타투인(Tatooine)에 떨어진다. 그곳에서 장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자와(Jawa)들에게 잡혀 우연히 오웬(Owen)에게 팔린다. 오웬의 집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던 룩(Luke)은 두 로봇을 정비하던 중 R2에서 나온 입체 영상속의 여성에게 반해 오비원(Obiwan)이 누구인가 궁금해 한다.

삼촌 오웬은 R2가 내보였다는 영상을 무시하고 그의 기억을 지우도록 룩에게 명령한다. 그러나 밤사이에 R2가 오비원을 찾기 혼자서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룩은 R2를 찾기 위해 나갔다가 투스컨(Tuskan) 종족의 공격을 받는다. 마침 이웃에 살던 벤 케노비가 괴성을 사용하여 투스컨들을 쫓아내고 룩을 구한다. 룩의 이야기를 들은 벤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R2의 메시지를 본다. 그는 룩이 더이상 농사일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아나킨(Anakin)이 쓰던 라이트세이버(lightsaber)를 주며 반군을 돕기 위해 나서도록 한다.

룩은 벤의 권유를 뿌리쳤으나 로봇을 쫓는 제국군이 자와들을 학살한 것을 보고는 집으로 달려간다. 오웬과 베루(Beru)는 이미 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룩은 벤을 따라 모스 아이슬리(Mos Aisley)로 간다. 그곳에서 밀수꾼 한 솔로(Han Solo)를 만나 앨더란으로 가는 계약을 체결한다.

이때 한은 제국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자바 헛의 화물을 우주에 버린 일 때문에 목에 현상금이 걸려있었다. 선술집에서 만난 그리도(Greedo)는 못본 것으로 해주는 대신 현상금에 해당하는 돈을 요구한다. 한은 데크에서 기다리던 자바(Jabba the Hutt)를 만나 사실을 해명하고 손실에 대한 보상을 할 말미를 달라고 한다.

한의 밀레니엄 팰컨(Millenium Falcon)을 타고 앨더란으로 가는 도중 룩은 포스 수련을 한다. 일행이 앨더란에 도착하자 앨더란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제국군이 새로 건조한 데스 스타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앨더란을 파괴한 것이다. 일행은 근처를 비행하던 타이(TIE) 전투기를 뒤쫓다가 데스 스타의 견인광선에 걸려 끌려들어간다.

밀수화물칸에 숨어서 제국군의 눈의 피한 일행은 제국 컴퓨터에서 레이아 공주가 처형될 위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비원이 데스 스타의 견인광선을 작동하지 못하게 하러 떠난 사이에 룩과 한은 레이아 공주를 구하러 간다. 룩 일행이 레이아 공주를 구해 격납고로 왔을 때에 오비원은 다스 데비더를 만나 대결을 한다. 두 사람이 대결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시선이 집중되는 틈을 타 룩 일행은 팰컨을 타고 데스 스타를 탈출한다. 오비원은 다스 베이더의 라이트세이버를 맞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야빈(Yabin)에 있는 반군기지에 도착한 일행은 R2의 정보를 분석하여 데스 스타를 공격할 계획을 수립한다. 1인승 X윙을 타고 폭 2m의 배기구에 토피도를 집어넣는 것이 조종사들에게 부여된 임무였다. 룩은 이 공세에 참여하고 한은 돈을 챙겨 떠난다.

1차 공격이 실패로 끝나고 2차 공격에 룩이 참가한다. 계곡에서 엄호하던 전투기들이 뒤쫓던 다스 베이더에게 다 당하고 룩 혼자서 공격을 한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토피도를 발사할 즈음 어디선가 오비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신의 감을 믿으라는 그의 말에 따라 컴퓨터를 끄자 야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초초하게 상황을 주시한다. 결국 룩은 배기구에 토피도를 집어넣는데 성공하여 영웅이 된다.

