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5일 금요일

개념없는 손님 여러분~

소주 값 오른지가 한달째인가 그렇다. 오늘 평소 들르지도 않던 아니 처음 들린것 같은 한 아주머니가 소주 두 병을 사러 오셨는데
대뜸 천 원씩이지? 라고 묻길래. 아니요. 천 백원이예요-
천 백원? 천 백원은 또 뭐야? 저기 xx슈퍼는 천원이던데.
네- 또 저 xx슈퍼도 천원이던데 왜 여긴 백 원 더 받아? 응?
네? 올른지 좀 됐어요. 거긴 큰 슈퍼잖아요.
(노려보며) 말은 잘하지-!

하하... 대략 어이없는 아주머니. 맘 같아서는 안팔고 싶고. 거기 가서 사라고 해버리고 싶었지만. 어차피 또 올 손님도 아닌것 같고 말 상대조차 하기가 싫었다.

오늘이 유난한걸까. 왜 들어오는 사람마다 지나가는 손님들이고 죄다 반말일까? 야. 뭐좀 줘. 저거좀 꺼네와.

이 사람들 도대체 개념이 있는걸까? 자기보다 어려보이면 무조건 반말해도 된다는 생각들이 단단히 박혀 있는지. 그저 내가 학생 같아 보이니 그런것인지. 그렇담 내 나이 알면서도 꼭 말 높여주시는 동네분들은 병신이던가?

나는 가게 주인으로 물건을 파는 것이고, 당신네들은 손님으로 물건을 사러 온다. 당신들하고 나는 위아래 관계도 아닐진더러 옛말대로 손님이 왕이니 하는것도 다 얼어죽을 소리일 뿐이다. 손님이면 손님답게- 들어와주어야. 주인도 웃는 얼굴로 대하고 서비스도 하는 것이지. 동네 조그만 슈퍼에 와서 이름대면 다 알만한 대형슈퍼에서 뭐가 얼마나 싸다느니 해대면 뭐- 어쩌라고? 거기가서 사시라고. 언제 우리집 와서 사달라고 광고라도 했던가. 본인이 귀찮아서 찾아왔으면 우리집 가격에 사가는것이고. 이래 이래서 이렇게 받습니다. 했으면 알아듣고 사던지 말던지 하는 것이지. 대놓고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고 쳐다보면 단가. 내가 어려서? 어려보이니까? 당신이 나이를 먹었으면 당췌 얼마나 먹었길래? 생각이 짧은것 같으오. 당신들.

아직도 고리타분하게 왕대접 받고 싶으신 분들.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백화점 매장이나 들리시지요. 여기는 동네 조그만 슈퍼일 따름입니다. 아하하하. 우습구료.

2004년 6월 24일 목요일

머리 스타일?

중학교를 입학하고서부터 언제나 똑같았던 스포츠 머리.
정말 3cm도 안되는 짧디 짧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치켜 세우고는 그렇게 6년을 지내다 보니 조금씩 자라나는 머리를 보면서 알수 없는 두려움과 흥분으로 며칠을 보냈던 기억도 난다.

애시당초 곱슬머리에.. 숱도 많은 머리..
뭘해도 폼이 안나긴 마찬가진데.. 대학 들어와서 처음 염색이라는 것도 해보고.. 젤이라는것도 발라보고.. 나름대로 세워보겠다고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대다 방바닥이 다 끈적거렸던 날도 있었는데.

뭐- 그때 잠시뿐이긴 했지만. 나도 으레 다른 아이들 하는 모양으로 그렇게 머리에 스타일을 주고도 싶었던것 같다.

지금은 그저 한달에 한번 미용실에 찾아가 앉으면-
그 머리 그래도? / 네-

하고는 10여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제와 똑같은 머리가 만들어진다.
하하.

그런데. 이번에 머리를 자르러 갔던날엔 아주머니께서 염색을 한번 해보라 하시던데. 장사속?

가끔은 나도 그렇게 색이라도 내어서 내 뒤숭숭한 마음에 변화를 주고 싶긴 하지만..^^ 참 뭐랄까.. 그다지 효과가 없더라. 그냥 그래.

오늘 누가 머리를 한다고 하는데. 살짝 놀랐는데.. 음. 그 사람 무슨 마음의 변화라도 있는건 아닐까? 해서였을까.. 하하.. 괜한 앞지르기다. 아무일 없는것을. 더우니까. 방학도 했잖아. 머리도 상했다니. 바람도 쐴겸. 그렇게 머리를 하러 나간다고 한다. ^^

2004년 6월 23일 수요일

테러..죽음.. 씁쓸함..

