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2일 토요일

커피를 마시면서 웹 접근성을 고민해보자

쉬운말로 풀어보자.

따듯한 카페모카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는 다음 3가지 경우를 머리속으로 따져보기 시작했다.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는 500원짜리 인스턴스 카페모카를 판매하는 편의점이 있다. 24시간 오픈되어 있고, 거리도 가깝다. 하지만 커피 전문점은 아니다. 잡다한 것들이 함게 진열되어 있고, 테이블은 누군가 컵라면을 먹다가 국물을 흘린 자국이 선명하다. 500원짜리 인스턴스 커피맛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리고 조금만 걸어서 사거리로 나가면 카페모카 한 잔에 2,900원쯤 하는 작은 테이크아웃이 있다. 특별히 맛이 있는것도 아니고 테이블이 고작해야 1~2개 뿐이겠지만 잠시 앉아서 커피맛을 즐기기엔 나쁘진 않다.

마지막으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가면 한 잔에 5천원 하는 고급 카페모카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과 테이크아웃이 즐비하다. 제각각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충분한 테이블을 준비해 놓고 있다. 어떤곳은 심지어 무선 인터넷까지 지원되고 있고, 흡연석과 비흡연자를 위한 자리를 따로 두고 있기도 하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어떤 커피를 마시겠는가?

당신이 만약 된장남이나 된장녀라면 가벼운 마음에 슬리퍼를 신은채 나왔다고 하더라도 기어이 택시를 타고 시내에 있는 유명 브랜드 테이크아웃을 찾아 들어가서 5천원짜리 커피를 마시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당신은 차마 시내까지 갈 엄두는 없고, 적당히 자신과 타협하며 사거리의 저렴한 테이크아웃을 이용하며 만족할 수도 있다.

마지막의 당신은 사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다.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있을정도는 되지만 택시들은 못본척 지나치기 일쑤고 버스는 그나마 탈수야 있겠지만 여간 힘든 여행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사거리까지만이라도 나갈라 치면 골목 골목 갑자기 튀어 나오는 차들을 경계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만다. 결국 당신은 집 근처 편의점에 가서 500원짜리 인스턴스 커피를 사서, 뜨거운 물을 붓고 편의점 밖 파라솔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것이다.

이 상황에서 몇가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1. 몸이 불편한 사람이거나 성미가 급한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자 한다.
  2. 여유가 있더라도 충분한 동기부여가 없다면 대부분의 경우 사거리의 커피를 마신다.
  3. 된장남, 녀와 같이 커피에 대한 열망이 높거나 시내에 볼 일이 있어 나와 있는 소수의 사람만이 시내의 커피를 마신다.
  4. 시내의 테이크아웃/커피숍은 고급 인테리어와 고급의 커피를 확실한 소비자층을 타킷을 설정하여 장사를 한다.
  5. 사거리의 테이크아웃/커피숍은 저렴한 가격의 커피와 멀지 않은 곳에서의 소비를 위한 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6. 편의점은 고객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많은 고객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7. 가격과 실소비력을 따져보면 시내의 대형 커피숍이 가장 많은 고객이 찾고, 이윤을 남길 것이고, 사거리 커피숍과 편의점의 순이 될 것이다.
  8. 전체 소비 대상으로 따져보면 7번과 달리 편의점 > 사거리 > 시내의 순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 거리와 가격, 커피의 맛과 향기, 숍의 인테리어와 부가적 기능(무선 인터넷, 흡연석) 등을 따져볼 수 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린 당신은 세 곳중 한 곳을 찾게 될 것이다.

다시 위의 상황을 웹접근성에 대한 것으로 빗대볼 수 있을것 같다.

  1. 시내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무선 인터넷까지 지원하는 고급커피 테이크아웃은  플래시 모션 그래픽으로 훌륭한 UI를 가지고 있고 퀄리티 높은 디자인을 보여준다. 더불어 Active-X 기술을 이용하여 다양한 부가 서비스도 제공하는  최고급 사이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MS사의 인터넷 익스플로어 전용이다.
  2. 사거리의 작은 테이크아웃은 보편적인 디자인과 일반적인 자바스크립트만을 가지고 만들어진 사이트여서 Firefox든 Safari든 접속은 되는데 부분 부분 화면이 깨진다.
  3. 집 앞의 편의점은 정말 단순하게 만든 사이트다. 자바스크립트조차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브라우저가 이 사이트를 대체로 잘 보여줄 수 있다.