2.5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

얼음행성 호스(Hoth)에 기지를 차린 반군을 찾기 위해 제국군은 전 은하계에 탐사 드로이드(prob droid)를 보내 수색을 실시한다. 호스에 자주 떨어지는 운석을 조사하기 위해 나갔던 룩은 왐파(Wampa)라는 토착생물의 공격을 받아 그의 굴로 끌려간다. 수색에서 룩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된 한은 그를 구하러 나간다. 룩은 구사일생으로 왐파의 동굴에서 탈출하여 눈밭에 쓰러진다. 그때 대고바(Dagobah)로 가서 요다(Yoda)로부터 제다이 수련을 받으라는 오비원의 목소리를 듣는다. 눈위에 쓰러진 룩을 발견한 한은 타고간 톤톤(tauntaun)의 배를 갈라 임시로 룩을 냉기에서 보호하고 얼음집을 지어 밤을 무사히 새운다.

제국의 탐사 드로이드가 호스에서 정찰을 나온다. 한과 츄바카가 이를 파괴하지만 발전소의 영상이 이미 제국군에 전송된 뒤였다. 반군은 호스 철수작전을 실시한다. 끝까지 남아서 전투를 독려하던 레이아는 한의 밀레니엄 팰컨을 타고 탈출을 하게 되는데, 팰컨의 수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하이퍼스페이스로 진입할 수가 없다. 이로 인해 제국의 끈질긴 추격을 받는다. 한편 룩은 대고바로 가서 요다를 만나 제다이 수련을 받는다.

소행성 지대로 대피했다가 스페이스 슬럭(space slug)의 입속으로 들어간 한 일행은 그곳에서 탈출하여 제국의 스타 디스트로이어(star destroyer)의 관제탑 뒤에 붙어서 추격을 모면한다. 제국군이 놓친 팰컨을 추적하기 위해 흩어지자 한은 그들이 버린 쓰레기 더미에 뭍혀 무사히 탈출한다. 팰컨을 수리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베스핀(Bespin) 행성의 랜도 캘리지언(Lando Carlissian)를 찾아간다.

한 일행이 랜도를 찾아갔을 때에 이미 이들의 뒤를 되쫓던 현상금추적자 보바 펫(Boba Fett)이 이미 제국군에게 연락을 취한 뒤였다. 한은 베이더에게 잡혀 질문도 받지 않고 고통만을 가하는 이상한 고문을 당한다.

대고바에서 제다이 수련을 하던 룩은 미래를 투시할 능력을 갖게 되는데, 베스핀에서 고통받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룩은 요다와 오비원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수련을 중단한 채 베스핀으로 향한다. 그동안 한은 룩을 탄소냉동시킬 장치를 실험할 대상이 되어 탄소냉동된다. 냉동된 한은 보바 펫에게 인도되어 자바 헛에게 보내지게 된다. 뒤늦게 베스핀에 도착한 룩은 그곳에서 베이더와 대결하면서 베이더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베이더에게 죽었다고 들은 룩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지만 그는 베이더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그에게서 탈출한다.

전투에서 잃은 룩의 오른팔은 인조팔로 완전히 치료하고, 랜도와 츄바카는 한을 찾아 팰컨을 타고 은하계를 누비게 된다.

2.6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

자바 헛에게 잡혀있는 한을 구하기 위해 룩, 레이아, 랜도, 츄바카가 총출동한다. 랜도는 현상금 추적자로 위장하여 자바의 궁성에 이미 잠입해 있고, 레이아는 츄바카를 잡아서 자바에게 파는 현상금추적자로 위장하여 성에 잠입한다. 밤중에 레이아가 한을 구하려 하다가 자바에게 발각되어 섹시한 옷차림으로 자바의 노예로 억류된다. 룩이 찾아가 담판을 짓지만 실패하여 사막에 사는 살렉(Sarlecc)의 입속에 던져지게 된다. 사막에서 룩은 자바를 공격하여 그의 모선을 파괴하고 한을 구한다. 일행은 반군 기지로 향하지만 룩은 요다를 만나기 위해 대고바로 향한다.

룩이 대고바에 도착해 보니 요다가 노쇠하여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요다는 죽기전에 룩에게 쌍둥이 누이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룩은 오비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누이가 레이아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다스 베이더의 선한 마음을 되살려 선한 사람으로 되돌리려 한다.

보렌 날(Voren Naal)로부터 제2의 데스스타가 건설중이라는 첩보를 전해 들은 반군은 데스스타 파괴작전을 수립한다. 엔도(Endor)의 위성에 있는 차폐막방생장치를 파괴할 공작은 한이 지휘를 맡고, 데스스타 공격팀의 지휘는 랜도가 맡는다. 룩과 레이아는 한과 함께 랜도로 향한다.