오늘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온세계가 술렁인것 같다.
당장에 한국사람이 당한일인지라.. 한반도는 발칵 뒤집혔다고 보는게 맞을테다.
뉴스마다 온통 그 얘기고.. 볼적마다 마음아프고.. 속이 끓는것은 나 역시 한국 사람임이기게 그럴진데.. 어쩐지 쓴웃음 나는 까닭은 멀까..

알 자르카위라지요? 지목되고 있는 테러집단의 우두머리가...
문득 지난 아프간에서의 빈 라덴이 떠오르더라구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지만 빈 라덴을 잡지 못했죠. 우린 그 광경을 TV로 보면서 얼마나 고소해 했었는지.. 빈 라덴을 통해서 미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는 통쾌함을 맛봤던건 아니었던가요.. 물론 다들 그랬다는건 아니지만.. 분위기는 분명 그랬던거 같은데..
쫓는 부시와 잘도 도망치는 빈 라덴을 그려넣은 만화아 동영상.. 그 많은 패러디와 풍자가 그냥 나왔던건 아니었겠죠.

오늘 우리나라 사람 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테러집단에 의해서.
하하.. 우리는 정말 엄청 분개하고 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더라구요. 한쪽에서는 군대를 만들어서 뭐에 쓰냐 이럴때 써야지(뭐 꼭 태혁군 글 아니라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하기도 하고.. 전쟁.. 좋죠. 화도 나는데 확 밀고 들어가서 테러집단을 깡그리 뭉개버리는거! 복수 해야지요 복수.

그런데 그럼 또 미국이랑 모가 다른지. 이번엔 쫓는 노무현이랑 잘도 도망치는 알 자르카위를 풍자하는 동영상이 마구마구 만들어 지려나요..^^

911테러로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오늘 김선일씨의 죽음...
숫자가 중요하진 않죠. 사람의 생명인데.. 그 중함을 어찌 따지겠습니까.

헌데도.. 씁쓸한 이 뒷맛은 영 가시질 않네요..

수호에게서 온 편지

군대가서 두번째로 보내온 편지에..

형 우리 서로 더욱 우애있고 진솔한 형제로 지내자-

녀석... 그 말 한마디로 형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니.

건강해야한다!

2004년 6월 22일 화요일

3000번 버스

7시 반쯤 잠에서 깨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은 얼추 8시가 되어 집을 나선다. 집에서부터 시외버스 정류장까지는 20여분 남짓의 걸음으로 가고, 운이 좋거든 곧바로 타겠지만, 대게는 5~10분 정도는 서너명의 줄을 따라 선채로 기다려야 한다.

3000번 버스를 처음 타게 된 것은 2년전 여름.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정확히는 늦봄의 어느날이었겠다. 어렵지 않게 찾아간 새 아르바이트 자리는 강남의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대로에 있었다. 처음엔 전철을 타고 언제 그곳까지 가려나 겁부터 먹었는데 출근하고 3일째인가 되는날 수원에서는 3000번 버스가 그 앞에 바로 선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걱정반 기쁨반으로 기다렸다. 버스는 뭐- 학교에서 타는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1300원(당시에)이나 되는 돈을 카드로 삑~하고 뜯겨야 했다. 그래도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그 먼길을 빙빙 돌려가는 것을 떠올리면 1~2백원 더 든다 하여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버스는 편했다. 내가 타는 곳에서는 자리도 많을뿐더러 적당한 자리를 잡으면 살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과 햇살을 느낄수 있었다. 무언지 형언할수 없는 그리움과 아픔을 삮히듯.

오늘 아침엔 잔득 피고한 머리를 짊어지고 올라탔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 자리뿐이었지만 피할쏘냐. 냉큼 앉아 머리를 대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잔득 무거워진 눈을 떠 보았을땐 벌써 양재 꽃시장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 이 부분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공원을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차들은 왠 차들은 또 그렇게 많은지... 3000번 버스를 호위라도 하듯 밀려온다. 달라 붙는다.

버스의 덜컹거림은 때때로 엉큼한 기억의 조각을 집어오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여자아이의 귀여웠던 실내화하며, 고등학교 시절 내게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점심시간 내내 교실 앞을 서성거렸던 그 친구의 뒷모습. 그리고 벌써 3년이 지나버린 그 아이의 핸드폰에 녹음된 목소리까지...

