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7일 금요일

국기하강식

동계가 되면서 태극기를 내리는 시각이 18시에서 17시로 앞당겨졌다. 얼마간은 이 바뀜이 어색해서 두어차례 때를 놓쳐 알파 근무자들을 추위에 마냥 떨게 했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제때, 또는 조금 일찍 틀어주는 일을 몇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그저 시간이 되면 근무자들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이제 내려요."라고 무덤덤하게 던져 놓고는 정훈실로 쪼로록 들어간다. 끈이 떨어져 그저 알맹이만 들고 다니는 손목시계를 꺼네놓고 초를 살피다가 59분이 막 넘어서면 앰프를 작동시킨다. 자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고, 손은 타이밍을 기다리듯 마우스를 살짝 움켜 잡는다. 56초, 57초, 58초. 딸깍! 빰-빠-빠- 막사 뒤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국기 하강식 음악. 하루중 가장 듣기 좋은 방송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좀 재미난 상황이 생겼다. 오랜만에 간부들이 모여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17시가 다 되어가도록 경기는 끝나지 않고 한참이나 계속되고 있었다. 이를 어쩌나? 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들던 참에 당직사령에게 달려가 한마디로 물었으나 곰곰 생각하던 사령은 원칙대로 틀어도 좋다고 답변해 주었다.

전에도 그저 틀어보았으니 오늘도 무례는 아니겠지 싶었다. 때를 기다려 근무자를 확인하고 정훈실로 돌아와 59분 58초 되는 타이밍에 딸깍거렸고, 방송은 으리으리하게 울려퍼졌다. 어쩌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둥실 띄우고 현관문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전까지도 무아지경으로 뛰던 간부님이며 전우들이 모두 제자리에 곤두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삼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다.

만약 A매치 경기가 열리는중에 애국가가 울려퍼진다면 우리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상대 선수들이 공을 몰고 우리 골대를 향해 달려오더라도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올릴 수 있을까? 그러다가 골을 먹더라도 국민들은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애국가라고 칭찬해 줄 수 있을까?

오랜전에 극장에서까지 애국가를 들어야 했던 말이 떠오르며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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