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31일 금요일

2004년 잘가라!!

송년회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해를 보내는 의미로 편집부가 모였다. 홍대로-.

이상하게 오늘 두개의 약속이 잡혀있었지만,
편집부가 먼저 계획되어 있었던것이라 아마도 강남쯤에서 모였을 다른 모임은 거절하고, 홍대로 갔다.

요 며칠 굉장히 추운 날씨가 계속되는데 홍대거리에 연말연시를 충분히 느끼게 해준것 같다.

뭐 아주 색다를건 없지만, 언제나 화끈하던 지혜가 장으로써 오늘은 조금 얌전하고 어딘가 허전한 마음으로 회의를 진행하고, 주차장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먹고, 볼링을 치고, 포켓볼을 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뎅까지 먹었다. 종일 먹었더니 배만 부르고- ㅋ

가윤이 선호가 오지 못해서 좀 허전했지만, 성규가 특별히 같이 있어줘서 또 다른 재미도 있었던것 같다.

무석이가 오늘 처음 해본 볼링을 사기쳐서 어이없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포켓도 지혜가 신들린듯 쳐대서 재미있었다 ㅋ

2004년..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 해. 내게 있어서도 어느해보다 기억에 많이 남을 해였다. 즐거운일도 많았지만 힘든 날이 더욱 많았던 2004년... 새옹지마. 그 사자성어 네자가 꼭 맞기를 바라면서 2005년에는 내게도 행복이라는게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메리 크리스마스

방학하고 평소보단 두시간쯤 일찍 잠에서 깨고,
오후 약속 시간을 위해 오전에는 어머니께 시간을 드렸다.
어머닌 내일 아버지 제사준비를 위해 시장에를 다녀오셨고,
나는 가게를 보다가 2시쯤 맞춰서 시내에 나갔다.
약속보단 조금 늦었지만 만났고,
그렇게 영화 한편과 저녁을 먹고 9시쯤 되서 집에 돌아왔다.
그저 할일없이 컴퓨터나 종일 두드리다가 보내버릴 줄 알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날 챙겨줄 사람이 있긴 했나보다.
고마울 뿐이다.

잠깐 사이 난데없는 후배의 질문- 당황케 하는 질문.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고, 나마저도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힌채로 한시간을 이야기했나보다. 아니 들었다.

속은 더부룩해지고, 가슴은 답답하고-
시간만 자꾸 가더니 25일 새벽. 크리스마스다.

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

벌써 까마득해진 그 해 그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자리에서 깨어나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와 동생을 알아보시지 못했던 그 날. 그렇게 아버진 응급실로 실려 가셨었다.

입대한지 1년가까이 되는 날. 동생이 두번째 휴가를 나온다. 지금쯤 휴가 나올 생각에 들떠 있을 동생의 잠자리가 편안할지...

크리스마스 이브의 오전은 경찰과 실갱이하는 청년의 괴성과
어울리지 않는 품바들의 공연과 10분쯤 늦어서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온 후배- 초반보다 후반이 너무 재미있었던 영화와 매워서 더 먹게 되었던 낚지볶음에 별반 다르지 않는 맛이건만 꼭 그집어야 했던 후에버 커피숍에서 검지 손가락을 붓게 만든 당구 큐대하며- 정신없이 보낸 하루에 허전함이 더 커진 달빛 아래-

오늘은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이다. 동생의 휴가와 아버지의 제사와 예수가 태어난 날-로 기억되는 그 날이다.

2004년 12월 22일 수요일

4년간의 시험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면 시험에서 해방되는 줄로만 알았다.
수능 시험이 끝나는날 찹찹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수능 성적표를 받아들고 눈물이 날만큼 화가 났었지만
한신대 입학 원서를 받아들고 가슴이 먹먹해 졌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대학생이다라는 것 하나로
시험에서 다소간의 해방감을 가졌는데
지난 대학에서의 4년동안 얼마나 많은 시험들을 봤는지
얼마나 많은 밤을 새었는지
오늘 마지막 시험과 과제를 마치고나니
왠지 묘한 감정이 휩싸인다.
후련함같은게 없다.

사회는 더 많은 시험을 기다리고 있다는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2004년 12월 20일 월요일

약속과 거짓말의 차이

약속운 지키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다짐이다.
거짓말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다.
가끔은 약속과 거짓말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 수 없을때가 있다. 지킬 수 없는 것은 약속되어서는 안되는 것인가? 지키지 못한 약속은 결국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다짐을 통해서 타인에게 약속을 했으며,
얼마나 많은 지키지 못한 약속들로 인해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는가.

약속과 거짓말의 차이는 아무리 좋은말로 설득당하려 하여도
결국 지켰는가 지키지 못했는가에 따른 결과론적 변명일 뿐인것 같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단다

벌써 봄이야? 하며 계절감을 상실한 겨울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쉰게 어제였는데 오늘은 갑자기 추워졌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추워진다고 한다. 금요일까진 이렇게 춥다고 하니...

어쩌면-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지도.. 적어도 비나 눈이 온다고 했으니까. 괜히 그 소리에 더 우울해지네-

찹- 찹-

2004년 12월 17일 금요일

2년하고도 9개월 만에

후회가 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용기낼 수 있었다.
그다지 용기랄 것도 없었거늘-

네게 그렇게 말 거는데까지 무려 2년하고도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로, 그저 기억을 모두 잃은듯-
마주서며 웃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아프고 좋았던 모든것이 한낱 추억에 불과했음을 새삼 느끼면서

그렇게 꺼네지 못했던 별 거 아닌 인사 한마디를 건낼 수 있었다.

2004년 12월 16일 목요일

비는 내리다 말고

조금 추워지려나 싶었는데 금새 비가 그쳐버렸다.

일기예보에는 밤이나 아침까진 비 소식이 있다던데- 서울시청 앞에 피어버린 개나리와 진달래는 다시 스며 들어가야 하나? 겨울 땅 속으로 말이다- 차라리 눈이 내려주지. 왜 날은 이렇게 따듯하기만 할까? 추우면?

추우면 좋지. 추우면 가슴 속까지 시려서 어깨를 움츠리고, 옷깃을 세우고, 손을 비비며 종종걸음으로 입술을 감싸며 따스함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계절. 그래서 좋아.

눈이었으면. 혼자여도 그냥 눈이었으면 기분이 조금은 좋았을텐데^^

왠지 울적해진다. 뭐 항상 그렇지만

이제 남은 시험은 한과목. 기말 레포트는 두개. 논문은 한 편.

해야할 일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고...

2004년 12월 13일 월요일

오늘만 같았으면...

언제나 오늘만 같았으면...

제법 춥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허전했지만.

그래도 내일이 오늘만 같다면,
언제나 오늘만 같다면.

좋겠지. 너무나.

2004년 12월 8일 수요일

편집부를 정리하며

왠지 마지막이구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어오는 밤이 되어서 하던 시험공부도 밀어두고 쓰기 시작합니다.
오늘 사은회를 마쳤습니다. 뭐랄까요. 참 많이 아쉽고 떨립니다.
졸업이란것. 처음 입학했던 순간부터 기다렸던 것이지만 막상 한신대 국문과 재학생의 신분으로 여러분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다 했음을 깨닫고 나니 괜한 억울한 심정. 미안한 마음. 서글픈 생각이 밀려드네요.
사실 잘했다. 열심히 했다. 그런것보다. 못해준것. 서운하게 했던것. 미안한 마음. 그런게 더 많습니다. 그래서 더 이렇게 미련이 남는가 봅니다.
내일이면 정말 우리.들 두번째 펴냄이 나오겠지요. 그걸 보는 순간 기분이 어떨지... 막막합니다만 차라리 웃어보일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그 책 보면 올 한해 함께 고생한 모두의 얼굴이 떠오를테니까요.

모두 아프지 말고, 언제나 행복하길 바랍니다.
당장에야 헤어지고 못보는것 아니지만 그냥 미리 쓰는 인사입니다.
내일이면 또 기분이 멍해져서 이런글 못 남길것 같거든요.

여러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년에는 새로 들어올 후배들에게 정말 존경받고 좋아할만한 선배가 되세요.

그리고 기억할런지. 제가 지난 봄 모꼬지에서 여러분에게 했던말이요.
나는 편집부라는 공간에서 여러분처럼 기사를 쓰기 위해서 왔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금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같은건 가지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내게 편집부가 이만큼 커진건 내가 가진걸 다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였습니다. 그때 나라는 사람을 찾고 싶었습니다. 내 존재를요. 나를 확인할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고, 마침 그것이 편집부였습니다.

지금의 저는 나를 압니다. 나란 사람을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말했듯이 나는 편집부가 사람이 남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말 멋진 기사 한편을 써내기보다 모두가 함께여서 언제나 함께이고 싶은 모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걸 제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걸 알면서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잘 모르겠네요. 과연 조금은 그리 되었는지...
함께했던 사람들 생각난다 했었지요. 지금은 함께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생각난다 하였지요. 미쳐 말리지 못하고 그렇게 나가버린 사람들이 자꾸 떠오른다 했었지요. 그러다 울먹였지요.

편집부가 전에는 참 좋았는데라는 아쉬움. 저만 느끼는 그런것은 아닐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같이 지금 힘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요 내일이
내일이 있어서. 오늘은 좀 이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낳을수 있고, 좋았던 그 날보다 더 좋을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할수 있고 그렇게 내일이 찾아올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참 말이 길어졌습니다. 두서없이 그저 횡설수설하기만 하고.
모두- 잘 될거예요. 우리가 그냥 편집부입니까!
민중의 벗 국어국문 편집부 창입니다!

사은회

20041208 사은회

2004년 12월 7일 화요일

먼지같은 기분

생각의 덩어리가 쪼개져서 파편이 되고, 다시금 바스라져서 먼지가 되어버렸다.
땅에 떨어지거나 허공이 부유하던 내 생각의 먼지들은 그렇게 어딘가의 불편함이 되어 사라져 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차갑게 내리는 겨울비. 긴 밤 자고 나면 저 비가 눈이 되어 하얗게 덮어놓을 그것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저 기대일뿐 바람일뿐. 세상은 내가 원하는데로 돌아가지는 않을테다.

