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 30일 금요일

중복을 하루 앞 두고

덥다 덥다 해도 이렇게 더울수가 있을까? D-15란다.
보름후면 이름하여 "태극전사"들이 그 덥디 덥다는 그리스로 간단다. 죽지나 않기를. 묵념-.

주중에 한주 쉬기로 한지 3주째가 된 것인가? 시간 참 빠르다.
어쩌다 고른 날이 어쩌다 보니 오늘이 되었는데 참으로 덥다. 아침부터 종일 가게를 보며 앉아만 있지만 흐르는 땀을 어쩌지 못할 지경이다. 어제 새로 산 선풍기까지 총 3대가 돌고 있다. 그렇게나 에어컨 노래를 했건만.. 둘 곳이 없다고 결국 선풍기 바람으로 한 여름을 버텨내고 있다. 나야 두달내내 회사 에어컨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서도 어머니는 좋지도 않은 몸으로 더위와도 싸우신다. 하루에도 몇버씬 짜증스러우실텐데.. 지치실텐데.. 대단하시다.. 오늘만큼은 내가 이 더위 다 받겠습니다.

뭔가 해야할 일이 많았다. 방학내내 해결보지 못한 논문도 도로 끄집어 내서 뭔가 해야할지를 체크해 봐야 했고, 편집부 모임과 관련한 몇가지 내용들을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 접어뒀다.
어제부터 받기 시작한 영화 두편을 오후 내내 봤다. 나인마일2편과 스파이더맨2편. 어쩌다 보니 두 영화다 2편이었는데 나인마일은 전편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스파이더맨2는 역시나 기대이상으로 멋졌다. 극장에서 찾아보지 못한게 씁쓸할 뿐이다.

5시 반쯤 되서야 영화를 다 보고 시내로 나섰다. 100일 휴가를 끝내고 귀대한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어쩌다가 안경테를 부러뜨렸는지 하나 맞춰서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안경집 이름은 모르고, 그저 옛 로얄극장 뒤편으로 대지서점가는길에 있단다- 어디냐? 초저녁에 가까워지는데도 햇볕은 강렬하다 못해 징할정도다. 횡당보다 맞은편 태양이 파란불 되거든 내쪽으로 건너왔으면 한다. 내 등뒤로-

한바퀴를 휘 돌았다. 중앙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옛 로얄극장 뒷 골목에서부터 자리를 옮긴 대지서점까지. 하도 간판만 보고 가다 어느 옷가게 낮은 간판에 머리까지 박았다. 어찌나 아찔하게 아프던지. 오는 내내 좋지 않은 생각들을 했는데 그 때문인가.. 하늘에서 아버지가 혼내셨나 보다. 그런 생각일랑 하질 말라고- 네- 아버지.

한바퀴를 돌고나니 대중잡아 세집이다. 좀더 시장쪽으로는 더 많이 있기는 하다만 일단 동생이 일러준 방향으로는 코너에 한 집. 코너 돌아서 나란히 두 집이 있다. 좋다. 코너 집부터 들어가보자.

저기- 죄송한데. 몇달전에 여기서 안경을 맞춘 사람 기록이 남아 있나요? / 네- 누구신데요? / 추수호라고. / (확인중)아- 있네요.

운이 좋았나?

안경을 맞추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여분. 가격은 7만원. 결제는 카드로 일시불. 그 사이 난 2층 대기석(?)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고 편집부장에게 연락을 해서 출사와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한참을 기차로 달려올 누군가의 연락이 혹시나 있을까 싶어.. 내내 핸드폰을 쥐고 앉았다.

손님 다 되었습니다- /네.

돌아오늘 길은 더 더웠나. 이젠 등이 쫙 달라붙은 티로 잔득 무거워졌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돼지고기 만원어치와 화장품 하나를 사러 갔다. 화장품은 떨어지고 없고. 그 옆에 정육점에서 불고기할 것으로 달랬다. 시커먼 비닐봉지에 가득한 고깃덩어리가 무겁다.

간판밑뚱에 호되게 얻어 맞은 머리에 통증은 한참 전에-안경점에서 커피마시는 사이에-가셨지만 그 사이 점점 불안한 마음속에 사념들이 잔득 머리로 기어 올라왔다. 한점 한점 제대로 익지도 않은 돼지고기 살점들이 머리속으로 채워졌다. 아무도 집어가지 않은채로 쌓이고 쌓였고, 기름이 줄줄 흘러넘친다. 모공사이로 삐죽삐죽 흘러나오다가 목을 타고 등으로 등으로 주룩 주룩 흘러 내린다.

