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4일 토요일

카메라 빌리기

오전 11시. 다소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원래 예정되었던 저녁 모임 약속이 깨져서
오전중에 강남에서 의경이를 만나기로 했다.

조금은 더울듯한 날씨였지만, 혹시나 해서 잠바를 입고 나섰다.
일주일 내내 채점 알바를 한 탓인지 아침부터 피로가 몰려왔고,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어버린것 같다.

귓속을 진동하는 잭 존슨의 Good People이 너무 좋아 더 빨리 잠이 들긴 했지만,
강남역에 다다라 막 잠이 깨었을때의 느낌은 몸살을 앓다가 일어난 그 기분처럼
느껴졌다.

의경이는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덕분에 어울리지 않는 강남대로의 풍경과 음악은 그렇게 묘한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맘때쯤에나 볼 수 있는 화창한 강남대로의 하늘과 각양각색의 외제차들. 도로의 한복판에 섬처럼 떠 있는 정류장과 섬을 향해 질주하는 People. 퉁 퉁 튕겨내는 기타의 묘한 선율과 고스란히 감전되는듯한 잭 존스의 목소리. 따듯함에 실려오는 봄바람과 쉬이 가시지 않는 피곤함까지.

내 카메라는 두 주 전쯤에 지영이에게 빌려주었다. 5월에 고향에 있는 모교로 교생실습을 나가게 생겼는데 카메라가 없어 내심 걱정을 하던 모양이었다. 뭐- 주변에 둘러보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빌릴 수 있었겠지. 여차하면 나도 미안해하면서 거절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십여분의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웃으며 그래-라고 말해는 것이었고, 그렇게 이주가 지난 오늘. 난 의경이에게 카메라를 빌리기 위해 아침부터 부랴부랴 강남에 나와 이런 청승을 떨게 되었다.

의경이와 길건너 J샤브샤브집을 찾아 들어가 런치세트로 굶주림을 해결하고, 새로 생긴 베스킨 라빈스 카페? 인가 하는 곳을 들러, 아이스크림과 에스프레소의 오묘한 만남을 장난스러움으로 버무린 커피를 마셨다. 의경이를 논문 도서관까지 바래다 주고는 재법 뜨거워진 햇살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발걸음을 3번 출구 정류장으로 옮겼다.

불현듯 떠오른게 있었는데, 오늘 오후에 강남에서 지혜?한나가 만난다. 얼굴이라도 보고 갈까? 했지만. 쯧. 그냥 지혜에게 전화만을 걸어보고, 그대로 버스에 올랐다. 날은 더워지고, 버스안은 출렁거렸으며, 내 머리는 무거워졌다. 또 그렇게 잠이 들었고, 시간은 50여분 남짓을 지난후에야 나를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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