머리속에 온갖것들이 가득하다.
내일이나 모레쯤 나올 잡지의 상태며, 12월 들어 유난히 힘들어 하는 지혜나 진희 가슴하며, 벌써 두주째 보낸 수십통의 이력서를 혹여나 읽은 사람의 심사며, 지난밤 보낸 메일을 읽었을 이주용 대표님의 답변이며, 치과를 갔으면 했지만 역시 고집피우고-아니 내게 유독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가지 않았을 한나의 사랑니며, 수요일 오전 수업에 볼 기말고사 시험범위와 목요일 금요일 제출해야할 기말과제들... 내일은 팀과제를 위해 이것저것 설명해줘야 할텐데 정리는 했는지... 내일은 또 사은회구나. 시험공부는 언제하지? 오늘 한것만으로 될까? 내일도 그 비디오 가게를 그냥 지나쳐 버릴까? 내일도 남문에서 걸어와야 하는걸까. 내일도 춥겠지? 수요일은 축구 경기가 있는데.. 못 보겠구나. 편집부 종강총회인데.. 참 그러고 보니 오늘 종강총회를 가지 못했지. 지현이가 전화까지 하던걸. 지혜도 문자하고. 계획은 가는거였는데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미안하게 되어 버렸고. 내일은 사은회니까 카메라를 챙겨가야겠지.

결국은 이렇게 지나치고 다가올 일들. 새삼 내가 고민한다고 달라질것도 없겠지만... 사실 마음 편히 먹고 그저 따라가기도 벅차다.

생각의 먼지들. 조금더 갈아져서 아주 보이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은데...
이렇게 눈만 뜨고 있으면 보인단 말이다. 허공에 날리는 먼지들. 바닥에 쌓인 먼지들 내 어께 위에 내려앉은 먼지들... 보여서 털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

그게 나라는 사람인가보다. 내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내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그래서 힘들게만 되는... 그걸 싫어했던 사람.

차라리 내 육신이 먼지가 되어 허공에 바닥에 당신의 어께위에 그렇게 눈에 띄는 사람이었으면... 그랬다면... 이렇게 또 하나의 먼지를 털어내고 있지는 않을텐데.

한신대 첫 눈

20041207 첫눈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72만원.

오늘 두번째로 인쇄소를 찾았다.
책 한권 만들기가 이렇게나 힘들어서야...
작년에 그렇게 고생해서 만들었고, 올해는 작년보다는 낳겠지 싶었는데
더 힘들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 모두 긁어야 60만원.
우리가 선택한 인쇄방법은 마스터 인쇄 가격은 50만원.
10만원의 여유가 생겼고, 독자투고해주신 분들께 도서상품권을 드릴까 고민하던 찰나.

올라오셔서 확인해보시라는- 전화 한통화로
12만원이라는 금액이 올라가 버렸다.

12만원... 아.. 그 많은 돈은 또 어디서 구하는가 말인가.
마스터 인쇄로 나온 샘플은 그냥보기에도 한숨이 나올정도였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제는 그것조차 따질 기운이 없다.
애시당초 잡지란 무리였을까?
그저 글이나 잔득 담은 문집으로 만족해야 했을까?

사진마다 뭉개지며 어둡게 나온 모양새들이 도대체가 감당이 되질 않았다.

아직도 잡지다움을 드러내려면 한참을 더 공부하고 경력을 쌓고 준비를 해야하는데
이렇게나 돈이 드니... 벌써 힘에 부친다.

내년. 내 후년- 또 어떻게 잡지를 만들어 낼 것인가.

현실인가?

아무리 싸고 싼 집을 찾아도 결국엔 마찬가지의 돈이 들고 만다.


72만원.

지혜가 모자른 12만원을 다 내겠다고 하는것을 말리고서야
십시일반 모아보자라는 결론을 냈다.


아침부터 긴장해 있었고,
점심도 못먹고, 부랴부랴 충무로까지 올라와
두시간이 넘도록 고민과 수정을 거치면서
다시 저녁도 못 챙겨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전차에 올라탔다.

무거운 가방만큼이나 가슴이 꽉 막혀왔다.

아이들에게 또 어떻게 손을 내밀어야 할까..
지금 지혜의 머리속이 잔득 쪼그라들어 있을게다.. 아마도..

2004년 11월 18일 목요일

세번째 합숙!

호영이 여섯시에 자고, 나 약먹고 다섯시에 자고..
지혜 msn으로 계속 자료 건네주다가 네시쯤 사라졌다.

오밤중에 마신 우유 탓인가.
새벽늦게 먹은 자파게띠 때문인가.
우유와 같이 먹은 호빵인가?

실눈으로 겨우겨우 넘긴 아침밥 때문인가-

오늘 종일 잠으로 버티리라 생각했던 하루가
강인하게 버텨지고 있다!

2004년 11월 15일 월요일

궁지에 몰렸을땐 돌파하기보다 사라지기가 쉽다

어제부터 시작된 작업. 오늘도 역시 종일 쿽이란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벌써 몇번째 새로 작업인지 모르겠다.
딱히 어려운것도 아닌데 좀처럼 감이 오질 않는다. 뭔가 조금더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 보려고 발버둥은 쳐보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 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싶다.

지혜가 볼 일이 있어 남문에 들른단다. 잡지 만드느라 아이들 데리고 두번이나 합숙하면서 잠 한숨 못잤던 녀석이다. 이번주 내내 감자탕을 노래불렀다. 한끼 못사줄건 뭐냐.

오후 내내 가게를 보고- 어머니는 잠시 출타중. 5시 즈음에는 오시려나. 지혜와는 6시 약속이다.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랴부랴 움직인 덕분에 지혜를 만났다.
한주동안 노래부르던 감자탕을 사 먹이고-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기숙사로 보냈다.

다시 돌아온 내 자리.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고-
음음 또또.. 어떻게 해야.. 그래그래.. 으...

눈은 점점 아파온다. 오후 늦게부터 침침하다 못해 통증까지 온다.



사람 마음이란건 참 모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온갖것들이 다 들어있어서 어떤 것이 언제 툭 튀어 나올지를 모르겠다. 나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전혀 다른 반응의 마음들을 깨워낸다. 때로는 상상도 못한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건 놀라움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아니 좌절이기도 하지. 충격이기도 하니까. 그건 다시 미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건 그런것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는 마음이 된다. 사랑이 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되기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 하나와 행동 하나가 내 속의 나도 모르는 것들을 마구 깨워낸다. 내 의지와 다르게-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무슨 말과 행동을 할런지 알 수 없다. 간혹 짐작을 시도해볼 뿐이다. 내게는 그 짐작의 적중율을 높일만한 능력이 별로 없다. 그저 당해야 한다. 꺼네주어야 한다. 나의 놀라워 하는 표정과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과 말- 자꾸 기대하게 만드는 마음까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보여주고 들려주게 된다.

사람은 참 우습게도 그렇게 반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를 반응으로써 확인하면서 나를 느낀다.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세상과 삶이란. 결국 나 자신의 혼까지 깨뜨리며 존재를 부정하는 그것이다. 처절하게 다가오는 외로움. 극도로 몰아가는 슬픔.

그렇게 궁지에 몰렸을땐 돌파하기보다 사라지기가 쉬운 법이다.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선 말이다.

설탕크림커피 한 잔과 리차드 막스의 새 앨범 그리고 ...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는 지호는 오늘 역시 세 잔의 커피를 마셨다.
이젠 중독이다. 그러나 놓을 수 없다.

며칠전 리차드 막스의 새 앨범이 나왔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듣기 시작한 것이
벌써 삼일째 반복되는 노랫말들.

예전의 그 가슴 절이게 만들던 애잔함은 줄었지만
어쩐지 밝고 경쾌한 멜로디가 더욱 강하게 가슴을 때린다.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커피를 좋아하는지.
내가 왜 리차드 막스의 음악을 이토록 좋아하는지.

그저 마시지 않으면 그만인것을.
그저 듣지 않으면 그만인것을.

돈이 없다면 커피를 사 마시지도 않을것이고
인터넷이 끊긴다면 mp3를 다운받아 듣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돈을 주고 시디를 사기까진 상당한 고민이 요구될 테니까.

하지만 한가지 돈이 없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간단히 가질 수도 없는 것이 있다.
내가 원한다고 그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능력이 있어서 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바라보며, 매 순간 상상하며, 이해한다.
그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듯 하다.

2004년 11월 7일 일요일

튀김 우동을 먹는데 조양이 생각난다

지난 중간고사 기간에 자정을 넘기고 출출해서 조양한테 맛난걸 사달라고 해서
튀김 우동을 먹었었다.

오늘 혼자 가게를 보다가 튀김 우동을 먹는데-

아하하
조양이 생각나는군!

이젠 튀김 우동 먹을때마다 생각나는거 아냐?

별로 안좋지 않아??? 왜 하필 튀김 우동과 조양이야;;; ㅋ

더 좋은 이미지를 찾아보자구!

2004년 11월 6일 토요일

동맹제가 끝났다.

바빴다. -라는 핑계로 시작해보자. 그런 연유로 첫날과 이튿날 공연은 차마 가보질 못했다. 우선은 풍물패와 연극패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 전해본다.

오늘은 오후 수업이 없음에도 내내 미안한 것이 남아 노래패 공연을 찾았다.
해질 무렵부터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공연이 끝날 무렵엔 제법 비가 내리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그렇게 공연장 안에서 세상 밖의 빗소리를 듣지 못한채
노래패의 흥겹거나- 아름답고- 애절한 노래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평가를 떠나서 뭐랄까 어쩐지 아쉽다- 허전하고. 어수선하고. 간간히 지겨움 비슷한 졸리움까지 있었다. 작년에 받았던 감동이 컸던 탓일까- 그래서일까

그러기엔 어쩐지 올해 공연은 여러가지로 아쉽다라는 느낌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눈으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어제 그제의 공연도 예년만 못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함께 밀려왔다. 서로의 온기를 느낄만큼 푸근하게 채워진 공연장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환호와 웃음소리로 가득한 이 시간이 이렇게나 씁쓸하기는 또 처음인것 같다.

근래의 이런저런 썩 좋지 않았던 일들과 개인적인 피로감- 뜻하지 않은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이 교차해버린 두시간이었다.

2004년 11월 5일 금요일

논문 통과했습니다^^

하하-

오늘 정보시스템공학 최종 논문이 통과되었습니다~

이제 남은건 제가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을 정리한 5장짜리 논문만 작성해서
제출하면 되네요~

국문과에 비해 졸업논문 과정이 까다로워서 많이 힘들었는데
다행인지 이게 먼저 통과되서 기분은 한결 좋습니다.

이제 남은건 국문과 논문 뿐이네요!

이것도 좀더 부지런을 떨어서 빨리 끝내야겠습니다! 아자!

2004년 10월 23일 토요일

낮잠을 자야하나

밤에 통 잠을 못자는건- 아닌데..

살짝 부족하다 싶을만큼 자고 있다. 시험기간이기도 하거니와
코 앞으로 다가온 논문 발표를 마무리 하기 위해서- 새벽 3시나 되야 잠자리에 든다.

새벽 공기가 차지기 시작하면 아침잠은 점차 늘어간다.
뜨듯한 방바닥에서 벗어나고 싶지가 않다.

연신 울려대는 알람소리도 무거운 잠속에 묻혀져 그저 윙- 윙- 거릴뿐이다.

겨우 깨어나 커피로 시작하는 하루.