발바닥은 금새 언덕 꼭대기에 돼지고기를 얹어다 놨다. 태양과 좀 더 가까운 곳에다가. 멀리 오늘 저녁 8시 세계적인 명문클럽 FC바르셀로나와의 일전을 앞둔 빅버드(수원 월드컵 경기장)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고싶다-

머리속에 가득했던 고기들을 결국은 내가 다 먹어야 했다. 몇점 남기기는 했지만 꽤나 맛나게 지저놓은 고기들은 밥 한공기를 더불어 채워넣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TV속에서는 호나오딩뉴의 그럴싸한 개인기가 리플레이되고 있다.

경기는 1:0 수원의 승리- 짜릿한 승리-

가 볼 것을...

오후에 보낸 문자에 대한 답문이 없다. 잘 도착했을까?

2004년 7월 27일 화요일

외계인을위한설문지

1. 본명은 무엇인가요?

2. 고향은 어느별인가요?

3. 성별은 무엇이고 나이는 어느정도인가요?

4. 지구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지구에 오게 된 지 얼마나 되었나요?

6. 고향별에서 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7. 지구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8.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9. 주위의 지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 적이 있나요?

10. 지구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요?

11. 지구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12. 지금 가담하고 있는 지구 내 외계인 커뮤니티가 있습니까?

13. 고향별과 연락할수 있나요? 연락할수 있다면 통신 수단은!?

14. 당신이 생각하기에 지구인과 고향 별 사람들과 가장 다른점은 무엇인가요?

15. 지구에서 나타나는 외계인 관련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맨인블랙이나 테이큰같은)

16. 고향별과 지구를 제외한 다른별에 가본 적이 있나요?

17. 지구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환경적특성/문화/관습이 있나요?

18. 주변에 교류하고 있는 다른 외계인들이 있나요?

19. 고향별엔 언제 돌아갈 생각인가요?

20. 이 질문을 만든 사람에게 한마디해주세요

2004년 7월 21일 수요일

난 코더다

코더라는 직업(?)을 가진지 벌써 2년째다. 음- 사실 직업이라기보다 아르바이트로 방학 때마다 해온 일인데. 그래도 벌써 2년째 네 곳의 직장에서의 코딩 작업은 나 스스로도 어느정도 경력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처음 코더라는 일을 찾았을 때는 단지 드림위버나 나모를 이용한 페이지 찍어내기-가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번째 회사인 디자인스톰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나의 그런 생각은 어느정도 변화를 가질 수 있었다.

개발팀장님셨던 '들소'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이지만 외국의 경우 페이지메이커라는 분리된 파트가 존재한단다.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그리고 페이지메이커(코더)는 각각의 영역에서 확실한 자기 파트의 업무를 처리하고 효율성을 극대화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코더의 역활은 소규모일수록 무시되고 디자이너에게 또는 개발자에게 일임된다. 그들의 업무가 많아지고 피곤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발만 해도 머리통 깨지고, 디자인만해도 입에서 단내가 나거늘.. HTML 코딩따위를 덤으로 맡아서 해야한다니! 하는게 아마도 그들 생각 아닐까?

그리고 작년 여름에 디자인피버라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을 대 '전문코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말인즉슨 요즘에는 전문적으로 코딩을 하는 사람을 구하는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거기서 일하게 되었다.

코더가 하는일은 간단하다. 죽어라 HTML페이지를 만들어내면 된다. 메인페이지같은 경우 하루에 2~3개쯤 만들면 진행이 나쁘지 않고 서브페이지는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페이지를 찍어낸다. 인쇄기에 돌리듯-

지겹다. 짜증도 나고. 그런데 여기서 생각을 조금 바꾸면 상당한 매력과 권한을 가지게 된다. 또한 자기성장까지도 노려볼 수 있게 된다.

개발자는 OOP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디자이너는 화려함에 취해 있고, 기획자는 온갖 잡다한 것에 취중한다. 이렇게 다른 세 파트의 딴지와 앵앵거림을 한몸으로 받는 사람들이 코더다.