제국군의 차폐막을 통과할 때 베이더가 그곳에 있음을 느낀 룩은 베이더도 자신의 존재를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행의 안전을 위해 일행과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사히 엔도의 위성에 잠입한 한 일행은 제국의 전초병에게 발각되어 그들을 처치하는데 고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레이아는 일행과 헤어져 위성의 토착주민 이워크(Ewok)를 만난다.

한 일행이 레이아를 찾아서 헤매던 중 이워크의 함정에 걸려 그들의 음식재료가 될 위기에 처하지만 룩이 포스를 사용하여 그들을 제압한다. 3PO의 이야기를 밤새 들은 이워크들은 한 일행은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고 도움을 약속한다.

한편 룩은 레이아에게 그들이 남매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베이더를 구하기 위해 제발로 제국군을 찾아간다. 룩은 베이더를 만나 그를 설득하려하지만 베이더는 그의 바램을 배신하고 황제에게 아들을 인도한다.

한 일행은 차폐막 발생기지를 손쉽게 점령하는 듯 했으나 증강된 제국군에게 체포되고, 데스 스타를 공격하러 온 랜도의 군대는 차폐막이 제거되지 않는 것을 보고 큰 낭패를 본다. 황제를 만난 룩도 베이더와의 대결을 거부하다 황제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한 일행은 이워크들의 도움으로 차폐막 발생장치를 파괴하는데 성공하고, 아들의 죽음을 보다못한 베이더가 황제를 배기구에 던져서 죽여 버린다. 차폐막이 제거되자 랜도의 부대는 데스스타를 공격하러 들어간다.

사람들은 황제의 죽음을 축하하며 승리를 만끽한다.

3 스타워즈에 대한 말 말 말


누군가 스타워즈는 영화가 아니다. 스타워즈일 뿐이다. 라고 말한 것을 본적이 있다. 사실 인터넷에서 스타워즈를 검색해보면 굉장히 많은 스타워즈에 대한 분석과 평론이 나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의 말은 스타워즈를 가장 제대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스타워즈가 특수효과의 신기원을 이룩한 작품이며, SFX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이고, 전 우주적인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 냈다는 점등 분명 언제든 재해석되고 재평가될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 집중은 더이상 스타워즈가 한편의 시리즈 영화가 아닌, 문화로 인정받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 스타워즈는 말 그래도 스타워즈의 세계를 이루어낸 것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우주와 지구. 그리고 스타워즈라는 세계가 공존하게 된 것이다.

치즈케익

단순히 홈페이지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서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작업을 해 오면서 나름 갖추어가는 생각이 있다면, 이 작업이 결코 작고, 우습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의 AJAX와 같은 기술에 힘입어 이 같은 생각이 더욱 확고해 진것이긴 하지만 세상에 수 많은 웹이 존재하고, HTML로 작성되고 있다. HTML을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정말 제대로 된 웹페이지 제작자는 없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확장 가능하고 유지보수가 용이한 정말 제대로 된 웹페이지를 철저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국내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할 정도이니까.

내 목표는 그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웹페이지 제작자가 되어 웹디자이너나 웹프로그래머와 동등한 위치에서 웹을 구성하는 직업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웹코딩의 철학은 치즈케익이다. 하나의 웹페이지는 사용자 중심으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제대로 보여져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웹페이지는 똑같이 나누어진 케익 조각과 같아야 하며, 오랫동안 숙성한 치즈의 맛처럼, 오랜 시간 갈고 닦은 노하우와 정직함이 HTML소스에서 묻어나야 한다. 이 맛은 방문자에게 정직한 웹을 소개할 뿐 아니라 같은 웹제작자들에게도 귀감이 될 만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치즈케익같은 웹페이지. 내 철학은 여기서 시작된다.

빈집

http://content.nkino.com/Movie/11363/p.gif
감독 : 김기덕
배우 : 이승연, 재희
장르 : 드라마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88분
제작년도 : 2004년
개봉일 : 2004년 10월 15일
국가 : 한국
공식홈페이지 : www.binjip.co.kr

시놉시스 :
빈 집에 갇힌 여자와 빈 집을 여는 남자 태석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을 돌며 열쇠구멍에 전단지를 붙인다. 그리고 오랫동안 전단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은 집을 열고 들어가 얼마간을 ..