그렇게 정오가 지나면 다시금 밀려오는 졸음-
봄도 아닌데.

커피도 듣지 않는 이 시간의 이 야릇한 졸리움.

그냥 자야할까?

어깨는 아프고, 머리는 조금 어지럽고 몸은 나른해진다.

공원의 햇살마저 따듯하게 느껴지는 가을날 오후-
그렇게 벤치의 나는 반쯤 졸린 상태의 무거움속에 빠져든다.

2004년 10월 22일 금요일

간만에 글쓰기

밀린 블로그가 많다. 이 글에선 앞으로 올려볼 것들을 간단히 언급하겠다.

그 사이 영화도 두 세편 보았고, 제법 귀를 즐겁게 했던 음반도 들었다.
편집부 장터도 하였고, 이틀전에는 과내 컨닝 문제로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누구 누구의 연애 문제도 내 손가락을 근질거리게 하고 있고,
민호 선웅이와 야심차게(?) 도전했던 첫 사업의 '맨 땅에 헤딩하기'도 있었다.

저번주에는 이름도 모르는 선배님의 웹사이트 구축 의뢰가 들어왔고- 그로 며칠뒤 민호도 비슷한 케이스의 프로젝트를 접수받았다. 아직은 답보 상태- 조만간 무언가의 오고감이 있을듯하다.

그리고 이번주는 중간고사 기간. 월요일 데이터처리방법론을 마쳤고, 내일 정보검색론 시험이 있다. 정보검색론은 XML 수업이다. 실습은 그나마 자신이 있는데 지필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암기는 까막눈인지라. 특히나 이 수업 교수님 지필고사는 까다롭다. 그래서 성적은 그다지 기대 않기로 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난 그다지 시험과 성적 그리고 적성 미래- 의 상관관계를 복잡하게 보지 않는다. 아니 그냥 그렇다- 라고 생각한다. 이 얘긴 다른 글에 이어 할까한다.

양심을 베끼는 양심들

이틀 전의 사건이었다.

대부분 04들로 이루어진 1학년 전공 시험시간에 대대적인 컨닝 소동이 있었는가 보다. 사건의 전말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몇몇 양심수들의 억울한 호소를 통해- 전해지고 전해지다 모양의 적나라한 발표(그것도 학과 교수님 앞에서)를 통해 일파만파 커져버린 사건이 되어 버렸다. 소문의 확산이 문제가 아니고, 누가 컨닝을 하고 누군 안하고가 문제가 아닌거다. 국어국문학과의 창피스러움이고 당사자들의 분별성 없는 정신상태의 열받음이다. 거기에 선배들이라는 인간들의 무관심 역시 혀를 찰 모양새라 할 수 있겠다. 하필 내가 그네들 선배다. 젠장-

학교 공부를 하면서 가장 비양심적이라는 '컨닝'! 아무리 청렴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한두번의 컨닝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자 없으리- 덕분에 나름대로의 '양심'을 지키고 살아가는 나 역시 가만히 눈감고 떠올려보면 컨닝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모습도 아른거린다. 변명이겠지만 그래도 그건 초등학교때다. 중고등학교때도 아마 몇번쯤은 책상위에 뭔가를 적었던적은 있었던것 같다. 특히 지독히도 안 외워지던 수학 공식들. 가끔은 자리바꿈 뒤에 누군가 적어놓았던 공식들이 내 성적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던적도 있고...

작년 가을이었다. 03학번이 1학년이었던 때였고, 이번과 마찬가지로 조모 교수님의 국문학개론 시험이 시작되었다. 조모 교수님은 유난히도 조용조용하시고 편안한 교수님이시다. 때문인지 어린것들의 갖은 장난과 싸가지없음에도 그저 웃어주실 따름이다. 어린것들은 아주 대놓고 컨닝의 진수를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보고, 옆 친구와 상의를 해가며.. 아주 지랄을...

얼마뒤- 갑작스러운 재시험은 그렇게 찾아왔던 터다.

그 꼬라지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자손들인가 말인가?
04들은 03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고 있다. 아아.. 이 얼마나 훌륭한 후배들인고.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그들이 어떠한 모략과 수작으로 답안지를 작성했는가를!
그러면서도 하하 나는 다 보고 썼어~(의기양양) ... 쯧

탓할것도 못되겠다.
선배라고 예상 문제나 찍어줬지. 컨닝은 안된다. 다른 사람의 양심을 베끼는 짓은 하지 말아라- 라는 말 한마디 해준적이 없으니. 허-

넌센스다. 아이러니다.
1학년 장학생 평균이 4.2점대를 웃돈단다. 허허.. 밑에 깔린 녀석들의 초조함이 오죽할까. 베껴서라도 점수를 올려야겠지. 공부를 안 했으니 베껴서라도 답안지를 내야겠지.

더욱 얄미운 건. 무섭다 무서운 교수님들 앞에선 꼼짝도 못하면서 만만해 보이디? 그 교수님이? 그렇게 우습디? 니들은 대학생이다. 아직도 컨닝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해야 안하는 척을 해주련?

뼈 속까지 도둑놈 피로 가득찰 놈들. 이제부터라도 그러지 마라.
지독히도 무관심하고 안이했던 나 역시. 눈을 부라리며 나무라자.

3일 남은 연극 티켓-

한달전쯤해서 지인으로부터 연극 티켓을 선물 받았다.
초대권이었는데 당신이 받으신걸 봉투도 뜯지 않으신채로 내게 주셨다.
매번 감사할 따름인데.. 매번 내가 가 보지 못해 죄송함으로 인사를 대신하곤 한다.

첫번째 티켓은 그래도 발등에 불처럼 과제가 있었기에 여차여차 가보았는데
두번째 티켓은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었다.

그리고 다시 세번째 티켓이 손에 쥐어졌고,
이번엔 특별한 의미에서 내가 쓰자- 했지만.

아무래도 또 누군가에게 선물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 내일 모레, 24일까지다.

혹여라도 보고 싶으신 분은 연락해주길.
-초야라는 작품이다. 꽤 재밌어 보인다. 1인 2매!
물론.. 공짜로 주는거다..

2004년 10월 5일 화요일

오늘 입대신청을 했습니다.

오늘 입대 신청을 했다.
사실 병무청에를 다녀와야 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근 1년 사이에 그것도 전산화가 되었는지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클릭 한번으로 되더라.. 허 참..

2년전에 직접 병무청에 찾아가 내 손으로 입대하겠습니다! 라고 입대신청서를 작성했을때의 그 불안했던 가슴떨림이 아직도 생생한데..

하긴 오늘도 클릭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했던가..

마지막 순간까지 대학원에 대한 생각을 담아두었으니..

1분마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온다. - 바닐라스카이에서 나왔던 말이다.
지금 군대를 가야한다는 것을 선택한 나와 선택하지 않았을 나.
미래는 달라질 것이나- 후회는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인생에 대한 것 뿐이다.
선택한 삶에 대한 부족함을 채우기도 부족할진데..

이르면 내년 3월. 늦어도 여름이 시작될즈음.. 6월 어느날. 나는 삶의 전환기에 설 것이다. 올해만치 더울지..

2004년 9월 22일 수요일

22일

자야겠다.

하고 마음먹은 순간에 오늘은 왠지 몇가지 남겨놓고 컴퓨터를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적는다.

아침. 어느때와 다름없이 7시 반 시각에 일어났지만 어쩐지 다른날보다 조금은 게이르게 이것저것을 챙기며 집을 나섰다. 그래서인가 열걸음쯤 남겨둔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막 깜박이기 시작했다. 서둘러야지 하는 순간 들고 있던 우산의 끈이 떨어져 버려 우산을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막 떼려던 걸음을 그대로 멈추고 우산을 주어야만 했다. 신호등은 어느새 붉게 변했다.

걸음 걸음으로 언덕을 막 오르기 시작하면서 왜 그랬는지 한 걸음씩 쉬어 올랐다. 딱히 힘이 든것은 아니었지만 단숨에 올라가던 그 언덕길을 오늘은 태연자적하게 한 걸음씩 숨을 고르며 올랐다. 여느때처럼 숨이 차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을 길 건너편에 두고 또 신호등에 걸려버렸다.
조금 길다 싶게 기다리다가 신호가 바뀔 참에 20번 버스가 정류장에 스더니 바로 출발을 하지 않는게 아닌가! 때마침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나는 뛰었다.

열어주세요- 라고 차문을 두드렸다. 운전수는 못들은채 신호등만 응시한다. 흠-
관두자.

그렇게 한대를 보내버리고 나니 다음 버스는 좀체 나타나질 않는다. 15분여를 기다려서야 나타났다. 덕분에 오늘은 9시 반이 되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30분정도 더 걸린셈이다.

비는 집을 나설때부터 계속 내렸다. 과사는 비어 있었고, 잠시후에 호영이와 현갑이가 들어왔지만 10시가 살짝 넘어 나는 일찍 일어났다.

수업은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그럭저럭 사고 없이 지나갔다.

수범이 형이 빗길에 차를 태어주어 만우관까지 편하게 왔다.

과사는 여전히 비어있다. 잠깐사이 가현이가 다녀갔을 뿐이다.

진희에게 점심이나 먹자고 할까- 문자를 보냈다. 아니다. 호성이랑 먹을텐데.
답변으로 돌아온 진희의 문자와 전화에 애써 사양을 하며 선희에게 문자를 했다.

선희는 오늘따라 바쁜가보다. 연신 미안하단다. 괜찮은데.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하고 매점으로 향하다가 혹시나 해서 의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뚝- 수업인가 보다. 잠시 멈춘 발을 매점으로 돌렸다.

삼각김밥- 을 떠올렸는데 어느새 다 팔리고 없네. 초콜릿 하나를 쥐고 나와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비 때문인지 대출실 자리마다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행히 열람실은 한산했다. 5열람실은 편하게 노트북을 사용할수 있다. 무선 인터넷도 되고.

부식럭 거리며 초콜릿 하나를 다 먹고 자리에 적응이 되가던 참이었는데.
의경이에 전화가 왔다. 밥 먹잰다. 흠-

학생식당은 비가 오는날엔 대박이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20분이나 기다렸을까
겨우 라면 두개와 김밥 한줄을 받아왔다. 그 사이 명진이도 자리에 앉아 주련이까지 모두 넷이다. 내 뒤로 가윤이와 선미 보경이등이 앉아 있었고, 저쪽으로 가현이가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도서관. 아까완 다른 넓직한 책상에 노트북을 펼쳤다. 칸막이도 좋긴 하지만 조금 답답하니까.

한시간쯤 지나자 지영이 진아 혜정이 민지가 나란히 들어와 공부를 시작한다.
한시간쯤 지나자 미현이와 인혜가 내 뒷자리에 앉아 과제인가를 시작한다.

