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11일 토요일

「축제」/ 이청준

-고아가 된 기분이랄까?
어머니의 상을 끝내고, 장혜림(작중 준섭을 취재하던 기자)이 기분이 어떻느냐고 물었을 때 준섭(작가의 작중 이름)의 대답이었다.
준섭은 어머니를 증인이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고 오늘까지 살아오는사이 가장 오랫동안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증인 말이다. 그 증인을 잃음으로써 나는 고아가 되어 버린다. 누구도 나를 가장 완벽하게 증명해 줄 수 없는...

아버지의 그리움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내게도 이미 10년도 더 되어버린 일이 된 그 날의 장례가 떠올라여서였는지 마지막어머니(작중)의 관 위에 흙이 떨어질 때 내 목이 매어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눈 앞에 10년전 아버지의 큼지막한관이 눈 앞에 와 닿았기 때문에...

이청준의 축제는 소설속에서도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임권택 감독의 요청에 의해 처음 시나리오와 대본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을새삼 소설로 도로 펼쳐낸 것이었다. 사실 그래서 기왕에 읽어가기 시작한 축제라는 소설을 영화와 함께 보고 싶은 생각도들었으나(오래전부터 마음 먹었으나 실천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군대에 있는 몸인지라 개인적으로 비디오를 대여할 길이 막연하여소설만으로 우선은 만족하게 되었다.

이청준의 글은 최근에 「머물고 간 자리, 우리 뒷모습」를 읽고, 거꾸로 「청춘」을 읽게 된 것인데 앞편의 책을 통해서 축제 저작에 대한 여러 단서들이 들어나 있어 축제를 읽음에 있어 한결 수월함이 있을 수 있었다.

앞서의 감정을 밝혔듯이 축제는 실제 저자의 어머니의 삶과 말년의 치매증 그리고 죽음과 장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그 사이 소설적인 허구가 조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을 접함에 있어 조심해 줄 것은 이청준이 임감독의 부탁에 못 이겨어머니를 소재로 한 마지막 작품인 이 '축제'를 쓰긴 했지만 결코 자신의 효심을 자랑코자 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작중 저자 준섭의 눈과 가슴을 통해서 내 아버지를 새삼 그리워하며 마음을 적실수 있었듯, 이 소설을 접하는 사람 누구라도 자식된반성과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새삼 일깨우기를 바랄 것이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그리고 기왕에 읽어버린 소설이라면 나름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장례 절차라든가 풍경은 여느 장례를 설명하고 있는 책보담 낫지 않나 싶을 정도다.

10년전 내나이 고작 열여섯이었을 때. 내 눈은 며칠째 울어버린 까닭으로 퉁퉁 부어 있었고, 숟가락을 입에 대지 못한것이이삼일째였는데 동네 친척네들 주민들은 다 모여서 어찌나 왁자지껄 노래하며 웃고, 떠드는지 속 없는 어린 가슴이 더 미어져 내렸던경험이 있었다. 이제와서 그것이 다 가는이 마음이 편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준섭마냥 반 고아가 된듯한 그날의 열여섯 나는 여지껏 쓸쓸함을 못 버리고 있는것도 같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