아무도 없는 빈집- 아니 왠지 누군가 다녀간듯한 나의 공간.
그림자도 없이 내 등뒤에 바짝 숨어있는 섬뜻함.

잔득 그것만을 남긴채 머리속을 비워버린 영화. 빈집-

붉은돼지

(2004. 01. 08)
http://content.nkino.com/Movie/4296/p1.gif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배우 : 아케미 오카무라, 아키오 오츠카, 토키코 카토
장르 : 어드벤처, 가족영화, 로맨스
등급 :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 93분
제작년도 : 1992년
개봉일 : 2003년 12월 19일
국가 : 일본, 프랑스
공식홈페이지 : www.porco.co.kr

시놉시스 :
사람들은 그를 붉은 돼지라 부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 말. 전쟁의 잔혹함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공군 비행사 포르코 로소는 이탈리아의 무인도에 혼자 살며 공적(空敵:하늘의 해적)들을 소탕한다. 사람들..

며칠전에 공각기동대라는 고전(?) 에니메이션 한편을 보고 난 후에 다시 92년 작품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돼지"라는 에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아름다운 아드리아의 해를 배경으로 붉은 색 비행정을 모는 돼지의 이야기이다. 미야자키의 자전적 영화로 만들어져서 수 많은 대회에서 수상을 받은 작품으로 토토로와 더불어 꽤나 유명한 작품이라 여기저기 멋드러진 작품 해설도 많다. 개인적으로도 이 감독의 작품을 좋아해서 토토로부터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까지 유명한 것들을 챙겨 봤다고 생각은 했는데 유독 이 작품만은 놓치고 있었던 것이 나로서도 의아스럽다.

몇 년 전인가 어떤 작집에서 이 작품을 몇 장에 걸쳐 특집으로 해설한 것을 본적이 있었는데 한 번 봐야지 했다가- 당시에는 비디오로밖에 작품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여의치가 않았었다. 뭐 지금에야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지만 말이다.

이러저런한 사연을 뒤로 던져놓고 짧게 감상평을 쓰자면 정말 재미있다-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이 생겨서 인터넷을 뒤져 보긴 했지만 딱히 만족할만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뭐 눈에 띄는 글 몇개만 살펴보아서 그런것이겠지만 사실 일부러 전문가의 해석을 믿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강했다.

처음 붉은돼지가 주인공으로 나왔을 때는 의레 만화속 캐릭터니까- 하면서 보았는데 뜬금없이 지나(극중 모로코(붉은돼지)의 연인)가 '마법'이야기를 꺼넨다. 왠 마법? 판타지였던가? 그러면서 인간이었음을 증명하는 사진 한장이 나타나지 않는가? 그럼 붉은돼지는 애시당초 인간이었다는건데.

그런가 하면 밀라노의 지하상가에서 '두더지'에게서 무기를 구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더지는 붉은돼지와의 대화에서 '우리'라는 동질적인 대명사를 쓰며 인가과 분별하고자 한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돼지가 인간들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돼지는 인간들과 더욱 잘 어울리고 있다. 어딜가든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며 인기도 좋다. 그를 사랑하는 인간 여인(지나)도 있을 정도니까. 심지어는 열 입곱의 소녀(피오)까지도 그를 좋아한다.