나는 그 즈음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트북의 밧데리가 거의다 되어 갔다.

과사는 - 아. 종애가 있었다. 불도 꺼둔채 혼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교재를 책장에 꽂아두고- 안녕-

하고 나왔다.

비는 여전하다. 더- 내리는듯.

청년정 근처에 다다랐을때였나. 해군복을 입은 남자아이와 낮익은 여자아이 둘이 걸어간다. 은주. 희진. 아. 알겠군.

마침 지나가던 진아가 놀라며 반기는 모습이 보인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서 그네들의 반가운 인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넷중 누구 하나도 나를 의식하지는 못했나보다. 내게도 반가운 마음이 있었는데.

그냥. 어쩐지.. 거기까지 다가가 아는척을 하진 못했다. 왠지 모를 마음의 돌덩이 하나가 내 다리를 그렇게 붙잡고 있었다. 나서지 마라. 그냥 있어라.- 그래.

혹시라도 같이 동행할 사람이...

없구나.

버스는 만원이 되었지만.. 집까지 동행할 사람은 없다.

5시. 수원역에 도착했다.

졸린 눈을 비벼대며 버스를 타고.. 집에.

비는. 계속.

비는... 여전히..

핸드폰은... 조용히 5시 반.

오늘 무언가 빠진것은...

음... 가슴. 내 가슴. 채워넣지 못한 차가운 내 가슴.


저녁.. 생략.


밤..

연주누나.. 이야기.. 길게.. 긴시간..맞죠?
제법 길게..오랜만에.. 이야기다운 이야기들을 나누었죠.
내 고민이었잖아요. 들어준거죠. 누나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상담하는건 익숙치 않아요.
결국에 또 나 혼자 마구 쏟아낸것이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누나 나는 어떤 사람이예요?
나의 어떤 면이 실망스러운가요. 단점일까요?

저도 알거든요.. 나 무엇이 잘못된건지..
그런데 참 답답해요. 왜 그게 잘 안될까요..

소름끼치도록 내가 미워져요.
미쳐버릴거 같아요.

다른 사람도 아닌데..
그 사람에게 한치도 서툰 내 모습 보여주기 싫었어요. 그게 잘 못 된걸까요...
부족한 내 모습.. 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낳은 모습만..
항상 부족해보이니까.. 그래서 그랬던건데.. 그게 왜 자꾸 트러질까요..
원치 않은 방향으로만 가요.

그사람 말 틀리지 않지만.. 그래도.. 내게도 변명.. 아니.. 그건 아니겠죠.
어쩐지 그 사람 나를 아주 낯설게만 봐요. 마치 마네킹처럼.. 바라보며 분석해요.
그래서.. 이해해주려 하지 않는것 같아요. 마네킹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니까.
분석해서 그렇게 판단하면 그만일테니.

그게 못내 서운한거예요. 내 사과를 차갑게 내몰아쳐도.. 그래도 그건 좋아요.
내 잘못을 그렇게 모질게 꼬집어도.. 인정할 수 있으니까.. 그건 좋아요.

왜 한번이라도 내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그냥 빈말이라도.. 이해해요. 라고 해주지 않을까요. 정말..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봐요. 그냥..그게 조금 서운해요.

새벽.. 1시 4분. 자야겠네요...

2004년 9월 20일 월요일

종일 굶었나.

아침밥 반도 못 뜨고 말았고.
오후엔 토마토 조금 먹은게 다고.
저녁 먹을 시간은 한참 지났고.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다..

가슴은 답답하고.. 머리속은 온통 하얗다 못해.. 숭숭 구멍이 났다..

진희! 감자탕 맛있드냐 ㅠ ㅠ

우울증

우울증 환자들은 공허감에 시달리며 세상만사가 귀찮고 항시 피로하고 생각과 행동이 느려진 느낌을 받는다. 이런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크다.

우울증의 증상은 식욕감퇴, 집중력과 기억력 감퇴, 성욕감퇴, 불면증 등이며 때론 그 반대의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해지면 관절통, 두통, 위경련 등 신체증상도 나타난다.

3주째 이러고 있는데...

2004년 9월 13일 월요일

졸업여행 다녀왔습니다.

2박 3일간의 짧고도 길었던 졸업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졸업여행- 그 이름만으로 가슴 벅차고 아쉬움 많이 남는 여행이겠지만 실상 우리들 여행은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즐겁고 들떠 있었지요. 힘이 들기도 했고, 비와 바람때문에 고생도 했지만 산굼부리의 푸른 하늘과 섭지코지의 거친 파도- 만장굴의 길고 어두운 굴과 미천굴의 아름다움. 천지연의 가슴 뭉클함과 주상절리의 절경은 가히 돈이 아깝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이틀이 보내고...
이제서야 조금의 흥분됨을 진정시키고 이렇게 돌아왔음을 알려드립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입니다.

돌아와보니 사실은 마음을 흔들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비는 제주보다 더 차갑게 내리고 있고... 둘 곳 없이 그저 출렁이는 마음에 여전한 피로감을 느끼지만 다부져야겠지요. 몹쓸어지기도 해야겠지요.

제주의 바람은 내게 그런 교훈 하나를 준 듯 합니다.
엉성하게 세워둔 담 같지만 그 모진 태풍에도 쓰러짐 없이 수백 수천년을 버티어 온 것 처럼. 그 모진 파도에도 그 모양 지켜온 용두암과 주상절리처럼.

나의 살아감은 휑-하게 구멍나 어리숙해 보여도 이 속만큼은 단단하게 더욱 모질게 굳혀보며 살렵니다. 그렇게 살아보렵니다.

2004년 9월 4일 토요일

짐싸기

이사를 가는건 아니지만
오늘 집에 돌아와서 다섯시간여동안 나는 홀로 짐을 꾸렸다.
수십장의 시디와 디브이디에서부터 교재, 소설책, 잡지, 만화책...
온갖 레포트와 프린트들..
컴퓨터 모니터와 고장난 스캐너하며 너저분한 선들까지.

한참을 정리하다가 짠맛나는 땀이 콧등을 간지럽히기 시작했을때
팔 다리가 찌릿하게 저려왔다.

방안은 썰렁해졌다. 먼지만 잔득 앉은채로-

내일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못해 싸기 시작한 짐들이지만-
그렇게 정리된 짐은 한결 개운해진다.

내 마음속에 짐들.. 이렇게 정리할수야 있겠지.

하지만.. 저 두텁게 쌓인 먼지만큼 내 가슴속에도 무언가 두텁게
남아 버리지는 않을까... 그게 두려운거야.

2004년 8월 31일 화요일

팔월- 삽십일일-

2년여 만에 복학한 친구들을 만났다.
반갑게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종일 수업이 3과목이나 있었지만 첫주인지라 공강이 만들어졌고-
종일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과사는 불도 안켜지고 선풍기도 안되더라-.

듣지 말아야 할 수업을 들어서 곤란하게 되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말썽을 일으켰다.
내지 말아야 할 화를 내서 무안하게 만들었다.
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봐서 마음이 아팠다.
떠올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떠올려서 마음이 더 아팠다.

어떻게 해도 수습이 안되는 것들...

병신-

내일은 구월- 좀 제대로 살아보자. 오늘같지 말고.

개강 그리고 컴퓨터 복구

어제 30일 아침- 두달하고 보름여만에 학교를 갔습니다.
그냥 간 것이 아니라- 개강이란것 했는지라-
어쩔수 없이 갔습니다.
다른 방학때 같으면 방학이 지루해서 참 학교가는 것이 좋았을텐데.
왠지 이번 개강은 마음이 찹찹해집니다.

두달여동안 일 다니느라고 논문도 제대로 건드려 보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방학 내내 열병을 앓다가 이젠 반쯤 지쳐버려서 어떻게 해야하는 아쉬움 한숨만 나오기 때문에. 겨울 방학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이번 방학이 내 대학생활 마지막 방학이었다는 것 때문에. 방학동안 동생 없이 홀로 지내시다보니 얼굴이며 어깨며 다리며.. 성한곳 없이 상하기만 한 어머니 때문에..
못난줄 알면서 고치지 못하고 또 못난짓만 했나보다 하고 후회하는 나 자신 때문에..

개강과 함께 다시 달구어진 아스팔트만큼.
이 안에 가슴도 편히 술 쉴 겨를 없이 답답해지기만 하다.

저녁내내- 갑자기 작업이 안되는 노트북을 새로 복구해야했다. 무려 다섯시간동안.

내 마음도 머리도 시디 한장만 넣으면 그저 간단히 복구될 수 없는걸까..

2004년 8월 30일 월요일

혼자 축구장 가는날.

오늘 저녁에 또 혼자서 축구장에 갑니다.
원체 축구는 좋아하니까 전에도 혼자서 잘 다녔지만.. 괜히 우울하네요 하하
2박3일간의 남도답사를 다녀오고 한 이틀 쉬면서 피로도 많이 회복했고..
오늘이 또 방학 마지막 날인지라 영화도 보면서 재밌게 지내고 싶었죠-
뭐 그러니까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단 말인데.. ^^
영 시간이 맞는 사람이 없네요. 그게 좀 우울하단 거죠.

뭐 여하튼 벌써 오후 4시이고 한두시간 집에서 더 죽치고 있다가
경기장에를 다녀와야 겠습니다.

오늘은 이기겠죠?

2004년 8월 24일 화요일

답사가기 하루전!

아아.. 몸이 찌뿌둥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

왠지 마음 한켠이 서운해서 그럴거야...흠..

아쉽다..아쉽다..서운해!

2004년 8월 20일 금요일

나도 나이테를 먹어가는가보다.

열살이 되던 해 이런 기분이 있었을까 기억이 가믈가믈 하지만은-
스무해가 지난 후 그리고 다시 3년이 지나 이제 스물 넷이라는 나이가 되어버린 가을 즈음에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졌음을 새삼 느껴본다.
불볕같던 한여름의 태양을 일순간에 물려버린 거대한 태풍처럼-
뜨거웠던 나의 욕심과 어린시절 꿈은 한번의 태풍에 휩쓸리듯 주춤하고 있는 것 같다.
이다음에 커서 정말 멋진 프로그래머가 되겠다고 가슴 설레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중학교 시절만 해도 꿈은 현실에 가까웠다. 차츰 차라나는 키만큼 늘어나는 나이테를 감지하지 못한것은 아니지만 한해 두해 한달 두달 한시간 두시간.. 그렇게 멈춤 없이 흐르는 시간은 내 꿈에 대한 욕심을 차츰 무뎌지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다행스러운것은 비록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크기만 했던 그 꿈은 그러한 테의 늘어남에 따라 차츰 현실적으로 변해간다. 나의 한계를 직감하고, 나의 능력을 인정하며, 나의 가능성을 바라본다. 나는 어디까지 갈 것이며, 어디까지 이룰 수 있을지.
불확실한 미래이고, 함부로 짐작해서는 안될 미래이지만 그리되리라 믿어지는 신념은 그만큼 두터워지는것은 아닐까.
나무의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나무의 허리는 더욱 견고해지듯-
나의 삶이 더해갈수록 나의 의지는 더욱 견고해지리라-

20일 11:16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물만 남은 것은 아닌가 봅니다.
어느덧 가을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2004년 8월 16일 월요일

지혜 수진이 지영이

과 후배들인 지혜와 수진이 지영이.