기획자로부터 스토리보드를 받고, 일련의 작업 과정을 설명 듣고, 디자이너로부터 디자인파일을 받아서 포토샵으로 열심히 칼질을 해댄 후에 에디터를 띄워놓고 종일 테이블을 쪼개고 붙이고 하면서 '하드코딩'을 한다. 그리고 완성된 페이지는 개발자에게로 넘어간다. 여기서 끝? 아니다. 개발파트에서 HTML소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경우 수정요구가 들어온다. 그뿐인가? 클라이언트의 마음이 바뀌면(이 세계에선 클라이언트가 무조건 왕이다. 젠장맞을것들) 디자인도 바뀐다. 기획도 바뀐다. 코더는 또 야근한다.(물론 개발자의 밤샘과 디자이너의 야근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코더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인다. 코딩 과정에서 철저하게 준비되고 일괄적인 코딩을 하느냐에 따라 분리된 세 파트의 기능이 절묘하게 조합되고, 이후 수정요구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 처음 코더를 할적엔 이러한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수백페이지를 날림으로 만들어놓고 나중에 밤새서 수정한 기억이 아직도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ㅠㅛㅠ

이런저런 궁시렁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전문코더'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그럴만한 코더도 흔치 않아 보인다. 기획과 디자인 개발을 고려한 코딩 스타일을 제시하는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절한 스타일시트를 제안하고, 필요한 스크립트를 배치하며, 구조화된 테이블 레이아웃을 제안하는 것. 얼핏 말이 쉽고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수천페이지의 대규모 코딩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게 그렇게 말만큼 어렵지 않다. 수년의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가 없이는 그렇게 호락호락 만들어지지 않을 경력이란 말이다.

코더! 이거 만만히 볼 일이 아닌 것이다. 기왕에 시작한 코더라면 제대로 전문가가 되어보자.

2004년 7월 14일 수요일

흔들린 사진들

사진을 찍다보면 참 많은 사진이 흔들려서 버리게 된다.
숨도 쉬지 않고 최대한 몸을 낮추고도 그렇게나 애를 쓰며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도 셔터를 누르는 마지막 순간에 약간의 흔들림은 사진을 실망스럽게 만들곤 한다.

정말 좋은 사진 한장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나-를 고민하거나 얘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살다보면.. 참 많은 순간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린 그렇게 매 순간 순간 흔들리며 살아간다. 사진은 그저 흔들려서 보기 싫어지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내 삶은? 너의 삶은? 우리들 삶은.. 그렇게 쉽게 버려질수 있을까..

너무 많이 흔들려서 이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땐..
어떤 사람들은 너무 아파서 그대로 주저앉기도 하지만.. 참 많은 사람들 다시 힘내서 일어나는 걸 보면.. 그저 사진과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 또 해본다.

흔들려서 버려진 사진은 그것으로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리지만.
너무 흔들려서 한때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고통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흔들린 기억은 그것 자체로 또렷하게 남아 내게 남은 시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오늘 문득 창 밖에 장마비를 찍다 흔들려버린 사진을 보면서 느껴본다.

2004년 7월 7일 수요일

육교 위에서.

늦은 시간인데 어쩐일로?
그냥.. 가슴이 좀 답답해서 걷던 중이었어. 여기 올라오니 조금 아찔하네. 원래 이런가?
뭐 그렇지 이런곳에 있는 육교라는 것이...
인적이 드믈고 음산함도 느껴지고.. 저 가로등이라도 하나 꺼져봐..
무슨 낭패를 당할까.
그렇군.. 여기 떨어지면 죽을까?
음.. 뭐.. 잘 떨어지면 죽겠지. 운이 나쁘면 살지도 몰라.
그래? 그럼 운수가 좋은날 골라서 뛰어내려야겠군.
응 응. 그래야지. 괜한 병원비 날리지 말아야지.

요즘엔 무슨 고민이야?
응? 그냥. 뭐 항상 그렇지^^ 언제나 이 즈음해서 힘들곤 하잖아 이젠 습관인것도 같애. 나 자신이 참 미련스럽네.
넌 그게 언제나 문제구나. 보는 사람이 답답해질수도 있다는걸 모르냐? 좀 후련하게 잘라내는 버릇을 길러.
잘라내라.. 무엇을? 살면서 그렇게 쉽게 잘려지는 것이 있던가?
짜식.. 갑갑하네. 무에가 두려워? 무에가 겁이 나서? 도대체 뭔데? 널 그렇게 지치게 하는게?
지치게 하는거? 음.. 내 어질머리- 환경. 사람들. 그런건가? 남 때문은 아닌것 같은데..
결국에는 니 속이 타는거 아냐. 니 속이 새카맣게 타서 그러는거 아냐?
뭐 그런샘이긴 해.

