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2일 목요일

사격하기

일년만인가? 일년하고도 반년만인가? 얼마나 지났는지 날짜도 모르겠다.
년말만 되면 남은 탄을 소비하기 위해서 대규모 사격(?)이 실시된다. 덕분에 오늘 하루 무려 90발을 쏴대고 왔다.
훈련소 이후 처음으로 찾은 실거리 사격장, 100미터, 200미터, 250미터마다 표적이 자동으로 올라왔다가 "때"가 되면 죽어주는 센스의 사격장.
아주 오랜만의 사격이었지만 큰 부담이나 긴장은 없었다. 추운지 더운지 짜증스러움이 조금 일어날 뿐이었고,
어서 끝내고 돌아가자라는 생각만 가득 들었다.

훈련소에서
사격은 즉석복권과 같은 것이었다. 1등만 하면 집에 전화를 걸게 해주고, 포상휴가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영점도 맞추지 못했고, 영내 축소사격장에서 10발(20발중)도 맞추지 못했던 것에 내 목표는 내심 커트라인만 넘기자였다.(12발) 다행인지 운인지 비로 인해 한번의 연기 끝에 다시 찾은 실거리 사격장에서 나는 16발을 맞출수 있었다. 나로써는 너무나 잘 쏜 것이었고, 즐거운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1등을 해내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몰려왔고, 집에 전화를 어머니께 전화를 걸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무너져 내려 눈물이 났다.

오늘은 그런 운이나 즐거움은 애시당초 없을 것이었다. 포상은 있었지만 이미 '특등 사수'들이 즐비한 엔트리였다.
나는 아마도 아니 분명 10등으로 턱걸이를 해버린 탓에 오후까지 남아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오전 30발, 오후 연습 30발, 다시 측정 30발. 모두 90발의 탄 소리가 양 귀를 두들겨 댔다.
아직 결과는 모른다. 다만 포대 1등은 안경이 없어서 힘들겠다던 준호가 되었다. 포상은 확실하겠지.
동시에 '아마도 1등'을 자랑하던 임상병님의 아쉬운 얼굴이 스친다.
왠지 운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천진한 미소를 보이던 황일병도, 근무취침도 못하고 이게 왠 고생이냐며 계속 투덜되던 김상병님도. 모두 아쉬워 할 거다. 내심 1등을 바랬을 테니까.

나 역시. 아주 멋진 운이 왔더라면!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PRI 덕분에 온 몸이 아주 뻐근해졌다. 종일 밖에서 바람을 맞고, 바닥을 굴렀더니 먼지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탄내까지. 나는 몇 등이나 했을까?

역시나 겨우 10등을 했을까? 어쩜 측정 사격 40명 중 40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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