며칠전에 어디론가 셋이서 나들이를 다녀온 모양이다.

사진마다 즐거운 표정들이 묻어나는구나. 정말 보기 좋다..

세 친구 모두 내게는 참 소중한 후배들인데.

지혜는 공적인 일로는 편집부장을 맡아주면서 애써주고, 사사롭게는 나의 고민까지도 들어주는 후배다. 수진이는 내 기억으로 02년도 수진이가 막 입학하던 날 처음 봤던 후배였다. 수줍어하기만 하는 줄 알았던 02년도 그 모습에서 지금은 어엿한 보라성의 회장이 되었다. 볼적마다 반갑게 인사해주는 고마운 후배. 지영이는 조금은 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런저런 일로 많이 친해진 아이. 남원이 남원이 하는 별명만큼이나 남원스러운(?) 아이다. 웃을때 모습이 참 귀엽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렇게 만난 후배들.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살고 싶다.

고래비행군단

빙하 사이 파란 바다 위로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물 위로 솟아 오르더니 이내 물 속으로 잠수한다. 아기 고래, 엄마 고래 모두 아빠 따라 자맥질을 한다. 그러고는 수면 위로 솟아오르더니 다시 잠수하지 않고 수면 위를 비행(?)한다. 그들은 바다 위 하늘을 나는 것이다. 잠시 엄마 아빠와 헤어진 아기 고래는 빙하 속 심연, 얼음 수정 사이를 돌아다니다 엄마 아빠의 그림자를 본다. 자기는 빙하 동굴에 있고 그들은 동굴 밖에 있는 것이다. 동굴 한가운데 광선의 기둥을 따라 서서히 부상한 아기 고래는 빙산의 '분화구' 위로 솟아오른다. 그러고는 부모와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 아빠 고래는 마치 거대한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듯 바다 수면 위를 미끄러진다. 바다 속 깊은 어둠의 세계로 다가가 다른 고래들을 불러모은다. 고래들은 모두 수면 위로 솟아오르고 하나의 비행 군단을 이룬다. 파란 하늘을 관통하며 편대 비행을 하는 고래들-. 글들은 고공으로 상승하여 구름 사이에서 자맥질한다. 번개와 천둥이 치지만 고래 비행 군단은 대열을 흐트리지 않고 더욱더 고공으로 상승한다, 마침내 고밀도의 구름 띠를 뚫고 솟아오른다. 그곳은 천상의 바다이다. 그 물결 위에서 고래들은 자맥질한다. 그런데 천상의 바다는 하늘인가, 바다인가?

<깊이와 넓이 4막 16장 / 김용석 님의 책 중>

이제 방학 시작합니다^^

두달여간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제서야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열린 올림픽 덕분에 올빼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논문이며, 프로그램 개발이며, 잡지 제작 일이며, 다음주 답사 일정이며.. 할 일이 많네요.

이젠 더위도 한풀 꺾인다고 하고.. 이른감 있지만 벌써 가을을 맞이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가을하니 괜히 제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데...^^ 지난 긴 여름 제 마음을 애태웠던 시간들이 무색해지려 하네요..

첫 날입니다. 저의 방학 첫- 날. 책을 읽고, 논문 자료를 뒤척이다가 TV를 보고, 음악을 듣고..

조금 후에 근처 동문으로 출사를 가볼까 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 좋은 하루 되세요.

2004년 7월 30일 금요일

중복을 하루 앞 두고

덥다 덥다 해도 이렇게 더울수가 있을까? D-15란다.
보름후면 이름하여 "태극전사"들이 그 덥디 덥다는 그리스로 간단다. 죽지나 않기를. 묵념-.

주중에 한주 쉬기로 한지 3주째가 된 것인가? 시간 참 빠르다.
어쩌다 고른 날이 어쩌다 보니 오늘이 되었는데 참으로 덥다. 아침부터 종일 가게를 보며 앉아만 있지만 흐르는 땀을 어쩌지 못할 지경이다. 어제 새로 산 선풍기까지 총 3대가 돌고 있다. 그렇게나 에어컨 노래를 했건만.. 둘 곳이 없다고 결국 선풍기 바람으로 한 여름을 버텨내고 있다. 나야 두달내내 회사 에어컨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서도 어머니는 좋지도 않은 몸으로 더위와도 싸우신다. 하루에도 몇버씬 짜증스러우실텐데.. 지치실텐데.. 대단하시다.. 오늘만큼은 내가 이 더위 다 받겠습니다.

뭔가 해야할 일이 많았다. 방학내내 해결보지 못한 논문도 도로 끄집어 내서 뭔가 해야할지를 체크해 봐야 했고, 편집부 모임과 관련한 몇가지 내용들을 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다 접어뒀다.
어제부터 받기 시작한 영화 두편을 오후 내내 봤다. 나인마일2편과 스파이더맨2편. 어쩌다 보니 두 영화다 2편이었는데 나인마일은 전편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고 스파이더맨2는 역시나 기대이상으로 멋졌다. 극장에서 찾아보지 못한게 씁쓸할 뿐이다.

5시 반쯤 되서야 영화를 다 보고 시내로 나섰다. 100일 휴가를 끝내고 귀대한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어쩌다가 안경테를 부러뜨렸는지 하나 맞춰서 보내달라는 말이었다.

안경집 이름은 모르고, 그저 옛 로얄극장 뒤편으로 대지서점가는길에 있단다- 어디냐? 초저녁에 가까워지는데도 햇볕은 강렬하다 못해 징할정도다. 횡당보다 맞은편 태양이 파란불 되거든 내쪽으로 건너왔으면 한다. 내 등뒤로-

한바퀴를 휘 돌았다. 중앙극장으로 이름이 바뀐 옛 로얄극장 뒷 골목에서부터 자리를 옮긴 대지서점까지. 하도 간판만 보고 가다 어느 옷가게 낮은 간판에 머리까지 박았다. 어찌나 아찔하게 아프던지. 오는 내내 좋지 않은 생각들을 했는데 그 때문인가.. 하늘에서 아버지가 혼내셨나 보다. 그런 생각일랑 하질 말라고- 네- 아버지.

한바퀴를 돌고나니 대중잡아 세집이다. 좀더 시장쪽으로는 더 많이 있기는 하다만 일단 동생이 일러준 방향으로는 코너에 한 집. 코너 돌아서 나란히 두 집이 있다. 좋다. 코너 집부터 들어가보자.

저기- 죄송한데. 몇달전에 여기서 안경을 맞춘 사람 기록이 남아 있나요? / 네- 누구신데요? / 추수호라고. / (확인중)아- 있네요.

운이 좋았나?

안경을 맞추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0여분. 가격은 7만원. 결제는 카드로 일시불. 그 사이 난 2층 대기석(?)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시고 편집부장에게 연락을 해서 출사와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한참을 기차로 달려올 누군가의 연락이 혹시나 있을까 싶어.. 내내 핸드폰을 쥐고 앉았다.

손님 다 되었습니다- /네.

돌아오늘 길은 더 더웠나. 이젠 등이 쫙 달라붙은 티로 잔득 무거워졌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돼지고기 만원어치와 화장품 하나를 사러 갔다. 화장품은 떨어지고 없고. 그 옆에 정육점에서 불고기할 것으로 달랬다. 시커먼 비닐봉지에 가득한 고깃덩어리가 무겁다.

간판밑뚱에 호되게 얻어 맞은 머리에 통증은 한참 전에-안경점에서 커피마시는 사이에-가셨지만 그 사이 점점 불안한 마음속에 사념들이 잔득 머리로 기어 올라왔다. 한점 한점 제대로 익지도 않은 돼지고기 살점들이 머리속으로 채워졌다. 아무도 집어가지 않은채로 쌓이고 쌓였고, 기름이 줄줄 흘러넘친다. 모공사이로 삐죽삐죽 흘러나오다가 목을 타고 등으로 등으로 주룩 주룩 흘러 내린다.

발바닥은 금새 언덕 꼭대기에 돼지고기를 얹어다 놨다. 태양과 좀 더 가까운 곳에다가. 멀리 오늘 저녁 8시 세계적인 명문클럽 FC바르셀로나와의 일전을 앞둔 빅버드(수원 월드컵 경기장)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고싶다-

머리속에 가득했던 고기들을 결국은 내가 다 먹어야 했다. 몇점 남기기는 했지만 꽤나 맛나게 지저놓은 고기들은 밥 한공기를 더불어 채워넣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TV속에서는 호나오딩뉴의 그럴싸한 개인기가 리플레이되고 있다.

경기는 1:0 수원의 승리- 짜릿한 승리-

가 볼 것을...

오후에 보낸 문자에 대한 답문이 없다. 잘 도착했을까?

2004년 7월 27일 화요일

외계인을위한설문지

1. 본명은 무엇인가요?

2. 고향은 어느별인가요?

3. 성별은 무엇이고 나이는 어느정도인가요?

4. 지구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지구에 오게 된 지 얼마나 되었나요?

6. 고향별에서 하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7. 지구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8.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9. 주위의 지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 적이 있나요?

10. 지구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요?

11. 지구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12. 지금 가담하고 있는 지구 내 외계인 커뮤니티가 있습니까?

13. 고향별과 연락할수 있나요? 연락할수 있다면 통신 수단은!?

14. 당신이 생각하기에 지구인과 고향 별 사람들과 가장 다른점은 무엇인가요?

15. 지구에서 나타나는 외계인 관련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맨인블랙이나 테이큰같은)

16. 고향별과 지구를 제외한 다른별에 가본 적이 있나요?

17. 지구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환경적특성/문화/관습이 있나요?

18. 주변에 교류하고 있는 다른 외계인들이 있나요?

19. 고향별엔 언제 돌아갈 생각인가요?

20. 이 질문을 만든 사람에게 한마디해주세요

2004년 7월 21일 수요일

난 코더다

코더라는 직업(?)을 가진지 벌써 2년째다. 음- 사실 직업이라기보다 아르바이트로 방학 때마다 해온 일인데. 그래도 벌써 2년째 네 곳의 직장에서의 코딩 작업은 나 스스로도 어느정도 경력다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처음 코더라는 일을 찾았을 때는 단지 드림위버나 나모를 이용한 페이지 찍어내기-가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두번째 회사인 디자인스톰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나의 그런 생각은 어느정도 변화를 가질 수 있었다.