병신- 지랄을 해라. 아주..

훗... 미안하다. 내가 이래놔서.

아냐?

응..

해답은?

지식인에게 물어볼까? 검색하면 좀 나오려나?

지랄..

여기 앉아있으면 나도 거지처럼 보일까?

옷이 더러워야지. 냄새도 나고 머리도 헝클어 놓고. 비듬도 만들어.
이빨도 서너개 부러뜨려놓고. 말은 하지마. 눈은 흐리멍텅하게. 몸은 최대한 구버지게 .

하하.. 그것도 어렵군. 나는 거지가 될 팔자도 못된단 말인가.

당연하지. 요즘같은 불경기에 그것도 직업이야. 너는 하지도 못해.

요즘도 동전 던지냐?
동전? 음 아니 요즘은 잘 안해.

왜 한동안 그짓 많이 하더니?
그냥. 이젠 그런 단순한 결정은 따르지 않기로 했어 잘 맞지도 않고 말야. 앞면이면 행운이고 뒷면이면 불행이다- 싶었던 마음.. 그건 정말 바보같았던거 같애. 그때는 그렇게라도 동전점에 의지하고 싶었나봐. 하루 하루 그렇게 그날의 점을 물어보곤 했지 동전에게...

요즘은? 어디에 기대는데?
요즘? 음 네 보기엔 나 답답해 보이겠지만 내 가슴을 믿어보려고. 자꾸 아니다 싶고 힘들어지는일도 많긴 한데 그래도 결국엔 내 가슴이 내키는 것으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것으로 해야지 후회가 적더라고 그래서 나를 믿어보기로 했어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내가 바라는 것을 떠올려. 그리고 생각하지 잘 될거야. 라고.

잘돼?
하하. 아니.. 안돼. 오히려 반대인가? 그래도 뭐 좋아. 아직은 잃은게 아니거든. 끝난게 아니거든. 사실 생각해보면 끝이라는건 언제나 내가 먼저 돌아섰기 때문에 끝난거였어. 뭐든지 간에 말야. 기어이 붙잡고 있으면 어쨌든 끝은 나지 않잖아.

그러다 영영 부질없는 것이 될지도 모르는데?
응 그렇긴 하지. 그럴땐 명철한 판단이 필요하겠지.

명철한 판단이라. 니 머리로 그게 된다고 생각해?
음. 아니 노력해야지. 끈기는 가슴으로 할거고 최후의 판단은 머리로. 그게 지론이야.

가슴과 머리라. 말은 좋네.


여기 올라오면 왠지 울적해져. 아니 슬퍼. 마치 내가 가로등이 된듯해. 아무도 없는 곳을 외롭게 비춰주는 가로등 말야. 저것처럼.

지금은 저게 널 비추잖아. 더 멋지게 해줄까? 가로등이 되버린 넌 날 비추고 있다고. 후후.

오랜만이었다. 그치?
응- 또 와. 어디든 있다. 나.

커피.. 일상..

커피를 좋아합니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건 아마 고등학교 1학년때였던것 같습니다. 친구를 따라서 매점까지는 갔지만 과자를 사먹긴 쉬는 시간이 길지도 않았고 뭔가 군것질을 좋아하지는 않았었지요. 더군다나 아침 자율학습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던 시절에 그 시간은 언제나 비몽사몽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좀 달아날까 싶어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든 집이든 오늘처럼 회사든 언제나 가장 먼저 커피를 뽑거나 탑니다. 200내지는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는 그 짧은 순간이 어쩜 가장 편안한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뜨겁게 녹아있을 커피의 향을 느끼기 위한 기다림. 강렬하진 않지만 이젠 익숙해져버린 기다림이지만 어쩐지 모를 설레임을 가지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커피를 탈 적엔 일회용 커피를 흰색 종이컵에 쏟아넣고 뜨거운 물을 한컵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쯤 모자르게 따르고서는 차수푼으로 휘휘 저어줍니다. 역시나 그 순간은 내게 기다림을 가르쳐 줍니다. 설레임도 가져다 줍니다. 한가지 더 좋은것은 그렇게 직접 타 마실적엔 내게 물을 끓이는 수고를 주고, 물이 끓어올라 김이 나는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달구어진 꼬마주전자의 지글거리는 소리는 내 가슴에 부끄러움을 태우듯 그렇게 뜨거워집니다.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따르는 순간엔 점점 그 속에 녹아들어가는 커피와 프림 설탕의 알갱이들이 보입니다. 녹는. 사라지는.. 형태를 찾을 수 없게 되는..
하지만 그것들은 그렇게 어우러집니다. 맛이 되기 위해서 달콤한듯 쓴 커피의 그 맛을 내기 위해서 향이 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입과 코와 가슴을 위해서.

