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31일 토요일

내 동기들


00학번 내 동기 호영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행복삼매경에 올라온 부천의 어느 선술집에서 찍은 동기들 사진. 신년모임이었단다. 사진만으로는 00학번 대부분이 모인 자리는 아니었던듯.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이 여럿 보인다. 전에도 몇번 보긴 했던 사진인데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워지는 얼굴들이라서 이렇게 내 글터에도 담아본다.

2000년도... 유난스럽던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학번들. 빵빵학번이라고도 했던것 같다. 문제아 소리도 듣고, 장난스럽게(정말 악의없이) '00쓰레기들'이라고 불렸던 몇몇 놈들도 있었드랬다. 훗. 유난히 예쁜 여학생들도 많았고, 성격도 특이하고 재주도 특별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 속에서 나는 얼마큼의 존재였을지 생각도 해본다.

00이라는 하나의 웅덩이 안에서 오십여명의 가슴들의 달싹거리며 뜨거워질때, 나는 차마 그 웅덩이 속에 뛰어들지 못했던것도 같다. 언제나, 그리고 지금까지도 난 이렇게 저 사진 밖에 있으니까. 몇번인가는 끼어도 보고,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저 주변을 어슬렁 거리던 그 초라한 습관때문이었을까. 지금도 그리움과 약간의 후회스러움을 껴안고, 바라만 보는 내가 되었다. 그래도 좋다. 저 친구들이 내 동기라는게. 바라만 봐도 좋을 동기들이라는게 이래서 좋은가보다.

2007년 3월 28일 수요일

통제를 위한 일촌맺기?

힘을 가진자의 통제와 감시는 어디까지가 의무이며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요즘 내게 닥친 몇가지 사정때문에 허공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는 중이다. 사정의 요약은 싸이월드 일촌맺기에 있는데, 이것이 온/오프라인으로 겪어 사귀어지거나 친해진 사이간에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움"과 나의 의지에 의한 결단이 아닌 타자에 의한 강제와 통제수단으로써의 의무감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내 속에 화가 끌어 올랐음이다.

최근 일부 연예인들의 자살사고를 통해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심상치 않게 등장하고 있고, 그 속에 죽은이들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또 그것이 발가벗겨진 시체로 적나라하게 세상에 보여지면서 마치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익명의 누군가. 즉 '나'에게까지 그 사슬이 채워지 것이다.

큰 타자에 의한 통제적 수단으로의 '일촌맺기'는 절대 다수의 익명인 한명에게는 아주 쉽고, 편리하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작은 개인의 의식으로부터 터져나온 반응은 의외로 불만 가득하고, 납득되기 어려운 현실에 화가 치밀어 오를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나처럼 말이다.

대의명분이 있다. 훌륭한 통제 수단이면서도, 대부분의 경우 부담이 없고, 또다른 타인의 시선에 노골적이거나 불합리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치 않게 여겨짐을 나는 스스로 달래기가 수월치 않다.
공의 이익을 위해서, 오프라인에서뿐 아니라 온라인에서까지, 감시와 의심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은 너무나 예민해져 있다. 순간 욱하는 마음으로 진정 원해서 맺었던 일촌들의 이름까지도 몽땅 날려버릴 각오가 일기까지 한다. 인터넷, 온라인... 어쩐지 내게 나타난 타자보다 더 큰 타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감시되는 시스템이 되어 버릴것만 같다. 그 속에서는 나는 숨을 쉬며 살아갈 수 있을까?

루비와 레일스

어제 프로그래밍 루비가 도착했다!
이렇게 해서 루비, 레일스 스리즈 네권이 모두 모였다. 신룡이라도 나타나서 "최고의 프로그래머로 만들어주세요!"라고 빌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판타지가 아니다. 권당 2~3만원이니까 10만원에 가까운 금액. 네권의 총 페이지수만 3천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 고스란히 머리에 쥐나도록 쳐다보고, 깨치기를 노력해야 할 밭이다.