개발팀장님셨던 '들소'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이지만 외국의 경우 페이지메이커라는 분리된 파트가 존재한단다. 기획자와 개발자, 디자이너, 그리고 페이지메이커(코더)는 각각의 영역에서 확실한 자기 파트의 업무를 처리하고 효율성을 극대화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코더의 역활은 소규모일수록 무시되고 디자이너에게 또는 개발자에게 일임된다. 그들의 업무가 많아지고 피곤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발만 해도 머리통 깨지고, 디자인만해도 입에서 단내가 나거늘.. HTML 코딩따위를 덤으로 맡아서 해야한다니! 하는게 아마도 그들 생각 아닐까?

그리고 작년 여름에 디자인피버라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을 대 '전문코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말인즉슨 요즘에는 전문적으로 코딩을 하는 사람을 구하는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거기서 일하게 되었다.

코더가 하는일은 간단하다. 죽어라 HTML페이지를 만들어내면 된다. 메인페이지같은 경우 하루에 2~3개쯤 만들면 진행이 나쁘지 않고 서브페이지는 하루에 수십에서 수백 페이지를 찍어낸다. 인쇄기에 돌리듯-

지겹다. 짜증도 나고. 그런데 여기서 생각을 조금 바꾸면 상당한 매력과 권한을 가지게 된다. 또한 자기성장까지도 노려볼 수 있게 된다.

개발자는 OOP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디자이너는 화려함에 취해 있고, 기획자는 온갖 잡다한 것에 취중한다. 이렇게 다른 세 파트의 딴지와 앵앵거림을 한몸으로 받는 사람들이 코더다.

기획자로부터 스토리보드를 받고, 일련의 작업 과정을 설명 듣고, 디자이너로부터 디자인파일을 받아서 포토샵으로 열심히 칼질을 해댄 후에 에디터를 띄워놓고 종일 테이블을 쪼개고 붙이고 하면서 '하드코딩'을 한다. 그리고 완성된 페이지는 개발자에게로 넘어간다. 여기서 끝? 아니다. 개발파트에서 HTML소스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을 경우 수정요구가 들어온다. 그뿐인가? 클라이언트의 마음이 바뀌면(이 세계에선 클라이언트가 무조건 왕이다. 젠장맞을것들) 디자인도 바뀐다. 기획도 바뀐다. 코더는 또 야근한다.(물론 개발자의 밤샘과 디자이너의 야근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코더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인다. 코딩 과정에서 철저하게 준비되고 일괄적인 코딩을 하느냐에 따라 분리된 세 파트의 기능이 절묘하게 조합되고, 이후 수정요구에 쉽게 대처할 수 있다. 처음 코더를 할적엔 이러한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수백페이지를 날림으로 만들어놓고 나중에 밤새서 수정한 기억이 아직도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ㅠㅛㅠ

이런저런 궁시렁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전문코더'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그럴만한 코더도 흔치 않아 보인다. 기획과 디자인 개발을 고려한 코딩 스타일을 제시하는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말이다. 적절한 스타일시트를 제안하고, 필요한 스크립트를 배치하며, 구조화된 테이블 레이아웃을 제안하는 것. 얼핏 말이 쉽고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수천페이지의 대규모 코딩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게 그렇게 말만큼 어렵지 않다. 수년의 경험과 축적된 노하우가 없이는 그렇게 호락호락 만들어지지 않을 경력이란 말이다.

코더! 이거 만만히 볼 일이 아닌 것이다. 기왕에 시작한 코더라면 제대로 전문가가 되어보자.

2004년 7월 14일 수요일

흔들린 사진들

사진을 찍다보면 참 많은 사진이 흔들려서 버리게 된다.
숨도 쉬지 않고 최대한 몸을 낮추고도 그렇게나 애를 쓰며 흔들리지 않으려고 해도 셔터를 누르는 마지막 순간에 약간의 흔들림은 사진을 실망스럽게 만들곤 한다.

정말 좋은 사진 한장이 얼마나 힘들게 만들어지나-를 고민하거나 얘기하고 싶은게 아니다. 살다보면.. 참 많은 순간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 생각해보면 우린 그렇게 매 순간 순간 흔들리며 살아간다. 사진은 그저 흔들려서 보기 싫어지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내 삶은? 너의 삶은? 우리들 삶은.. 그렇게 쉽게 버려질수 있을까..

너무 많이 흔들려서 이젠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땐..
어떤 사람들은 너무 아파서 그대로 주저앉기도 하지만.. 참 많은 사람들 다시 힘내서 일어나는 걸 보면.. 그저 사진과 같지만은 않다는 생각 또 해본다.

흔들려서 버려진 사진은 그것으로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리지만.
너무 흔들려서 한때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고통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흔들린 기억은 그것 자체로 또렷하게 남아 내게 남은 시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오늘 문득 창 밖에 장마비를 찍다 흔들려버린 사진을 보면서 느껴본다.

2004년 7월 7일 수요일

육교 위에서.

늦은 시간인데 어쩐일로?
그냥.. 가슴이 좀 답답해서 걷던 중이었어. 여기 올라오니 조금 아찔하네. 원래 이런가?
뭐 그렇지 이런곳에 있는 육교라는 것이...
인적이 드믈고 음산함도 느껴지고.. 저 가로등이라도 하나 꺼져봐..
무슨 낭패를 당할까.
그렇군.. 여기 떨어지면 죽을까?
음.. 뭐.. 잘 떨어지면 죽겠지. 운이 나쁘면 살지도 몰라.
그래? 그럼 운수가 좋은날 골라서 뛰어내려야겠군.
응 응. 그래야지. 괜한 병원비 날리지 말아야지.

요즘엔 무슨 고민이야?
응? 그냥. 뭐 항상 그렇지^^ 언제나 이 즈음해서 힘들곤 하잖아 이젠 습관인것도 같애. 나 자신이 참 미련스럽네.
넌 그게 언제나 문제구나. 보는 사람이 답답해질수도 있다는걸 모르냐? 좀 후련하게 잘라내는 버릇을 길러.
잘라내라.. 무엇을? 살면서 그렇게 쉽게 잘려지는 것이 있던가?
짜식.. 갑갑하네. 무에가 두려워? 무에가 겁이 나서? 도대체 뭔데? 널 그렇게 지치게 하는게?
지치게 하는거? 음.. 내 어질머리- 환경. 사람들. 그런건가? 남 때문은 아닌것 같은데..
결국에는 니 속이 타는거 아냐. 니 속이 새카맣게 타서 그러는거 아냐?
뭐 그런샘이긴 해.

병신- 지랄을 해라. 아주..

훗... 미안하다. 내가 이래놔서.

아냐?

응..

해답은?

지식인에게 물어볼까? 검색하면 좀 나오려나?

지랄..

여기 앉아있으면 나도 거지처럼 보일까?

옷이 더러워야지. 냄새도 나고 머리도 헝클어 놓고. 비듬도 만들어.
이빨도 서너개 부러뜨려놓고. 말은 하지마. 눈은 흐리멍텅하게. 몸은 최대한 구버지게 .

하하.. 그것도 어렵군. 나는 거지가 될 팔자도 못된단 말인가.

당연하지. 요즘같은 불경기에 그것도 직업이야. 너는 하지도 못해.

요즘도 동전 던지냐?
동전? 음 아니 요즘은 잘 안해.

왜 한동안 그짓 많이 하더니?
그냥. 이젠 그런 단순한 결정은 따르지 않기로 했어 잘 맞지도 않고 말야. 앞면이면 행운이고 뒷면이면 불행이다- 싶었던 마음.. 그건 정말 바보같았던거 같애. 그때는 그렇게라도 동전점에 의지하고 싶었나봐. 하루 하루 그렇게 그날의 점을 물어보곤 했지 동전에게...

요즘은? 어디에 기대는데?
요즘? 음 네 보기엔 나 답답해 보이겠지만 내 가슴을 믿어보려고. 자꾸 아니다 싶고 힘들어지는일도 많긴 한데 그래도 결국엔 내 가슴이 내키는 것으로 마음이 하고자 하는것으로 해야지 후회가 적더라고 그래서 나를 믿어보기로 했어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내가 바라는 것을 떠올려. 그리고 생각하지 잘 될거야. 라고.

잘돼?
하하. 아니.. 안돼. 오히려 반대인가? 그래도 뭐 좋아. 아직은 잃은게 아니거든. 끝난게 아니거든. 사실 생각해보면 끝이라는건 언제나 내가 먼저 돌아섰기 때문에 끝난거였어. 뭐든지 간에 말야. 기어이 붙잡고 있으면 어쨌든 끝은 나지 않잖아.

그러다 영영 부질없는 것이 될지도 모르는데?
응 그렇긴 하지. 그럴땐 명철한 판단이 필요하겠지.

명철한 판단이라. 니 머리로 그게 된다고 생각해?
음. 아니 노력해야지. 끈기는 가슴으로 할거고 최후의 판단은 머리로. 그게 지론이야.

가슴과 머리라. 말은 좋네.


여기 올라오면 왠지 울적해져. 아니 슬퍼. 마치 내가 가로등이 된듯해. 아무도 없는 곳을 외롭게 비춰주는 가로등 말야. 저것처럼.

지금은 저게 널 비추잖아. 더 멋지게 해줄까? 가로등이 되버린 넌 날 비추고 있다고. 후후.

오랜만이었다. 그치?
응- 또 와. 어디든 있다. 나.

커피.. 일상..

커피를 좋아합니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건 아마 고등학교 1학년때였던것 같습니다. 친구를 따라서 매점까지는 갔지만 과자를 사먹긴 쉬는 시간이 길지도 않았고 뭔가 군것질을 좋아하지는 않았었지요. 더군다나 아침 자율학습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던 시절에 그 시간은 언제나 비몽사몽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면 잠이 좀 달아날까 싶어 마시기 시작했던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학교든 집이든 오늘처럼 회사든 언제나 가장 먼저 커피를 뽑거나 탑니다. 200내지는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는 그 짧은 순간이 어쩜 가장 편안한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뜨겁게 녹아있을 커피의 향을 느끼기 위한 기다림. 강렬하진 않지만 이젠 익숙해져버린 기다림이지만 어쩐지 모를 설레임을 가지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커피를 탈 적엔 일회용 커피를 흰색 종이컵에 쏟아넣고 뜨거운 물을 한컵에서 손가락 마디 하나쯤 모자르게 따르고서는 차수푼으로 휘휘 저어줍니다. 역시나 그 순간은 내게 기다림을 가르쳐 줍니다. 설레임도 가져다 줍니다. 한가지 더 좋은것은 그렇게 직접 타 마실적엔 내게 물을 끓이는 수고를 주고, 물이 끓어올라 김이 나는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달구어진 꼬마주전자의 지글거리는 소리는 내 가슴에 부끄러움을 태우듯 그렇게 뜨거워집니다.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따르는 순간엔 점점 그 속에 녹아들어가는 커피와 프림 설탕의 알갱이들이 보입니다. 녹는. 사라지는.. 형태를 찾을 수 없게 되는..
하지만 그것들은 그렇게 어우러집니다. 맛이 되기 위해서 달콤한듯 쓴 커피의 그 맛을 내기 위해서 향이 되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입과 코와 가슴을 위해서.