나는 그래서 커피를 좋아합니다. 잔득 뜨거워졌다가 금새 식어버릴 캔커피보다는 자판기 커피를. 끓이는 수고는 있지만 그러기에 더욱 나를 느끼게 해주는 일회용 커피를. 설탕 프림 커피를 내 뜻으로 섞어내는 그런 커피를 나는 좋아합니다.

나 역시 나의 모난 성격과 행동, 생각을 한데 섞었을때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2004년 7월 4일 일요일

어질머리

"어질머리. 삶은 어질머리를 가만히 앉아서 풀어가는 가내수공업 센터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긴 하였다. 풀어간다는 것도 살면서 풀어가는 것이고, 산다는 일은 어질머리를 보태는 일이었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p20 중에

살면서 풀어가고, 산다는 것이 보태는 것이라.. 어쩜 그리도 명확하게 써 주셨는지.. 구보씨 감사합니다.

나역시 요즘음에 들어서요. 참 그놈의 '어질머리'가 심해져서 고단할 지경이거든요. 이런저런 어질머리가 귀찮기도 해서 당신의 저서를 들춰보다보니 내 어질머리를 느끼셨는지 냉큼 저런말 한마디를 던져주시는군요. 하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런데 참 얄궂네요. 살면서 풀어야 한다는것은 알지만서도.. 왜 또 보태야만 하는 것일까요? 나중에 풀려고? 아니 풀며 살면 심심할까봐? 하하..

어질머리라는 용어도 참 마음에 듭니다. 에잇 신가놈 하시던 구보씨의 그 욕설도 제겐 마음에 들었는데. 어질머리라는 그 말도 어쩜 지금 약간의 현기증 비슷한 느낌과 잘 맞는것 같습니다.

앉아 있는데두요. 어지러워요. 뭔가 잔득 머릿속에서 점을 따라서 계쏙 엉키고 섞이고 쫓아가거든요. 꼭 아주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몇시간째 해메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차라리 외진 시골이라면 얽힌 논밭 사이사이를 걷는것이 이처럼 답답하고 힘들고 외롭진 않겠지요? 훤하니까. 멀리 산도 보이고 저 멀린 집도 보이고 저 언덕만 넘으면 차가 다니는 큰 길이 나올것도 같고. 분명한것이 많고 살짝 가려져있어도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마음만은 편안하고 아무리 복잡하고 울퉁불퉁해도 이 논 저 논이 섞이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길 하나를 두고 나뉘어 있으니 화날일도 없고.

그런데 참으로 내 머릿속은 그렇지가 못해요.
이생각 저생각이 마구 침범을 하죠. 이마음 저마음이 서로에게 시비를 걸죠. 이랬다 저랬다. 젠장맞을..

기도

두려움이 무겁게 깔린 중환자실 앞 복도였다. 10분이 지났는지 1시간이 지났는지- 아니 몇일이 지났는지 도무지 감각의 모든 것이 끊어진채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토록 간절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하나님이든 부처든 무슨 신 무슨 신이라고 불릴만한 존재가 존재한다면 제발 나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그토록 애원했던 적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 간절함과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양력 달력으로 한장을 넘기고 그 해 첫 눈이 내리던 날 아침-

나의 앞에는 미안함만 무겁게 가슴에 묻고 눈을 감아버리신 아버지가 계셨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라든지 하는 것 따위의 지나친 불신은-
나름대로의 현실성을 따지지만 그 해 그렇게 처참하게 거절당한 슬픔이 컸을 것이다.