줄기와 뿌리처럼 이어진 기억의 조각들은 서로 엉뚱한 길찾기를 되풀이하며 이어져 나간다. 만남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 그리고 또 헤어짐. 계획. 목표.. 다짐.. 약속... 거짓말.. 솔직함... 진심.. 만날래? 헤어지자고? 친구사이로. 그냥 그렇게... 선생님이 싫습니다. 이젠 보기도 싫다구요! 때론.. 그저 말없이 눈감고 가버린 사람도.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졸업을 하고 친구들을 잊어가고.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 평생지기를 만나고 졸업하고.. 꿈을 잃어버리고.. 대학은 또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미쳐 생각의 끝이 어디론가 다다르기도 전에 버스는 종점에 와 있다.
나는 잔득 숙여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반쯤 잠에 잠겨있던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고 강남역 1번 출구 앞에 서있다.

또 하루가 이곳에서 시작하는구나.

2004년 6월 21일 월요일

자전거 타기

한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자전거 타기처럼...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탔던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의 머리에 머리를 밟고 올라가보면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산 밑의 허름했던 우리집이었고, 그 비탈진 고개를 나는 세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리막길을 따라 길은 언제나 차로 북적이는 큰길이 나왔고 그 삼거리엔 파출소 하나가 있었다.

두번이나 그 삼거리의 험한 자동차 밑으로 자전거가 빠려들어가 납작해지는것을 경험했다면 내 몸은 자연스레 자전거타기를 겁냈어야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수술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자전거 패달을 밟고 달렸다. 파출소 아저씨의 어의없어 하시는 표정이 재밌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말이다.

두발 자전거- 정확히는 떠오르지 않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 해서 처음 타본것 같다. 어머니께서 어디선가 줏어오신 빨간색 자전거였다. 여기저기 녹도 많이 슬고 체인도 낡았지만 자전거포를 하루 다녀오더니 금새 새것같이 되었던 내 첫번째 두발 자전거-

온종일 탔을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전거를 먼저 살피고, 밥먹는 것조차 잊은채 그 좁디 좁은 골목길과 동네를 휘저으며 자전거 타기에 힘을 쏟았다. 처음 며칠은 제대로 서지도 못했고, 처음 한주간은 똑바로 달리지도 못했지만.. 어느덧 자전거는 내 발이 되어 챙- 챙- 팽팽하게 당겨지는 체인의 힘으로 달렸다. 아스팔트 도로 위를.

꽤 오랜시간이 지났을 무렵. 몇번이나 자전거를 잃어버렸고 지금은 자전거가 없다. 작년 여름이었던가. 여의도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 휴가 나온 친구가 여의도 공원까지 와 주었던적이 있다. 녀석은 일산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 한번 타 봐도 돼? / 응.

꽤나 높아진 자전거- 아니 그 높아진 시간만큼 떨어져 있던 자전거. 타 보지 못했던 자전거. 잘 탈 수 있을까?

달린다. 아하.. 달리는구나.

자전거. 몇년이나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체인을 굴리는 이 느낌과 감각. 잊어버렸을짐한 시간.. 그만큼 지났는데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달리기 위해 몸부림 치지 않아도 몸은 균형을 잡고 그 큰 자전거를 곧게 세우며 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자전거와 같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처음 배울땐 힘이들어도 마냥 좋아져서 헤어나오지 못할정도로 강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기도 쉬운 그것..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시작되면 몸이 기억하고 있는건. 내 감각이 기억하고 있는것 그래서 처음처럼 힘들이지 않고 시작될 수 있는것. 처음처럼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고. 좀 더 잘 타보려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그게 두번째 사랑이지 않을까.

2004년 6월 14일 월요일

사부가

유난히 장마비가 많던 해였습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우산을 두고 등교한 날이되면 주룩 주룩 내리는 비를 모두 다 맞으며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었습니다.

그때즈음하여 아버지는 특별히 일이 없는 날이 많았었습니다. 하시는 일이 설비였는데. 그렇게 비가 많은 날은 공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럴때면 언제나 아버지는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시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하교시간에 맞추어 기다려주시는 것까지.

그렇게 그해 여름 나는 아버지의 따듯한 마음 아래에서 모진 장마를 피할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