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19일 목요일

「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은희경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를 통해서였다. 공지영의 여러 글들을 쫓다가 어느날 병영도서관(부대 내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 더이상 그녀의 글이 없음을 깨닭았을때 찾아 읽은 것이 은희경이었고, 그 첫번째 작품이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이었다. 은희경이 왜 공지영 다음이었고, 공지영의 대리 만족을 행세해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은희경을 통해 내게 빨려들기 시작한 소설에 대한 읽기 유혹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수 있었다.
특히, 장편소설「새의 선물」은 나를 완전희 그녀의 낮설고, 섬뜩한 글쓰기에 매료시킨 작품이었다. 앞 뒤의 순서도 모르고 잡히는 대로 읽었던 것 때문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먼저 읽기는 했지만, 본편의 외전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소설집「상속」은 아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읽은 직후에 읽었던 것 같다. (정말 순서가 엉망이었다) 결과적으로 「새의 선물」을 가장 최근에 읽게 되었고, 정말 최근작인 「비밀과 거짓말」을 마지막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 하나 어렵고, 낯설고, 경쾌하지 못하다. 김영하의 소설이 친근하고, 경쾌하고, 유혹적이라고 느껴지는데 비하면 상당히 반대되는 느낌이 지배적인 스타일이다. 은희경이 소설은 흔히 여자들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그 점에서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일단 공유하기 힘든 밴다이어그램이 형성되는 것인가 하고 물음표를 찍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은희경의 소설을 단숨에 덮지 못한것은 이 낯설고 어려운 읽기가 나를 이미 흥분시켰기 때문이었다.

「비밀과 거짓말」은 「새의 선물」과 닮아 있으면서도 사뭇 다르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진희'를 통해 어른들의 비밀을 폭로하던 그녀는 스스로 비밀을 만들고 거짓말을 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런 점에서 「비밀과 거짓말」은 소설집 「상속」과 닮아 있고, 연장선에 있는 듯 하다. 「타인에게 말걸기」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새의 선물」에서 보여준 '진희'의 그것이거나, 같은 사고의 여자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고백이었다면, 「비밀과 거짓말」의 '아버지'는 「상속」에서 그려내는 '아버지'와 어쩐지 닮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진희'가 아버지가 없는 아이로써, 홀로 어른이 되어 버렸음에도 결국 '아버지'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랄까? 그런 느낌이었다. '진희'는 세상에서 홀로 고독한 우리들의 모습이면서도 결국은 누군가의 아들이며 딸일 수 밖에 없는 인간적인 한계의 하소연일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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