상당부분 비슷하게 따져볼 수 있는것 같다. 하지만 커피마시기와 웹접근성에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생략되어 있다. 바로 웹에서는 '거리'의 개념이 실세계와 다르다는 점이다. 실세계에서 우리는 시내의 커피숍을 가장 먼 곳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웹에서는 편의점과 같은 맛도 없고, 인테리어도 없는 곳을 가장 나중에 찾게 된다. 왜일까? 웹에서는 클라이언트 브라우저와 모든 웹사이트의 거리가 의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웹은 마디(사이트)와 노드(길)로 이루어져 있고, 링크는 마디와 마디 사이에 노드를 깔아준다. 각 각의 노드는 언제나 동일한 의미적 거리를 갖게 만들기 때문에 사용자들은 한 번의 클릭(링크)으로 사이트(마디)로 이동할 수 있다. 때문에 예쁘고, 기능적인 웹사이트를 우선적으로 찾게 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실세계에서는 물리적인 제약 즉 거리와 이동수단등의 문제때문에 장애인과 노인, 아이들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는데 웹에서는 거리와 이동수단이 소멸 (또는 표준화)되면서 사이트 자체의 디자인과 기능 차이가 장애인과 노인, 아이들에 대한 또다른 차별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웹은 비물질적인 공간이다. 웹을 구성하는 하드웨어는 물질로써 존재할수 있지만 그 안의 컨텐츠는 비물질적이며, 비선형적이다. 거리와 시간 그리고 이동수단이 단일한 단위로 축소되거나 표준화 되어진다. 따라서 웹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웹사이트는 똑같은 거리와 시간 그리고 이동으로써 접속되고 컨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세계와 닮아버린 웹은 이와같은 거리, 시가,  이동수단의 소멸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차별'의 디자인과 신기술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Active-X가 설치된 웹사이트는 비IE 사용자들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고, 예쁘지만 너무 작은 이미지 글씨들은 시각 장애인들 뿐 아니라 노인과 어린이들에게까지 접근성을 낮춘다. 확인 버튼이 없는 Select Box는 시각장애인에게 두번째, 세번째 항목의 선택권 자체를 박탈하고 있고, 멋진 플래시 무비는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사거리의 그저 그런 커피숍이나 집 앞 편의점을 찾게 된다. 제대로 된 커피맛을 즐길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욕망을 해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좋고, 모션도 화려한 Active-X로 멋진 기능들을 구현한 웹사이트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남 거리에 수 많은 커피숍을 안다. 커피빈과 스타벅스, 엔젤리너스를 찾는 사람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있게 바라보면 그들은 강남 일대에 근무하는 20~30대의 젊은층이 대부분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지체장애인을 본 적 있는가? 나이 지극하신 노인이나 어린 아이 손을 잡은 주부를 몇이나 보았는가?  그곳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다. 세상 사람 모두가 커피를 마시러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집에서 인스턴스 커피를 타 마시거나, 편의점의 싸구려 커피를 고르는데 시간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며, 실세계가 거리와 시간, 이동수단으로 생기는 차별적 문제를 고스란히 웹으로 가져와 인식(자사의 사이트는 고객을 위해 Active-X를 사용하기 때문에 MS의 Windows와 IE에서만 접속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공지하거나 화려한 디자인과 UI를 위해서 플래시 모션 그래픽을 사용하면서 키보드 제어등을 무시한것 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웹에 접속한 순간 당신이 28살의 정상인이든 70세의 눈이 침침한 노인이든, 6살 꼬마 숙녀이든, 눈이 보이지 않거나, 팔이 불편한 장애이든 똑같은 한 사람의 유저일 뿐이다. 어디든(어떤 사이트든) 한 번의 클릭으로 사이트로 접속할 수 있고, 똑같이 컨텐츠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웹이 실세계의 차별을 없앴는데 왜 사람이 다시 그 차별을 만드려는가?
그건 무조건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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