그럼에도 돼지는 결코 인간으로 되돌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유는 피오의 질문에 의해 풀린다.
모로코의 비밀 아지트(무인도)에 함께 있던 피오는 잠결에 모로코의 인간적 모습을 보게 되고 인간이었을 때의 이야기를 부탁한다. 모로코는 전투에서 동료들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살아남았음에 인간적인 죄책감과 전쟁에 대한 증오심에 의해 스스로를 돼지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을 걸어버리고 만 것이다. 즉- 모로코는 스스로 돼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쉽게 생각해보면 모로코가 거부했던 부와 명예. 인간에의 탐욕과 비겁함(전투에서 동료를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것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은 돼지로 상징될 수 있다. 고전에서부터 돼지는 언제나 그렇게 그려져 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닐것이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수 많은 동물중에서도 아주 특별하게 모로코가 원했던 동물을 "돼지"로 선택했다. 이것은 비록 생김은 돼지가 되었지만 모로코 본질은 아직도 인간이며 인간이 돼지의 탈을 쓰고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인간의 탐욕을 부정하는 자기폭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난데없이 미녀와 야수의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피오의 키스를 받은 모로코가 인간이 된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해석은 아직도 없는 듯 하다. 감독 스스로도 이 부분은 일부러 해답을 남겨두지 않고 처리해버린 듯 하다. 닥분에 아직도 이 장면을 두고 모로코가 피오의 키스를 받고 인간이 되었다와 아니다로 팽팽이 싸움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여하튼 나는 모로코가 인간이 되었다. 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것은 피오의 단순한 키스만은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 피오의 역활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피오는 피콜로의 손녀로 열입곱의 여자아이다. 처음 모로코가 피오를 만났을 때 그는 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나이에 이미 최고의 파일럿이 되어 있었던 자신을 존경한다는 피오의 말에 모로코는 조금씩 피오를 어린아이가 아닌, 여자가 아닌 능력을 가지 인격으로써 인정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피오가 가지고 있는 순사함과 열정에 사로잡혀간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단면이자 본성인것이다. 즉, 모로코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인간에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모로코는 피오를 위해서 결투를 하게 되고 피오의 키스를 받고(순수함과 열정)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된 것이다. 다시금 인간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붉은돼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탐욕을 부정한다. 이는 극중 파시즘으로 들어난다. 그리고 감독은 무정부주의를 희망한다. 아드리아의 바다와 하늘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이 돼지가 됨으러써 부정한다. 돼지가 밥을 마다하는 꼴이다. 얼마나 우습겠는가? 그렇게 세상을 뒤집어 까발린 것이다.

바닐라 스카이


알레하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Open Your Eyes,1997>를 리메이크한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작품.
1 보고 나서
2 핵심이 뭐였나?
3 두번의 사건
4 정리해보면
5 비선형적인가?
6 다시 처음
6.1 이 영화에 대한 당신의 감상은?

1 보고 나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공부하던 중 알게 된 작품이다. 사실 원작인 Open Your Eyes는 오래전에 TV로 보았던 기억이 있지만 그 당시만해도 어린 나이였고 너무 어려웠던 이 영화는 내게 그다지 감흥을 가져다 주지 못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 리메이크 작품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마음의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2 핵심이 뭐였나?

바닐라 스카이는 현실과 꿈 사이에 그 경계를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평을 쏟아 낸듯 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면 다른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설정은 단지 2차적인 방법론이었을 뿐 실재로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현실과 꿈 그것들 자체가 차이가 없음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선택"이다.

3 두번의 사건

영화는 두번의 사건에 의해서 전개가 되고 있다. 첫번째 사건은 교통사고, 두번째 사건은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오프닝은 극도로 외로운 주인공의 내면을 보여준다. 현실로 돌아온(꿈에서 깨어난) 주인공에겐 첫 눈에 반하게 되는 "여주인공"을 만나게 되고, 첫번째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첫번째 현실이 된다. 이후 영화는 이어지는 삶을 보여주는데 이는 현실이 아니라 꿈의 공간이다.(영화에서는 "맑은꿈"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교통사고 이후 일그러진 얼굴을 성형수술로 완벽하게 회복하며 여주인공과의 사랑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 시점에 교통사고를 냈던 스토커 여인에 대한 죄책감 내지 미안함이 강한 내면의식으로 작용하여 행복한 삶(맑은꿈)이 혼란스러운 삶(악몽)으로 변질되고 만다. 여기서 두번째 사건인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주인공이 스토커의 모습으로 보이는 사랑하는 여인을 살해하게 된 것이다. "맑은꿈"을 주인공에게 팔았던 기술관리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되면서 끝이 난다.

4 정리해보면

정리해보면, 바닐라 스카이는 두 번의 현실과 두 번의 꿈.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를 도식화 해보면 다음과 같을 수 있다.

꿈1 -> 현실1(사고1발생) -> 꿈2(사고2발생) -> 현실
하지만, 영화를 평면적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도식화도 가능할법 하다.

꿈1 -> { 현실1(사고1발생)        } ┬-> 현실              { 꿈2(사고2발생)   } ┘
여기서 본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두번째 도식이다. 도식대로 설명하자면 현실1과 꿈2가 선형적으로 나란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병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확히 같은 시점에서 시작되지는 않지만 현실1속에서 사고1이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꿈2는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정확히는 나이트클럽씬 이후)

5 비선형적인가?