아마 군생활 마지막 공부의 과제가 될 것 같은 '루비와 레일스'
웹 2.0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 서적과 기획 문서들을 읽고, 웹표준에 대한 소화를 위해 항상 자신있어 하던 HTML과 CSS, JS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하고, XML과 DOM에 대한 공부, AJAX까지. 그렇게 고르고 사서 십여권이 넘고, 인터넷을 뒤지며 별 곳을 다 본 것 같다. 그렇게 이끌려온 욕심이 막판에 파이썬을 살짝 맛보다가 루비로 왔고, 루비와 AJAX를 통해 관심을 끈 레일스 프레임워크! 그 종점이자 시작이 될 문을 이제 열어볼까 한다.

책 한권에 뜬금없는 감상을 늘어놓긴 했는데, 2년간의 컴퓨터 공부가 대략 이렇다는 것을 남기는 의미로 적어봤다. 제발 전역 후에 이 노력들이 가치를 보태주기를 바란다.

2007년 3월 20일 화요일

웹퍼블리셔?!

다음 R&D 센터 팀장 윤석찬님의 글

국내에서 웹 표준에 관심을 가진 커뮤니티가 생기고 매달 한번씩 ‘웹 표준의 날’이라는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11월 모임에서는 세 개의 주제를 놓고 난상 토론을 벌이는 방식을 취했다. 실제로 토론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정도였지만 업계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다는 점에서 참 좋은 시간이었다.

웹 표준을 지키는 데 드는 비용이나 웹 표준 설득 하기 같은 주제가 있었지만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진 발제는 "웹 프로듀서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발제자는 자신이 해 온 일을 아주 솔직히 이야기 해 주었다. 웹 디자이너가 만들어준 이미지 파일을 잘라 HTML 페이로 만들면서 ‘내가 재단사(Cutter)인가’라는 의문을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웹 표준 기반 개발 경험을 몸값이 뛰어 타 회사에 스카웃 까지 되었단다. 이 후 HTML 개발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럴만도 한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


전문은 http://www.zdnet.co.kr/itbiz/column/anchor/scyoon/0,39030409,39153664,00.htm


예전에 "난 코더다!"라는 제목의 엉뚱한 글을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에 HTML코더들의 위치가 사뭇 달라졌음을 느껴서 반갑기도 하고, 어쩐지 나의 진로가 밝아지는 것 같기도 해서 좋다.

2007년 3월 11일 일요일

사이, 틈, 벌어짐, 떨어져보기

나와 오랫동안 함께였고, 그렇게 친구였고, 후배이고, 선배였고, 지인이었던 사람들.
그렇게 즐겁고, 함께 아프기도 했고, 고생도 했었으니까.
언제나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통하고, 공감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
어쩌면 아주 짧은 시간동안의 마주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가 출발하는 시간과 공간이 달랐던 처럼,
살아가는 방식과 환경이 다른 것 때문에
살짝식 어긋나서 내달리는 직선이든, 완만하게 그어가는 곡선이든
단지 그 순간들 속에서 잠시동안 마주칠 수 있었고, 그렇게 맞닿아서 좋았던 것 뿐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사이가 생겨서, 틈이 벌어지고, 떨어져 보니까-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늦게 깨어난 감각의 세포로 새겨짐을 느낀다.

2007년 3월 3일 토요일

봄비

이틀전에도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종일 빗소리가 들리네요.
요 며칠 따스함에 봄이 왔다 느꼈는데 비까지 내리니까 정말 봄인가 싶네요.
겨울이 어서 갔으면 했었는데, 막상 봄이 코 앞에 와 닿으니 어찌해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시간은 빨리 갔으면 좋겠는데, 머리속으로 고민했던 것들이 아직도 널려져 있어서
조금은 천천히라는 알 수 없는 주문도 외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대보름이기도 한데,
달을 보긴 힘들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