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4일 수요일

네이버 폐쇄공포증

인터넷을 시작한것이 97년이었다. 고등학교를 막 입학했을 때였고, 586PC를 구입했을 때였다. 그전까지 사용하던 386PC로도 몇번인가 텔넷을 이용하여 텍스트로 구성된 인터넷을 이용해 본적이 있었지만 그것이 인터넷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었다. 처음 조약한 익스플러어를 이용해서 인터넷에 접속한건 정확히 97년이었다. 95년 전후로 인터넷이 대중에게 알려졌으니 97년은 국내에서도 폭발적으로 인터넷 사용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수백의 마라토너처럼 나 역시 그 속에 끼어 뛰기 시작했다.

오늘은 2005년 4월 18일이다. 1997년으로부터 9년여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날이다. 10년 가까운 이 시간동안 나는 인터넷에서 수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샐 수 없을 만큼 많은 웹사이트를 방문해야만 했다. 지적 목마름도 컸을 것이며, 광고의 유혹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모뎀 선을 이용한 인터넷 사용은 한국통신의 ADSL을 설치하면서 하루라는 시간을 인터넷에서 마음껏 놀 수 있게 해주었고, 정보검색이나 새로운 사이트를 찾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요즘도 메신져는 하루종일 나의 존재를 인터넷에 알리고 있다.

백수로 지내는 요즘 이르면 9시 늦으면 11시쯤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세수를 하고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마땅한 일이 있다면 그것부터 챙길 것이지만 요즘은 백수이므로 어제 오늘의 뉴스를 읽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네이버는 그렇게 들어가게 된다. 최근 디자인을 조금 바뀌어 뉴스 부분이 가운데 뜨는것이 마음에 든다. 주로 읽는 스포츠면을 단번에 클릭할 수 있는것도 마음에 든다. 축구 경기 결과며, 박찬호의 2승 도전, 기아 타이거즈의 충격의 8연패 소식을 접한다. 다시 핫이슈를 클릭하고, 독도 문제와 중국민의 반일 시위를 살펴본다. 노무현 대통령의 귀국소식과 엽기 갤러리를 확인해보고, 로그인을 하여 친구들의 블로그를 차례로 살핀다. 새로운 포스트가 있다면 물론이거니와 안부 물음이 뜸했던 친구에겐 메세지를 남기는 일을 잊지 않는다. 난데없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왼쪽 상단에 날개 달린 모자를 클릭하여 검색창에 대고 "모르는 것"을 검색한다. 네이버는 지식iN과 전문지식, 카페, 블로그, 웹문서를 순서대로 성의껏(?) 나열해 준다. 습관처럼 지식iN을 가장 먼저 살펴보고, 블로그 포스트를 재검색해본다. 수십 수백건의 포스트가 나타난다. 하지만 처음 한 두페이지를 살펴보고 나면 서너개의 포스트를 제외하면 모두가 "펌"으로 채워진 카피들이다. 끝으로 다시 웹문서를 검색해 보지만 신통치가 않다. 결국 구글을 찾아가 다시 검색해보는 수고를 하고야 만다.

구글까지 와서야 왠지 싸늘한 기분을 느낄수 있게 되었다. 구글의 썰렁하다시피한 디자인에 충격을 받아서가 아니다. 구글의 가공할만한 검색 능력에 혀를 내둘렀기 때문이 아니다. 네이버 안에서 모든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일순간 무너짐과 동시에 네이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나의 인터넷 경험이 허무감으로 바뀌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같은 포털사이트들이 인터넷 초창기와 같이 네티즌들로 하여금 거대한 인터넷을 항해할 수 있도록 항구의 역활을 더이상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전의 어떤 칼럼을 통해서 인식한바 있었으나, 10년 가까운 시간을 인터넷을 해왔던 나 역시 "네이버"라는 항구에 묶여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다른 공포로 다가왔다. 폐쇄공포증. 그것일까? 네이버가 아닌 곳이라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끊임없이 표류하게 되고, 망망대해의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인가?

네이버는 더이상 항구로써의 역활을 수행하지 않는다. 마치 알카트라즈 감옥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듯한 환상에 빠져버린 수많은 네티즌들은 네이버의 계획된 징집령으로 아무런 대가도 얻지 못하고 노역을 하고 있다. 지식iN? 블로그? 수많은 네티즌들의 지식 채우기와 무단 펌으로 채워진 공간 아니던가? 저작권자의 허락은 고사하고, 법적인 책임까지를 네티즌에게 전가하는 네이버는 그렇게 네티즌들에게 최면을 걸고, 수용하고 있다. 마치 양계장 속에서 끊임없이 달걀을 낳는 닭처럼 말이다.

인터넷은 링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링크는 무형의 인터넷에 공간의 확장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네이버의 링크는 수용소의 수 많은 방과 방 사이의 링크일 뿐 절대로 수용소 밖의 세상으로 링크를 걸지 않는다. 네이버 속의 수많은 자신도 모르게 네이버 폐쇄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네이버에서 벗어나라
    대한민국은 IT의 강국이다. 벤쳐붐이 일었고 수많은 인재들이 IT 산업에 뛰어들었다. 게임산업은 부흥하여 유명한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한국에서 출시되었다. 또한 게임 자체 산업도 발달하여 세계적인 규모의 게임대회도 한국에서 열린다. 전 국민의 대부분이 초고속 통신을 사용하고 있으며 상가가 밀집된 동네 한 건물 건너 하나당 피씨방이 자리잡고 있다. 서두가 길었다... 그만큼 우리가 지금 이 위치에서 돌아보면 (어찌됐든) 외형적으로 대한민국은 IT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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