나는 그래서 커피를 좋아합니다. 잔득 뜨거워졌다가 금새 식어버릴 캔커피보다는 자판기 커피를. 끓이는 수고는 있지만 그러기에 더욱 나를 느끼게 해주는 일회용 커피를. 설탕 프림 커피를 내 뜻으로 섞어내는 그런 커피를 나는 좋아합니다.

나 역시 나의 모난 성격과 행동, 생각을 한데 섞었을때 다른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2004년 7월 4일 일요일

어질머리

"어질머리. 삶은 어질머리를 가만히 앉아서 풀어가는 가내수공업 센터 같은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긴 하였다. 풀어간다는 것도 살면서 풀어가는 것이고, 산다는 일은 어질머리를 보태는 일이었다."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p20 중에

살면서 풀어가고, 산다는 것이 보태는 것이라.. 어쩜 그리도 명확하게 써 주셨는지.. 구보씨 감사합니다.

나역시 요즘음에 들어서요. 참 그놈의 '어질머리'가 심해져서 고단할 지경이거든요. 이런저런 어질머리가 귀찮기도 해서 당신의 저서를 들춰보다보니 내 어질머리를 느끼셨는지 냉큼 저런말 한마디를 던져주시는군요. 하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런데 참 얄궂네요. 살면서 풀어야 한다는것은 알지만서도.. 왜 또 보태야만 하는 것일까요? 나중에 풀려고? 아니 풀며 살면 심심할까봐? 하하..

어질머리라는 용어도 참 마음에 듭니다. 에잇 신가놈 하시던 구보씨의 그 욕설도 제겐 마음에 들었는데. 어질머리라는 그 말도 어쩜 지금 약간의 현기증 비슷한 느낌과 잘 맞는것 같습니다.

앉아 있는데두요. 어지러워요. 뭔가 잔득 머릿속에서 점을 따라서 계쏙 엉키고 섞이고 쫓아가거든요. 꼭 아주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몇시간째 해메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차라리 외진 시골이라면 얽힌 논밭 사이사이를 걷는것이 이처럼 답답하고 힘들고 외롭진 않겠지요? 훤하니까. 멀리 산도 보이고 저 멀린 집도 보이고 저 언덕만 넘으면 차가 다니는 큰 길이 나올것도 같고. 분명한것이 많고 살짝 가려져있어도 예상할 수 있고 그래서 마음만은 편안하고 아무리 복잡하고 울퉁불퉁해도 이 논 저 논이 섞이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길 하나를 두고 나뉘어 있으니 화날일도 없고.

그런데 참으로 내 머릿속은 그렇지가 못해요.
이생각 저생각이 마구 침범을 하죠. 이마음 저마음이 서로에게 시비를 걸죠. 이랬다 저랬다. 젠장맞을..

기도

두려움이 무겁게 깔린 중환자실 앞 복도였다. 10분이 지났는지 1시간이 지났는지- 아니 몇일이 지났는지 도무지 감각의 모든 것이 끊어진채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토록 간절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하나님이든 부처든 무슨 신 무슨 신이라고 불릴만한 존재가 존재한다면 제발 나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그토록 애원했던 적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 간절함과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양력 달력으로 한장을 넘기고 그 해 첫 눈이 내리던 날 아침-

나의 앞에는 미안함만 무겁게 가슴에 묻고 눈을 감아버리신 아버지가 계셨으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라든지 하는 것 따위의 지나친 불신은-
나름대로의 현실성을 따지지만 그 해 그렇게 처참하게 거절당한 슬픔이 컸을 것이다.

기도- 내게 기도는 이제 보이지 않는 자에게 터무니없는 부탁을 청하는 것이 아니길 바라고 하지 않으려고 애써본다.
내 마음. 내 신념. 내 의지. 부족하지만 그렇게 내게 기도한다.
언제나 좋은것보단 나쁜것을 먼저 근심하고, 불안한 과정에 대한 확신을 지켜나가는 의지도 약하지만 내게 기도는 나 스스로를 지탱해 나갈 유일한 버팀목이다.

한번은 길에서 헤매보지 않으면, 자신의 해답에 닿을 수 없다

"한번은 길에서 헤매보지 않으면, 자신의 해답에 닿을 수 없다."

후루츠 바스켓에서 나온 명대사라며 내게 일러준 말이다.

살다보면 참 많은 어려움속에 봉착하고 만다. 공부를 하다가 시험을 망칠수도 있고,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기도 한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착착 진행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트러지기도 한다. 내 안의 잘못일수도 있고 상황이 그러그러하게 이끌려 가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린 해답이란것을 찾아 해메게 된다. 그래. 어딘가 답이 있을거야. 그걸 찾으면 이 난관으로부터 빠져나갈수 있을거야- 라는 믿음. 나 역시 숱한 어려움을 그렇게 빠져나오려고 했던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만다.. 그리고 다시 한번 힘들어하며 좌절내지는 포기라는것을 택하곤 했었다. 되풀이 되는 단념들..

동아프리카 속담에 "길을 잃는 다는 것은 곧 길을 아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후배가 일러주었다.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말.

헤매이던 길에서.. 길을 잃었다는 순간.. 어쩌면 이미 길을 알고 있을거라는 생각? 생각의 전환? 믿음의 발견.? 그 느낌이 오면 해답에 닿을 수 있는 것일까...

깊은 밤 알 수 없는 두 문장 사이의 고리가 닿을듯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붙는다.. 그러기를 또다시 반복.. 시계의 추처럼-

2004년 7월 2일 금요일

Open Your Eyes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의 인상깊었던 목소리.

남자의 잠을 깨우던 그 목소리.

그 목소리는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통해서 두번 나온다.

삶은 반복된다..끊임없는 삶의 파편들이 오마쥬되어 수없이 반복되고 재생되고 기록되어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지금의 아픔이 어쩐지 낮설지 않음으로 다가오면 어느새 새로운 기쁨을 느낀다. 그 기쁨 역시 오래전 어느 날인가 한번쯤 경험해본 것이다. 그렇게 생각되어온다. 어젯밤 꿈에서 본 그 장면의 연출. 수없이 많은 필름의 조각들중에 내가 원하는 것만을 컷하며 반복하고 있는듯한 삶의 되풀이.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은. 반복되는 그 삶속에서도 사람만은 다르기 때문이다. 오후에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먹는 점심이 즐거운건 2년전 그 공간속의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오늘 저녁 만나는 사람이 어느날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며, 지금 이순간 내가 떠올리는 사람이 예전의 그 기억의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쩐지 같은 삶의 조각들. 반복되어지는 꿈의 회복.
깨어남- 가끔씩 그것들이 섬뜩함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눈물이 되고 기쁨이 되는것은- 네가 그 사람이

내 삶에 십분지 일도 채 되지 못하는 것들..

내 삶에 있어서 십분지 일도 채 되지 못하는 것들이라...

하하.. 과연 십분지 일을 넘기는건 또 얼마나 되는걸까..

사람들은 흔히 하는말로 내 인생의 전부- 라고 한다.

인생의 전부.. 사랑하는 사람? 애인 부모님. 형제.. 꿈..

문득 생각하기로는..

삶에는 천분지의 일도 채 못되는 작은 것들의 퍼즐로 꿰 맞추어진
하나의 그림이다. 수 많은 공간이 채 맞춰지지 않은채로 남겨지겠지만 멀리서 내려다 보면 그 형태를 알아볼수 있는것처럼.

우리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 그것이 내 삶에 모든 퍼즐을 다 덮을 만큼의 크기여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작은 퍼즐조각이지만.. 너무나 애틋하고 특별한 그 퍼즐이 좋아서 가까이 아주 가까이 내 눈 가득히 찰때까지 가까운 거리에 다가가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애틋함 때문에 매 순간 순간 내가 쥐고 있는 퍼즐을 소중하게 다루고 빈 자리에 맞추어 놓을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2004년 6월 25일 금요일

개념없는 손님 여러분~

소주 값 오른지가 한달째인가 그렇다. 오늘 평소 들르지도 않던 아니 처음 들린것 같은 한 아주머니가 소주 두 병을 사러 오셨는데
대뜸 천 원씩이지? 라고 묻길래. 아니요. 천 백원이예요-
천 백원? 천 백원은 또 뭐야? 저기 xx슈퍼는 천원이던데.
네- 또 저 xx슈퍼도 천원이던데 왜 여긴 백 원 더 받아? 응?
네? 올른지 좀 됐어요. 거긴 큰 슈퍼잖아요.
(노려보며) 말은 잘하지-!

하하... 대략 어이없는 아주머니. 맘 같아서는 안팔고 싶고. 거기 가서 사라고 해버리고 싶었지만. 어차피 또 올 손님도 아닌것 같고 말 상대조차 하기가 싫었다.

오늘이 유난한걸까. 왜 들어오는 사람마다 지나가는 손님들이고 죄다 반말일까? 야. 뭐좀 줘. 저거좀 꺼네와.

이 사람들 도대체 개념이 있는걸까? 자기보다 어려보이면 무조건 반말해도 된다는 생각들이 단단히 박혀 있는지. 그저 내가 학생 같아 보이니 그런것인지. 그렇담 내 나이 알면서도 꼭 말 높여주시는 동네분들은 병신이던가?

나는 가게 주인으로 물건을 파는 것이고, 당신네들은 손님으로 물건을 사러 온다. 당신들하고 나는 위아래 관계도 아닐진더러 옛말대로 손님이 왕이니 하는것도 다 얼어죽을 소리일 뿐이다. 손님이면 손님답게- 들어와주어야. 주인도 웃는 얼굴로 대하고 서비스도 하는 것이지. 동네 조그만 슈퍼에 와서 이름대면 다 알만한 대형슈퍼에서 뭐가 얼마나 싸다느니 해대면 뭐- 어쩌라고? 거기가서 사시라고. 언제 우리집 와서 사달라고 광고라도 했던가. 본인이 귀찮아서 찾아왔으면 우리집 가격에 사가는것이고. 이래 이래서 이렇게 받습니다. 했으면 알아듣고 사던지 말던지 하는 것이지. 대놓고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고 쳐다보면 단가. 내가 어려서? 어려보이니까? 당신이 나이를 먹었으면 당췌 얼마나 먹었길래? 생각이 짧은것 같으오. 당신들.