기도- 내게 기도는 이제 보이지 않는 자에게 터무니없는 부탁을 청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고 하지 않으려고 애써본다.
내 마음. 내 신념. 내 의지. 부족하지만 그렇게 내게 기도한다.
언제나 좋은것보단 나쁜것을 먼저 근심하고, 불안한 과정에 대한 확신을 지켜나가는 의지도 약하지만 내게 기도는 나 스스로를 지탱해 나갈 유일한 버팀목이다.

한번은 길에서 헤매보지 않으면, 자신의 해답에 닿을 수 없다

"한번은 길에서 헤매보지 않으면, 자신의 해답에 닿을 수 없다."

후루츠 바스켓에서 나온 명대사라며 내게 일러준 말이다.

살다보면 참 많은 어려움속에 봉착하고 만다. 공부를 하다가 시험을 망칠수도 있고,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착착 진행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트러지기도 한다. 내 안의 잘못일수도 있고 상황이 그러그러하게 이끌려 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린 해답이란것을 찾아 해메게 된다. 그래. 어딘가 답이 있을거야. 그걸 찾으면 이 난관으로부터 빠져나갈수 있을거야- 라는 믿음. 나 역시 숱한 어려움을 그렇게 빠져나오려고 했던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만다.. 그리고 다시 한번 힘들어하며 좌절내지는 포기라는것을 택하곤 했었다. 되풀이 되는 단념들..

동아프리카 속담에 "길을 잃는 다는 것은 곧 길을 아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후배가 일러주었다.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말.

헤매이던 길에서.. 길을 잃었다는 순간.. 어쩌면 이미 길을 알고 있을거라는 생각? 생각의 전환? 믿음의 발견.? 그 느낌이 오면 해답에 닿을 수 있는 것일까...

깊은 밤 알 수 없는 두 문장 사이의 고리가 닿을듯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붙는다.. 그러기를 또다시 반복.. 시계의 추처럼-

2004년 7월 2일 금요일

Open Your Eyes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의 인상깊었던 목소리.

남자의 잠을 깨우던 그 목소리.

그 목소리는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통해서 두번 나온다.

삶은 반복된다..끊임없는 삶의 파편들이 오마쥬되어 수없이 반복되고 재생되고 기록되어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지금의 아픔이 어쩐지 낮설지 않음으로 다가오면 어느새 새로운 기쁨을 느낀다. 그 기쁨 역시 오래전 어느 날인가 한번쯤 경험해본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어온다. 어젯밤 꿈에서 본 그 장면의 연출. 수없이 많은 필름의 조각들중에 내가 원하는 것만을 컷하며 반복하고 있는듯한 삶의 되풀이.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은. 반복되는 그 삶속에서도 사람만은 다르기 때문이다. 오후에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먹는 점심이 즐거운건 2년전 그 공간속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오늘 저녁 만나는 사람이 어느날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며, 지금 이순간 내가 떠올리는 사람이 예전의 그 기억의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쩐지 같은 삶의 조각들. 반복되어지는 꿈의 회복.
깨어남- 가끔씩 그것들이 섬뜩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눈물이 되고 기쁨이 되는것은- 네가 그 사람이

내 삶에 십분지 일도 채 되지 못하는 것들..

내 삶에 있어서 십분지 일도 채 되지 못하는 것들이라...

하하.. 과연 십분지 일을 넘기는건 또 얼마나 되는걸까..

사람들은 흔히 하는말로 내 인생의 전부- 라고 한다.

인생의 전부.. 사랑하는 사람? 애인 부모님. 형제.. 꿈..

문득 생각하기로는..

삶에는 천분지의 일도 채 못되는 작은 것들의 퍼즐로 꿰 맞추어진
하나의 그림이다. 수 많은 공간이 채 맞춰지지 않은채로 남겨지겠지만 멀리서 내려다 보면 그 형태를 알아볼수 있는것처럼.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 그것이 내 삶에 모든 퍼즐을 다 덮을 만큼의 크기여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퍼즐조각이지만.. 너무나 애틋하고 특별한 그 퍼즐이 좋아서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내 눈 가득히 찰때까지 가까운 거리에 다가가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애틋함 때문에 매 순간 순간 내가 쥐고 있는 퍼즐을 소중하게 다루고 빈 자리에 맞추어 놓을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