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15일 월요일

궁지에 몰렸을땐 돌파하기보다 사라지기가 쉽다

어제부터 시작된 작업. 오늘도 역시 종일 쿽이란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벌써 몇번째 새로 작업인지 모르겠다.
딱히 어려운것도 아닌데 좀처럼 감이 오질 않는다. 뭔가 조금더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 보려고 발버둥은 쳐보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 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싶다.

지혜가 볼 일이 있어 남문에 들른단다. 잡지 만드느라 아이들 데리고 두번이나 합숙하면서 잠 한숨 못잤던 녀석이다. 이번주 내내 감자탕을 노래불렀다. 한끼 못사줄건 뭐냐.

오후 내내 가게를 보고- 어머니는 잠시 출타중. 5시 즈음에는 오시려나. 지혜와는 6시 약속이다. 조금 넘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부랴부랴 움직인 덕분에 지혜를 만났다.
한주동안 노래부르던 감자탕을 사 먹이고- 그렇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기숙사로 보냈다.

다시 돌아온 내 자리.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고-
음음 또또.. 어떻게 해야.. 그래그래.. 으...

눈은 점점 아파온다. 오후 늦게부터 침침하다 못해 통증까지 온다.



사람 마음이란건 참 모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온갖것들이 다 들어있어서 어떤 것이 언제 툭 튀어 나올지를 모르겠다. 나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전혀 다른 반응의 마음들을 깨워낸다. 때로는 상상도 못한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건 놀라움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아니 좌절이기도 하지. 충격이기도 하니까. 그건 다시 미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참 신기한건 그런것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좋아하는 마음이 된다. 사랑이 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 되기도 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 하나와 행동 하나가 내 속의 나도 모르는 것들을 마구 깨워낸다. 내 의지와 다르게-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무슨 말과 행동을 할런지 알 수 없다. 간혹 짐작을 시도해볼 뿐이다. 내게는 그 짐작의 적중율을 높일만한 능력이 별로 없다. 그저 당해야 한다. 꺼네주어야 한다. 나의 놀라워 하는 표정과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과 말- 자꾸 기대하게 만드는 마음까지. 내 의지와는 다르게 보여주고 들려주게 된다.

사람은 참 우습게도 그렇게 반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를 반응으로써 확인하면서 나를 느낀다.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세상과 삶이란. 결국 나 자신의 혼까지 깨뜨리며 존재를 부정하는 그것이다. 처절하게 다가오는 외로움. 극도로 몰아가는 슬픔.

그렇게 궁지에 몰렸을땐 돌파하기보다 사라지기가 쉬운 법이다.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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