아직도 고리타분하게 왕대접 받고 싶으신 분들.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 백화점 매장이나 들리시지요. 여기는 동네 조그만 슈퍼일 따름입니다. 아하하하. 우습구료.

2004년 6월 24일 목요일

머리 스타일?

중학교를 입학하고서부터 언제나 똑같았던 스포츠 머리.
정말 3cm도 안되는 짧디 짧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치켜 세우고는 그렇게 6년을 지내다 보니 조금씩 자라나는 머리를 보면서 알수 없는 두려움과 흥분으로 며칠을 보냈던 기억도 난다.

애시당초 곱슬머리에.. 숱도 많은 머리..
뭘해도 폼이 안나긴 마찬가진데.. 대학 들어와서 처음 염색이라는 것도 해보고.. 젤이라는것도 발라보고.. 나름대로 세워보겠다고 스프레이를 마구 뿌려대다 방바닥이 다 끈적거렸던 날도 있었는데.

뭐- 그때 잠시뿐이긴 했지만. 나도 으레 다른 아이들 하는 모양으로 그렇게 머리에 스타일을 주고도 싶었던것 같다.

지금은 그저 한달에 한번 미용실에 찾아가 앉으면-
그 머리 그래도? / 네-

하고는 10여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제와 똑같은 머리가 만들어진다.
하하.

그런데. 이번에 머리를 자르러 갔던날엔 아주머니께서 염색을 한번 해보라 하시던데. 장사속?

가끔은 나도 그렇게 색이라도 내어서 내 뒤숭숭한 마음에 변화를 주고 싶긴 하지만..^^ 참 뭐랄까.. 그다지 효과가 없더라. 그냥 그래.

오늘 누가 머리를 한다고 하는데. 살짝 놀랐는데.. 음. 그 사람 무슨 마음의 변화라도 있는건 아닐까? 해서였을까.. 하하.. 괜한 앞지르기다. 아무일 없는것을. 더우니까. 방학도 했잖아. 머리도 상했다니. 바람도 쐴겸. 그렇게 머리를 하러 나간다고 한다. ^^

2004년 6월 23일 수요일

테러..죽음.. 씁쓸함..

오늘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온세계가 술렁인것 같다.
당장에 한국사람이 당한일인지라.. 한반도는 발칵 뒤집혔다고 보는게 맞을테다.
뉴스마다 온통 그 얘기고.. 볼적마다 마음아프고.. 속이 끓는것은 나 역시 한국 사람임이기게 그럴진데.. 어쩐지 쓴웃음 나는 까닭은 멀까..

알 자르카위라지요? 지목되고 있는 테러집단의 우두머리가...
문득 지난 아프간에서의 빈 라덴이 떠오르더라구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지만 빈 라덴을 잡지 못했죠. 우린 그 광경을 TV로 보면서 얼마나 고소해 했었는지.. 빈 라덴을 통해서 미국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해소하는 통쾌함을 맛봤던건 아니었던가요.. 물론 다들 그랬다는건 아니지만.. 분위기는 분명 그랬던거 같은데..
쫓는 부시와 잘도 도망치는 빈 라덴을 그려넣은 만화아 동영상.. 그 많은 패러디와 풍자가 그냥 나왔던건 아니었겠죠.

오늘 우리나라 사람 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테러집단에 의해서.
하하.. 우리는 정말 엄청 분개하고 있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더라구요. 한쪽에서는 군대를 만들어서 뭐에 쓰냐 이럴때 써야지(뭐 꼭 태혁군 글 아니라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하기도 하고.. 전쟁.. 좋죠. 화도 나는데 확 밀고 들어가서 테러집단을 깡그리 뭉개버리는거! 복수 해야지요 복수.

그런데 그럼 또 미국이랑 모가 다른지. 이번엔 쫓는 노무현이랑 잘도 도망치는 알 자르카위를 풍자하는 동영상이 마구마구 만들어 지려나요..^^

911테러로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오늘 김선일씨의 죽음...
숫자가 중요하진 않죠. 사람의 생명인데.. 그 중함을 어찌 따지겠습니까.

헌데도.. 씁쓸한 이 뒷맛은 영 가시질 않네요..

수호에게서 온 편지

군대가서 두번째로 보내온 편지에..

형 우리 서로 더욱 우애있고 진솔한 형제로 지내자-

녀석... 그 말 한마디로 형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니.

건강해야한다!

2004년 6월 22일 화요일

3000번 버스

7시 반쯤 잠에서 깨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면은 얼추 8시가 되어 집을 나선다. 집에서부터 시외버스 정류장까지는 20여분 남짓의 걸음으로 가고, 운이 좋거든 곧바로 타겠지만, 대게는 5~10분 정도는 서너명의 줄을 따라 선채로 기다려야 한다.

3000번 버스를 처음 타게 된 것은 2년전 여름.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정확히는 늦봄의 어느날이었겠다. 어렵지 않게 찾아간 새 아르바이트 자리는 강남의 고층 빌딩이 즐비한 강남대로에 있었다. 처음엔 전철을 타고 언제 그곳까지 가려나 겁부터 먹었는데 출근하고 3일째인가 되는날 수원에서는 3000번 버스가 그 앞에 바로 선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날 걱정반 기쁨반으로 기다렸다. 버스는 뭐- 학교에서 타는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1300원(당시에)이나 되는 돈을 카드로 삑~하고 뜯겨야 했다. 그래도 전철을 두번이나 갈아타고 그 먼길을 빙빙 돌려가는 것을 떠올리면 1~2백원 더 든다 하여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버스는 편했다. 내가 타는 곳에서는 자리도 많을뿐더러 적당한 자리를 잡으면 살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과 햇살을 느낄수 있었다. 무언지 형언할수 없는 그리움과 아픔을 삮히듯.

오늘 아침엔 잔득 피고한 머리를 짊어지고 올라탔다. 창문이 열리지 않는 자리뿐이었지만 피할쏘냐. 냉큼 앉아 머리를 대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잔득 무거워진 눈을 떠 보았을땐 벌써 양재 꽃시장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 이 부분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공원을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인다. 차들은 왠 차들은 또 그렇게 많은지... 3000번 버스를 호위라도 하듯 밀려온다. 달라 붙는다.

버스의 덜컹거림은 때때로 엉큼한 기억의 조각을 집어오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여자아이의 귀여웠던 실내화하며, 고등학교 시절 내게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점심시간 내내 교실 앞을 서성거렸던 그 친구의 뒷모습. 그리고 벌써 3년이 지나버린 그 아이의 핸드폰에 녹음된 목소리까지...

줄기와 뿌리처럼 이어진 기억의 조각들은 서로 엉뚱한 길찾기를 되풀이하며 이어져 나간다. 만남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 그리고 또 헤어짐. 계획. 목표.. 다짐.. 약속... 거짓말.. 솔직함... 진심.. 만날래? 헤어지자고? 친구사이로. 그냥 그렇게... 선생님이 싫습니다. 이젠 보기도 싫다구요! 때론.. 그저 말없이 눈감고 가버린 사람도.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졸업을 하고 친구들을 잊어가고. 다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중에 평생지기를 만나고 졸업하고.. 꿈을 잃어버리고.. 대학은 또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만나고 헤어지고..

미쳐 생각의 끝이 어디론가 다다르기도 전에 버스는 종점에 와 있다.
나는 잔득 숙여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반쯤 잠에 잠겨있던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대고 강남역 1번 출구 앞에 서있다.

또 하루가 이곳에서 시작하는구나.

2004년 6월 21일 월요일

자전거 타기

한번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자전거 타기처럼...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탔던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의 머리에 머리를 밟고 올라가보면 그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가 산 밑의 허름했던 우리집이었고, 그 비탈진 고개를 나는 세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리막길을 따라 길은 언제나 차로 북적이는 큰길이 나왔고 그 삼거리엔 파출소 하나가 있었다.

두번이나 그 삼거리의 험한 자동차 밑으로 자전거가 빠려들어가 납작해지는것을 경험했다면 내 몸은 자연스레 자전거타기를 겁냈어야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수술대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자전거 패달을 밟고 달렸다. 파출소 아저씨의 어의없어 하시는 표정이 재밌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말이다.

두발 자전거- 정확히는 떠오르지 않지만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 해서 처음 타본것 같다. 어머니께서 어디선가 줏어오신 빨간색 자전거였다. 여기저기 녹도 많이 슬고 체인도 낡았지만 자전거포를 하루 다녀오더니 금새 새것같이 되었던 내 첫번째 두발 자전거-

온종일 탔을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자전거를 먼저 살피고, 밥먹는 것조차 잊은채 그 좁디 좁은 골목길과 동네를 휘저으며 자전거 타기에 힘을 쏟았다. 처음 며칠은 제대로 서지도 못했고, 처음 한주간은 똑바로 달리지도 못했지만.. 어느덧 자전거는 내 발이 되어 챙- 챙- 팽팽하게 당겨지는 체인의 힘으로 달렸다. 아스팔트 도로 위를.

꽤 오랜시간이 지났을 무렵. 몇번이나 자전거를 잃어버렸고 지금은 자전거가 없다. 작년 여름이었던가. 여의도에서 일을 하고 있었을 때 휴가 나온 친구가 여의도 공원까지 와 주었던적이 있다. 녀석은 일산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 한번 타 봐도 돼? / 응.

꽤나 높아진 자전거- 아니 그 높아진 시간만큼 떨어져 있던 자전거. 타 보지 못했던 자전거. 잘 탈 수 있을까?

달린다. 아하.. 달리는구나.

자전거. 몇년이나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체인을 굴리는 이 느낌과 감각. 잊어버렸을짐한 시간.. 그만큼 지났는데도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달리기 위해 몸부림 치지 않아도 몸은 균형을 잡고 그 큰 자전거를 곧게 세우며 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자전거와 같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또 있을까? 처음 배울땐 힘이들어도 마냥 좋아져서 헤어나오지 못할정도로 강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차츰 잊기도 쉬운 그것..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시작되면 몸이 기억하고 있는건. 내 감각이 기억하고 있는것 그래서 처음처럼 힘들이지 않고 시작될 수 있는것. 처음처럼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고. 좀 더 잘 타보려고 잘 해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그게 두번째 사랑이지 않을까.

2004년 6월 14일 월요일

사부가

유난히 장마비가 많던 해였습니다.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혹시라도 우산을 두고 등교한 날이되면 주룩 주룩 내리는 비를 모두 다 맞으며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었습니다.

그때즈음하여 아버지는 특별히 일이 없는 날이 많았었습니다. 하시는 일이 설비였는데. 그렇게 비가 많은 날은 공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럴때면 언제나 아버지는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시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하교시간에 맞추어 기다려주시는 것까지.

그렇게 그해 여름 나는 아버지의 따듯한 마음 아래에서 모진 장마를 피할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