병렬적인 서사구조라 함은 비선형적인 구성이라는 것이며, 이 영화가 이같은 비선형성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보는 까닭은 영화의 포인트가 인간의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데이빗이 옛 여인의 차를 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영화는 단 하나의 선택적 이야기만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법적으로 주인공의 상상이나 꿈(실제의 꿈)을 통해 다른 선택의 이야기를 보여 줄 수 있겠으나 이 때의 이야기는 이미 하나의 선택 이후의 선형적인 구성위에서 존재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이 동시적일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선형성을 띈 채로 병렬적 구성을 가진 이 영화는 꿈2의 이야기가 선위에 있지 않다고 보아야 옳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현실1에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육체를 죽이고(냉동) 정신세계에서의 삶의 재현을 희망하게 된다. 즉, 주인공의 이야기가 사고1발생 시점으로 정확히 되돌아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선위에서 탈출하게 된다. 또 다른 선을 만들고 수평을 이룬채 시간의 흐름대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두 개의 선은 다시 하나의 선으로 만남을 이룬다. 꿈의 이야기가 깨어나면서 현실의 이야기속으로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이 때 꿈의 이야기가 사건1시점으로의 현실로 돌아왔다면 이 영화는 선적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정확히 150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현실로 주인공을 반환한다.

6 다시 처음

끝으로 이 영화가 하이퍼텍스트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그와 같은 특징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으로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오프닝과 엔딩 씬의 장면이 동일하며 모두 꿈의 공간이다. 또한, Open Your Eyes라는 소리로부터 깨어난다. 즉, 다시 깨어난 현실에서 이야기는 되풀이되거나(반복)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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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배우 : 가이 피어스, 스티븐 토보로우스키, 조 판톨리아노, 캐리 앤 모스
장르 : 미스테리, 스릴러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12분
제작년도 : 2000년
개봉일 : 2001년 08월 25일
국가 : 미국

시놉시스 :
전직이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에게 기억이란 없다.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레너드 셸비 라는 것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도 작품으로, 기억을 10분 밖에 지속시키지 못하는 주인공의 복수를 다루는 영화.
1 뒤집힌 이야기
2 반복
3 반복되는 이야기. 끝나지 않는 이야기
3.1 이 영화에 대한 당신의 감상은?

1 뒤집힌 이야기

<메멘토>는 아내의 강간과 살해, 그리고 머리에 받은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10분 밖에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래너드'에 의해 이끌려 가는 이야기이다. 래너드의 목적은 단 하나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인을 찾아 복수 하는 것. 감독은 이 같이 심플한 스토리를 아주 까탈스러운 서사구조를 통해서 보여주기 시작하는데 인과의 순서를 뒤집는 수법을 사용한다. 즉, 결과를 선행시키고 원인을 후행 시키는 기법인데, 단순히 커다한 줄거리의 인과만을 뒤집는 것이 아닌 먼저 잘리어진 n개의 씬들이 제 각각 뒤집혀져 보여지고, 사이 사이 흑백의 순차적인 씬이 또다시 삽입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로써 관객은 스스로가 결과를 통한 원인을 찾고자 애쓰게 되나, 뒤이은 씬의 결과는 또다시 앞 씬의 원인에 대한 믿음을 깨뜨리게 만들면서 혼란스러울 지경으로 몰아간다.

2 반복

'래너드'가 기억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내의 살인범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감독은 오프닝에서 '래너드'에 의해 살해되는 한 남자를 비쳐준다. 관객은 뒤이은 원인장면에 의해서 그가 살인범이었음을 믿게 된다. 하지만 이어진 씬들은 예상밖의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심지어 또다른 피해자(?)를 보여준다. 즉, '래너드'는 또 한번의(시간 순서상 오프닝보다 먼저 일어난 살인)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극중 대화를 통해서 '래너드'는 이미 또 한 명(실재 범인으로 짐작되는)을 살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 '래너드'는 총 3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래너드'는 이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과거의 살인을 인정하지 못하고 기록(사진)을 지워버리는 것이다.(이 장면은 사진과 메모, 문신등으로 완벽하게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래너드'자신의 주장을 전복시키는 것으로 기억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살인의 횟수와 시점이다. 분명 관객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래너드'는 극중 3번의 살인을 저질렀으며, 이 후 n번의 살인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래너드'의 시점에서 살인은 단 한번 일어난 사건이다. 기억을 10분이상 지속시킬 수 없는 환경적 요인과 기억을 언제든 조작할 수 있다는 사회적 조건이 맞물려 살인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고 '래너드'는 10분이 지난 후 다시금 살인범을 찾게 된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반복되기 시작한다.

