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6일 목요일

태그와 태그 사이에 나 있다

지난 2년 군대에 있는 동안 가장 힘들게 날 괴롭혔던 것은 나의 미래였다. 과거에 묻어둔 사랑과 열정에도 나는 쓸쓸해 했지만 다가오는 미래는 처량한 감상에만 빠질 수 없게 만들었던게 사실이다. 특히 직업이라는 것. 나이를 먹고 나도 한 사람의 몫으로 삶을 지탱해야 할 때가 되어서 그래 내게도 뚜렷한 직업이 필요해지는 시기가 오니까 막막했다.

입대전 나는 학생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프리랜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직업인이기도 했다. 그 때는 코더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 일. 인터넷에 뿌려져 있는 수 많은 웹페이지들을 출판(Publishing)하는 일을 하는 작업이다. HTML이라는 아주 쉽고 간단한 언어를 가지고 약간의 수고만 해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웹디자이너들이 주로 겸해서 하기는 했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웹에이젼시에서는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코더들을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또는 낮은 연봉의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작업은 단순했지만 업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흔히 노가다와 비교하는데, 정말 단순히 삽질만 온 종일 하는 것과 같은 일과의 연속이었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은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몫이지 코더의 몫이 아니었다. 고분고분히 좀비처럼 페이지만 만들어내면 그만이었다.

과연 이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가? 그게 지난 2년동안 날 가장 힘들게 흔들었던 고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웹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한국이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웹이라고 꿈을 심어볼만하겠는가. 나의 생각은 대체로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것이었다.

내가 상병을 달고 다섯달쯤 지났을 때 부대에 인터넷방이 생겼다. 그리고 그 즈음하여 나는 김중태님의 블로그에서 시멘틱웹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김중태님은 웹2.0과 시멘틱웹을 설명하기 위한 책을 내셨는데 다음 휴가때 수원역에 도착하자 마자 서점을 찾아 책을 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이 내가 웹퍼블리셔(코더)의 명함을 조금 더 유예할 수 있도록 꿈을 잡아준 길라잡이였던것 같다. 김중태님의 책과 블로그에서 나는 현실의 변화와 더불어 내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고, 인식의 변화는 내 다짐을 굳히고, 행동을 결행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올 여름. 나는 마지막 휴가를 나와 몇 군데 회사의 면접을 봤다. 며칠의 고민이 있었지만 비교적 어렵지 않게 지금의 회사를 선택하고 전역 후 바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난 웹퍼블리셔가 되었다.

소속은 개발팀이고, 처음 명함은 개발자였지만 업무적으로 퍼블리셔였고, 현재 새로 받은 명함에는 '웹'이라는 글자가 생략되긴 했지만 퍼블리셔라고 적혀 있다. 디자인팀이 아닌 개발팀에 소속되어 있는 까닭은 회사와 나 개인의 합의와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지금의 웹퍼블리싱 작업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기본적으로 UI를 인식하고 설계하는 기획자적 안목과 이미지로 구현된 디자인을 의미론적으로 분석하여 재디자인하는 디자이너적인 창의력, 프론트(웹브라우져)단에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위한 개발자적 실용성을 고루 갖추어야만 하게 되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이제부터라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실무를 더해가고 있다. 여건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아직도 디자이너나 개발자보다는 낮은 대우를 받아야만 하고, 업무의 양은 웹표준화로 인해 더욱 가중되었다. 인력은 부족하고 요구는 늘었다. 웹퍼블리셔의 작업은 결과만을 두고 보았을때 최종 사용자에게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작업이다. 때문에 퍼블리셔의 능력에 따른 대접을 요구하기란 더욱 힘들다. 하지만 웹퍼블리셔의 세심한 노력과 과정에 따라 완성된 사이트의 질은 크게 높아지거나 낮아지게 된다.

무심하게 눈발이 내리는 겨울밤. 사회에 첫 발을 내딛고, 반년의 시간을 지난 즈음. 그리고 새로운 공부와 인연을 맺기 직전의 순간에 이런 글을 남기는 까닭은 내 자신의 측은함도 있겠지만, 내 직업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이 불을 피우기 시작했음이기도 할 것이다.

웹표준화를 통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의미있는 태그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웹에 접근 가능한 사람과 기계들에게 정보로의 접근을 허락하고, 공평하게 제공되어질 수 있어야 하는 철학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의미있는 태그란 무엇인가. 내가 웹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그림이나 영상이 아닌 태그로써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게 아닐까.

고로,
태그와 태그 사이에 나 자신을 가장 먼저 정의하고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댓글 2개:

  1. "태그와 태그사이에 나 있다.".. 라는 제목 참 맘에드네요!

    글을보면서 공감을 백만개 날리고 있어요.

    저도 초심자의 마음으로 다시 열심히 하려구요!!

    (사실 암꺼뚜 모르기때문이지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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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bitty - 2007/12/07 11:18
    감사해요~

    뭔 생각으로 이 글을 썼나 몰라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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