3 반복되는 이야기. 끝나지 않는 이야기

가끔 오프닝과 엔딩이 같은(또는 비슷한) 영화를 볼 수 있다. 오픈 유어 아이즈가 대표적일 수 있다. "Open your eyes."라는 여자의 목소리에 의해 눈을 뜨는 남자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는 역시 같은 목소리의 여자에 의해서 눈을 뜨며 끝이 난다. 관객은 오프닝의 눈 뜸이 꿈이었음을 점차로 확인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엔딩 장면을 통해서 "아~ 이제 현실이겠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쉴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 엔딩 장면 역시 꿈일 수 있음에 주목한다. 즉, 주인공은 더이상 꿈이 아닌 현실을 택했고, 그렇게 눈을 떴지만 영화는 그것으로 끝이 나 버린다. 고로, 뒤에 이은 이야기가 또다시 꿈일수도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메멘토>역시 오프닝과 엔딩이 맞물려 있음을 확인 해 볼수 있다. 즉. <메멘토>는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러브 액츄얼리

http://content.nkino.com/Movie/9555/p.gif
감독 : 리차드 커티스
배우 : 휴 그랜트, 엠마 톰슨, 리암 니슨, 콜린 퍼스, 로라 리니
장르 : 코미디, 로맨스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24분
제작년도 : 2003년
개봉일 : 2003년 12월 05일
국가 : 영국, 미국
공식홈페이지 : la.movist.com
공식홈페이지 : www.loveactually.com

시놉시스 :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증오와 탐욕으로 가득찬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찬 곳이다.” 잊을 수 없고, 후회스럽고, 황홀하며, 자극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때로..

명절때면 슈퍼마다 종합선물셋트라는 것이 등장한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인데 온갖 종류(?)의 과자들을 그런대로 큼지막한 박스에 담아서 포장해둔 것이다. 만원쯤한다.
러브 액츄얼리는 꼭 그런 종합선물셋트같은 것이었다.

러브 액츄얼리라는 영화는 혜진이의 애원 아닌 애원 때문에 보게 되었다. 자기가 먼저 봤는데 너무 좋았더란다. 꼭 다시 보고 싶더란다. 나야 뭐 아직 보지도 않은 영화니까 거절의 이유가 없었고 그러자고 했다.

열 가지의 아름다운(?) 사랑이 아름답고 꼬여 있는 한 편의 종합상자.
난데 없이 등장한 영국 수상의 비서와의 사랑에서부터 출판사 사장과 비서의 불륜. 이룰 수 업는 사랑에 감동적인 고백의 장면까지. 아들을 사랑을 돕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시작되는 사랑. 변태 노가수의 뚱땡이 매니져와의 국경을 뛰어넘는 3류 소설가의 사랑까지.

영화는 한 순간도 사랑을 속삭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규칙을 지켜나가려는 듯. 싱글의 가슴을 갈기 갈기 찢어대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지만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평범한 나의 심성은 어릴적 부모님이 주신 종합선물셋트를 받았던 기분 마냥 부드럽게 취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TO ME, YOU ARE PERFECT

아마도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친구의 아내를 사랑한 남자의 피켓고백이 아닐까 한다. 그 방법이야 예전의 어떤 어떤 영화들에서도 한 두번쯤 등장했던 것이었지만 크리스마스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나에게 완벽합니다. 라고 고백한 남자의 진심은 지켜보는 나로서도 너무나 떨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벌써 현실에서도 크리스마스가 하루 앞으로 다가와 있다. 오늘밤 또 수 많은 사랑이 영화처럼 만들어질 것이다. 기적처럼 눈이 내려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늘밤은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모두들 사랑하기를.. 심술궂은 마음을 가지면서도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